아버지란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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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전우현
- 작성일 : 05-03-2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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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각북에는 우리 가족이 한번씩 들려 시원한 자연을 만끽하는
별장이라 부르기에는 좀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대궐보다도 더 소중한 별장이 하나 있다.
넓지도 않고, 그렇다고 좁지는 않지만, 주변으로 비슬산 끝자락의 아름다운 계곡과
옆으로는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맑은 시냇물이 조용히 흐르며
바람에 쉽게 흩날리지 않는 양지바른 곳에 황토로 손으로 쌓아 올린 조그마한 전통 한옥 모양의 별장이다.
우리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유명한 경고(경북고등학교) 출신이다. 당시로서는 실로 대단한 고등학교였나 보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초등학교시절, 아버지의 고등학교 체육대회하는 날이면 정말 어마어마 했던 기억이 난다. TV에서나 보던 유명한 정치인들 경제인들, 심지어는 대통령이 와서 개회사를 하는 것도 봤고, 각 기수마다 커다란 천막을 치고, 온 가족이 모이는....
먹을 것이 너무나 많아서, 음료수건, 아이스크림이건 밥이건 국이건, 술이건 간에 정말 계속 계속 먹고, 즐기는 그런 모임이었다.
공부를 잘 하셨나 보다. 경중, 경고를 나오셨으니...나도 학창시절 때 공부를 좀 한다고 이야기도 들었지만, 아버지에 비하면 명함도 못 내미는 것 아닌가 한다. 하지만, 아버님은 대학을 제대로 나오지 못하셨다. 원래 굉장한 부자였던 할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셨지만 계속 되는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아버지는 5남매의 큰 형으로써 가족의 고통을 혼자 짊어지고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부터 삽질이며 트럭운전수를 하셨다. 그렇게 그렇게 동생들 대학들 다 보내고, 자식들 손 수 키우시니 이제 환갑을 넘긴 나이까지 오신 것이다
허무하신 것이 있으셨던지, 세월이 아쉬웠던지 언젠가 부터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좋은 터를 찾아 다니시더니
결국 청도 각북에 작고 아름다운 터를 하나 찾아 정말 나무와 흙으로 손수 집을 쌓아 올리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훨씬 지나고 있다.
그 여름 뙤약볕에서 한번씩 주말에 자식이랍시고 가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서로 멀치감치 떨어져 구석에서 부터 잡초를 뽑으면서 이따금씩 아픈 허리를 펴면, 물 한모금 마시다가, 그래도 못났어도 이쁜 자식이라고 내가 가면 얼른 시원한데 앉으라며 극성이시다.
지금도 나는 병원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씩 아주 가끔식 들러 본다. 일하러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정말이지 한번씩 들러만 볼 수 있다. 한번씩 가면 그사이 금방 금방 변해가는 모습이 얼마나 두 분께서 많이 노력하셨는지를 알 수가 있다. 우선 보기에는 그냥 돌 같지만, 저 무거운 돌 하나하나 손으로 들어 얹어 세월이 지나, 굳어 벽이 되어있는 것을 보노라면 마치 아버지 어머니의 손의 굳은살을 보는 것 같아 눈시울 뜨거워 질 때가 많다.
" 아버지... 그만 하시고, 사람 좀 들이세요.."
" 요즘 사람이 어디 있냐?.... 그리고 돈이 어디 있냐?..."
" 그렇지만....."
항상 부자간의 대화는 단순하면서도 같은 결론이다. 내가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도움받을 아버지도 아니시다.
해묵은 장갑, 다 떨어져가는 몇해째 되는 땀에 절은 밀짚모자를 보노라면......
이제는 좀 쉬셨으면 한다. 사실 그렇다고 내가 도와드릴 형편도 아직은 못된다.
그래서 항상 청도 별장에 나가는 날이면, 즐거움도 있지만, 항상 마음이 무겁다.
그래서인지 이따금식 아버지께서 청도에 계시지 않는 날 피해서 나가 보기도 한다.
혼자서 그 마당을 걸어 보노라면,
순간 밟히는 돌 하나, 잔디 하나에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고
마치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슴을 밟고 있는 것 같아 자식으로서 참 가슴아프다.
환갑을 이제 훨씬 넘긴 아버지. 평생 시계하나 없이 일하시는 것이 아쉽고,
내 결혼 예물 시계 보며 참 흐뭇해 하시던 아버지를 위해서
작년에 작은 로렉스 콤비를 하나 사 드렸더니, 그것마저 아깝다며 사용하지 못하시는 아버지.
자식은 취미다 뭐다 해서 값비싼 카메라에 렌즈에 잘도 사서 혼자서 고상한 척 시간보내는 데
아버지는 아직도 자식 걱정이 한참이시다.
그게 아닌데....이게 아닌데.....
아버지의 검게 그을린 이마에 땀망울은 언제쯤 그칠까.
당신은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평생 비싼거, 따뜻한 거, 보드라운 거
입어 보지 못하시고
오늘도 다 헤어져가는 밀짚모자에
누런 목장갑에
그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가쁜 숨을 몰아내쉬고 계시는가.
당신께서 심은 오늘의 저 나무는
당신을 위한 그늘을 만들어 줄만큼 빨리 자라질 못할 터....
당신께서도 잘 아실텐데...
나는...
언제나 다 자라서,
아버지에게
저 따가운 햇살을 피해줄 시원한 그늘이 되어 줄것인가....
저 뙤약볕에 혼자 서 있는
아버지의 외로움을 덜어줄 동반자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아버지...
오래 오래 건강하세요...
큰 아들 올림.
[촬영 정보]
Leica M3 / 50mm Elmar 2.8 Red feet / 400TX / Epson4870 Filmscan
*** 원 사진이 있는 홈페이지의 트래픽 초과로 사진을 따로 아래에 올립니다. 이해 바랍니다. ***
댓글목록
손재호님의 댓글
손재호
사진도 좋고 내용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아버지의 굵은 손마디,굳은 살.... 저는 원래 아버지의 손이 그렇게 크고 단단한줄로만 알았습니다.
그 굳은 살은 가족들 부양하시기 위한 땀방울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커서야 알았습니다.
저도 열심히 살고, 노력해서 부모님 얼굴에 웃음꽃 피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좋은 글과 사진 잘 감상했습니다.
양정훈님의 댓글
양정훈
이미 돌아 가셨지만 제게도 아버지가 계셨고,
지금은 슬하에 삼십을 바라 보는 아들이 있어 어려운 아버지의 자리에 있기도 하지만,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저의 불효에 마음이 아프고,
자식을 바라 보면 항상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제 자식은 아버지인 제게 또 어떤 마음일까요.
제 아들도 언젠가 장성한 자식의 아버지가 될터인데, 아들은 그 때 또 어떤 마음이 될까요.
아들이 군에 있을 때 자기 동생에게 부모님께 효도하라고 쓴 편지를 보며
부모 자식지간은 참 어쩔 수 없구나 생각했습니다.
전우현님 글, 참 감명 깊습니다. 사진도 좋고, 글도 너무 좋습니다.
아버지 마음과 아들의 마음, 아들 됨과 아버지 됨을 동시에 생각케 해주는 뜻 깊은 글이었습니다.
김봉섭님의 댓글
김봉섭
글과 사진에서 아름다운 전우현님의 지극한 효심을 느낄 수 있어 너무 좋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구요... 아버님도 만수무강하십시요~~~
조성기님의 댓글
조성기
멋지다! 사진과 글의 조화로움을 ....
글이 사진적인 면을 초월 하는군요... 나도 글 재주가 전샘의 그림자라도 되어야 할텐데..
사진을 글 보다 더 진하게 전달 할 수있는 그날을 기다려 봄니다.
갑자기 수제자가 보고 싶네요! 지금쯤 코골며 피곤에 져저 꿈나라에 있겠죠?
아마 군대에서 힘들땐 mp와 비트의 감각을 그리겠죠 뭐...ㅋㅋㅋ
이석구님의 댓글
이석구
부모님은 "살아있는신" 입니다
전우현님에 지극한 효심을 잘아실것입니다,그리고 흐믓해하실것입니다.
이상제님의 댓글
이상제
아버지를 생각하는 전우현님의 애틋하고 따뜻한 효심이 그대로 전해져옵니다.
월요일 아침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안승국님의 댓글
안승국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어릴적 아니 어른이되었을때도 아버지는 거대한 기둥같은 존재였읍니다.
전우현님의 글속에 느끼는 감정이 아버지와 자식들의 공통된 끈끈하고 묵직한 끈이 연상됩니다.
저와 모던아들들이 느끼는 같은 감정일것 같읍니다.
좋은 배경의 풍경과 사랑이담긴 사진과글 감명깊게 잘 보았읍니다.
김필수님의 댓글
김필수
감동적인 글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부모가 되어 보아야 안다고 하더라구요
아버지가 되어 있는 지금 그 말의 뜻을 조금은 알고
부모님을 다시 생각케 되었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책에 이런 말이 나와 눈물이 왈칵 솥아졌습니다
"아버지를 생각 안하는 아들은 있어도 아들을 생각 안하는 아버지는 없다고"...
김용준님의 댓글
김용준
자동차를 운전하며 가다가 신호대기중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분들 중에, 아니면 길을 가다가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어른을 뵐때면 생각하는 바램 한가지가 꼭 있습니다.
한 번만 꼭 한번 만이라도 내 앞에 아버지가 계셔서 사랑한다는 말을 해 드리고, 꼬옥 한번 안아 보고 싶다는.....
지금도 나 자신이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 있지만, 내가 힘들 땐 항상 혼자 말처럼 불러보는 이름이 아버지.어머니라는 가장 아름다운 말이 아닌가 합니다.
전우현님께서 월요일의 아침 눈에 이슬을 맺히게 하는군요.
좋은 글과 사진으로 부모님을 생각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함을 드립니다.
며칠 후면 청명 한식 날이군요.
아이들 데리고 따스한 봄 햇빛과 바람을 맞으며 부모님 산소에 다녀 와야 겠습니다.
윤재경님의 댓글
윤재경
가슴을 울리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늘 부모님을 곁에 모시고 살고 있지만...부모님 사진 제대로 찍어드린 적도 없네요.
따스한 봄 날 같은 이야기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신동열님의 댓글
신동열
글안에 부모님에 대한 전우현님의 마음이
듬뿍 배여있습니다.
공기와 같이 부모님의 고마움을 잠시나마 잊고 사는 저에게
다시한번 부모님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전우현님의 댓글
전우현
월요일 아침부터 너무 무거운 글을 올린 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습니다. ^^
부모님의 마음, 자식된 마음 모두 같은 마음인 것 같아 댓글 다신 여러 선배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한참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저녁에는 부모님댁에 한번 들러야 겠습니다.
이현구님의 댓글
이현구
좋은사진. 좋은글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막내를 군에 보낸 아비가 된 지금의 나.
내일 모래가 , 연세가 드셔서 지금은 아주 작아지신 아버지. 우리 아버지의 82번째 생신입니다.
이번 아버지의 생신은 좀더 많은 생각으로 맞아야 겠습니다.
전선생의 글을 대할때마다 감탄하게 됩니다.
좋은글. 그리고 사진 감사합니다.
참 서정현 선생께도 안부 전해 주십시요.
최용찬님의 댓글
최용찬
참... 하.....
제 아버지도 힘들게 저를 키웠을텐데 ..
....전화도 자주 못드리고...
그런 저도이제 5개월된 아들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전화래도 드려야 겠습니다.
참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과 사진입니다.
좀더 모아 책을 한권 내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멋진 Photo essey가 될것 같은데요.
도웅회님의 댓글
도웅회
전선생님 아버님께서는 참 행복하신 분이십니다..
부모님를 향한 애정이 마음속에 머물기는 쉬워도 이처럼 표현되기는 그리 쉽지는 않을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좋은사진과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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