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모르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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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명기
- 작성일 : 09-07-11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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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업을 하다 보니 복잡한 일이 많다. 년 전에 한 세무사 사무실과 일할 때다.
여보, 큰일이에요.
뭐가?
세금 계산서랑 카드 명세 등을 다 보냈는데, 세무사 사무실의 세금 계산이 안 맞아요. 내일 부가세 신고 날인데 오늘 답변을 해서 그러네요. 시간이 없어서 재계산도 못한다고.
그럴 리가 있나? 그 사람들은 프론데.
유류비등 카드로 계산 한 것도 다 빠졌구요. 사무장이라는 사람은 거만하고 엉망이에요.
그래? 전화 한번 넣어봐.
전화를 건 아내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게 들이민다. 옆에 앉은 내게 들려오는 전화기 소리는 아내의 표정보다 더 엉망이다.
지금 우리 사무실에 직원들이 그만 두는 바람에 아르바이트 여직원 밖에 없습니다. 세무 자료는 더 이상 자세하게 봐 드릴 수 없습니다. 일이 마음에 안 드시면 다른 세무사 사무실과 일하시든가 맘대로 하세요. 달칵 전화를 끊어 버린다.
대략 그런 내용이다.
아니 이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도대체 장난으로 하나?
나는 전화가 끊어지자말자 다시 세무사 사무실에 전화를 건다.
이것 보세요. 당신들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서류를 다 정리해서 보냈는데도 그것하나 제대로 정리를 못해요?
아 여보세요?
거기 00세무사 아닙니까? 당신 사무장이지요?
네 00사무실은 맞습니다만...
카드로 사용한 것은 이미 부가세 다 계산 된 것 아닙니까? 게다가 아르바이트생밖에 없다는 것은 당신들 사정 아닙니까?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면 사과를 할 일이지, 사과는 못할망정 다른 세무사를 알아보라고? 그게 직원으로 할 소리야? 도대체 제정신이요?
잠깐 진정하시고.
네 진정이야 얼마든지 하지요. 하지만 내일이 신고일인데 빠진 내용을 보충하지 못하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네 저는 사무장이 아니라 세무사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제가 착각을 했군요.
우리 직원이 고칠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까?
네 게다가 아르바이트 여직원이 일을 해서 본인은 모른다고 하구요.
우리 사무실에 아르바이트 여직원은 없습니다. 다만 입사한지 얼마 안 되서 일이 서투르긴 하지만요.
아니, 그렇다고 일을 바로 잡아 달라는 고객에게 사과는 못할망정, 다른 세무사를 알아보라니요. 그게 할 소리입니까?
아이고, 죄송합니다. 우리 사무장이 그런 소리를 했습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절대로 고객에게 함부로 하지 못한다. 간이 배밖에 나온 대범한 직원이라야만 이런 어이없는 호기를 부리는 것이다. 돈 내고 일을 해달라는 고객에게 다른 곳이나 알아보라니. 월급은 사장이 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주는 것이다. 회사가 살아야만 급여고 뭐고 있는 것이다. 내 짐작대로 사장이 자기 고객을 쫒은 일은 극히 드물다. 물론 제정신 아닌 사장님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해묵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오늘도 비슷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팀이 늘어나, 카메라가 필요하게 되었다. 아침에 미리 인터넷에서 조사를 하고 몇 군데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나는 고속도로에 오르며 전화로 주문하고, 휴게실 CD기에서 입금을 한 후 현장에서 물건을 퀵으로 받을 작정이었다.
여보세요. X레 카메라죠?
네.
어쩐지 어눌한 음성이다. 하지만 전에도 거래한 적이 있어서 그대로 진행한다.
니콘 D5000과 몇 가지 물건을 사려고 하는데요.
네.
그냥 네라니. 어떤 물건들이 필요한지. 가격은 얼마인지. 입금은 어떻게 할지 고객에게 자세한 내용을 물어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러나 전화기 너머의 점원은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이럴 땐 아쉬운(?) 고객이 챙기는 수밖에
저기, 메모지와 볼펜을 좀 준비하세요.
네.
니콘 D5000과 번들 렌즈 55 짜리와 200짜리 각각 하나씩 있는 키트요. 그리고 D90용 세로그립과 추가 배터리, 렌즈 필터, 메모리요. 다 적었나요?
네.
그럼 각각의 가격과 전체 합산 가격, 그리고 입금계좌를 문자로 넣어 주세요. 내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도착하면 바로 입금하지요.
네. 재고 확인을 먼저 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참 장사 쉽게 하는 점원이다. 어쩐지 불안해 진다. 30분이 흘렀다.
아까 전화했던 사람인데요. D5000.
아 네, 아직 재고 파악이 안됐습니다. 10분 있다가 연락드리겠습니다.
20분이 지났다. 물론 연락은 없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건다. 무척 음울한 음성의 여직원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재고를 파악해서 전화를 준다고 했으면 어서 연락을 주어야지요. 지금 뭐하는 겁니까?
무슨 물건이요?
아니 아까 어떤 남자 직원에게 D5000 말했더니 재고 파악해서 알려준다고 했단 말입니다.
네 아직 파악이 안됐습니다.
아니 한 시간 동안 재고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단 말입니까? 무슨 일을 그렇게 합니까? 가격 알려주면 입금하고 현장에서 퀵으로 받는다고 했는데.
아 네, 그 직원은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요.
직원은 세 명 밖에 없던 것 같은데, 일이 잘 안돌아 가는 사무실들은 늘 이런 식이다. 아르바이트생 핑계에, 일을 잘 모르는 직원이라니.
어쨌든 품목을 다시 불러 주시겠습니까?
이것 보세요. 아까 메모까지 하라고 해서 다 불러 주었는데 그걸 다시 알려줘야 합니까?
왜 자꾸 그러세요? 품목을 알아야만 재고를 파악할 것 아닙니까?
잠시 어이가 외출을 해버린다. 사과는 단 한마디도 없고 이건 숫제 시비조다. 꾹 참고 내용을 다시 불러준다.
네 합계는 000원입니다.
그게 아니라, 항목 하나하나와 계좌를 문자로 보내줘야 제대로 사는 지 알 것 아닙니까?
우리 사무실은 바빠서 그렇게 못해 드립니다. 인터넷 보세요.
아니 내가 운전 중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럼 내용도 모르고 돈만 보내라는 겁니까? 일처리를 이렇게 하는데 불쑥 돈부터 보냅니까? 항목을 알아야지요.
우리도 이렇게 까다로운 고객에게 욕 먹어가면서 물건 팔고 싶지 않습니다.
네? 아니 이 사람들이 제정신인가? 거기 사장님 좀 바꾸세요.
사장님은 안계십니다. 우리가 다 알아서 하지요. 어쨌든 문자는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1분도 안되어 날아온 게 바로 재고 없다는 문자였다. 한시간이 지나도록 재고 파악을 못하더니 이번엔 진짜로 빨리 파악했군. 나는 웃고 만다.
허허. 방금 전까지 가격이 얼마라고 하다가 갑자기 고객에게 물건 없다. 엿 먹어 보라는 뜻인데... 나야 상관없다. 다른데서 사면되니까. 그런데 이 사무실의 사장님은 자신의 직원들이 일을 이렇게 처리하고 고객에게 물건 팔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을 알고 있을까?
일단 휴게실 컴퓨터로 다시 검색해보니 비슷한 가격에 같은 물건을 파는 곳이 있다. X토리 라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까 그 여직원이다. 아하, 그러고 보니 주소가 한 번지 차이다. 같은 회사가 점포가 두 개인 체 전화번호도 다르게 만들어 놓고 같은 물건을 팔고 있는 것이다. 이건 사기가 아닌가?
무슨 일이시죠?
여보세요도 안녕하세요도 아니고 무슨 일이시죠? 다.
D5000 구매하려고 하는데, 아까 그 X레와 같은 집이로군요.
재고 없습니다.
다짜고짜 재고 없다고 하는, 그 우울한 음성의 여직원이 슬그머니 미소 짓는 것이 전화기 너머로 보이는 듯하다. 자기네 가게에서 물건 사려고 하는 고객을 쫒으며 고소해 하는 그 어리석은 얼굴이라니.
나는 발길을 돌려 남대문으로 간다. 대개의 똑똑한 고객들은 미리 몇 개의 가게를 조사해 놓고 가격을 흥정하고 물건을 구매한다. 나 같은 평범한 고객도 그렇게 한다. 물론 다음번 가게는 친절했고, X나와의 가격과 비교해도 전혀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물건을 주었을 뿐 아니라, 렌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더 나은 가격에 더 나은 편의성을 권했다. 시원한 냉커피를 마시며 현금으로 물건을 구매했고,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구매하려는 고객에게 아무 것도 팔지 못한 것은, X레와 X토리를 한 사무실에 차려 놓고 고객을 귀찮아하는 바보들의 가게뿐이다. 인터넷으로 다시 검색해도 가게 전화번호만 있고 사장님과 직접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니까 사장님이 모르는 사이, 점원들은 제 입맛에 맞는 고객에만 물건을 팔고, 멀쩡한 고객에겐 불친절과 제 살 깎아 먹는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자기에게 월급 주는 고객에게 멋대로 하고, 있는 재고도 안 팔며 고소해 할 수 있을까? 바보들이 어디까지 멍청한 짓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특히나 바보를 고용한 사장님은 더욱 그렇다. 어쨌든 X레와 X토리 사장님께 건승을 빈다. 참 경제도 어려운 시기에 여러모로 고생이 많으시다.
댓글목록
김두일님의 댓글

저런 가계는 하루 빨리 망해야 하는데--
직원들의 자세가 사기꾼 수준이네요,--월급 주는 사장이 불쌍 타.
김봉섭님의 댓글

얼마전에 저도 비슷한 경우를 당하였는데요... 무척이나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일할려고 다시금 마음을 부여잡았습니다. ^^
ps. 얼마전(?)인가요? MBC라디오... 아나운서 변창립씨가 진행하는 애청프로그램에서 김선생님 육성을 들었습니다. 열심히 사시는 모습... 힘있는 목소리 감명깊게 경청하였습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저도 남 이야기 할 것만 아니라 혹시 우리직원들도 저런 식의 마인드를 가지지 않았나?
한번 확인하고 이 이야기를 직원들에게 들려주려합니다.
사회와 삶에 대한 기본이 안되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좀 더 불편하게 합니다...
어느날 라디오에서 인터뷰 하겠다고 해서 무슨 소리를 했는지도 잘 모르게... ^~^
김경섭님의 댓글

이런 직원들은 일은 성의껏 안하면서 월급 적다고 뒤에서 투덜대는 인간들이다,
우리나라 공기업에서 일하면서 국가관은 없고 자기 잇속만 차리고 공기업이 망하든 말든 일하면서
공기업을 정상화 하려고 나서면 데머나 하는 인간들 하고 다를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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