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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 화요토론회 <인문학과 사진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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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상엽
  • 작성일 : 04-03-22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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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 화요토론회 <인문학과 사진의 만남>

이상엽입니다. 제가 수유연구실에서 <인문학과 사진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강연 비슷한 거 합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좀더 풍부해지기 위한 인문학자들과 만남입니다. 이는 곧 출판시장으로 가는 사진의 새로운 유통구조이기도 합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슬라이드쇼도 함께 진행됩니다.

일시 : 2004년 3월 23일 오후 7시
장소 : 수유+너머 2층 카페 트랜스 http://www.transs.pe.kr/


작은 전시회를 준비했습니다.

인문학자들의 코뮨인 '수유+너머'에서 '머나먼 실크로드'란 주제로 전시를 합니다. 사회학자 이진경씨와 국문학자 고미숙선생 등 연구자 60여명이 함께 운영하는 수유+너머는 우리 지식인들의 대안적인 공간으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 부터 3주간 전시하니 아무 때나 오셔도 됩니다. 갤러리가 있는 연구소 2층은 아주 멋진 까페 공간입니다.


머나먼 실크로드

내가 실크로드를 처음 접한 것은 아주 어릴 때였다. 80년대 초반이었는데, 중학생이 보기에는 늦은 시각이었던 10시쯤 일본 NHK가 제작한 ‘실크로드’라는 다큐멘터리에 나는 완전히 빠져버렸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횡단하는 캐러반들의 고독한 모습에, 손오공이 파초선을 빌려 불을 껐다는 화염산의 이끌거리는 모습에, 영롱한 모자이크가 된 아름다운 사마르칸트의 사원에서 들려올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의 이야기에 완전히 포로가 된 것이다. 나는 이 다큐멘터리가 재방송할 때마다 그 시간을 비워놓아야 했다. 밤마다 저 멀리 미지의 사막으로 떠나는 꿈을 꿨다. 하지만 여행을 다니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셨던 어머니의 만류로 대학 졸업 때까지 변변한 국내 여행 한번 못해보고 말았다.

91년에 『길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소위 ‘운동권 잡지’에 몸을 담은 이후 나에게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찍는 것은 대학운동의 신념을 이어나가는 끈과 같은 것이었다. 95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했고, 실력에 비해 운이 좋았는지 나에게 새로 창간된 『한겨레21』에서 고정적으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주어졌다. 당시는 주간지의 시대라 불릴 정도로 매체의 힘도 크고 일하는 보람도 크던 때였다. 당시 편집장은 지금 인터넷한겨레 사장으로 있는 오귀환씨였는데 그는 대단히 명석하고 날카로운 저널리스트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를 통해 몇 개의 중요한 기사를 의뢰 받았고 그 때마다 기사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마침 96년은 필리핀에서 마르코스를 몰아낸 시민혁명이 일어난 지 꼭 10주년 되는 해였다. 나는 취재지를 필리핀으로 정하고 몇 가지 아이템을 제출했다. 오귀환 편집장은 내게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돌아와서 보자”고 이야기했다. 일단 취재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잡지에 실어주겠다는 말로 받아들이고 짐을 챙겨 마닐라 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 달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기사를 정리해 한겨레21에 기고했다. 8면짜리 해외 특집으로 기사화 된 민다나오의 무슬림 게릴라 이야기는 꽤 성공적이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는 그때부터 7년 동안 수 없이 해양실크로드를 통한 동남아시아의 도시들과 중국의 서안에서 시작 되 이스탄불에 이르는 사막의 실크로드를 드나들었다. 지금 내 여권은 두 권으로 묶어져 있으며 그 안에는 무수한 국가들 스템프가 찍혀져 있다.

나는 길을 떠돌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하지만 그들은 2천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실크로드는 결코 환상이 아니며 그 위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대인들이 아니다. 어느 곳에도 오지는 없었고, 그들만의 문화를 지닌 채 가끔 찾아오는 상인들의 물건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그런 원주민도 없었다.
그 대신 실크로드에는 민족의 갈등이 있었다. 그 옛날 실크로드의 통해 민족이 이동한 예는 수 없이 많이 발견된다. 흉노족으로 인한 중앙아시아와 유럽의 대규모 민족이동이 한 예일 것이다. 그로부터 1000년 후 거의 동일한 길을 따라 몽골인이 원정을 나섰다. 잔악한 이들의 폭력은 또 다시 민족의 이동을 낳았다.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동서 모두 다양한 민족들이 자리를 정해 살아왔지만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에는 어느 민족도 만족할만한 국경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수많은 민족들이 분리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폭력 동원도 불사하고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본 위구르인들의 분노는 중국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서부대개발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실크로드에는 종교 갈등도 있다. 그 옛날 현장이 지혜를 얻고자 수만리 실크로드를 걸어갔듯이 종교는 믿음 그 이상의 문화를 담고 있었다. 실크로드를 통해 현대의 대표적인 종교인 불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이제 그 종교들이 가진 관용과 지혜가 바닥인 났는지 실크로드상의 분쟁은 지금 극에 달해 있다. 9.11사태이후 지구의 종말을 종교간의 대결로 맞이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다.
그러나 내가 본 실크로드의 가장 커다란 갈등은 경제문제였다. 앞의 두 갈등이 모두 여기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념을 좌우로 나눈다면 경제는 남북으로 나뉘는데 정말로 해양실크로드를 따라 남쪽에 위치한 나라치고 잘사는 나라가 별로 없다는 점이 신기할 정도였다. 물론 이곳이 이러한 상태에 빠진 이유는 15세기 이후 해양 실크로드를 통한 유럽의 착취와 이간질 때문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스리랑카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으로 이어지는 서구열강의 착취 뿐 아니라 민족 간의 이간질로 인해 지금도 내전의 불길에 휩싸여 있는 곳이다. 또한 예로부터 중앙아시아의 요충이자 지금은 석유 송유관 문제까지 겹쳐 국토가 불바다가 되어버린 아프가니스탄은 민족과 종교문제가 외피를 쓰고 있을 뿐 본질 적으로 경제문제를 안고 있는 곳이다.

7년 간 내가 바다와 육지를 헤매면서 알게 된 것은 실크로드는 문명을 실어 날랐다는 긍정적인 이면에 인간의 추악한 모든 욕망들이 함께 실려 다녔다는 것이다. 쿠차의 키질동굴 벽화는 아름다운 부처의 모습대신 흉측한 몰골을 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 이곳을 지났던 무슬림에 의해 파괴되었고, 그나마 남은 것은 고고학을 빙자한 비열한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도굴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필리핀의 주인이었던 민다나오의 무슬림들은 후발 기독교세력에게 밀려나 밀림에서 바나나나 따먹어야하는 돼지 취급을 받고 있다. 수년 전 민다나오의 자치를 허용하는 협정이 마닐라정부와 민다나오 무슬림 무장세력간에 합법적으로 체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사주를 받은 아로요 정권은 하루아침에 미주아리 의장을 현상범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 민다나오에는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는 미군들이 기세등등하게 거리를 누비고 있다. 이 사진들은 실크로드를 이야기 하지만 지금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 것이다.

이 사진들은 결코 여행자의 기념사진이 아니며 여행 풍광사진은 더욱 아니다. 이 사진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민중들의 이야기이며 이웃에 대한 기록들이다. 또한 굴곡 많았던 80년대를 살아온 한 젊은 한국인 사진가가 본 지구촌 사람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일수도 있다. 나는 얼마 전 이 기록의 대부분을 수행했던 니콘 F-801s를 팔았다. 원래 샀던 가격의 3분의 1밖에 못 받았지만 대신 같은 가격의 니콘 F2를 구입했다. 70년대 나온 이 완전 수동식 카메라는 그 동안 수많은 주인을 겪었으리라 생각되는데, 내가 최신의 디지털 카메라 대신 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카메라를 구입한 것은 아직도 실크로드는 첨단의 길이 아니라 인간의 땀과 눈물과 피가 어려 있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가야할 실크로드의 길은 멀고도 멀다.

2004년 3월 17일
무쇠막 언덕에서 이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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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윤기님의 댓글

이윤기

안녕하셨어요? :-)
좋은 기획인 것 같습니다. 정말 찾아뵙고 싶은데 시간이 될지 잘 모르겠네요.
(시간 탓이나 하고 있는 게으름이라니... -_-)
그나저나 인문학자들의 코뮨이라니 정말 멋지군요.
좋은 세미나하시고, 전시회도 잘 되시길 빕니다.

ps. 아래 붙이신 글은 어느 사진 매거진-'월간 사진세계'인가요?-에서 본 글이군요. 도서관에서 잡지들 뒤적이다가 이상엽님 글과 사진이 눈에 띄여 자세히 보았답니다. 사진들 참 좋던데, 이번 전시에 그 사진들의 프린트를 볼 수 있다니 기대가 되네요.

ps2. 이진경씨라면, '사회구성체와 사회과학방법론'의 그 분 맞습니까? 반가운 이름이네요.

류호정님의 댓글

류호정

'기획하지 않은 자유'라는 책에서 보던 수유+넘어란 말이 눈에 띄어 반갑습니다.
사진을 하시는 분도 그곳에 계셨군요. 책을 읽으면서 항상 부렀웠었는데, 참석하고 싶지만 지방에 사는 관계로 시간한번 내기가 쉽지가 않겠군요.
멋진 강연 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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