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잦은질문모음
  • TOP50
  • 최신글 모음
  • 검색

Forum

HOME  >  Forum

Community

그렇다고 희망까지 버릴까?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김명기
  • 작성일 : 09-10-20 11:08

본문

그렇다고 희망까지 버릴까?



혼자 19필의 마필을 관리한다. 물론 조마와 순치에 관한 이야기다. 매일 오전 7시 30분 부터 3~4 필의 마필을 조마한다. 어깨가 뻐근하고 허리에 묵직한 납덩이가 매달린 것 같다. 양 팔은 늘 약간의 동통이 있고 내 팔이 아닌 듯한 이질감은 오히려 친근하다.

나는 사업가였다. I.M.F. 때 폭삭 망한. 그렇다고 I.M.F. 에만 모든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방만했고, 타락했고, 즐거웠다. 어쩌면 I.M.F.가 아니었어도 더 이상 버텨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요즘엔 그런 공포감이 어깨를 싸늘하게 감싼다.

승마 관련 사업을 시작한 10년 동안, 나는 내가 참 오래 살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마 평생 들을 욕을 다 들었을 것이다. 기마국토대장정 등,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미친 짓으로 치부되었다. 모 대학에 만들었던 마필 연구소도 결국 쫒겨나다 시피 끝났고, 2년간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노력한 만큼 욕이 돌아 온 것은 물론이다.

내가 시도한 모든 노력들은 늘 욕으로 마무리 되고, 엉뚱한 사람의 공으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대권후보 M.B.의 100대 국민 제안 정책에 채택되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마 그 제안과 아이디어는 또 다른 누군가의 공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나는 연구를 중지했다.

나는 역부족이었다. 나는 화씨의 구슬(和氏之璧)을 떠올렸다. 내 눈에 보물이긴 해도 나는 그것을 입증하거나 지킬 수 없었다. 내 노력과 아이디어를 지키기에 역부족이었고, 몰염치와 싸우기엔 너무 가난했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 승마산업은 여러 가지 희망 정책과 청사진이 발표되었고, 나는 철저히 소외되었다.

내가 제안한 것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차례차례 현실화되었지만, 나는 내 아이디어와 내가 말한 것과 비슷한 정책들이 현실화 될 때마다 더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여겨졌다. 나와 가까운 지인들은 나를 염려하며 누가 그런 일들을 하는지 알려주곤 했지만, 나는 그런 일들에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만 나와 내 아이디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 함께 사업을 펼치고자 나를 찾은 뒤, 나름대로 내 뒷조사(?)를 하는 것은 문제였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나쁜 사람으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내가 어떤 짓을 저질렀고,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아무도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

그 친구 대학교수를 사칭했대. - 승마아카데미 강의를 한 것
그 친구 술고래라더군. - 이건 사실에 가깝다.
돈 좀 얻어 쓸려고 K.R.A.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놈. - 사감위법 대책 위원으로 활동한 것. (정식 발족 후 곧바로 손 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는 제법 구체적인 내용이었고, 나머지는 좀 이상한 사람이래. 미친놈이라고 하더군. 나쁜 놈이라던데? 정도의 카더라 통신에서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물론 내가 돈이 없으니 돈으로 이상한 소문을 만들 것도 없고, 거지 좋아하는 여자도 없으니 우리 집사람 이외에 만들 소문도 없는 때문이겠지.

나는 지금도 찾아가는승마교실을 하고 있다. 물론 이상한 짓이라고, 승마를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라는 식의 욕을 많이도 얻어먹었다. 하지만 누가 새로 비슷한 일을 준비한다더라. 내가 펀드를 모으더라.(정말 웃긴다. 누가 내게 부탁하지도 않은 돈을 맡기려할까? 펀딩도 처음 듣는!) 라는 식의 신종 욕과 소문들이 깊은 가을의 맑은 대기를 오염시키며 돌아다닌다.

이상하게도 이런 욕들은 거미줄 통신에라도 걸렸는지, 꼭 정확하게 내게 전해진다. 그리고 앞에 이야기했던 [이상한 짓, 승마를 저렇게 까지...] 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바로 소문의 근원지라는 것이다.

자, 어쨌든 잠시 시간을 내어 내 주변을 돌아보니 나는 과연 나쁜 놈인 것도 같다. 모두가 나쁜 놈이라고 하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나는 나쁜 놈이 맞겠지. 그렇다고 해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말과 아이들을 연결시켜 주는 것. 아이들이 말을 타고, 건강하고, 즐거운 유년을 보내고, 나중에 농촌과 동물을 사랑하는 지도자로 성장하는 것이 내 개인 적인 욕 따위와 어찌 맞바꿀 수 있을 것일까?



"여보, 나는 이러다 내가 일생동안 노력한 일들이 모두 남의 공이 되고, 나는 천하의 몹쓸 놈으로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아내는 웃으며 나를 안아준다. 그러니 세상에 불평할 일이 무엇일까? 그것을 충분하다. 나를 믿어 주고 고언을 아끼지 않는 주변 지인들께도 그저 감사할 뿐이다.

나는 하는 일마다 욕먹고, 공도 세우지 못한다. 그렇다고 희망까지 버릴까? 나는 이렇게 혼자 투덜투덜하며 말똥구리처럼 열심히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내 길은 저 앞에 놓여있다. 나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내 길이다.


송화마을에서...

www.allbaro.com


화씨의 구슬 (和氏之璧) : 초나라의 화씨라는 사람이 초산에서 아주 귀한 옥을 발견했다.
화씨는 그 옥을 초나라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은 궁궐의 보석 감정사에게 옥을 보였다. 감정사는 그 옥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말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것은 그냥 평범한 돌에 지나지 않습니다."

왕은 몹시 화를 내며 화씨를 불러 왼쪽 다리를 잘라 버렸다. 몇 년 후 왕이 죽고 새로운 왕이 즉위하였다. 화씨는 다시 왕에게 구슬을 바쳤다. 왕은 이번에도 보석 감정사에게 구슬을 내보였다. 결과는 예전과 마찬가지였고 화씨는 결국 오른쪽 다리마저 잘렸다.

세월이 흘러 또다시 새로운 왕이 즉위하였다. 그가 바로 문왕이다. 문왕이 등극하자 화씨는 초산 기슭에서 옥을 끌어안은 채 사흘 밤낮을 먹지도 않고 대성통곡했다.

그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 결국 궁궐까지 전해졌다. 문왕은 사람을 보내 화씨를 불러오게 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그토록 슬피 우는가?"
"이토록 훌륭한 천하의 보물을 선대왕께서 단순히 돌멩이라고 하니 그것이 슬퍼서 우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문왕은 궁궐의 보석 세공사에게 일러 화씨의 구슬을 여러 날 갈고 닦으니, 과연 화씨의 구슬은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 되었다.

나는 다리를 잘려가면서 까지 내 뜻을 지킬 수 있을까? 흠... 아마 옥구슬따위는 개나 가져가라는...
추천 0

댓글목록

강인상님의 댓글

강인상

선배님이 써주신 글은 늘 읽으면서 생각의 끈을 이어주는 듯 합니다.

오늘도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김명기

인용:
원 작성회원 : 강인상
선배님이 써주신 글은 늘 읽으면서 생각의 끈을 이어주는 듯 합니다.

오늘도 좋은 이야기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 어지러운 이야기인데, 죄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은 다 비슷하겠지요. 저와 비슷한
분들께는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서로 힘을 내지요... ^~^

김_민수님의 댓글

김_민수

만약에 제가 선배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생각해봅니다. 잔인한 사람들의 입방아나 현실에 제 자신을 스스로 추스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어쩌면 저 자신도 타인의 기준이나 시선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온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도 다시 먼지떨고 벌떡 일어나서 갈길을 가야겠지요.
성철 스님의 不欺自心의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임병태님의 댓글

임병태

좋은 글 잘 읽었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게 되어 몇번이고 읽어보게 됩니다.

붙이기: 예전에 성동구의 어느 초등학교 방문했을때 '찾아가는 승마교실' 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김명기 선배님의 좋은 글을 자주 접했던 터라 저도 모르게 아이들이 말타는 모습을 한참동안 구경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사라도 드릴걸 그랬습니다. ^^

김명기님의 댓글

김명기

인용:
원 작성회원 : 김_민수
만약에 제가 선배님 입장이었다면 어떻게 하였을까 생각해봅니다. 잔인한 사람들의 입방아나 현실에 제 자신을 스스로 추스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어쩌면 저 자신도 타인의 기준이나 시선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온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도 다시 먼지떨고 벌떡 일어나서 갈길을 가야겠지요.
성철 스님의 不欺自心의 가르침이 생각납니다.



내가 존재하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겠지요. 그러니 남 탓을 할 수만도 없는 일이구요. 혹시 내게 이런 설탕 덩어리가 있다 라고 현명치 못한 광고를 한 것은 아닌지. 어무래도 엔지니어 출신 이라서 영 처신이 어렵습니다. 50이 다되어서도 삶은 까다롭기만 합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김명기

인용:
원 작성회원 : 임병태
좋은 글 잘 읽었었습니다. 한참을 생각하게 되어 몇번이고 읽어보게 됩니다.

붙이기: 예전에 성동구의 어느 초등학교 방문했을때 '찾아가는 승마교실' 을 본적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김명기 선배님의 좋은 글을 자주 접했던 터라 저도 모르게 아이들이 말타는 모습을 한참동안 구경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사라도 드릴걸 그랬습니다. ^^



성동구라면 경일초등학교로군요... 아직은 대한민국에 우리 밖에 없으니 제가 맞군요. 다음엔 꼭 들러서 인사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라이카 클럽의 인연.... 이게 보통 인연인가요?

아참. 다음엔 우리 아이들 웃는 얼굴도 한 번 담아 주시구요... 반갑습니다. ^~^

개인정보처리방침

닫기

이메일무단수집거부

닫기
닫기
Forum
Gallery
Exhibition
Collection
회원목록
잦은질문모음
닫기

쪽지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