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부산에 내려와 생활하게 되면서 하나의 고민이 생겼다.
"카메라를 매주 들고 다녀야 하나?"
하지만 무거운 노트북과 옷가방을 들고 주말마다 서울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느낀 점은, 여행을 할 때는 무조건 짐이 가벼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다 보면 여행 자체에 진이 빠져서, 막상 휴식시간에는 무언가 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경함한 터 였다.
그렇다고 카메라를 호텔이나 회사 책상 서랍에 놓고 다니는 것도 미덥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카메라를 한 곳에 놓고 다니게 되면 다른 한 곳에서는 그 카메라를 사용할 수 없다는 딜레마도 있었다.
사실 주중에는 사진을 찍을 일이 별로 없으므로 막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운 고가의 장비 말고, 그냥 빈손의 허전함을 덜어 줄 만한 작고 가벼운 카메라가 하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렇게 고민하던 차에 장터에서 미놀타 하이매틱이라는 RF카메라가 눈에 들어 왔다.
가볍고, 저럼하여 잃어 버려도 부담없고, 렌즈 성능이라든가, 색감 등도 이미 경험한 터 였다.
크게 생각할 것도 없이 판매자에게 연락을 하여서 카메라를 받아 들었다.
다행히 카메라의 상태도 훌륭하였다.

그리고, 마침 그 주말에 아내가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어 이곳저곳을 같이 구경다니게 되었다.
새로 산 하이매틱에는 테스트용 필름이 장착되어 있었고, 나는 아내와 함께 다니며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필름을 현상하였는데....
36장의 노출 중에 제대로 나온 사진은 4장 뿐...
나머지는 모두 심한 노출 부족으로 거의 검은 색에 가까워 노출이 되었는지 조차 알아 보기 힘든 지경이었다.
사진을 기다린 아내에게 미안한 생각과 함께 중고품을 구매하여 확인도 제대로 안해보고 덜렁 들고 나온 경솔함에 심한 자괴감이 밀려온다.

판매자에게 연락을 하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을 하지 않아 노출계에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반품을 하고 싶다고...

판매자는 약간은 의문을 제기하였지만, 필름을 보여 주겠다고 하자 반품에 응하겠다고 하였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일 수 있겠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카메라의 상태를 알고도 판매를 한 것인지, 아니면 모르고 판매를 한 것인지...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아닌지...

반품은 하였지만, 잃어 버린 나의 시간과 사진들은 보상 받을 길 없고, 중고거래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장비에 대한 신뢰는 확실히 가격에 비례하는 것 같다.
라이카, 특히 대부분이 기계식인 M바디가 그렇게 고가이면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이유는 극한 환경에서도 문제 없이(기계적으로) 잘 작동할 것이라는 무한한 신뢰를 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물론 중고 라이카에도 잘 적용이 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단돈 10만원도 하지 않는, 그것도 전자적으로 제어가 되는 믿음직스럽지 못한 중고를 놓고서, 그것이 수백만원짜리 라이카처럼 정확한 작동과 함께 훌륭한 사진을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6장의 자동노출 가운데 단 4장 밖에 제대로 찍어 내지 못하는 카메라라면 그것은 장비에 대한 신뢰의 문제를 떠나서 사람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는 생각이 자꾸 머리 속을 어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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