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모퉁이 - 그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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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박대원
- 작성일 : 09-09-13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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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기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했었다.
강원도 평창 한 산골마을에서 그는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오두막 주변에 한 뼘씩 텃밭을 일궜다.
그 텃밭에 아버지는 배추나 무가 아니라 양귀비를 가꿨다.
그리고는 아편에 절어 살았다.
"무작정 집을 나왔죠. 아버지가 죽도록 싫어서요."
서울의 첫 밤을 그는 서울역 옆 염천교 다리밑에서 보냈다.
열 다섯 살 때였다.
"물론 거지였죠."
한동안 구걸을 함께 하던 한 할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구두닦이를 시작했다.
처음엔 떠돌면서 했지만 몇 달 뒤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을지로3가 백병원 앞이었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그 땐 아주 큰 돈이었어요, 850만원이!"
그 돈을 줄 테니 '자리'를 팔라고 어느 날 무지무지 덩치 큰 아저씨들이 찾아 왔다.
"김두한 시절이었죠!"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그 돈을 가지고 고향에 내려갔다.
"만 평이 넘었어요."
땅도 사고 이웃마을의 두 살 아래 처녀와 결혼도 했다.
행복이라는 게 이런 거고나 싶었다.
열 아홉 살 때였다.
"참 세상일이란 게 ...... 각시가 죽어버리지 뭡니까, 애를 낳다가요!"
그랬다. '아내'가 아니라 '각시'라고 그는 말했다.
한참 신혼 때가 아니었을까.
"고놈도 지 애미 따라가더군요, 일 주일만에."
심봉사가 심청이를 업고 이 동네 저 동네 젖동냥했다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다시 고향을 떠났다.
아버지의 아편은 그 너른 땅을 누에가 뽕잎 갉아먹 듯 야금야금 다 먹어 치웠다.
끝내 아버지는 아편으로 세상을 일찍이 떠났고 어머니는 오 년 전에 떠났다.
책을 쓰자면 한 권도 넘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같이 사진이나 한 장 찍죠, 형님!"
우리는 지나가던 한 학생을 불러 세웠다.
"고맙소, 학생!"
내가 해야 할 인사를 그가 했다.
한참을 그대로 앉아 우리는 말없이 담배만 나눠 피우면서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마지막 꽁초를 주머니 속에 넣고 나서야 그는 침묵을 깼다.
"근데...... 형님, 참 이상하죠? 옛날에 내가 하도 미워해서인지 꿈 속에도 안 오세요, 아버지가.
한 번만이라도 꼭 보고 싶은데......!"
( 서울역 광장 / 2009. 7. 16 / M7 50 f2.0 TX )
댓글목록
홍건영님의 댓글

세상에는 사연 많은 사람들도 참 많지요?
올려주신 글과 사진 감사히 잘 봤습니다
정규택님의 댓글

마지막 글에선 눈물이 날 듯합니다.ㅠㅠ
한번만이라도 꼭 보고 싶다는 말씀...
배성환님의 댓글

제각기 사람마다 깊은 사연을 간직한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듯합니다...
좋은 글과 사진 잘보고갑니다...
조현갑님의 댓글

그 분의 곡절많은 인생사에 침을 꼴딱 삼키고.......
박대원선생님의 인간상을 다시한번더 보게 되는군요.... !
강정태님의 댓글

참으로 가슴 뭉클한 이야깁니다.
같은 하늘아래 태어 났음에도 인생사가 어찌 이리 천차만별한가요.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돌아 봅니다.
박 선배님, 감사합니다.
정성호(虎)님의 댓글

박선배님 사진도 잘 찍으시고 글솜씨도 대단하십니다.
대하소설을 짧은 한편의 시로 정리하신것 같습니다.
마치 사람이라는 다양한 주제를 한 컷의 사진으로 표현해 주시는 능력을
카메라 대신에 펜으로 발휘해 주신것 같습니다.
한참을 울었습니다.
좋은 사진과 글 기다리고 있습니다....
황기원님의 댓글

감동이 있는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열정에 넘치시고 서스럼없이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에
존경을 표합니다..
강인상님의 댓글

사진은 사진만이 아니다라는 것을 박대원 선배님께서 늘 보여주십니다.
감사드립니다.
강희경님의 댓글

좋은글과 사진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박유영님의 댓글

박대원선생님께서 올리신 좋은글과 사진으로 아침부터 멍하니 앉아있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김대석님의 댓글

꼭 잡은 두 분의 손에서 뭔가 뜨끈한 것이 흐르는 것이 느껴집니다...
따뜻한 ``정``을 느껴봅니다.
장재민님의 댓글

선생님 정말 멋져요.
그 분은 따뜻함을 가득 안고 오늘 잘 주무실 듯합니다.
홍경표님의 댓글

코끝이 찡~합니다.
좋은 글, 좋은 사진 감사합니다.
노제국님의 댓글

참, 덤덤하게 써내려간 글속에 감동이 숨어있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장충기님의 댓글

무언가 댓글을 달고 싶었는데 할 말이 없네요....
김봉섭님의 댓글

가슴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박선배님의 손이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평창에도 행복한 옛이야기가 계속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사진과 글 감사합니다...
김선근님의 댓글

박대원 선셍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의 여정,...
소설같고 가슴 저며오는 어떤 삶의 이야기를 맛갈스럽게 잘도 표현하셨군요.
'사진이 삶을 표현 할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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