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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울음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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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김명기
  • 작성일 : 09-06-0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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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울음소리



오랜만에 개구리 소리를 들었다. 어둠 속 길을 가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햇소금을 흩뿌린 것처럼 별이 가득한 하늘이다. 밤은 어디까지 뻗어 있는 것일까? 물을 댄 논에는 별빛이 바람에 일렁이고 있다. 나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생각한다.

백만년 전, 나는 숲에서 걸어나와 컨테이너에서 살았었다. 나는 가난하고 평온했다. 내 개인 복실이도 그랬다. 내 말인 비월이도 그랬다. 우리는 머리위에서 침몰하는 먹이를 받아먹는 심해 상어처럼, 도심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들을 먹고 살았다. 도시의 벗들은 늘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나는, 내 개와 말은 굶지 않았다.

저녁이면 막걸리 병을 뒤에 싣고 자전거를 타고 어두운 농로를 따라 달렸었다. 국밥집에서 얻은 뼈다귀 봉투를 매달고 달리면, 내 개인 복실이는 빨간 혀를 흔들면서 나를 따라 달렸다. 컨테이너에 도착하면 내 말인 비월이는 껑충껑충 춤을 추며 나를 반겼다. 나는 외로움 속에서 외롭지 않았다. 별은 머리위에서 폭죽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가난하지만 외롭지 않던 나는,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농로에 멈추어 별을 바라보곤 했다.

꿈을 지녔다. 그리고 그 꿈은 지독하게 고독한 꿈이었다.

새로 마방을 지었다. 이제 내 말들은 좋은 사료와 건초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 깨끗한 톱밥을 깔고 맑은 물을 마신다. 나는 매일 저녁 말들을 씻는다. 말들은 머리를 털고 푸르륵 거리고 꼬리를 흔들어 내게 물을 뿌린다. 나는 거대한 티탄들이 내게 보여주는 신뢰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나는 말들의 눈을 보며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선글라스를 쓴다. 나를 그들에게 읽히고 싶지 않다. 나는 스스로 인간이기보다 그들의 우두머리로 생각한다.

말들에게 사료와 건초를 듬뿍 주었다. 말들이 사료를 사락거리는 소리가 마치 음악 같다. 아니 이런 게 진정한 음악이다. 소리와 행복. 음악은 그 별명에 불과하다. 나는 행복한 내 말들을 뒤로하고 농로를 걸어, 씩씩한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이 밤, 복실이도 비월이도 곁에 없다. 그들이 떠난 것으로 나는 이 우주엔 새로운 세상이 있을 것을 짐작한다. 그처럼 충직한 벗들에게 죽음 이후의 보금자리가 없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그들은 내게 개인적인 별자리가 되었다. 오늘 밤, 나는 흩어진 별들 사이에서 그들의 모습을 찾아본다. 비월이는 페가수스처럼 어둠 속을 내달리고, 복실이는 빨간 혀를 내밀고 나를 바라본다. 시간은 흐르고 흐른다. 변하는 것은 인간들뿐이다. 내게, 또 다른 사랑이 깃들 자리가 있을까? 결국 나는 의심많은 인간이다.

나는 변함없이 가난하다. 하지만 호주머니에 막걸리 살 정도의 돈은 평생 떨어지지 않는다. 내게 유일한 복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이 행성의 개인에게는 이정도가 충분한 행운이 아닐까?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나을 것이다. 나는 막걸리를 사기에 충분한 돈과 희망이 있다.

말들은 오늘 새 마방에서 행복하다. 오늘 나는 모든 것이 충분했다. 그리움까지도 그랬다.

또 개구리 울음소리.


Mars No. 16

www.allb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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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인상님의 댓글

강인상

개구리 울음소리 같은

기분 좋은 느낌을 받습니다.


행복한 삶의 이야기 감사합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김명기

돌아보면 불행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삶의 강력한 치유력이겠지요. 이럭저럭 삶은 살아볼만한 것인데...

잘 지내시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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