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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이야기 - 11~12 (茶에의 歸依 ③④)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조성욱
  • 작성일 : 09-05-03 20:03

본문

茶에의 歸依 ③
 
인간이 치르는 고난은 아무리 크고 오랜 것일지라도 그 나름의 까닭이 있고,
또 잘만 견디어내면 고난 아니고는 깨달을 수 없는 숭엄한 가치도 들어 있게 마련이지요.
김복순 내외가 겪는 어려움도 그랬습니다.

차맛을 제대로 아는 분들이 보내주는 끊임없는 격려와 도움이 이들로 하여금
모진 생각 안먹게 하고, 비열한 짓 하지 않도록 울이 되어 주었거든요.
통도사의 경봉노사, 삼락자, 수안스님, 청사선생, 부산의 금당선생, 사천의 효당스님,
광주의 의재선생 같은 어른들이 보내주시는 격려는 큰 힘이 되었지요. 봄철에서 초여름
사이에는 어김없이 다녀가시는 전국 여러 사찰의 스님들과 명사들의 도움은 생활에
큰 보탬이 되어 주었습니다.

허가를 갖고 있을 때 사용했던 ‘선차’라는 상표와 고려제다라는이름은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요.
그 대신 ‘죽로차(竹露茶)’라는 새로운 이름을 쓰게 되었는데,
1965년 다솔사에 주석하시던 효당노사께서 지어주신 이름이지요.
그 뒤로 한일제다, 한림제다, 방산다장(方山茶藏)등으로 바뀌면서 어려움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차에 대한 평가는 점점 널리 퍼져서 일본 차인들이 화개를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김복순의 차만들기 내력을 들은 그들은 일본에서도 사라져버린 그 차맛과 함께
한국의 차나무와 풍토적 특성이 어우러져 생기는 독특한 맛에 감탄했지요.
일본으로 차를 수출하는 문제가 거론되었습니다.
하지만 허가가 없다는 점,  대규모 생산 설비가 안되어 있다는 점 등이 장애물로
작용하여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허가증이 또다시 김복순 내외의 마음에 굵고 깊은
상처를 만들었습니다. 허가증을 돈으로 살 수도 있다는 제의가 여러번 있었지만 먹고
살기도 벅찰 뿐만 아니라 누구한테 돈을 빌릴데도 없었지요.

피눈물로 보낸 세월이 1980년대까지 밀려왔지요. 80년대 들어 박동선씨가 찾아 왔습니다.
차맛이 좋다고 소문을 듣고와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많은 양의 차를 사갔지요.
그 인연으로 뒷날 박씨가 만든 미륭그룹 산하에서 식품판매를 위해 설립한 ‘한남체인’이 ‘
신록차’라는 상표의 차를 판매하게 되었지요.
그 신록차의 알맹이 중에는 김복순의 화개차도 포함되었지요. 또한 ‘뿌리깊은 나무’에서
‘뿌리깊은 나무 잎차’라는 상표를 붙여 녹차 사업을 할 때(당시의 책임자는 한상운씨였음)
그 차의 알맹이도 김복순이 만든 찻잎이 들어 있었습니다.

김복순 내외가 겪는 고난을 말없이 지켜보시던 삼락자스님께서는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고 계셨던가 봅니다.
부산에서 크게 차판매 사업을 하던 조선생(은행 간부로 있다가 정년퇴임했음)의 부인한테
김복순의 차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그 부인은 뒤늦게 김복순의 차를 알게되어 크게 기뻐하면서
한꺼번에 5백만원어치의 차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차값을 미리 건네주기까지 했지요. 김복순 내외는 하늘이 도우셨다고 믿었습니다.
그 5백만원이면 허가증을 살 수 있었거든요. 수소문한 끝에 폐업중인 어느 식품회사의
허가증을 샀습니다. ‘보건사회부 제 47호’인 이 허가증은 원래 ‘조양식품’이란 회사의 것이었는데,
허가증의 주소지, 대표자 명의를 변경 신청하여 다시 어엿한 녹차 제조업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해서 만든 것이 저 유명한 ‘쌍계제다` 였습니다. [添 : 매각으로 쌍계제다는 현재 타인이 소유]





茶에의 歸依 ④
 
김복순 내외가 녹차 제조법을 처음 이용하여 ‘선차’를 선보인 이후 그들의 제다법이
불완전한 상태로 차츰 일반에 알려졌습니다. 가장 핵심 기술이라 할 수 있는 향기와 맛을
결정짓는 마지막 단계는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고요.
이들이 무허가 신세가 되어 곤경에 빠져있던 십 수년 동안 한국의 녹차 산업은 그럭저럭
규모가 커지고 수요량도 경이적인 폭증을 거듭해왔습니다.
김복순 제다법을 어깨너머로 훔쳐보았거나, 훔쳐본 이들의 기법을 또다시 훔쳐본 사람들 중에서
뜻밖의 성공을 거둔 사람도 생겨났지요. 김복순 내외는 여전히 궁핍과 핍박 속에 놓여 있었지만
어깨너머로 훔쳐보고 만든 녹차를 팔아서 큰돈을 쥐게 된 이들일수록 김복순 내외를
멀리했습니다. 성공과 함께 상당한 돈도 벌게 된 이들 중에는 1970년대 중반과 후반 무렵
처음 녹차를 만들기 시작하여 김복순으로부터 기술지도를 받았거나 상당한 조언을 받아
사실상 제자라고 봐야 할 사람도 몇몇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런 사실을 극구 부정합니다. 오직 자신들의 독자적인 연구 결과라고 강변합니다.
차는 만드는 일뿐만 아니라 마시고 깨닫는 정신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형이상학적 음료입니다.
은혜를 모르고서 차를 만들거나 마시는 것은 큰 불행이며,
이 불행은 차 마시는 이의 가족과 이웃까지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김복순 내외가 오랜 고행 끝에 다시 허가증을 갖춘 차만들기를 시작했지만 세상의 변화는
벌써 이들이 그토록 추구했던 좋은 차를 제대로 만드는 일보다는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것을
중시하는 풍조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비록 큰돈을 만들 수는 없을지라도
제대로 된 차를 만들다가 죽어야만 죄짓지 않고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리라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며 살다 갔습니다. 그들은 끝까지 가난하고 외로웠으며 불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좋은 차를 만들기 위한 정신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차는 은혜의 산물이어서 차를 시작할 때 은혜의 문을 들어서서, 차를 마치고 생을 닫을 때는
더 크고 넓은 은혜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던 김복순의 차 철학은
누구도 더럽힐 수 없는 한국 차의 아름다운 미덕입니다.
좋은 차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차에 대한 나름의 철학 말고도 몇 가지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고 했습니다. 깨끗하고 좋은 찻잎을 선택하는 것이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 찻잎을 따서 지체하지 않고 열처리 하는 것이 두 번째 조건이지요.
차 만드는 이의 몸이 청결해야 하고 마음에 사악함이 없어야 합니다.
예부터 정해 놓은 절차대로 따라야 하며, 세상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배우고 터득한
대로 몰두해야 합니다. 다 만든 뒤에는 차를 달여서 하늘에 제사해야 합니다.
이같은 차만들기는 곧 차에의 귀의이며 종교와 정신세계로의 발원이기도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 안가리고 흉내내기에 매달리는 것은 죄악이 됩니다.
오늘날 저 수많은 전통수제차 만드는 이들 중에는 지탄받아야 할 잘못을 범하고 있는
사람도 몇몇 있습니다. 그 잘못이란 곧 인간의 건강을 해치고, 차문화를 왜곡하며,
시대와 민족에 큰 걱정을 끼치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박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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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경복님의 댓글

박경복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장인의 철학과 손길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시류에 타협하거나 아부하지 않으시고,
물질에 대한 탐심에 넘어지지 않으시고,
한 푼이라도 더 벌어 자녀를 양육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차에 대한 애정과 소신을 굽히지 않으신 그분들이 계시기에
오늘의 茶 산업이 발전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이 글들을 계속 올리시면서
이미 떠나가신 부모님이 사무치게 그리우셨을것 같습니다.

김선근님의 댓글

김선근

오늘의 茶가 있기까지...
수많은 질곡을 겪어 왔다는 사실도 모르고 ....
별 생각없이 즐기든 茶에 대한 禮를 갖추지 못했음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감사합니다.

진상훈님의 댓글

진상훈

기존에 가졌던 몇가지 불확실한 차에 대한 이런 저런 다분히 경험치와 구전에 의한 이야기들이 안타까움이 가득한 장인에 의한 올곧은 재현의 역사였다는 점과, 또 얼마나 많은 정성이 그 조그만 이파리에 담겨있는지... 하는 점을 미루어 생각하게 되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없습니다.

차생활이 더 즐거워질것 같습니다. 또 아직 혀끝에, 침샘에 내내 여운이 가득한 달콤한 상쾌함, 신록의 봄을 담아두었다가 온전히 들이킨다는 말조차 부족할 멋진 차 맛을 떠올리며, 이내 그리움에 사로잡힙니다.

좋은 연재 감사드립니다.

하효명님의 댓글

하효명

그렇지 않아도 80g에 17000원 하는 대량 생산 茶를 매일 마시면서
이러다가 이 茶에 포함된 유해 성분 때문에
옴팡 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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