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그 그로츠 George Grosz / (1893-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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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권오중
- 작성일 : 03-06-2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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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츠는 전쟁에 참가하여 독재와 부패, 전쟁의 공포등을 관찰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으며 전쟁후에도 좌익사상에 이끌리어 현실에 대한 혐오감이 표현되는 그림을 그렸다. <오스카 파니차에게 바침>은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 폭동으로 번진 장레식이 선형이나 화염의 붉은 빛으로 만연해 있고 <신체검사합격>이라는 작품은 관료정치에 대한 그로츠의 공포와 혐오감을 보이고 있으며 큐비즘적 공간축약과 간결한 소묘들이 나타난다. <공화국의 자동인형들>은 형이상학파의 양식과 주제를 정치풍자에 이용하고 있다. 그로츠는 나치즘 때문에 미국으로 망명하여 풍자보다는 우호적이기까지 한 그림을 그리다가 2차대전으로 하여 혐오와 환멸의 표현이 나타나는 작품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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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다다의 선구자였던 그로츠는 하트필드와 함께 포토몽타주를 발명하였다.
제 1 차 세계 대전 후의 수년간은 오늘과 같은 도시의 형성기로 사진 기술이나 사진 인쇄가 급속하게
발달하던 시대였다. 따라서 포토몽타주라고 하는 새로운 사진 기법은 도시 구조의 해체 및 변모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가속적으로 변화하는 시대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단일 초점의
원근법은 사라지고, 대신 복합 초점의 원근법에 의존하는 다다의 수법이 제시되었다.
이미 붕괴되고 있던 선원근법의 정적인 시각은 입체주의 및 미래주의 회화처럼 동적인 시각으로
변했다. 그리고 단지 시각만 다양화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 관계도 없는 부분적인 이미지들이
모자이크와 같이 난립하여 단편적이고 혼란스러운 화면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로츠의 포토몽타주는 작품의 선이나 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진의 이미지를 사용했다.
큐비즘 이후 ' 무엇인가의 재현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를 변화시키는'
20 세기 미술의 선 ( 線 ) 의 퇴화 과정 속에서 그로츠는 어디까지나 선을 자신의 조형 언어의
핵심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화가였다.
그로츠에게 있어서 사진은 새로운 도시의 테마였으며 20 세기 도시의 형성기를 반영하는
선구적인 주제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로츠는 ' 인간의 눈' 과 인간 의지의 상징으로서의 선이나 선원근법의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기계 문명이 인간을 압도하면서 선은 이미 효력을 잃고 있었다.
그로츠의 포토몽타주는 20 세기 도시구조의 다원화와 개인적 의식의 해체로부터 파생된
새로운 형상인 것이다 .
/ 사진과 회화 - 이토우 도시하루, 김경연 역 에서 발췌
- 위 글을 작성할 때 Nirvana 의 in Utero 를 벅스뮤직에서 듣고 있었는데
도시 삶의 분열증적인 소음의 표출이 시대는 다르지만 그로츠가
그린 선과 면을 분활하여 나타내고 때론 혁명적인 붉은 빛으로
전체를 물들인 회화와 오버랩 시켜봐도 좋은 것 같네요.
그동안 원근법의 충실하며 따라왔던 도시의 이미지를 흐트려보고
그로츠가 그렸던 도시와 너바나가 소리질렀던 음악을
떠올려보면서 사진을 찾아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
욕심 뿐이지요. 디지탈 사진을 적극적으로 한다면 한번 쯤
흉내내기라도 해보고 싶은 이미지들입니다 .
그로츠의 회화는 올가갤러리 http://www.abcgallery.com 에
가시면 많은 이미지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외 회화 작품을 충실하게 정리해둔 곳이니 참고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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