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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erfect photography - Andreas Feininger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이치환
  • 작성일 : 10-12-11 08:07

본문

사진을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오랫 동안 가지고 다니면서 읽었던 책이
앤드리어스 화이닝거가 지은 'The perfact photography'라는 책이었다.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되자마자 우연히 종로 서적에서 발견하고 (1988년으로 기억)
구입하자마자 순식간에 독파한 후에, 프랑스로 오기 직전까지 세권째 구입해서
읽다가 사진을 배우고 싶어하는 직장 동료에게 선물했다.
두 권은 책장이 너덜 너덜 떨어져서 버렸고... 많이 읽기도 했지만 사진기 가방 속에
넣고 다녀 많이 시달려서 더빨리 헤진 것 같았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세계 사진사에 남을 사진'을 목표로 했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은 즐거웠다.
지금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기에 맹렬한 도전 의욕을 가지고 있고,
그 의욕이 '나를 존재케 한다'

Andreas Feininger씨는 잘 알려진 대로 사진의 이론과 실기에서 미국 사진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앤셀 아담스'에 못지않는 사진의 대가다. 요즘 누구나 사용하는 300mm 망원렌즈의 특성을
스스로 제작해서 '압축된 퍼스펙티브의 이미지-뉴욕 거리'를 만들어 미국 사진계를 놀라게 한 사람이다.

그는 여러권의 책을 썼는데, '완전한 사진'이라고 번역되어 출판된 이 책이 가장 유명하다.
그가 쓴 여러 권의 사진책에서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은 '사진 시각 언어'에 대한 것이다.

그 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렌즈의 표현 특성'과 '다른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사물이나 사실을 어떻게 사진 언어로 표현해내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즉, 글로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
조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과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이다.

스토리가 있는 사실은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사진은 보조 수단이다)
- 여행 이야기, 변해가는 마을 이야기, 추억에 대한 회상 등

인체의 구조와 인체의 역동적인 표현은 조각이 더 효과적이다.
- 누드 사진은 인체의 구조나 역동성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꿈이나 종교 등 형이상학적인 것에 대한 표현은 그림이 효과적이다.
- 콘스트락팅(혹은 메이킹) 포토그라피가 현대 사진의 주류지만, 아직 샤갈의 그림엔 훨씬 못미친다.

그럼, 사진으로 표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은 무엇일까?
(이게 저의 평생 숙제입니다.)

그런데, 이 책 말미 화이닝거씨의 마지막 멘트가 사실 핵심이다.
나도 이 마지막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책을 읽고 읽었다.

'제가 말한 것은 제가 아는 경험적 지식과 제가 생각하며 실천하는 원칙입니다.
익힌 후에는 반드시 잊어버려야 합니다.'
(이 말이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습니다. 이젠 어느 정도 알게되었지만...)





사진이 보람있고 즐거운 삶의 수단이 되기 위해, 가치있는 놀이가 되기 위해,
쪼끔은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진 잘 찍는 건, 기능적인 말로 동네 사진관 아씨들이 최고죠.
아마추어인 우리들은 '사진 좋다'라는 말을 들어야 하지 않나요?

이 말 속엔, 뭔가 느낌이 있는 사진이라는 거죠.
곧 자신의 마음을 담았다는 다른 표현이겠죠?

잘 찍은 사진이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것은, 기능적으로만 만들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어딘지 서툴고 삐뚤해보이는 사진인데 마음이 끌리는 것은,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 아닐런지?

전, 요즘 세잔느와 마티스, 피카소의 그림들을 보며 고민합니다.
칼라와 구성. 形의 해체와 불균형의 미학...
추천 0

댓글목록

이승준_버즈라이트님의 댓글

이승준_버즈라이트

아...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사진관 아저씨들 사진은 예술이구나' 이렇게 밖에 생각 못했는데,
사진도 역시 예술인지라, 시각을 갖는게 중요하단걸 이해하게 됐습니다.
아... 이제 머리아프겠는데요.
작가의 마지막 말은 전혀 이해가 안가고.. ;;
그림도 많이 보고 생각하고, 사진집도 많이 고민하며 봐야겠다고 우선은 결론 맺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손창익님의 댓글

손창익

이치환 선배님 글 또박또박 잘 읽었습니다.

아직도 이리저리 헤메고 있는 저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글입니다.

저는 마티스, 고흐 그림집을 책상에 두고 틈나는 대로 계속보고 있는데....

그림을 볼때마다 느끼는 것은 사진이 그림을 따라갈수는 없을 것이다는 신념만 강해져요

제가 사진을 하는 이유는 워낙 손재주가 없어 그림을 그리지 못해서가 아닐까라는

인정하기 싫은 정답(?저에게는 정답인거 같음)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재국님의 댓글

이재국

"세계사진사에 남을 사진"
목표와 희망을 포기하지 마시고 꼭 이루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신용승님의 댓글

신용승

이치환 선생님, 글 잘읽었습니다.
글을 읽다보니 생뚱맞게도 한때 라클 최고의 인기작가였던 '정진석'이가 그리워 지네요.
그 친구 왈 '죽기전에 꼭 한방 찍고 말거야'라고 했는데..
요즘 어디서 뭐하면서..뭘찍으며 잘 사는지 ^^

박성준75님의 댓글

박성준75

인용:
원 작성회원 : 이치환

그런데, 이 책 말미 화이닝거씨의 마지막 멘트가 사실 핵심이다.
나도 이 마지막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책을 읽고 읽었다.



어떻게보면 셔터를 오랜 세월 누르고 눌러도, 계속해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한걸음한걸음 더 나아가야하는....제논의 역설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글을 읽고, 좀더 곰곰히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책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해봐야겠구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박성준75님의 댓글

박성준75

인용:
원 작성회원 : 이치환

잘 찍은 사진이 무미건조하게 보이는 것은, 기능적으로만 만들어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어딘지 서툴고 삐뚤해보이는 사진인데 마음이 끌리는 것은, 마음을 담았기 때문이 아닐런지?



사진이 자신의 내면의 투영이라는 생각은 항상 합니다...
사진을 계속 찍고, 다음에 편집할 때 보노라면,
셔터를 누를 당시의 기분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도 그 이유겠지요..

무엇이 마음을 담은 사진인가?
사진에는 찍는사람의 성격이 다 들어나는 것 같습니다.
소통하며 찍은 사진은 웬지, 서글서글하고 정많은 사람이 찍은 것 같고,
뭔가 객관적이고 관조적인 사진은, 한발짝 떨어져서 보려는 도시사람이 찍은 사진같고...
멋드러진 풍경사진은, 찍는 분의 이상향을 보는 것 같고,

하지만, 진정 마음을 담는 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말은 쉽지만, 그만큼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이 생각해 보고 고민해 봐야겠습니다. ^^

유인환님의 댓글

유인환

" 기능적으로 완성 된 사진
거기에 자신의 마음과 느낌까지 담아야
보는 사람의 마음을 끌 수 있다. "

그 이론에는 공감합니다만
어떻게하면 마음과 느낌을 사진에 담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르고 있으니 - - -

어떻게하면 사진에 나의 마음과 느낌을 담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빨리 터득했으면 좋겠습니다.

첨부하신 사진도 역시 이치환님 고유의 색조라고 생각 됩니다.

이창업님의 댓글

이창업

이치환님의 "사진과 함께하는 이야기를 읽고서", 요즈음 저가 접했던 사진분야 선생님의 글을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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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은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가장 중요한 감각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대두된 '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관념은 상징주의와 모더니즘 예술을 거치면서, 현대 예술에 있어서 중심적 개념으로 떠올랐다.

19세기 말엽에서 20세기 초엽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모더니즘 예술에서, '눈'의 기능과 이를 따르는 사실주의적 접근방식은 창의적 상상을 방해하는 요소로 이해되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바, 상징주의의 대표적 시인 보들레르가 사진술에 대해 가졌던 극도의 거부감은, '사진'이 외면적 현실만을 재현할 뿐, 상상적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하는 최악의 도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야수파, 입체파, 다다, 초현실주의 등의 아방가르드 유파들에서, 사진이 파격적인 형식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주의가 규정한 '현실' 을 뛰어넘으려는 태도가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사실주의의 총아로 태어난 사진술은 백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야만 했다.
적어도 전위적 예술가들에게 사진이 도전적인 매체일 수 있었던 것은 [무서우리만치 분명한 현실을 보여 주면서도 현실의 이면에 숨겨진 신비를 드러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사진이 제시할 수 있는 시각적 현실은 급격히 확장되었다.
사진술을 활용한 예술 활동에서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현실 이상의 세계를 추구하려는 시도가 가속화 되었던 것이다. 20세기 초에 적극적으로 시도된 각종 암실 기법과 포토몽타주 등은 시각 예술 매체인 사진을 이용해서 비가시적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방법들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보이는 것 이상을 말하고 싶어 했고, 보이는 것 이상을 사진으로 보여 주고자 했다.
그렇다면 과연 사진은 물리적 현실 이상의 것을 표현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사진의 밖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 뉴턴의 '절대성'을 대체함으로써 시대정신의 변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절대시간과 절대공간의 개념이 전복되면서 시간과 공간이 모든 사람에게 동질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다.

현실은 얼마든지 다른 얼굴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누가 어디서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인 현실이 제시되었던 것이다.
인간의 바깥쪽만을 향하고 남들과 똑같은 것만을 볼 수 있는 눈은 더 이상 필요치 않았다. 내면성과 주관성, 이 두가지는 사진이 본격적인 '시대의 눈'이 되기 위한 과제가 되었다.
사진은 일종의 외부 표상으로서 인간의 내부 표상과 대응 관계를 이룬다.
우리가 눈으로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사진을 찍게 되면, 제일 먼저 육안의 망막에 상이 생겨나고 최종적으로 사진이라는 상이 만들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뇌의 사고 작용이 개입하게 된다.
내부 표상이란 인간의 눈이 빛에 반응하는 방식이나 촬영자의 기억, 개인적인 특질 등에 따라 망막이나 뇌(혹은 마음)에 생겨나는 심상 mental representation을 일컫는 말이다. 내부 표상의 작용으로,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도 누가 찍었느냐에 따라 사진에 다른 시각적 구성요소들이 담기게 되는 것이다.

사진이 내면성과 주관성을 반영한 시각 예술 매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심상을 활용하고 사고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심상은 눈앞에 없는 것을 본다고 느끼거나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출발은 보는 행위로부터 비롯된다.
대상을 바라보고 대상에 대해서 알게 되면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개념화할 수 있게 되고, 그 다음단계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가정법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이미 알고 있거나 믿고 있는 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가정에 의한 생각을 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표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아방가르드 시대가 사진의 역사상 가장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 외계의 사물이 아닌 심상이 사진의 시각적 기초] 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인류가 오랜 시간 축적한 시각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눈을 내부로 돌릴 수 있었다. 사진에 표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형태로 너무나 빨리 드러나 버린 근대적 삶의 한계들에 맞서 인간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확인하고자 했던 예술가들에게, 사진은 새로운 표현의 형식 실험을 이끌어 내기 좋은 도구였다. 노동의 착취, 빈부의 격차, 부랑자를 양산하는 산업 구조의 변화, 완고한 도덕주의와 폭압적 통치 속에서 기존의 예술이 다루어 오던 익숙한 주제와 소재만으로 미래를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20세기 초의 예술가들은 스스로를 기준으로 세계를 재편성하고자 했다. 그들은 변화시킬 수 없는 외계를 믿는 대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내면으로부터 답을 구하였다.
그 결과, 관용구가 되어 버린 주제보다는 내가 본 것과 생각한 것을 더 잘 비춰 줄 수 있는 형식에 몰두한 것이다. 사진은 그들에게 교묘한 기술이 되었다.

그 기술의 핵심은 물리적 세계의 시각적 패턴을 기계적으로 재생하는 과정에 자신의 심상적 표상을 개입시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연성은 극대화되었고, 결과적으로 주관성이 확보되었다. 그들은 전쟁이 없는 정복, 나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며 새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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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진작업이 감성적으로나 관념적으로 편안하고 따뜻한 작업이될 수 있게
읽고, 듣고, 곰부하게 한 많은 사진가 여러분의 가르침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치환님의 댓글

이치환

인용:
원 작성회원 : 이창업
그 결과, 관용구가 되어 버린 주제보다는 내가 본 것과 생각한 것을 더 잘 비춰 줄 수 있는 형식에 몰두한 것이다. 사진은 그들에게 교묘한 기술이 되었다.

그 기술의 핵심은 물리적 세계의 시각적 패턴을 기계적으로 재생하는 과정에 자신의 심상적 표상을 개입시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연성은 극대화되었고, 결과적으로 주관성이 확보되었다. 그들은 전쟁이 없는 정복, 나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며 새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연성은 극대화되었고" 라는 표현보다 "창의성이 극대화되었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도 같습니다.
전체적인 글의 욧점이 된 '기계적 재생산 과정에 주관성을 확보하여, 나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는 새로운 표현을 가능
케 하였다'라는 말에 밑줄 쫙 그었습니다. 좋은 글 소개 감사드립니다.

요즘 버려두었던 렌즈와 사진기들을 어떤 표현에 사용할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포맷과 렌즈의 특성이 만드는 이미지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세심하게 살피기도 합니다만,

먼저, 내가 만들고 싶은 이미지, 내 마음이 만족하는 이미지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그리고 싶고,
그런 후에 그것을 위한 가장 적합한 시스템이 무엇인지,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곰곰히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무엇이던지 생각을 하면서 추진하면 보다 만족감이 큰 것 같아요. 하나라도 더 알게 되고...

올리시는 이미지, 내겐 어려운 것이라 뭐라 말할 수 없어서 스치듯 보고갑니다.
여기 추천과 댓글에 마음을 두지 마시고 계속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창업님의 댓글

이창업

지금도 교과서? 만을 보고있는 학생입니다.
뚝닥그리면서 배워서, 자신의 마음에 스며드는 그림이 언제 불쑥 뛰어 나올련지?

사진 찍기보다는 책보는 것이 쉽기도하고,
단 한가지는 알것 같습니다.
내가 젊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 것 같습니다.
자신이 만든 사진을 보면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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