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있는 사진과 멋 부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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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이치환
- 작성일 : 12-01-07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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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바스티유 광장에서
오래 전 동아일보사에서 주관했던 "동아콘테스트"라는 사진 공모전이 있었습니다.
이 사진전은 그 당시 사진 공모전 중에서 최고의 역사와 권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이유는, 심사위원 구성이 당시 우리 나라 사진계에서 사진으로 그 능력을
높이 인정받던 그런 분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타 사진공모전과는 좀 다르게
1950년대식의 리얼리티 표현보다 현대적이고 작가의 개성이 잘 표현된 사진에 높은 점수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 공모전을 거친 사진 입문생들이 지금은 전업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홍 순태님도 이 공모전을 통해 사진계로 데뷰하셨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1990년대 이 공모전이 중단되었다가 몇년만에 부활되었을 때 저도 한점을 출품해서
입선에 올랐습니다. 해서, 개막식 날 참석을 해서 영광스럽게도 심사위원장이셨던
이 명동님(현 사진예술 잡지 발행인? 전직 동아일보 사진기자, 사진부장으로 퇴직)께서
초청 인사들을 모시고 사진 한 점 한 점을 돌아보시며 심사평을 해주실 때 따라다니면서
그 설명을 꼼꼼히 귀 기울려서 들었습니다.
그 날 어느 흑백 사진 한 점 앞에서 들었던 말이 아직도 제 머릿 속에서 맴돕니다.
이 명동님이 그 사진 앞에 다가갔습니다. 그 사진은 파고다 공원 안에 있는 삼일운동
기념탑을 배경으로, 한 상이군인이 목발을 짚고 비스듬히 서서 그림자를 길게
늘어트리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사진 앞으로 다가가자 그 사진을 만든 작가(저도 몇번 만나서 아는 사람인데 이름은 기억이...)
가 이 명동님께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왜 제 사진이 입선 밖에 안됩니까?
저기 입상한 작품과 비교해서 무엇이 부족한가요?" 선생은 순간 당혹하시다가 미소를 지으며
"뭐라 말하기가 좀 어렵고, 이해가 되실지 모르지만, 흑백 사진의 아름다운 계조가 무리없이
잘 표현된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주 훌륭한 솜씨입니다. 그런데 -사진의 맛-이
부족하다는 것이 점수를 낮췄나 봅니다. 흑백 사진의 멋은 훌륭하지만 맛은..."
그 사진가는 선생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자신은 충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했다며 사진 설명을 구체적이고 빈틈없이 하면서 '심사 좀 잘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사진의 작가는 선생님의 설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몰라도 저는, 이 날 이후부터
-사진의 맛-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지만
이 말은 그 날 처음 들었던 것입니다.
"사진의 맛"이란 게 대체 어떤 걸까요?
오랜 생각 끝에 스스로 내린 결론은, "사진만이 표현할 수 있는 리얼리티" 또는
'사진이 존재의 증거'라고 할 때, 형체는 없지만 다만 느낄 수는 있는 "아우라"가
표현된 사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사진의 맛에 대해 이 명동 선생님도 정확하게 표현하시지는 못하셨습니다.
뭔가 마음을 움직이는 그 뭔가가, 다른 표현 장르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그 무엇이
분명히 담겨있어야 '사진다운 사진'이 된다는 것입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 표현된 사진에는 사진만이 가진 맛이 들어 있어야
보는 사람을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다는 그 때 선생님의 말씀에 적극 동의하면서,
나는 지금 사진에 멋만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 아침 나를 돌아봅니다.
2012년 1월에......파리 상젤리제 단칸방에서.
댓글목록
신한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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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커다란 화두를 던져 주십니다.
열심히 생각해 보고,
많이 공부해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조금이나마 느껴보도록 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정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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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겨 들어야 할 좋은 말씀입니다.
근데 저는 사진의 맛은 고사하고 멋도 낼 줄 모르니.... 쩝.
허영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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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들의 깊은 글들을 대하면
언제나 앞이 캄캄하여 집니다
나는 무얼 찍고 있는 걸까....
멋은 무엇으로 낼까요
또 맛은 어떻게 내어야 할까요
빛은 찰나에 흐르고....
많이 생각하고
느껴 보겠습니다,....고맙습니다
조현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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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에......파리 상젤리제 단칸방에서""......멋은 여기서 찿았는데(부럽기때문에)
맛은 좋은분들의 작품세계를 통하여 배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해 참 좋은 배움의 말씀입니다....감사합니다!!
김형옥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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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였군요!
잘 찍은 사진이지만 뭔가 부족한 듯한 사진, 그리고 좀 허술하지만 자꾸 보게 되던 사진의 차이가...
왜그럴까... 하는 궁금증이 있어 왔는데...
'멋'에 기울고있는 저 자신을 돌이켜봅니다...
'쿵' 하는 깨우침 감사드립니다.
강인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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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잘 지내시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글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
박진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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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들어와서 좋은 글 보고 갑니다
오랫만에 사진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하게 하는 글이군요...
많은 걸 느끼고 배우고 갑니다
강희경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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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새로운 맛을 찾아야 할 의무가 생겼습니다.
좋은 화두 감사를 드립니다.
박문옥2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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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는 것도 맛있게 살면서
이웃에게 맛있는 사람이 되도록 살아야 할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