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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쥘베른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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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김명기
  • 작성일 : 09-12-2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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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와 쥘베른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새벽 5시에 일어나 마방으로 간다. 주말엔 오전 8시 30분부터 승마교육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미리 7시 30분까지는 서울에 도착한다. 현관문을 열자, 영하 14도의 차가운 바람이 목덜미를 헤치고 들어온다. 나는 생각한다. 아직 괜찮아, 작년엔 영하 18도에도 수업했는데.

마방은 한겨울 새벽의 어둠에 잠겨있다. 하지만 마방이 깊은 새벽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다. 마방에 도착하면 이미 새벽 4시에 말들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길고 거친 숨을 하얗게 검은 대기 중으로 쏟아 낸다. 말은 머물지 않는다. 말은 늘 어디론가 떠나고 달리고 싶어 하는 운명을 지닌 짐승이다. 말과 함께 한지 이미 12년. 내게도 말의 운명이 스며들었나 보다.

말을 말차에 싣고 서울까지 간다. 새벽엔 1시간 10분 정도의 거리. 새벽 고속도로엔 밤을 헤치고 서울로 달려가는 화물차들이 있다. 잠을 설친 그들이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돌리고 있다. 그들의 엔진소리가 바로 한국의 핏줄을 돌리는 심장 소리다. 나는 유신시대의 중년남자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형 인간. 그게 나다.

라디오를 틀었다. 새벽 라디오는 청취자를 배려하지 않는다. 대개는 시간 때우기로 느껴지는 내용들이다. 나는 지난 시절을 살아온 노인들의 육성을 들려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나는 그들의 호흡에서 내 지나간 유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들의 현재는 언제까지고 그 추억 속에 남겨져 있는 것이다. 실패와 성공이 있고, 가족이 있고, 떡과 음식을 나누어 먹는 이웃이 있고, 황량하게 보존 된 대자연이 있다. 하지만 그날은 그 방송이 아니었다.

아프리카를 여행한 어느 여류 여행가의 여행담을 듣는 코너였다. 두 여인이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던 끝에 킬리만자로 산이 나왔다. 그리고 아나운서가 물었다.

“킬리만자로 산에 정말 표범이 있었나요?”

여행가는 조금 당황스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런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아마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아나운서는 곧장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그건 조용필 씨의 노래 가사에만 있는 모양이로군요.”

아나운서와 여류 여행가가 함께 웃었다. 그리고 청취자인 나도 웃었다. 물론 내 웃음은 고소(苦笑)였다.

‘도대체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어디로 실종 됐지?’

잠시 후 다시 킬리만자로 산의 풍경을 설명하던 여류 여행자의 말끝에 아나운서가 맞장구를 친다.

“야아, 그럼 만화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에 나오는 장면 같았겠네요.”

만화영화 80일간의 세계일주. 이번에는 줄 베른이 실종 된 것이다. 지레 짐작이고 내가 틀렸기를 바라지만, 상당한 지식을 쌓고 공부를 하여 아나운서가 된 젊은 여인의 지식창고엔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80일간의 세계일주가 조용필과, 만화영화라는 참고자료로 정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지금 세상에서 원작자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집에 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무조건 조용필이고, 80일간의 세계일주는 영화와 게임 소개가 전부였다. 지나간 지 30분쯤 된 제트기의 희미한 비행운처럼, 헤밍웨이와 줄 베른의 이름이 한 줄 나오기도 한다. 현실에서 원작자의 존재감은 이렇다.

킬리만자로라는 낯선 이름을 처음 세계인들에게 들려주고, 80일간의 세계일주라는 기발함을 창작해, 우리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바람과 먼 세상의 북소리를 들려준 원작자들은, 그저 박제가 되고 화석이 되어 사라졌다. 이제 헤밍웨이와 줄 베른의 사진에는 검은 리본을 달아 줄 때가 온 것이다. 하지만 원작의 그 세밀함과, 그 장엄함. 활자가 우리의 마음에 그려준 거대한 스케일의 숨 막히는 장면을 어떻게 영화나 게임 따위가 대신할 수 있을까? 그저 원작의 아주 작은 일부분만을 표현하고, 그 대가로 상상력에 족쇄를 채웠을 뿐이다.

승마의 대중화에 대한 자료를 열심히 찾고 작성한지 이미 10년이 훨씬 넘어간다. 승마 대중화에 관한 내 리포트는 욕을 먹고, 실종 되고, 다른 사람의 이름, 또는 공문서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마치 집나간 딸이 몇 년 만에 어색한 화장을 하고 눈앞에 나타난 것 같다. 이제는 모두가 승마 대중화를 이야기 하지만, 그런 정신 나간(?) 이야기를 처음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말을 싣고 서울의 학교를 찾은 지 3년. 이제 햇수로 4년이 되어 간다. 시작할 당시 나는 미친 사람으로 승마관련 사이트에 오르내렸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을 학교운동장에서 말을 타게 하자고 한 일은 용서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 하나로 김명기 선생께서는 승마업계에서 사라져야 할 인물인 것입니다. 제발 보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승마업계에 다이나마이트인 인물이 김명기 씨입니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흔적 남기지 말고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 한석*-

나는 또 한 번 슬그머니 고소(苦笑)를 머금는다. 이 글을 쓴 한석* 라는 분은 이제 뭐라고 할 것인가? 나는 국내 최초로 승마를 방과 후 수업에 정식 채택되도록 했다. 2010년엔 정규과목 수업에도 확정되었다. 모두가 국내 최초의 일이다. 첫 학교 20여명으로 시작했던 승마 방과후 수업이 3년간 국내 승마 인구의 20%가 넘는 1,200여명 이상이 승마교육을 마쳤다. 트럭 한 대의 1개 팀으로 출발한 승마교실은 이제 트럭 4대 교관 37명으로 확장되었다. 지금도 승마교실을 신청하는 학교가 늘어 가고 있다. 2010년엔 24개교 1,000여명의 새로운 승마인구가 생길 예정이다.

머지않아 전국의 학교에서 승마를 즐기는 학생들이 눈의 띨 것이고, 농촌마을에도 말을 키우는 농가가 늘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 농가 경제는 튼실해 지겠지. 말을 기르는 만큼, 말을 타는 승마인들이 레저와 스포츠로 농촌을 찾는만큼, 농촌은 비옥하고 살기 좋아질 것이다. 농촌은 이제 선진국 형 전원농촌으로 바뀔 것이다. 도시인들은 여가와 재충전을 위해, 또는 전원생활을 즐기러, 농촌에 일정한 비용을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엔 '찾아가는승마교실'을 해 보겠다고 여기저기 전화를 넣는 사람들이 있다. 절차도 예의도 없다. 네가 하는데 나는 못하랴. 하는 수준이다. 원작자의 노력과 그간 열심히 쌓아 온 안전관리에 대한 노하우엔 관심이 없다. 말과 말차, 교관만 있으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과 학생 수에 돈을 곱한 욕심이 전부다. 그중 한 사람은 나도 아는 사람이다. 그가 일 년 전에 내게 이렇게 말한 것이 생각난다.

“뭘 그렇게 까지 해서 승마를 가르쳐야 합니까?”

그렇게 말한 이가 제일 앞장선 것이다. 나로선 대성공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수업은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초등학생 시절을 돌아보면 알겠지만, 한 번 새겨진 기억은 평생을 가는 것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수업은 중단 되어서는 안 된다. 돈이 되면 수업하고 안 되면 곧장 멈추는 것이 아닌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돈이 되지 않는 곳에도 1년간의 약속을 지켜왔다. 학생들은 말을 사랑하고 말을 기다린다. 매주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승마 선생님을 기다린다. 먼저 정당한 관계가 성립되어야만 교육이 존재하게 된다. 진실로 뼛속까지 승마 선생님이 되어야만 학생들에게 말을 지도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교육자가 되어선 안 된다.

실은 승마교실의 원작자인 나도 아직 돈을 벌지 못한다. 승마가 전 국민의 사랑 받는 스포츠로 자리 잡을 때까지는 앞으로도 몇 년이고 그럴 것이다. 그것이 후발 주자들이 알아야만 할 필수사항이다. 하지만 장사 되겠다 싶어 겉만 보고 뛰어든 용감한 이들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부디 사고 없이 안전하게 수업이 진행되기를 빈다. 혹시라도 안전이 무시된다면, 승마 대중화는 또다시 몇 년 뒤로 후퇴할 것이다. 하지만 나도 열심히 할테니 당신이 그간 개발한 안전승마 수업 아이디어를 공짜로 몽땅주세요. 라고는 하지마라. 그건 정말 파렴치하다. 파렴치한 사람도 교육자가 되어선 안 된다.

물론 세월이 흘러 승마가 전 국민의 스포츠로 사랑 받고 대중화 된 다음에라도, 부족한 내 노력 따위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기를 기대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노벨상을 탄 위대한 원작자들도 까맣게 사라지는 세상에, 도대체 무슨 기대를 한단 말인가? 나는 지금 헤밍웨이와 줄 베른을 생각하며 새벽 6시 45분의 어두운 경부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는, 말 기르는 사람 #1일 뿐.


우리 자신만을 위해 한 일은 우리와 함께 사라지지만,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위해 한 일은 영원히 남는다. - 앨버트 파이크(Albert Pike) -


송화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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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유성우님의 댓글

유성우

자기가 하는일에 사명감을 가지고 하는것이 성과가 있고 보람이 가장 클 것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아이들한테도 서울대, 연고대 이야기 보다는 더 큰목표를 심어주어야 하고 궁극적인 목표는 인류를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냐가 가장 중요한 목표여야 합니다. 하지만 요즘 저도 그렇지만 수단이 목표가 되는것이 안타깝네요

김_민수님의 댓글

김_민수

특정음식으로 유명한 지역에가면 모든 식당들이 자기네들이 '원조'라고 걸어놓은 간판을 보곤합니다. 그럼 이 많은 식당들이 모두 한낯 한시에 식당을 개업했단 말인가...항상 고개를 갸우뚱하곤 했었죠. 뭐 어린 마음에 그랬다는 거죠.

물론 모두가 '원조'를 천명함으로써 소위 물귀신 작전으로 모두가 다 사이비가 되어버린 후에는 원조가 더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버리는 결과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자만 해먹지 말자라는 거죠.

선배님의 글을 읽으면서 또한 걱정되는 것은 행여나 후발 참여자의 교실에서 안전 사고가 난다면 또한 전체가 매도될 수있다는 거겠지요. 한 때 유원지에 너도 나도 번지 점프대를 만들었다가 안전 관리를 소홀히한 한 점프대에서 사람을 그대로 땅에 쳐박게 만들었던 경우도 있듯이 말입니다.

수업아이디를 안가르쳐주면 또 귀가 간지러울 일들이 생기겠지요.
하지만 선배님은 꾸준히 한 길을 지켜나가시리라 생각합니다.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 동물도 사랑하고, 배짱도 키우는 교실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힘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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