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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회한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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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김_민수
  • 작성일 : 10-12-28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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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of Love and Regret]


내가 가장 아끼는 카메라인 이 녀석은 올해로 73년된 녀석입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5년 이상, 혹은 10년 이상 쓰기 힘든 걸 감안하면, 아직도 내 대부분의

사진을 찍어주는 이 녀석은 생생하게 잘 작동하고 있구요.

1937년 태어난 이 녀석의 첫 주인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두 번 째 주인은 텍사스 시골의

어느 사진 애호가의 손에 들어가 65년간 가족들의 추억을 담아주었다 했습니다.

판매자의 아버지가 세상을 뜨고 그의 딸이 중고 시장에 내어 놓은 이 녀석을 만나게 된 것

이죠. 상태가 좋지 못하여 저렴하게 구입하게 된 이 녀석은 카메라와 거의 맞먹는 금액을

들이고서야 다시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올해에 이 녀석의 세 번 째 주인이 된 것구요.

나에게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남기라는 판매자 (전 소유자의 딸)의 메일과 함께.


이 녀석을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이제는 조그만하던 노출계마져 떼내어 버렸습니다.

오로지 위에 달린 뷰파인더와, 내가 느끼는 빛의 량을 가늠하여 내가 느끼는 대로 내

맘대로 찍기 시작했습니다. 손톱으로 렌즈의 조리개를 조절하고, 셔터 속도를

다이얼로 돌려서 맞춘다음 대상을 관찰하는 것.


처음 노출계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섰지만, 이 카메라가 내 일부가

되려면 언젠가는 거쳐야할 단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흑백 사진의 관용도와 팬 포커스의 활용은 결과적으로 나에게 더 자유로운 사진을 주게

된 것 같구요.

디지털 카메라의 쨍한 사진, 칼처럼 잘 맞아 떨어진 초점의 사진들은 내게 더이상 매력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표현하고 싶은 대상에 초점이 잘 맞도록 노력해야겠지요.

그러다보니 내가 느끼는 어느 순간을 잡는데에 더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조금만 추워도 카메라가 작동하지 않곤하는 디지털 카메라와는 달리 왠만한 추위는 이

기계식 카메라가 버텨주고 있죠.

필름이 냉각되어 필름을 감을 때 조심스럽게 감는 것을 제외하고는 나는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내가 이 카메라를 더 아끼는 이유.


셔터를 누르고 순간을 잡는 것 만큼은 내가 가진 어느 디지털 카메라보다 빨리 순간을

잡아주는 녀석.

디지털 카메라의 장점은 또한 무시할 수는 없으나, 내가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니는

녀석은 이 놈이 되겠죠.



연말이 되니 다시금 군대 시절 부모님께서 선물로 주신 내 손목 시계와 낡아빠진

내 지갑을 보면서 넉넉하진 않았지만 행복했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네요.

연말이되면 으례 Mal Waldron과 Marion Brown의 앨범을 듣곤합니다.

군대에서 아버지의 부음을 접했던 저는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 되어버린 손목 시계와

지갑을 여전히 쓰다듬으면서요.


카메라 뒤의 사진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저의 모습을 아마도 어머니께서 찍으신

사진이라 생각합니다. 울산의 어디인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저는 커다란 배를 처음 보고

놀라면서 배를 가리키던 장면이었는데, 이 오래된 사진이 제 어린 시절 기억에 남아있는

아버지의 듬직한 모습이네요. 일찍 결혼하신 아버지의 당시 나이가 아마 지금의 제 나이쯤

될겁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또한 어머니의 시선으로 우리 부자를 보던 그 순간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죠.

음악을 들으면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제 카메라를 다시금 쓰다듬어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제 가족의 역사를 이 녀석이 함께 했으면 합니다.



아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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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유경희님의 댓글

유경희

좋은 얘기이네요...차가운 기계에 인간의 감정을 이입할수 있는것이 카메라 아닌가 합니다.
아무래도 손으로 만지작 하니까,,정이 옮겨간다고나 할까....
참 이쁜 카메라 입니다,좋은 추억만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그건 그렇고 사진이 도착 않했나 봅니다..제가 다 안절부절 하게 되는데...
또 기회 봐서 몇장 보내겠습니다.
연말연시 잘 보내시고...전 서울에서 오랜만에 연말연시를 보내는데,,넘 추워요,,,,

김_민수님의 댓글

김_민수

인용:
원 작성회원 : 유경희
좋은 얘기이네요...차가운 기계에 인간의 감정을 이입할수 있는것이 카메라 아닌가 합니다.
아무래도 손으로 만지작 하니까,,정이 옮겨간다고나 할까....
참 이쁜 카메라 입니다,좋은 추억만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그건 그렇고 사진이 도착 않했나 봅니다..제가 다 안절부절 하게 되는데...
또 기회 봐서 몇장 보내겠습니다.
연말연시 잘 보내시고...전 서울에서 오랜만에 연말연시를 보내는데,,넘 추워요,,,,



크리스마스를 서울에서 보내시나봐요. 뉴스에 보니까 무척 춥다고 하던데요.
이 곳 보다 지금 더 추운것 같습니다.
사진은 아직 도착 안했는데, 연말에는 으례 늦으려니 합니다.
이번 한 주 더 기다려보고요^^
선배님도 가족분들과 많은 추억거리 만드시구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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