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과 이사



2009년 1월 1일. 이사를 했다. 3년 동안 5번째의 이사다. 매번 바쁜 일정 때문에 좆기 듯 장소를 옮겨야 했던 일종의 스트레스. 이번 이사 역시 간단한 가재도구만 먼저 옮긴 콩 볶듯 한 이사였다. 삶의 일정은 때로 마음이나 정신보다 앞서 달려간다. 하지만 오늘 나는 두 번이나 웃었다.

신년회 겸 이사 송별회로 몇 분이 모였다. 잡채와 삼계탕으로 잘 차린 상을 받았다.

야아, 이건 꼭 생일상 같은데요?

그리고 문득 오늘이 내 생일인 것을 알았다. 농담을 하다가 내 생일이 기억난 것이다. 이토록이나 정신없이 살고 있다니. 나는 스스로가 대견하다. 나는 책임을 져야할 일이 있고, 실제로 제법 충실하게 그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밥을 먹다말고 생일이라는 것이 생각났고, 다들 당황하며 건네는 축하 인사를 들었다. 사회인으로서의 나는 제대로 살고 있다.

야,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밥 먹다 생일이 생각나다니.
그러게요.
당신도 몰랐어?
네, 요즘 이사 때문에 신경쓰다보니.
호오, 이제 나도 당신 생일 한번 잊어버릴 권리가 있어.
그건 안돼요.
왜?
작년에 당신 내 생일 챙겼어요?
어... 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차, 나도 아내의 생일을 까먹고 말았구나.

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했어?
당신이 너무 바쁘고 피곤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랬군. 미안해.
작년에 무슨 기념일이라고 간단하게 상을 차린 날 있었죠?
그랬지.
사실은 그게 내 생일 상이었어요. 당신에게 섭섭하긴 했어도, 우리 둘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하시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요? 하지만 미안해요. 이번에는 정말 깜박했어요.

나는 말없이 아내의 손을 잡았다. 나라고 무슨 말을 하겠는가?



오후에 간단한 짐을 옳기며 나는 또 웃었다. 언제나 희망. 나는 이사를 할 때마다 새로운 희망을 지니곤 한다. 어쩌면 그렇게 한 결 같이 희망일까? 어째서 단 한 번도 희망을 품지 않은 적이 없을까? 현실 속에서 이사란 이토록이나 힘든 일인데도, 나는 언제나 새로운 희망 한 가닥을 믿고 의지하고 설계한다. 나는 자신의 낙천주의에 그만 기가 막혀 버린 것이다.

때마침 기다렸다는 닥쳐온 한파. 온기 없는 새집. 실내 온도는 6도, 싸늘한 거실에 동동거리며 컴퓨터를 설치한다. 종이컵에 맥주 한잔을 따라 마시며 애써 추위를 잊으려한다. 밤이 되자 거실은 간신히 10도를 넘어 데워진다. 고층 건물의 야경은 생각지 못한 행운이다. 나는 멀리 보이는 다리 위를 동그란 불빛이 되어 소리 없이 지나는 자동차를 바라본다. 곧 익숙해지겠지.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나니 몸에 든 한기도 빠져나가고 피로도 한결 누그러든다. 내일 부터는 다시 바쁜 일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건 다행이다. 아침에 문을 열고 집을 나서면 저녁에 녹초가 될 때까지 다른 여유는 없다. 그 힘든 일상은 나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나는 이제 담장 밖의 삶을 살지 않는다. 나는 계획하고 실행하고 느리지만 조금씩 발전한다. 어쩌면 나는 지금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언제 잠든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마치 얼음판에 미끄러진 것처럼 까무룩 잠으로 굴러 떨어 지고 말았다. 그래도 나는 알고 있다. 내일은 태양이 힘차게 대지를 박차고 떠오를 것이다.


Mars No.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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