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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죽도록, 죽도록 사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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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양정훈
  • 작성일 : 16-02-06 21:53

본문

갤러리에 '탈대로 다 탄' 검은 사진 한 장 올리고 나니 갑자기 노래 한 곡이 생각난다. ^^
오래된 이태리 영화, <형사>의 주제곡, <죽도록 사랑해서>
https://youtu.be/j3r_nFK-NPE

"amore amore amore mio
voio resta co'te sinno' me moro
내 사랑, 내 사랑, 내 사랑
죽을 때까지 함께 하고 싶어요"​

대학 시절 문학잡지 <현대문학>을 구독했다. 그때 읽은 중편소설이 하나 있다.
제목과 작가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그 작품의 한 대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에서 빨치산 남자와 여자가 붙잡혔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어 묻힐 구덩이를 파야 했다.
구덩이 파기가 끝나자 총살 집행자가 마지막 소원을 물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사랑을 나누기를 원했다.
집행자는 허락했고, 그들은 구덩이 안에서 집행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한 의식으로서 성행위를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사랑의 행위, 슬픈 섹스, 하나됨. 죽음 앞의 두려움 없는 사랑.

그리고 총살되었다.

작가는 놀라운 이 대목을 비중 없이 스치듯 처리하고 지나갔다. ​​
나는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올려놓고
그것을 가볍게 훑고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작가는 급하게 다음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많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오래오래 멈춰 서 있었다.

죽음과 사랑,
이 둘을 잇고 있는 성. 두려움과 평화. ​생명과 원시. ​
죽음 마져도 잊게 만드는 사랑.
죽음 앞의 엄숙한 성충동.

생리학적으로 성충동 없는 성행위는 불가능하다.
죽음 앞에서 성충동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가?
그 성충동은 분명 죽음에 앞선 인간 본래의 선한 충동임에 틀림없다.
사랑은 죽음을 몰아내고, 죽도록 사랑하는 그들 사이에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은 삶과 죽음을 포괄한다.

성의 은밀성이 드러나는 이 대목에서 두 사람의 성은 아름답기조차 하다.
그것은 나체로 운동경기를 하는 고대 그리스인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성은 은밀하다. 은밀성이 드러나는 육체와 성은 추잡하다.
육신과 성은 언제 아름답고, 언제 추한가?

죽음을 초월하는 사랑은 언제나 아름답다.
성은 자연 그 자체이고, 성은 생명 아닌가?
생명은 사랑을 통하여 피어오르고, 사랑을 통하여 스러진다.
사랑이 매개하지 않는 성은 추잡하다.
동물조차도 섹스에 앞서 서로 사랑을 확인한다.

영화 를 다시 본다.
우디 앨런 감독은 헤밍웨이의 입을 빌려 통속적 사랑에 빠져있는 주인공에게
사랑과 죽음의 관계를 설명한다.
감독은 통속 드라마에 짬짬이 인문학적 통찰을 섞어 넣어
작품의 품격과 재미를 한껏 높이고 있다.

이건 분명 헤밍웨이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겠지만,
어쨌든 우디 앨런이 아니면 보여주기 어려운 탁월한 통찰이자 영화적 역량이다.
​헤밍웨이가 말하는 이 "사랑"에 진실한 성을 집어넣어도 앞뒤가 연결되지만,
종교적 사랑을 집어넣어도 무리 없이 연결된다.
사랑은 죽음을 잊게 만든다.

"Have you ever made love to a truely great woman?
진실로 위대한 여인과 사랑을 나누어본 적이 있소?

그 여인과 사랑을 나눌 때, 진실하고 아름다운 열정을 느낄 것이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될 것이오.

진실하고 참된 사랑은 죽음을 잠시 잊게 만든다고 나는 믿소.
모든 비겁은 사랑하지 않거나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데서 나오는 것이오.
그 둘은 사랑이 없다는 점에서 결국 같은 것이지만.
용감하고 진실한 사람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like some rhino hunters I know or Belmonte who is truely brave,​
it is because they love with sufficient passion to push death out of their minds
until it returns as it does to all men
and then you must make really good love again.

내가 아는 몇몇 코뿔소 사냥꾼이나 용감한 투우사였던 벨몬테같은 이는
넘치는 열정으로 사랑을 하며​ ​자신의 마음속에서 죽음을 몰아냈소.
하지만 사랑이 식으면 사람들 마음에 ​죽음의 두려움은 다시 찾아오고,
그러면 우리는 다시 또 진실한 사랑을 해야만 하는 거요."

헤밍웨이는 글쓰기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처럼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의 작품, 특히 그의 단편과 중편을 읽어보면 (<킬리만자로의 눈>이나, <노인과 바다>)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두려움 없이 글을 썼는지 알 수 있다.
그에게 글쓰기는 바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이었으니까.

"You'll never write well if you fear dying. Do you? ​​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좋은 글을 절대 쓸 수 없지. 그렇지 않소?"

헤밍웨이가 그렇듯, 또 로버트 카파 같은 이가 그렇듯
어떤 사람에겐 사진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 그 자체가 되거나
라클의 어느 열렬 회원처럼 사진이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You'll never see your finder well if you fear dying. Do you?
추천 0

댓글목록

김승현님의 댓글

김승현

죽도록 사랑하기에 어쩌구 저쩌구
심모가수의 노래가.생각납니다.
사랑에도 등급이있는지요?
사랑타령에도 등급이있는지?
참말로 흥미로운 이야기해주시네요^
- 오밤중에 양수리에서.

강웅천님의 댓글

강웅천

멋진 글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저도 최근에 더 랍스터를 인상깊게 보았는데, 표현력이 부족해서 혼자 가슴앓이로 대신했습니다.
죽음을 피해 탈출하지만 왠지 더 깊은 절망으로 향하는 듯 한 안타까움이 가득했던 영화였습니다.
마지막 부분의 황량한 들풀이 가득한 길을 눈을 잃은 여인을 이끌고 위태롭게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던 두 주인공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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