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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칭스(亞靑寺,아츄가르)....잠시 어긋난 인연 그러나 결국은 만나는 인연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손창익
  • 작성일 : 15-12-25 00:58

본문

얼마전 우리클럽 회원인 황성찬씨와 동티벳지역 야칭스 사진여행을 다녀온 후 지친몸을 이끌고 곧바로 다시 먼길을 떠나는 황성찬의 안전을 바라고, 또 미안한 맘을 쪼금이나마나 전하고자 끌적거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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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야칭스(亞靑寺,아청사)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2009년도 가을쯤, 나의 길벗 황(黃)이 성남훈작가의 연화지정(蓮花之井)을 소개하면서이다.

※ 야칭스(亞靑寺)는 티벳어로 "아츄가르(Achughar)" 라고 부르고 있다.

성남훈 작가의 사진작업을 위해 황이 야칭스로 안내역활을 하였다고 한다.

야칭스에서 수행중인 비구니 스님과 그들의 삶을 주제로한 성남훈 작가의 “연화지정(蓮花之井)” 사진전은 2008년 8월경에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지만, 나는 그 당시 모르고 있었으며 2009년 말에 황과 동티베트 여행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연화지정과 야칭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쯤 명동에서 황과 같이 성남훈 작가를 만나 저녘을 하면서 작품에 대하여 설명도 듣고, 포스트를 얻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듬해인 2010년부터 황이 1년에 2~3번씩 야칭스로 여행을 떠날 때 동행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직장내에서 업무로 바쁘고 다른 여건도 좋지 않아서 휴가를 낼 수 없었다.

여름 휴가철에는 다른 여행자들의 코스를 고려하다 보니 여정이 운남, 감숙성, 북티벳 등으로 정해지면서 동티벳은 누락되었고, 겨울철에는 야칭스를 가는 여행팀이 있었으나 내가 휴가를 내기가 어려웠다. 이렇게 야칭스는 잡힐 듯 말 듯 하면서 나는 애만 태워왔었다.

이렇게 차일 피일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야칭스 여행을 얘기한지 6년이 지난 2015년 11월까지 야칭스와 나의 인연은 자꾸만 어긋나고 있었다.

그러던 2015년 12월초 어느날, 야칭스 여행을 마치고 방금 귀국한 황(黃)을 만나서 서소문동 어느 커피숍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나는 “눈내리는 야칭스”를 보고 싶다고 야칭스를 가자고 졸라댔다.

실수로 침낭을 가져가지 못해 야칭스에서 추위와 고산증으로 죽을 고생을 하고 이제 막 돌아온 황은 난색을 표하며 내년에 야칭스 여행 기회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야칭스를 가더라도 눈을 본다고 장담하기 어려우며, 많은 여행자들이 겨울철에 야칭스를 다녀갔지만 눈내린 야칭스를 본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나를 만류했다.

나 또한 약 한 달전부터 위장속이 좋지않아 건강검진시 처음으로 위내시경 검사를 받는 등 병원을 전전하고 있던터라 혹시 모를 장애가 우려되어다음 기회를 기약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려 했다.

그러나 한번 불붙은 야칭스 여행에 대한 뜨거운 불씨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내 머릿속을 배회하였다.

더구나 한국에 귀국하면 며칠쉬다 곧바로 중국으로 떠나던 황(黃)이 이번에는 사진작업 준비 등으로 서울에 계속 머물고 있어 자주 볼 수 있었고, ​황을 볼때마다 야칭스 여행 이야기가 불쑥 불쑥 튀어나왔다.

다른 1명이 더 합세하여 동티벳으로 여행을 주장하였지만 야칭스는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나 혼자만 안달이 나서 계속 야칭스로로 떠날 것을 종용하기는 하였으나,방금 야칭스에서 돌아온 황(黃)은 야칭스로 갈 마음이 없었으며 내가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야칭스 여행은 나의 이기적이고 편협적인 주장에 불과했고 실행가능성도 없었다. 그렇게 야칭스 여행은 포기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운명은 간혹 예기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때로는 감정은 이성을 누르는 법.....이제까지 계속 비켜나간 야칭스여행을 이번에는 꼭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열망이 결국은 감정이 이성을 짓누르게 되었고, 말도 되지도 않는 억지소리를 해가며 야칭스 여행을 계속 황에게 보채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내가 이렇게 이성을 잃고 감정을 앞세워 억지소리를 해본건 처음인 것 같다.

여기서 말도 되지 않는 억지소리는 ..... “나와 같이 가면, 야칭스에는 꼭 눈이 올 것이다.”는 근거없는 억지소리였다.

며칠 동안 황을 달달볶아댄 끝에 결국 “야칭스로 떠나겠다”는 항복을 받아내었고, 곧바로 비자,항공권 등 여행수속을 마쳤다. 딴 마음 못 먹게.....

여행코스는 길을 떠나기전날까지 지도를 보고 논의를 하면서 수정, 수정하여 임시로 확정하고, 현지에 도착하여 상황에 따라 일부조정하기로 하였다.

큰 지점을 잡아놓고 세부적인 이동경로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경해가는 것이 이제까지 해오던 여행 방식이었다.

인천 ~ 스촨성 청두 ~ 신도교 ~ 깐쯔 ~ 야칭스 ~ 깐쯔 ~ 단빠 ~ 청두 ~ 인천

이번 여행은 다른 때 여행보다 조금 다르게, 사진촬영에 욕심내지 말고 마음으로 느끼고, 잠시지만 다른 곳의 다른 삶을 체험하고, 음식도 직접 해먹으면서 자유로운 여행을 컨셉으로 도전해 보리라 마음 먹었다.(물론 쉽지는 않을 듯...)

청두(省都)는 위도가 제주도와 비슷하여 초겨울임에도 날씨가 포근하였다. 그러나 청두를 벗어나서 신두차우(新都桥,신도교)를 지날 때 쯤 추위가 몸을 감싸더니 깐쯔(甘孜)에 도착하니 추위뿐 아니라, 고산으로 인한 두통의 기운마저 머리끝에서 조금씩 느켜지고 산소의 농도가 줄어들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 일찍 깐쯔시내를 벗어나 외곽으로 달려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조심 달리다 보면 안개속에 가려진 높은 설산인 줘다라산(卓達拉雪山)의 고개(해발 약4,700m)를 넘어서게 되고, 실낱같은 산길을 끙끙거리며 넘어 가는 덤프차량들을 뒤로 하고 달려 나가다 보면 반갑지 않은 추위와 고산증이 찾아든다.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을 참고 또 참다보니 어느새 야칭스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깐쯔에서 개략 4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예전에는 비포장이 많아 5~7시간 걸렸다고들 하는데 지금은 포장이 많이 되어서 편리졌다고 할 수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여름에 다녀온 라다크여행, 커커시리여행보다 훨씬 쉬운 여정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몇 시간 뒤에 겪을 고생은 상상하지도 못하고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입구에서 바라본 야칭스는 고요,위엄, 험지,행복,경외심,불도량 등 여러 느낌이 복합되어 내 맘속으로 파고 들었었다. 인터넷상 사진으로 본 모습도 일부 있었지만, 현지에서 야칭스를 눈으로 직접 본 느낌은 “경외심에 둘러 쌓인 꿈속마을을 보는 기분”이었으며 그 자체가 진한 감동이었다.


미끄러운 험한 산을 넘어오면서 추위와 고산에 시달리고, 무거운 카메라가방을 메고 야칭스 언덕을 오르락 내리락 하느라 많은 힘을 소비하게 되었고, 그기에다 사납게 생긴 티벳개들을 피해다니랴, 사람을 보고 뿔로 공격하는 염소도 피해다니랴, 비구니마을 근처로 접근하지 말라는 고참 비구니승들의 눈길를 피해 사진을 찍으랴....

길고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니 저녘 무렵에는 더 이상 걸어다닐 기운도 없어지고, 두통은 점차 심해지고,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손마디도 시러웠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방전(妨電) 상태”가 되어버렸다.

숙소에 들어오자 마자 하루 전부터 고산증으로 녹초가 되어 있던 길벗 1명(P씨)은 옷을 두껍게 입은채 그대로 침낭속으로 뻗어버렸고 나는 버너에 불을 붙여 냄비를 올리고 황과 같이 배낭을 뒤져 떡국과 만두, 김치,대파 등를 찾아내어 냄비속으로 골구루 넣고 물을 더 부어 떡만두국을 끓였다.

얼마나 춥고, 배가 고팠던지 순식간에 떡만두국 2그릇을 먹었다. 황은 4그릇 정도 먹은 듯.....

밥숫가락을 놓자말자 졸음이 밀려와서 바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였다.

백열등 하나 달랑 매달린 낡은 콘크리트 숙소에서 보낸 첫날밤은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군대에서 매복훈련 할 때 사용하는 두꺼운 침낭을 차가운 침대위에 먼저 깔았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평생 처음인 레깅스를 입고 그 위에 두꺼운 겨울용 등산바지를 입어서 하체를 먼저 무장하고, 겨울용 등산셔츠 위에 입은 두꺼운 거위털 파커, 눈만 빼고 다 가려주는 겨울용 모자를 쓰서 상체를 무장한 다음, 마지막으로 두꺼운 장갑을 끼고서 침낭에 들어갔다.

그리고 지퍼를 채우고, 침낭위로 두꺼운 이불을 당겨 덮었다.

방문과 콘크리트벽, 창틀 그리고 천장과 바닦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에 나도 모르게 이빨들이 서로 부딪히기 시작하고, 급하게 퍼먹었던 떡만두국이 소화되지 못하고 위속에서 가스를 분출하면서 심한 위장경련을 일으켰다.

잠이 들 듯 말 듯 비몽사몽일때...현지인 말을 쓰는 사람이 방문을 여는 바람에 잠이 깨어 억지로 머리를 치켜드니...놀라서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그리고는 나는 다시 눈을 감았으나 두통과 위경이 더 심해져 다시 잠을 설쳤다.

밤새 개들이 짖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으며 붉은 백열등에서조차 한기가 느켜지는 밤이었다.

얼마나 잤을까...악몽에 시달리는 가운데 황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실눈을 뜨보니 화장실에 다녀오라 온몸에 눈을 맞은 것 같았다. 침대에 비스듬이 앉아 나를 발견하더니 눈이 엄청 온다고 말했다.

나는 매스꺼움을 참지 못해 황에게 등을 두드려 달라고 부탁했다. 곰발바닦 같은 큰손등으로 서너번 두드리니까 등골이 으쓰러지는 것처럼 아픔이느켜지며. 입으로는 계속 트름이 올라오고 위장속은 난리였으며 창자는 끊어지듯 아파왔다. 황은 나보고 억지로라도 오바이트(吐, throw up) 하라고 권하였다.

나는 참으려고 했지만 이미 위장속에서 뭔가 위로 솟구쳐 오르고 있음을 느끼고서는 침낭에서 빠져나와서 급하게 마당으로 달려갔다. 세차게 날리는 눈보라가 온몸을 휘감으며 찬 기운이 팬티속까지 곧바로 쑤~욱 들어왔다.

건물구석 어슥한 곳에 머리를 박고 몇 시간 전에 먹은 떡만두국을 모두 토해내는 고통은 정말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

머리를 땅바닥에 닿을 것처럼 숙이고 조금씩 토해내고 있는데 갑자기 온몸에 범상치 않는 소름이 화~왁 일어난다.

머리를 돌려보니 범눈알처럼 번쩍거리는 눈알을 가진 티벳개가 흰 이빨을 보이며 내 머리 옆에 떡 버티고 서있었으며, 혀를 벌름거리며 내가 토해낸 음식물 찌꺼기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소름이 확 돋고 간담이 서늘해졌으며 본능적으로 뒷걸음 쳤고, 사나워 보이는 이 티벳개는 내가 토해낸 찌꺼기를 차지하여 깨끗이 청소해 주었다.
(나는 수년전 인도여행에서 개에게 물려서 광견병 예방을 위해 서울에서 병원을 다닌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무서운 개를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서 마른 수건을 찾아 점버와 바지에 뭍은 눈덩어리를 완전히 닦아내고, 침낭속으로 다시 들어갈 준비를 했다. 조금 전에 들어온 황은 벌써 침낭속에서 크게 코를 골고 있었고, 일치감시 뻗어 버린 길벗 1명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기척조차도 없다.

천장에 1개 달랑 붙은 백열등은 힘이 없는지, 전기가 부족한지 밝은 빛을 내지도 못하고 희미한 빛을 겨우 뿜어댄다.백열등에서는 여전히 한기가 뿜어져나오는 것 같았다.

속이 매스꺼워 냉수 한 컵을 들이키니 이빨이 빠질 듯 시리고, 창자 깊은 곳까지 차가운 기운이 밀려든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겨우 12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아침이 올 때 까지 8시간을 어찌 참아낼까 막막하였지만 어쩔 도리가 없지 않는가?

다시 침낭속으로 들어간 다음 이불을 당겨 덮고 두통과 위장경련으로 밤새 잠을 자다 깨다 반복하면서 설쳐대다보니 어느새 창가에 희미한 빛이들며 아침이 밝아 왔다.

고산지대인 라다크 판공쵸에서도, 커커시리 오도량에서도 밤새 잠을 설쳐대었지만 어금니 깨물고 그럭저럭 견딜만 했다. 그러나 겨울철 야칭에서의 숙박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황도,길벗 1명도 모두 너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침일찍 언덕에 올라서서 눈내린 야칭스를 바라보면서 감탄을 자아내었다. 해가 뜨오를 즈음 비구니마을에는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야룽강(雅礱江)에는 물안개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는 야칭스의 전경은 너무도 아름답고 장엄하였다.

눈속으로 비치는 무지개빛 햇살, 그 사이로 흩날리는 작은 눈보라, 비구니촌을 감싸고 흐르는 야룽강에서 뿜어내는 물안개, 설원위에 뼐쳐진
수백개의 조그마한 수행움집들.눈속에서 고요히 잠들어 있는 오색 타르쵸, 삼삼오오 힘차게 날아오르는 검은 까마귀떼들, 설원위를 어슬렁 걷고 있는 티벳개들....

이 전경을 보고 있노라니 밤새 끙끙거리고 고생했던 악몽들이 봄눈처럼 사르르 녹아 내렸다.

세상에는 절대 공짜는 없는 모양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우리가 밤새 치른 고통은 “눈내린 야칭스 모습”을 보기위해 우리가 당연히 치러야할 고행이었던 것 같다.

떠나기 싫어하는 황을 닥달하여 억지로 길잡이 시킨 것이 못내 미안했는데, “눈내린 야칭스”를 보고 즐거워 하는 황(黃)을 보니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는 언덕에 서서 한참동안 망연자실 저 멀리까지 굽어보고 있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무서운 티벳개가 내 무릎 옆에 우두커니 서서 꼼짝하지 않고,

내가 보고 있는 방향으로 자신도 굽어보고 있었다.

무섭게만 느껴지던 티벳개들은 멀리 가버리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과는 반대로 마치 나를 호위라도 하듯 졸졸 따라다닌다. 이 개들 때문에 사진을 찍는 것도, 경관을 감상하는 것도 불안, 불안하였지만 이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그 들의 눈을 바라보면 섬뜩하여 멀리 쫓으려는 동작을 쉼없이취하지만,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나의 동작 하나하나를 주시하며 내가 한걸음 움직이면 그들도 한 발자국을, 내가 두걸음을 움직이면 그들도 두 발자국 다가선다.

언덕에 서서 야칭스 설경을 감상하는 황과 우리들 사이로 파고들어와 조용하게 그리고 위엄있는 자태로 아래를 굽어보는 티벳개들의 모습을 보니 참으로 대견스럽기조차 하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선입견을 갖고 “너무 그 들을 무서운 상대로만 생각하고 배척하려고만 한 것은 아닐까?“라는 미안한 마음도 약간 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워 보이는 그들의 얼굴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손길을 그리워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티벳개들은 꼬리를 흔들지 않는다. 좀처럼 뛰지 않는다. 즐거운 표정도 짓지 않는다. 혀로 사람을 핥으려하지도 않는다. 관심을 끌려는 애교동작도 하지 않는다.

호랑이처럼 위엄있게 천천히 어설렁 걷는다. 사람에게 너무 가까이 오지도 않으며 딱 0.5~1m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그 거리를 유지하며 무뚝뚝하게 따라 온다. 사람을 앞서가지도 않는다.
사나운 이빨로 금방이라도 덤벼들 것 같지만 한편으론 사람을 경호하는 듯한 느낌도 약간 든다.

먹을 것을 던져줘도 다른 개들처럼 재빨리 뛰어가서 맛보지도 않는다. 그저 무뚝뚝하고 근엄한 자태로 일정간격을 유지하며 따라 다닌다. 멀리가라고 쫒는 시늉을 해도 눈도 깜박거리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대로 꾿꾿하게 따라 다닐 뿐이다.

시간이 갈수록 티벳개들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약해지고 조금씩 호감(好感)이 일어났다 .그 들의 무서운 얼굴, 눈동자 없는 섬찟한 눈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먹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관심과 情이라는 것을 조금씩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이 무서워 주변에 못 오도록 내 쫓는 동작을 계속 취하였지만, 언덕을 떠날즈음 지쳐서 그들을 받아들였다. 더 이상 그들을 내쫓으려 하지도 않고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들을 나의 친구로 받아들였다.

그들을 경계하는 내 마음의 벽을 거두어 들이고 있었다. 내가 비록 공격당하여 병원에 실려 갈지언정 그들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을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내가 너무 선입견에 사로잡혀 무서운 외모만 보고 그들을 배척한 것이 미안하다는 맘이 들었다.

이렇게 야칭스에서 나의 무지한 닫힌 마음은 조금씩 열린 마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야칭스(亞靑寺) 여행 !

참 힘들었지만, 참 즐거웠다.

여행을 떠날 때는 무엇보다도 양호한 몸 컨디션이 중요하다는 뼈아픈 교훈을 준 여행이었다.

야칭스여!!! 앞으로는 봄, 가을에 만나도록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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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울로 돌아왔으니 잠깐 휴식을 취하고, 시간 나는대로 짬짬이 필름현상 그리고 스캔받아 블로그에 옮기면서 여행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고 싶다.
추천 0

댓글목록

박인종님의 댓글

박인종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장재민님의 댓글

장재민

생생한 여행기 감사합니다.
제겐 참 어려운 일인데 용기에 갈채를 보냅니다.

김승현님의 댓글

김승현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대단합니다
축하드립니다.ㅎ

손창익님의 댓글

손창익

인용:
원 작성회원 : 박인종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네~선배님 감사합니다.
오늘 반도에서 만나뵙게 되야 반가웠습니다. 홈스테디에서 차한잔 못하고 헤어진게 아쉽구요~

다음에 충무로에서 뵐수 있기를 바랍니다.
즐거운 주말 저녁 되세요 ^^

유인걸님의 댓글

유인걸

황성찬군이 후투어할때 "라부랑스" 같이 갔었는데....후투어 없어지고 소식이 없어지드니 여전히 여행업을 하고 있군요...재미있는친구지요...

최재성님의 댓글

최재성

힘들었지만~~~
영원히 잊지 못할 여정,.
야칭스 설경 사진들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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