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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오릉(西五陵)과 숙종(肅宗)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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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김상지
  • 작성일 : 19-04-0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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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쪽 고양에 자리잡은 서오릉은 조선 왕조의 5개 왕릉들이 자리하고 있다. 경(敬)릉, 창(昌)릉, 익(翼)릉, 명(明)릉, 홍(弘)릉이 그것이다. 서울 인근에 자리잡은 조선 왕족 묘원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하지만 5개 왕릉들이라고 하지만, 그 모두가 조선의 임금 무덤들이 아니다. 터를 함께 쓴 묘를 포함해 왕비 무덤이 3개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능(陵)과 원(園), 그리고 묘(墓)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빈 또는 왕의 사친 무덤을 일컫는 것이고, 그 외 왕족의 무덤은 일반인의 무덤처럼 묘라고 한다. 서울 인근에 터를 모신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20기에 이르며, 그 가운데 능이 42기, 묘가 64기, 그리고 묘가 64기이다. 이 무덤들 모두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돼 있을만큼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은 문화 유산들이다.
서오릉에는 5기의 왕릉과 두 개의 원, 한 개의 묘가 있다. 왕릉에서 왕으로는 조선 8대 임금인 예종과 19대 임금인 숙종이 묻힌 창릉과 명릉 둘 뿐이다. 그 밖의 것들은 왕비와 왕이 되기 전에 죽은 왕세자와 빈의 무덤이다. 원으로는 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희빈 윤 씨가 묻힌 순창원(順昌園), 그리고 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 생모인 영빈 이 씨가 묻힌 수경원(綬慶園)이 있다. 왕족들과 함께 자리 한 단 한 개의 묘는 대빈묘(大嬪墓)로,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생모인 옥산부대인 장 씨(장희빈)의 것이다.

​이렇듯 조선의 적잖은 왕족들이 묻혀있는 서오릉이지만, 막상 둘러보면 왕들 보다는 여인들, 그러니까 왕비와 계비의 체취가 강하게 와 닿는다. 특히 그 가운데 숙종과 관련해서는 숙종의 여인들을 둘러 싼 하나의 테마 공원같은 느낌을 준다. 60세까지를 살아간 숙종은 46년의 재위기간 중 모두 9명의 여인을 접했다. 첫 번째 왕비인 인경왕후를 비롯해 계비 인현왕후와 인원왕후, 그리고 장희빈으로 잘 알려진 옥산부대빈 장 씨와 숙빈 최 씨, 명빈 박 씨,영빈 김 씨, 귀인 김 씨, 소의 유 씨 등이다. 이들 9명의 여인들 가운데 4명이 숙종과 함께 서오릉에 있다. 숙종이 묻혀있는 명릉에 계비 인현왕후와 인원왕후, 그리고 첫 번째 부인인 인경왕후가 따로 익릉으로 추존된 무덤에 잠들어 있다. 궁중 나인으로 들어가 숙종의 총애를 받아 후궁이 됐다가 숙종의 원자(후에 경종)를 낳아 희빈의 된 후 왕비가 된 장희빈은 명릉에서 멀지는 않지만 왕릉들에 비해 후지고 외딴 느낌이 나는 곳의 대빈묘라는 무덤에 묻혀있는데, 원래는 다른 곳에 있다가 이장돼 왔다고 적혀있다.

숙종의 무덤인 명릉의 구조가 재미있다. 주 무덤인 명릉은 쌍분이다. 숙종과 인현왕후의 무덤이다. 거기서 서쪽 언덕 쪽에 또 한기의 묘가 있는데, 그게 인원왕후의 무덤이다. 숙종은 왕비들 중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뜬 인현왕후에게 애틋한 심정을 가진 듯 하다. 이성에 한창 눈을 뜰 시기인 20세에 왕비로 맞아 20년 이상을 함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숙종은 1701년 인현왕후가 죽자 명릉을 조성해 묻은 후 1720년 죽으면서 그 곁에 묻혔다.

숙종의 총애를 받은 장희빈은 인현왕후에게는 어떤 의미에서는 연적일 수도 있다. 물론 남인과 서인의 권력다툼에 따른 갈등관계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장희빈은 배후의 당파와 숙종을 가운데 두고 인현왕후와 함께 갈등을 이어간 인물이다. 결국 인현왕후가 먼저 죽지만, 그 직후 희빈은 굿을 통해 인현왕후를 저주해 죽게했다는 혐의를 받아 사약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나이 43세 때다. 사약을 받아 죽었으면 왕릉에 묻힐 자격이 못 된다. 하지만 숙종은 장희빈 사사(賜死) 후 일년이 지난 1702년 희빈장씨묘를 조성한다. 사약을 내린 숙종이지만 마음 한 켠에 그래도 장희빈을 생각하는 일말의 그리움이 있었던 모양이다. 숙종이 죽고 경종이 즉위한 후 1722년 경종은 장희빈을 옥산부대민으로 추존한다. 경종이 누구인가. 바로 장희빈의 아들 아닌가. 그래서 장희빈의 묘는 대빈묘라는 이름으로 서오릉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명릉과 대빈묘는 서로 마주보고 있다. 서오릉 입구에 있는 전경 사진을 보면 두 릉이 거의 수직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뭔가 서로들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양새랄까. 숙종과 장희빈, 인현왕후의 생시 때의 관계를 떠 올리면 두 릉이 그렇게 마주하고 있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사진은 숙종과 인현, 인원왕후의 무덤인 명릉과 장희빈이 묻혀있는 대빈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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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최인섭님의 댓글

최인섭

중학생때 고구려에서 고려까지 역사를 배우며 신나했지만 이조시대에 이르러
사색당파로 지리멸렬함을 자초하는 우리의 조선의 선조들은 어찌 이리도 못난나 하며
어린나이에 비분강개 한적이 있읍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역사와 유적을 알아야 하겟기에
세세한 역사의 한부분을 알게 됨에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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