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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찍지 못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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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유인환
  • 작성일 : 10-12-1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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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대상 중 가장 어려운 대상이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물 사진 촬영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피사체로 삼아 “찍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유난히도 다른 사람의 사진기에 자신이 피사체로 찍히는 것을 싫어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웬 놈이 자기를 찍거나 말거나 전혀 오불관언, 상관하지 않습니다.
영국인, 미국인, 불란서인 등, 서양인들은 자신이 관광객의 사진 속에 찍히는 것 같으면 슬그머니 돌아 서던가 아니면 책이나 신문 등으로 자신의 얼굴을 조용히 가릴 뿐, 뭐라고 항의하는 일은 겪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인도사람들, 이 사람들은 아주 별종입니다. 자신이 찍힌 사진을 받게 될 방법이 전혀 없는 경우에도 디지털 카메라 가진 사람만 보면 앞에 서서 자신을 찍어 달라고 자청하곤 합니다.
그러지 뭐 - 하며 포커싱을 시작하면 주변에 서서 망설이던 사람들이 너도나도 끼어들어 같이 서서 같이 포즈를 취하곤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정색을 하고 항의를 합니다. 왜 함부로 자기를 찍었느냐고 -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을 사진에 담고 싶다면,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반드시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됩니다.
허락 없이 사진을 찍다 들키면 개망신 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물론 몰카를 찍을 수도 있겠지만, 몰래 찍은 사진은 어디에 내 놓을 작품이 될 수 없을뿐더러, 이를 어디에 발표하거나 내 놓았을 때 잘못하면 나중에 초상권 침해로 인한 배상문제 등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교동섬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페리에는 10명 남짓 승객이 승선 했습니다.
관광객이 없는 겨울철, 선실에 석유난로는 비치되어 있었지만
불을 피우지 않아 그러지 않아도 썰렁한 선실 안이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함께 탄 승객 중에는 80대로 보이는 꼬부랑 할머니 한분이 섞여 있었습니다.
배에 오를 때 몸을 완전히 기역( “ ㄱ " )자로 꼬부리고 땅바닥에 코가 닿을 듯한 자세로 걷는 할머니였는데
배에 오르자마자 한쪽 구석 의자에 앉아 주름투성이 이마에 오른 손을 고이고 몸을 앞으로 반쯤 구푸린 채 눈은 지그시 감고 뭔가 크게 고뇌하고 있었습니다.
그 얼굴에 서린 고뇌에 찬 표정은 이를 보는 이의 가슴까지 저리게 할 정도로 그 할머니는 뭔가 커다란 근심을 가슴 속에 품고 아주 침통한 표정으로 홀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저 할머니를 저렇게 고뇌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
마주 앉아 있는 내게도 그 아픔이 그대로 전염 되어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혼자 여러 가지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혹시 할아버지가 중한 병에 걸려 입원해 있는 강화읍에 다녀오는 길일까?
아니면,- - - 혹시 아들이 중병에 ? 아니라면 아들이 무슨 사고를 쳐 강화 경찰서에 구속 되어 있는 건가? 그래서 아들을 석방시키는데 필요한 합의금을 마련해 보려고 나갔지만 돈을 구하지 못해 절망 속에 그냥 돌아오고 있는 것 아닐까? 등 등 - - -

노인 얼굴을 전문으로 찍는 사진가라면 반드시 사진으로 찍고 싶어 할,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 할머니의 얼굴은, 그 얼굴에 드러나고 있는 표정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사진이 될 수 있는 얼굴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 역시 그 할머니의 얼굴을 사진으로 표현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의 모습을 차마 사진으로 찍지는 못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뭔가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그와 같이 뼈가 저릴 정도로 깊은 고뇌에 빠져 있는 할머니에게 사진 촬영의 허락을 구하려고 말을 붙인다는 일 자체가 너무 잔인한 일
같았기 때문이지요. 몰카는 더더욱 실례되는 일이라 생각 했구요.
다른 사람의 불행을 소재 삼아 사진 욕심을 앞세운다는 건 인간적으로 좀 그렇쟎습니까?
지금도 그 할머니의 고뇌 서린 표정이 눈앞에 선- 하며, 잊어보려고 해도 잊혀 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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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박성준75님의 댓글

박성준75

한국에서의 사진문화가 역사적으로 유교적 바탕으로 깔려서 그런가 봅니다.
영혼이 빠진다나, 어쩐다나...

하지만, 중국도 비슷하긴 하더군요...상하이에서 사진을 찍을 때, 길에서 어떤 중년남자분은 사진찍었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치더군요...중국사람들은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ㅎㅎ
쪽팔려서 발걸음을 빨리하긴 했지만, 뭐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파리의 경우, 아는 분이 사진을 찍었는데, 찍힌 여자가 돌을 던졌다고 하더군요...

사진가의 권리가 가장 잘 보호받는 곳은 아무래도 미국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참 힘든데요...
그래서, 한발짝 떨어져서 찍으면서 50mm 렌즈를 사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망원계열로 간다면, 더 숨어서 찍는 것 같아서 싫구요..
피사체가 적당히 알아차리면서 공공장소나 배경이 들어가는 표준화각에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광각계열로 좀더 다가가거나, 클로즈업을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 반응이 제 각각이라서요...어떤 전문작가분은 노파인더샷을 즐겨 사용하긴 하던데...개인적으로 그것도 좀 깨름직스러운 것 같습니다...

사진 찍었다고 가끔 뭐라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냥 웃어 주거나, 그러려니 합니다.
공공장소에서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나 자신도 사진찍을 권리가 있거든요..
물론, 굴욕적인 프레임이나 가벼운 마음으로 편집하진 않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마추어, 프로를 막론하고 수없이 질문해 봤지만,
시원한 대답을 들은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 결론은
적당한 거리에서, 피사체를 존중하며, 사진찍을 권리를 가지자
입니다~^^

김영하님의 댓글

김영하

1. 찍기 전에 양해를 구하는 것 보다는, 우선 그 순간을 담고나서 허락을 받는 편이 낫더군요.(사진을 위해서...)
그래서 저는 사진작업을 할 때, 사진가 명함을 가지고 다녀서 피사체로 하여금 최대한 안심하도록 했는데, 상당히 효과가 있었습니다.
저의 사진찍는 행위가 가벼운 것이거나, 부당한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름 진지하고 건전한 것임을 알게 하는 것이 찍는 사람의 예의라고 생각했거든요.
말로 설명하는 것도 좋지만, 한 장의 명함이 많은 것들을 쉽게 말해주어, 필요할 때마다 즐겨 사용하곤 했습니다.
아무튼 유인환님의 고민은 사진을 찍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2. 예전에 군산의 달동네 주민들을 찍는 작업을 했었는데, 28미리 렌즈로 최대한 근접하여 촬영한 사진들이었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위해 많은 시간의 대화와 교감을 나누려고 진지하게 노력했고, 순발력있게 노파인더로 몰래 담은 사진들과는 또다른 느낌을 주는 결과물들이 있었습니다. 사실 망원렌즈로 멀리서 '결정적 순간'을 훔치는 사진이 싫어서 반대로 그러한 작업을 했는데, 좋은 공부가 되었지요.
전시를 목적으로 6개월 정도 작업을 한 곳인데, 지금도 각 집안 구석구석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어디가 아파서 어느 병원에 다녔고, 자녀가 서울 어느 직장에 다니고, 텃밭에는 무엇무엇을 가꾸고 있었는지가 모두 선명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나중에는 전시의 목적을 정할 수 없어서 전시를 포기했습니다.
처음 시작은 전시 자체가 목적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 전시를 통해서 무엇을 보여주려고 한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더군요.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의미깊은 작업이었지만 모든 사진들을 이렇게 찍을 수는 없었습니다.

3. 사진가의 주관적 감상으로 피사체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진으로 보여지는 것이 실제 피사체의 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일 때가 많이 있으니까요.
전시를 자주 하는 편인데, 감상자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것을 많이 경험하곤 합니다.
결국 진실은 감상자도, 사진가도, 심지어는 피사체도 아닌 저 너머에...

4. 어쩌다 기회가 되어, 유럽, 아시아, 미주, 아프리카에서 고루고루 사진을 찍어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북경에서 사진을 찍을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카메라에 대해 상당히 신경을 쓰더군요. 여러번 제지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그 때 제 모습이 중국인과 흡사해서, 같은 중국인으로 알고 그렇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그래도 관광객(혹은 외국인)같은 사진가들에게는 보다 관대한 듯 합니다.

5. 결론, 찍어도 후회, 못찍어도 후회라면, 이왕이면 찍어놓고 고민하는 것이 나을 듯 합니다.

김용준님의 댓글

김용준

제 경우 아직까지 사진 찍히는 분에 대한 낫가림과 용기가 없어 풍경위주의 사진을 찍게 됩니다.
다만 가까운 지인이 아닌 거리에서나 여행지에서의 인물 촬영을 하게 되면 인물의 뒷모습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간혹 앞모습이 나오는 경우엔 그 대상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거나 혹시 불쾌한 감정을 가질 만한 사진은 공개적인 겔러리에 포스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대상의 예상 행동을 기다리며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다 그나마 조금 나은 순간의 모습까지도 기회를 잃어 버려 안타까워 하는 것도 부지기수 입니다.

위 김영하회원님께서 말씀 하시는 " 찍어도 후회, 못찍어도 후회라면, 이왕이면 찍어놓고 고민하는 것이 나을 듯...."한데도 먼저 찍어 놓치 못하는 그 둔함을 질책 합니다.

신 정식님의 댓글

신 정식

저는 여러해 전에 무심코 길 건너는 아이가 너무 눈에 들어와 한장 찍었다가 엄청 곤란을 겪은 일이 있습니다. 변호사까지 대면해 보고 합의를 보아야 했던...
그 이후로는 사람을 사진에 담는 일에 경기가 나곤 합니다. 그래서 늘 풍경사진만 가득하지요.
그리곤 다시 용기를 내어 우리나라는 무서우니, 캄보디아에 갔다가 남들 따라 톤레삽 호수 인근 사람들을 잔뜩 담아 왔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결과물을 보며 인간적 풍모라기보다는 가난에 쩌들은 것 같은 표정이 더 다가와 가슴이 답답해지는 현상을 겪은 적도 있었습니다.
아직 사람을 담기에는 좀 더 수련이 필요한 것인지...
지금도 노력은 많이 합니다. 김영하님 말씀처럼 양해를 구하기도 하고 미소도 보내고... 하지만 아직도 어렵네요...
그래서인지 사람을 맛깔나게 담는 분들을 보면 무척이나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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