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이야기 1 - ( 茶 만드는 법의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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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조성욱
- 작성일 : 09-04-2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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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차 만드는 법의 혼란
한국 차살림의 병폐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이 차를 만드는 방법 문제입니다.
중국의 제다법이 1천가지가 넘고, 일본도 수십 가지의 제다법을 갖고 있는 것과 달리
한국에는 이렇다 할 고유의 제다법이 없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녹차’인데 찻잎이 산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불이나 증기로 익히거나 덖어서 비벼 만들지요.
오늘날 우리나라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녹차 만드는 법은 일제시대 일본으로부터 배운 것이거나
그 제다법을 다시 어깨너머로 배운 것입니다. 하지만 일제 때 일본의 제다 공장이나 제다 기술자들은
한국인에게 제다 기술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을 철저한 원칙으로 지켰기 때문에
제대로 기술을 배운 사람은 없었다고 봐야 옳습니다. 그만큼 일본인에게 다도는 그들 정신 문화의 원류이므로
일본인 이외 어떤 민족에게도 제다 기술을 가르치지 않았지요.
한국인은 기껏해야 차 공장의 하급 노동자로 일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일본인 기술자의 등너머로 힐끔거리며 본 것이 고작이며,
그렇게 익힌 기술을 또 다시 어깨너머에서 대충 보았을 뿐입니다.
그것도 1960년대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녹차를 만들어 상품으로 유통시키진 못했습니다.
크고 작은 절집에서도 해방 이후 차를 제대로 만들어 마신 곳은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흔히 규모가 크고 유서 깊은 절집에서는 독자적인 제다법이 전승되어 차를 마셔왔다고 말하지만
어떤 절에서도 분명한 기록이 문헌으로 남아 있지는 않습니다.
해남 대흥사의 초의 스님 제다법이 범해, 각안, 선기, 여호, 응송 스님으로 그 맥이 이어지고,
송광사 다송자, 구산, 노사로 계승되며, 수홍, 도범 스님에 의해 선운사 차법의 맥이 이어졌다는 말은 있습니다.
하지만 조계종과 태고종의 대립과 싸움, 종파의 분열과 난립으로 인해
어느 곳에도 반듯하게 정리된 제다법이 전수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제 때 일본 제다법을 모방한 것을 원류로 삼고 저마다 조금씩 방법을 달리 응용하여
녹차를 만들어 마시고 있을 따름이지요. 그것을 제대로 된 차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나마도 1960년 이전에는 만들지도 않았지요.
경남 하동 화개처럼 차나무의 역사가 오래된 곳에서도
흔히 ‘잭살’이라 부르는 몸살 감기약 일종으로 쓰는 약용으로서 찻잎을 이용한 경우가 있었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녹차와는 사뭇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리하여 차밭은 황폐해졌고, 더러는 차나무를 뽑아내고 일반 곡식을 심기 위해 밭으로 만들어 버렸지요.
1950년대의 지독한 궁핍과 사회 혼란은 차문화가 자리잡을 수 없도록 했고,
차례의식에도 차 대신 술이 사용되어서 차는 한국인 생활에서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녹차가 최초로 상품으로 유통되게 된 것은 1962년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 살았던
김복순(金福順1916~1992), 조태연(趙泰衍·1919~1996) 두 사람에 의해서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한국 녹차 제다법의 일반화와 상품화를 시도한 기념비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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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웅천님의 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한국차의 발전에 무작정 자부심을 가져왔었는데, 열악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차의 역사가 그리 길지 못했군요.
지금이라도 많은 시도와 발전이 이루어져 차 문화가 바로 정립될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박경복님의 댓글

다음 편이 기다려집니다.
지금 녹차잎을 거둘 시기여서 많이 바쁘실것 같습니다.
발목 때문에 도와드리지 못합니다요.ㅎㅎ
이효성님의 댓글

막연하기만 했던 차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공간으로 기대가 큽니다. 특별히
대를 이어 같은 일을 하시니 그 배움의 기회가 사뭇 잘 다려진 차처럼 깊을 듯 합니다.
이제 일 편을 읽었는데 벌써부터 다음 편이 기대 됩니다. 우리 나라의 차 문화의 역사가 그리도 짧다는
사실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일본인들의 그들만의 어떤 정신들에 대해서도 생각 해 볼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차를 즐기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 문화의 역사를 이해하고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리고 또 다음 편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효명님의 댓글

나라가 기울어지면 茶 문화도 쇠락해지기 마련일 텐데
미쳐 그 생각은 못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잘 마시고 있는 녹차도
고생해서 복원한 분들의 덕택이군요.
계속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현님의 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한국 녹차의 전통을 재생하고, 그 상품화에 기여하신 두 어르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만, 읽으시는 분들께서 한국 차의 역사가 이렇게 짧은 것으로 오해하시는 것은 아닐까 염려됩니다. '삼국유사'에 이미 가야시대에 차를 마셨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삼국, 고려,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차를 마셔왔습니다. 2000년 간 마셔온 차에 '(고유의) 제다법이 없다'라기 보다는 조선중기 이후로 차문화가 (일시적으로) 쇄퇴하여 '명문화되어 현대에 전승되지 못했다'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약으로서 차를 음용했던 것은 중국, 한국, 일본의 공통점이며, 차문화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조선시대에는 차시장, 찻집이 있었으며 서민들도 차를 기호식품으로 즐겨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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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욱님께 감사드리며, 특별히 글을 올려주신 분께 드리는 말씀은 아닙니다. 제 개인이 알고 있는, 그리고 정설로 인정되는 관점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정성껏 올려주신 글에 사적일 수도 있는 다른 관점을 표현하여, 본의 아니게 불쾌감을 드렸다면 사과드리며, 글을 삭제토록하겠습니다.
조성욱님의 댓글

임현님 茶이야기는 제 글이 아니고
국제신문에 연제 된 정동주 茶이야기 중에서
제 부모님의 기사를 글 한자 가감없이 옮긴 것입니다.
원 작성회원 : 임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한국 녹차의 전통을 재생하고, 그 상품화에 기여하신 두 어르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만, 읽으시는 분들께서 한국 차의 역사가 이렇게 짧은 것으로 오해하시는 것은 아닐까 염려됩니다. '삼국유사'에 이미 가야시대에 차를 마셨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삼국, 고려,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차를 마셔왔습니다. 2000년 간 마셔온 차에 '(고유의) 제다법이 없다'라기 보다는 조선중기 이후로 차문화가 (일시적으로) 쇄퇴하여 '명문화되어 현대에 전승되지 못했다'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약으로서 차를 음용했던 것은 중국, 한국, 일본의 공통점이며, 차문화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조선시대에는 차시장, 찻집이 있었으며 서민들도 차를 기호식품으로 즐겨마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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