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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환갑이신 아버지. (아버지와 K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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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전우현
  • 작성일 : 04-08-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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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벌써 제 나이도 서른이 넘고, 아버지도 환갑을 맞으십니다. 선물을 하나 해 드리려고 해도 절대 받지 않겠다고 말리시는 모습이 아직도 어릴때 아버지 모습 그대로인데 아쉽게도 이제 벌써 60이 다 되셨어요.

지금은 제가 결혼한 이후로 분가해서 떨어져 살고 있어 같이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신 부모님이십니다.

문득 아버님과 같이 살때의 일화가 생각이 나서 비도 오는데 글 읽으시고 웃으시라고 해서 당시 있었던 실화를 그대로 적습니다.

사건은 몇해 전이었습니다.
당시 전 대학생이었고, 언젠부턴가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먹는 것을 즐기는 때였는데...

주로 아버지나 제가 귀가를 하면서 적당한 메뉴를 골라서 사 와서는 저녁에 밤늦게 가족전체가 모여서 (가족이라 해야 부모님과 장남인 저, 그리고 5살 아래인 제 동생이 전부입니다만) 야참을 즐긴는 것이 더 없이 즐거웠습니다.

그 날은 아버지께서 가장 늦게 오시는 날이라서 어머니께서 전화를 통해서 "오늘은 닭고기가 먹고 싶으니, 프라이드를 사오세요, 그리고......xxxx"라고 아버지께 미리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아버지께서는 KFC에 가셔서 닭을 사서 집에 오셨습니다. 당시에 저희 집에서 가장 맛있게 먹는 메뉴중의 하나가 KFC의 핫윙등의 메콤한 맛의 튀김닭이었고, 그 이전에는 주로 저 혹은 동생이 많이 사왔지요..

아버지 : 나 왔어. 그리고 닭 사왔어. 여기...

어머니 : 어서 씻으세요. 얘들아 아버지 닭 사오셨다. 손들 씻어...닭 먹자구나..

나 & 동생 : 네....

아버지께서는 이윽고 욕실에 씻으러 들어가셨습니다.

그 후 부엌에서 닭을 꺼내서 쟁반에 담으시던 어머니께서 고개를 갸우뚱 하시더니... 갑자기 화가 난 목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 보이소~ (아버지께). 왜 무시는 엄능교? (무우의 경상도 방언, 여기서 말하는 무우란 통닭집에서 닭을 팔 때 같이 나오는 절인 무우로, 새콘 달콤한 하얀 무우를 말합니다. 통상 경상도에서는 "무시"라고 부릅니다)

아버지 : 뭐라꼬? (아마도 세수중이신것 같습니다)

어머니 : 아따 저 양반이.... (닭을 꺼내시다 말고 바로 욕실로 뛰어 가십니다, 저와 동생은 마루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 (욕실 문을 빼꼼이 여시고는) 와, 무시는 안 가완는교? (왜, 무우는 가져오지 않으셨어요?)

아버지 :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시다 말고는) 뭐라카노? 그럴리가 인나? (무슨 말이야? 그럴리가 있나?)

어머니 : 빨리 나와가 함 보이소. (빨리 나오셔서 한번 보세요)

아버지는 급히 물기가 흐르는 상태로 부엌으로 달려 가셨습니다. 어머니는 화가 단단히 나신 듯이 허리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따라 가셨습니다.

우리는 도대체 무슨 상황인줄 몰라서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 (비닐 봉지 안을 이리저리 살피시다가) 어? 야들이 진짜 안넌네...(어? 얘들이 진짜 넣지 않았네.)

어머니 : 맞지예?(맞죠?) 내가 아까 전화로 안캅띠거. 입이 많다고 무우 단단히 마이 넣어 돌라카라 안켔십니꺼.(내가 아까 전화로 말씀드렸잖아요. 사람이 많아도 무우 많이 넣어 달라 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버지 : 아이야. 안그래도 내가 무우 마이 너라고 두번이나 캐써. 이노마들, 나많은 사람이라고 무시하느기가 뭐꼬? 순 날강도 놈들 아이가. (아니야. 그렇지 않아도 내가 무우 많이 넣어달라고 두번이나 이야기했어. 이녀석들,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무시하거야? 순 날강도 놈들 아닌가)

어머니 : 그라이, 분명 확인하라 안캅띠꺼. (그러니까, 분명 확인하라고 그랬지 않아요...). 아이고, 마 됐심더, 김치하고 묵지예. (아이고, 그만 두세요. 김치하고 먹지요 뭐..)

아버지 : 다시 가따 오까? (다시 갔다 오까?)

어머니 : 마, 돼씸다. 마자 따끄이소. (그만, 됐어요. 물기나 마저 닦으세요)

저와 동생은 그제서야 사건이 어떻게 되어 가는 지를 파악하고는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반 동네 길가에서 파는 통닭집에서는 의례 무우를 넣어 주지만, 아시다 시피 KFC등에는 그런게 없고, 샐러드나 오이 피클 같은 것을 주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사오신 봉지 안에는 평소 2배가 넘는 양의 오이 피클과 샐러드가 잘 포장된 채로 들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마무리를 하셨죠.

어머니 : 다시는 당신 거기서 닭 사오지 마이소. (다시는 당신 거기서 닭 사오지 마세요). 야들아 묵자. (얘들아, 닭먹자)

저희는 아버지께 자세한 설명을 드렸지요. 그런 곳에는 무우는 원래 없다. 여기 있는 이런 피클이나 샐러드를 주는 곳이다. 여기 보면 평소 보다 많이 넣어 둔 것 같다 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러고는 한참 같이 웃고는 김치와 함께 닭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재미있지 않나요? 그런 순수하신 부모님. 요즘은 자주 뵙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께 태풍전야의 오늘. 안부 전화라도 한번 드려야하지 않을까요? ^^

전우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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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서정현님의 댓글

서정현

하하. KFC... 저도. KFC와 연관된 간단한 일화가 있는데...

제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와이프의 친구들과 그 남편들...이 우리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멀리 서울에서 모두들 내려왔습니다.

결혼식 마친후...

신부의 친구들 커플들과 맛난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습니다.

와이프: " 자기야 머 먹으러 갈꺼야?" (사전에 TGI에 가는 것으로 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나: " 음.. KFC 어때요? " (정신이 없어서. TGI가 KFC로 말이 바뀐걸 스스로도 모르고 있었음)

신부 친구들과 그의 남편들.. (모두 실망감으로 안면이 상기되어....)

"아 ... 네..... "

나: " 모두 저 따라오세요.... 길 잘 모르시죠? "

그리곤... 당연한 듯이 TGI로 갔습니다.

그제서야 친구들...

"KFC가신다고 해 놓고선...."

나: " 제가 그랬던가요? " (휘둥그레..)

모두들 한참을 웃었습니다.

와이프 조차...

절 무척 쪼잔한 남자로 생각했었다는 군요.. 순간...^^

김선근님의 댓글

김선근

생전에 조금 소홀했던 부분이 평생 가슴을 타고 흐르는 피눈물이 됩니다.

나도 이미 부모가 되었건만...
그래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향시 이불로 머리를 뒤집어 써고 흐~흑 거리며 흐르는 눈물 감추어 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살아 생전에 특히 서운하게 해드린것도 없는것 같은데 말입니다.

^^^웃자고 하신 말씀에 제가 너무 진지하게 접근 했나요.ㅎㅎㅎ

차재하님의 댓글

차재하

사랑이 넘치는 재미난 사연 감사합니다.
대화중에 있는 대구말 말고 영주말투로 ....깐녀느 무꾸가꼬 그래니껴? 고만 하시데이~알았니껴?
(그까짓 무우가지고 그럽니까? 그만하시죠? 아셨지요?...고향마다 사투리가 참 재미있지요?

김봉섭님의 댓글

김봉섭

전우현님~ 정말 행복한 일화네요... 참 효자이신것 같습니다. 부럽습니다.

"태풍전야의 오늘. 안부 전화라도 한번 드려야하지 않을까요? ^^"
불효자는 웁니다. 흑흑~~~

그러고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축구보고 또보고 오늘 늦잠자고 아점을 먹었는데... KFC 이야기가 나오니 군침이 돕니다. ^^*
행복한 하루 되세요~~~

박유영님의 댓글

박유영

차재하님의 영주 사투리에 대한 부산 사투리 버전..
" 무시가꼬 그라요? 고마 하소 고마...."
부산 사투리 버전이 제대로 된건지, 요즘 사투리를 잘 안 쓰다보니
가물가물 합니다.^^

이창림님의 댓글

이창림

KFC라고 하시니 저는 집사람하고 데이트하던 것 밖에 생각이 안나네요..^

5천원으로 둘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서 배고픈 연애시절에 자주 애용했었죠..

근데 배나온 뒤로는 그 철철 넘치는 기름덩어리 때문에 발길을 뚝 끊어버렸는데요.

우현님의 글을 보고 나니 예전의 추억을 떠올라서 한 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freeoj김영재님의 댓글

freeoj김영재

예전에 이런 뉴스를 들은 기억이 나네요..
KFC의 비법이 적힌 노트를 진짜 켄터키 할아버지의 생가 지하에서 발견했다는...
KFC측에서는 처음에는 진본이 아니라며 발견자를 무시하다가, 후에 진본임을 알고 크게 사례를 했다고 하죠..ㅎㅎ
코카콜라 비법을 아는 3명의 사람은 절대 같은 사무실, 차량, 비행기, 장소에 있지 않는다는 얘기도 떠오릅니다..
전우현님의 실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김종오님의 댓글

김종오

오랫만에 들어보는 경상도(대구)사투리가 정겹습니다.
저의 고향 말씨이군요. (참고로 고향은 청도, 성장지는 대구)

전우현 님댁에서 일어난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도 하고,
어릴적 삼덕동 집 대청마루에서 부모님과 누이들과 모여 앉아 즐기던 시원한 수박냄새도 나는 듯합니다.

전우현님 덕에 잊어버리고 있던 정겨운 기억 한귀퉁이를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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