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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이야기 - 6 (녹차 본격 보급) 7 - (仙茶의 영향)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조성욱
  • 작성일 : 09-05-02 17:17

본문

6. 녹차 본격 보급
 
[국내 녹차 제조의 교과서]
국산 홍차 산업이 쇠퇴하게 된 것은 제조업이 지녀야 할 윤리,
즉 정직함을 상실했기 때문인데, 이같은 윤리적 타락은 당시 우리나라 제조업의
공통된 문제점이기도 했습니다. 홍차업자들이 생산체제를 다른 차 종류로 전환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때 일본에서는 녹차(綠茶)를 기계로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고안해냈습니다.
이른바 증차(烝茶) 즉 수증기로 찻잎을 쪄서 만드는 방법입니다.

그런 다음 전기로 가열된 열판을 이용하여 볶는 과정과 건조시키는 과정을
단순화한 것입니다. 녹차는 홍차를 만들던 설비를 부분적으로
혹은 대폭 손질한 증차 제조 기술을 도입한 이후의 산물입니다. 녹차 생산이 본격화된
1972년 이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어 시판된 녹차는 김복순 부부가 전과정을 손으로
만든 선차가 유일했습니다.

수제품인 선차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아주 느리게 거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①찻잎을 따서 시루나 가마솥에서 수증기로 찐다. 시루에서 들어내어
서늘한 그늘에서 말린다.
② 연한 불에 가볍게 덖는다.
(添 : 위 ①②의 내용은 사실과 다르므르 아래와 같이 바로 잡습니다)
① 차잎을 장작불에 달구어진 가마솥에서 잘 덖어낸다. 
② 차를 멍석에 비벼서 그늘에서 말린다.
③ ①, ② 과정을 각각 세 번 반복한다.
④ 그늘에 널어 말리면서 잡티를 가려낸다.
⑤ ②보다 열을 더 올린 가마솥에 넣고 천천히 저으며 볶는다.
⑥ 멍석에다 비비고 털어서 건조시킨다. 이때 깨끗하게 잘 말려야만 한다.
⑦ 다시 가마솥에 넣고 볶는데, 은은한 불길에서 오래 뜸을 들일수록
특유의 맛과 향기를 머금게 된다.
⑧ 불순물을 제거하여 포장한다.
 
이와 같은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 선차의 제조 기법은 1962년부터 약 10여년간
우리나라 녹차 제조법의 기초 교과서 역할을 했습니다.
일손이 많이 드는 작업이므로 마을 아낙들에게 품삯을 주고 단계별로 일을 시켰는데,
녹차 만드는 일을 거들어준 마을 사람들은 얼마만큼 시간이 흐른 뒤에 독자적으로
녹차 생산을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김복순 부부는 가장 중요한 부분의 작업은 손수 했기 때문에
단순노동을 반복한 그들이 제대로 된 녹차를 만들기는 불가능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녹차 만들기를 계속했고, 이들의 제조법은 또 다른 외부 사람들로 하여금
어깨너머로 훔쳐보거나 정확하지 않은 채로 전수되기도 하면서
선차를 흉내 낸 차 생산이 확대되었습니다.

김복순 부부의 선차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부산에서 ‘고려민예사’를
경영했던 금당(錦堂) 최규용(崔圭用) 선생을 통해서 였습니다.
1965년 한일국교가 다시 열린 뒤 일본인들의 부산 관광이 활성화되자 금당선생의
고려민예사는 일본인들의 한국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김복순 부부의 선차도 그렇게 소개된 한국 전통상품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통도사 극락암에서 수행하셨던 경봉(鏡峰) 스님과 삼락자(三樂子) 스님이
선차를 즐겨 드시게 된 것도 조태연이 금당선생과 함께 두 어른을 찾아뵈올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경봉 스님께서 조태연 내외에게 내려주신 격려 법문은
고난과 좌절을 겪던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경봉 스님께서 선차를 즐겨 드시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절집에 선차 소식이 골고루 퍼졌고,
수행승들의 선차 주문이 이들 부부를 간신히 견디도록 해주었지요.
그러면서 스님들이 녹차 만들기에 관심을 보이게도 되었지요.
 




7. 仙茶의 영향
 
차 상표로 더러 쓰이는 '지리산 죽로차'. 1965년 하동의 김복순씨가 만든 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선차는 계속 만들어졌습니다.

1964년 11월 8일 하동군 농산물 품평회 2등(당시 군수 한형구),
1966년 10월 4일 제 3회 하동종합문화제 특산물 공예부 2등(군수 손영식),
1967년 4월 12일 경남도지사(이계순) 감사장,
1967년 11월 19일 하동군 농산물 품평회 우수상(농협장 전상수) 등의 평가를 받게 되면서
부터 명성이 널리 알려졌지요.

곤양 다솔사의 효당 최범술 선생을 위시하여
청사 안강석 선생과 전국의 여러 스님들이 이들 부부를 찾아와 격려했습니다.
특히 효당 선생께서는 선차라는 이름 대신 ‘죽로차(竹露茶)’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겠다는 도움 말씀을 주기도 했는데,
이들 부부는 1965년부터 ‘지리산 죽로차’라는 이름과 ‘지리산 작설차’라는
두 이름도 함께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67년에는 경남도로부터 식품허가를 받아서
본격적인 녹차 생산을 시작했지만 가난은 계속되었습니다.
녹차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전반적인 사정이 계속 어려운 가운데서 홍차 만들던 이들이 녹차 생산으로 변신하게
되었지요. 이들 부부의 수제차는 자본과 공장 시설을 갖춘 홍차업자들의 대량 생산으로
새로운 곤경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선차의 제조 기술을 탐지해내기 위한 온갖 방법 앞에서 또 다른 시련을 겪게
되었습니다. 기술 정보가 뜻대로 탐지되지 않게 되자 이들 부부가 갖고 있는
식품허가를 취소시켜 버림으로써 아예 녹차 제조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려는 음모가
공공연하게 시도되었습니다.

자본을 가진 사람들의 이 시도는 결국 관철되었고, 보건소 직원들은 식품위생법
위반 사실을 적발하기 위하여 밤낮 이들 부부를 감시하게 되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녹차의 생산 판매가 전국적으로 일반화되기 시작했는데,
일본에서 개발한 기계식 증차법으로 만든 녹차와 김복순 내외를 원류로 한 손으로 만드는
녹차 종류들이 함께 시판되었습니다.

1974년 ‘대한차업’이 일본 ‘환홍(丸紅)’과 합작 투자 회사를 설립하여 만든 녹차를
모두 일본으로 수출한다는 조건으로 정부 승인을 얻었습니다.
녹차 소비량이 늘어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에는 ‘동서식품’도 가담했지요.
1978년에는 ‘한국브리태니커’의 월간지 ‘뿌리깊은 나무’ 사업부에서 하동 화개에서
만들어지는 녹차 상당량을 사들여 ‘뿌리깊은 나무 잎차’라는 상표로 판매하기 시작했지요.
녹차 인구가 늘어가자 박동선(朴東宣)을 주축으로 한 녹차운동 그룹이 생겨났고,
1980년에는 ‘한국차인회’가 창립되었지요.

박동선은 ‘한남체인’이란 회사를 세워 녹차 판매 사업에 가담했는데 ‘신록차(神綠茶)’란
상표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뒤이어 태평양화학이 ‘설록차’란 상표의 녹차 생산을
시작하여 국내 최다 량의 녹차생산업자가 되기도 했지요.

그리하여 한국의 녹차는 가공업자와 판매업자로 분업화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판매업자인
자본가들의 지나친 이윤추구 때문에 녹차의 판매 가격이 끊임없이 높아졌습니다.
녹차의 재배와 가공업자는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데도 판매업자는 계속 이득을 챙기는
모순이 심화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증차와 함께 김복순의 선차를 원류로 한 이른바
전통 수제차 종류도 점점 늘어나면서 품질은 저하되고 가격만 높아지는
모순이 쌓여왔는데, 이는 숨길 수 없는 한국 녹차역사입니다.
 
박창희 기자 [200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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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0

댓글목록

박경복님의 댓글

박경복

안타까운 사실이지만, 한편으론 매우 재미있습니다.
8편은, 언제 올라오는지요?

시련과 가난에도 불구하고 굽히지 않으신 저분들의 의지가 존경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귀한 자료(?)에 감사합니다.

하효명님의 댓글

하효명

계속 잘 읽고 있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마시던 茶의 역사를 알게 되어 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언제 읽은 책에
지리산 속에 5000여명이 살고 있는데
그들이 등산객이 싸 온 음식으로 연명을 하며
입산 금지가 시작되는 5월은
화개로 내려와 녹차 덖어 주는 일로 끼니를 해결한다고 했습니다.
혹시 조선생님 댁에 찻잎 덖는 인부가 필요하시면
제가 가서 무료로 일을 할 의향이 있습니다.^^

좋은 내용 계속 연재 부탁드립니다.

강웅천님의 댓글

강웅천

화개를 지나 쌍계사방향으로 올라가다보면 왼쪽에 '지리산 죽로차'가 있어서 늘 대나무 이슬을 머금은
차맛은 어떨까 했었는데,
오늘 그 역사를 알고보니 더욱 그 향이 짙고 깊겠습니다.
저도 언제 기회가 되면 며칠 머물며 함께 덖고 말리면서 차에 빠져보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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