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찍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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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이태영
- 작성일 : 09-03-06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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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얼마전에는 목포에 갈일이 있어서 함박눈이 엄청나게 많이 내리던 날 국도를 따라 나주시를 지나쳐 서해안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그 산새가 너무나도 아름다운걸 알게 되었습니다. 눈 덮인 들판과 산속을 차를 타고 달리는데 정말 라디오에서 나오는 조용한 음악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그 풍경들. 새벽인데다가 인적도 없는 국도인지라 30분 이상을 차 한대 보지 못하고 길을 달릴때의 느낌은 꼭 제가 생 떽쥐페리 처럼 야간우편비행사라도 된 듯한 기분입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앞에 펼쳐지는데도 사진기를 집어들 생각을 하질 못합니다. 그저 넋을 놓고 한숨과 함께 감탄하기에 바쁠뿐이지요. 그러고보니 얼마전에는 소록도에 들르면서 일부러 고흥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느라 길도 험한 좁다란 1차선길로 삥 돌아간적이 있었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독한 기분에 차에서 내려 한참을 풍경을 감상했는데도 사진을 찍을 생각은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없는 감상까지 빨래를 짜내듯 짜내어가며 사진을 찍어 싸구려 감상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느라 밤새도록 현상을 하고 스캔을 하고 포토샵으로 이짓저짓을 하곤 했었는데 왜 이젠 그 많은 벅찬 감정에 휘말리면서도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않게 되는 걸까요?
자동차의 콘솔박스에는 언제라도 준비가 되어 있는 IIIg 와 summicron 5cm f2 렌즈가 사용기간이 지났는지도 알 수 없는 흑백필름을 머금은채로 놓아져있는데도 불구하고 콘솔박스를 열어본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 안에 사진기는 아직 그대로 있을까요?
사실 사진을 왜 찍습니까? 라는 질문을 하면 많은 분들이, 시간을 기록하기 위해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서 등등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대답이 '4월에 대한 영감을 논술하시오'라는 대학논술시험에 모든 수험생들이 '4월은 잔인한 달..' 이라는 문구를 꼭 인용하듯, 고민과 사유없이 획일적인 교육환경 속에서 교육받아온 그저 그런 사유의 한계를 보여주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사진을 찍는다는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가슴속 내면의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그 이유는 도대체 무얼까요?
..
ps. 아래 사진.. 몇년전에 찍었던 사진인데, 아마도 지금의 제가 그 자리에 다시 선다면, 왠지 '고놈 참 귀엽네..' 하며 아이가 뭐하는지 우두커니 바라만보다 돌아올 것만 같습니다.
댓글목록
강웅천님의 댓글

선배님의 글 오랫만에 만납니다.
달관의 경지가 느껴져서 한참 읽었습니다.
20년 전 한참 30KG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지리산과 덕유산을 왕복으로 종주하던 시절에
가끔 만나는 너무나 멋진 풍광들을 눈과 마음에만 담기에 아쉬워 사진을 시작했었는데,
지금은 가끔 눈과 마음에만 담고 싶어질때가 있습니다.
선배님의 글 읽다가 와 닿는 내용이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됩니다.
강인상님의 댓글

늘 셔터를 누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 사진들은 내 삶을 공유하는 이들의 기록이고,
훗날 누군가의 손에 들어갈 사진들이다."
많은 시간이 흐른다면,
저 또한 이태영 선배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게 될까요...^ ^
사진기를 늘 몸에 붙이고 다니다시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저 역시 눈과 마음에만 담아 두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셔터를 누르기까지의 과정은
누군가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의 시작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장재민님의 댓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한 20 년을 접고있다 라클에 가입하며 다시 잡은 셈입니다.
사진을 찍는다 함은 일기를 쓰며 살아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록을 하기위한 일기가 아니라,
삶의 단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한번 더 본다는 의미겠지요.
바삐 살아가면서도 그냥 보내지 않고 담아두려는 의욕과 부지런 함이겠지요.
사진이 직업이 아니기에 노력만 큼의 댓가를 바라지 않는 여유라 생각합니다.
이덕현님의 댓글

저는 무언가에 열심이다가도 투정부리 듯 그 놈들을 완전 무시나 기피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다시 그 놈들을 부여잡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지요..
예전 처럼 만족하던 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란 생각이 언뜻 들 때가 있지요..
하지만 그 때의 만족감은 지금 살펴보면 우스울 뿐인 수준이기 때문에... 해봐야 뭐.. 나중엔 또 우습겠지란 생각이 들어서 해보지도 못하고 정신과 숙달된 육체일지라도..무의식적과 의식적으로 그 때의 노력과 애증을 기피하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또 한가지는..
저는 과거에 느꼈던 즐거움.. 지금 같은 정도의 즐거움은 그 저 평범하게 다가올 뿐입니다. 무뎌진걸까욥... 사람들이 말하 듯이..저 또한 일단 중독이 되어버리면 처음보단 다음 번엔 좀 더 큰 자극이 필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양정훈님의 댓글

사진에 "사" 자도 모르는 토머스 머튼이라는 착한 영성 문필가가 계셨는데
이 분이 지인에게 코닥 카메라를 빌려
마차 수레바퀴며, 나무며, 풀이며, 길을 찍은 흑백사진이 있습니다.
사진에도 그 분의 착한 마음과 영성이 그대로 나타나 있더군요.
사진과 글은 기술과 기교가 아니라 마음의 투영인가 봅니다.
어떤 마음의 렌즈와 심성을 가진 사람이냐가 요체 아닐까 싶습니다만.
어찌보면, 사진을 찍는다는게 선한 욕심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름다움과 선함을 담아 간직하고 싶다는.
이테영님의 좋은 글과 사진, 반갑게 잘 보았습니다.
홍건영님의 댓글

제가 사물을 봐도 그 아름다움이나 가치 같은 것을 잘 알아내지 못하는 경우라고 생각하는데
제 사진이 제 눈을 꼭 닮았더군요
몇 년 동안 (열심히 찍지는 않았지만 ㅡ.ㅡ) 사진을 찍어봤는데 늘 형편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과 글은 기술과 기교가 아니라 마음의 투영이라는 양정훈 선생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자기가 느낀 것을 담아낼뿐인 것이 사진이다 이렇게 되나요?
신 정식님의 댓글

가끔은 사진 잘 찍고 현상하는 기술을 몸에 익히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다가도... 눈으로 보며 마음으로 읽는 것으로 족하다고 자위하곤 합니다.
애를 써서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점점 마음처럼 나타나지 않는 사진을 보며 마음에 담아두는 것으로 즐거워 하기도 하고요...
... 사진만 잘 찍으면 된다...??? 아니지요... 마음을 담아야 하겠지요...
저도 별별 생각을 하며 여전히 셔터 찬스를 어깨 넘어로 날립니다.
많은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김대용ak님의 댓글

주신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히 잘보았습니다.
저는 사진이란 아주 간단한 명제입니다.
매일 매일 선택을 해야하는 삶인지라 제가 선택한것이고
그러므로 행복을 느끼니까요.^^
김선근님의 댓글

이태영님, 글 잘 보았습니다.
저는 사진을 찍으면서도.....
셔터를 눌러는 순간, 그 피사체는 생명의 진정성을 잃어 버린다.
저의 생각이 생뚱맞은 것이겠죠 !
이해영님의 댓글

저는 시간을 사냥한다는 느낌으로 셔터를 누릅니다.
찍을 때마다 제가 보고 느끼는 시선을 잡아 가두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죠^^;;;
서환수님의 댓글

저도 그냥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입니다.
지나간 시간을 기록하는 것.
어렸을 적 기억 가운데 대부분은 사진을 보면서 계속 refresh했던 기억들이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아이한테도 어렸을 때의 기억을 많이 남겨줄 수 있도록 사진을 많이 찍어주려고 하는 편입니다.
하희상님의 댓글

내 주변을 스쳐가는 빛의 기록이라고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내 맘을 쏙 대변할 수 있는 이유를 계속 찾고 있습니다만.
황기원님의 댓글

모든 분들이 다 좋은 결론을 내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마음의 빈곤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대했을때 육감으로 느낍니다...
그것을 사진으로 아무리 표현하려해도 표현이 잘 안됩니다..
분명 내가 느낀 것과 사진을 통해 전해지는 것은 다릅니다..
아무리 채우려해도 채워지지않는 마음의 공허함...
분명 내가 보고 사진을 찍었고 내가 그곳에 분명있었는데...
그 느낌이 전부 전달이 안되는....
그래서 기변을 수시로 해보고 해도 그공허함은 채울수가 없더군요...
이미 우리에겐 정해진 시간있을 것이고 분명 사라지겠죠
무엇엔가 쫒기듯이.. 실오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사진속에 존재감을 부여하려해도 분명 내가 아닌 그런 느낌...
그것을 채우려고 아마도 사진을 찍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충기님의 댓글

흥미있는 글입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목적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것 같지만...
가족 사진이나 기념사진이 아닌 경우, 저 같은 경우는 욕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좋은 장면, 피사체 등등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는 것이지요.
굳이 내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강박증...
덕분에 좋은 곳에 놀러가도 제대로 즐기지를 못합니다.
추억을 남기려면 필름값보다 싼 그림엽서 몇장을 사가지고 오면 되는데...
나중의 즐거움을 위하여 당장의 즐거움은 희생시키는, 어찌보면 참 모순된...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저도 궁금하네요.
정영아님의 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찮아도 요즘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과 욕심이 새록새록 드는 중인데...^^
곽성해님의 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실 주변에선 제게 "사진을 왜 찍는데"보다 "사진을 찍어서 뭐하는데"라고
물어보시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답을 드릴 수가 없었죠)
답을 찾기가 참 어려운 질문이지만 한번은 생각해 보는 질문.. 오늘 제 자신에게 한번 더 해볼렵니다.
짧지만 몇 년 사진을 하면서 지금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은 하지말자라고
다짐을 해봅니다...
박유영님의 댓글

왜 사느냐고... 賢者와 哲人들이 말씀하신 내용을 새겨 보아도 그 때뿐... 시간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그냥 살아지는 것처럼...
의미같은 것... 나쁜 머리로 골몰해보았자 뭐 뾰죽한 뜻을 찾기 어려울 것 같으니... 그냥 찍고 싶어서
그러다 찍기 싫어지면 당연히 그만두겠지만... 무의식적으로 찍는 일도 그리 나쁜 일일 것 같지는 않
습니다.
사진으로 표현되는 별볼일 잆는 존재에게 소통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건 영광이겠지요.^^ 그러고
찍고 다닙니다. 많은 핀잔들 무시해가며...^^
김승현님의 댓글

얼어붙은 호수가에서 얼음조각 건져내기. 아쉽게도 연장을 사용하긴 하지만....그런 것이 있으니....
그만큼. 이렇게 생각해서 댓글을 달아야하는 글은 좋은 글일것같은.....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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