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잦은질문모음
  • TOP50
  • 최신글 모음
  • 검색

Forum

HOME  >  Forum

Community

Growing Up.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장지나c
  • 작성일 : 08-11-22 08:45

본문

* Daddy's Little Girl.

어렸을 때부터 아빤 내게 유난히 야단을 많이 치셨다. 대부분은 합당한 이유가 있었지만 때론 내 입장에선 확실하게 억울하기도 한 것이었고, 그런 일들이 생길 때마다 그를 원망했다. 사춘기가 되었을 땐 될 수 있는대로 마주치지 않는게 상책이란 결론을 내렸고 서로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보내는 날이 허다했다. 난 언제든 내 친부모가 나타나 '얘는 어디어디서 잃어버린 내 딸이오!'하고 우리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날 데려가 주길 바랬으나 자매 중, 가장 그를 닮은 모습과 고집스런 성격은 나의 소망이 있을 수 없는 일이란걸 느끼게 해주었다.

큰언니가 연애 한번 못해보고 아빠가 정해준 지금의 형부와 첫선에 낙찰보고 결혼을 했을 때, 다음 차례는 나란 걸 느꼈다. 집안 일에는 실수투성이에 공부밖에 할 줄 모르는 작은 언니는 제껴놓은 존재였으니.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간섭하는 집에서, 아빠의 그늘 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도망밖에 없다고 맘을 먹었다. 마침 사귀던 사람도 외국에 있었으니. 그렇게 유학을 결심했다. 입학허가서까지 받아놓고 통보하듯 말씀 드렸을 때, 예상은 했지만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었다. 이러나 저러나 니 인생인데 알아서 하라고. 단 도움은 기대하지 말라고. 그러마 맘 먹었다.

사귀던 사람과 부모님이 만났을 때도 아빤 내 남친에게 모자란 인간 하나 맡기는 듯 미안해 하셨다. 그 모습에 새삼 속이 상했었다. 나, 있는대로의 나 자신과 그가 원하는 딸의 모습엔 언제나 태평양만큼 넓고도 깊은 차이가 있다 생각했었고 결국 난 언제나 그를 실망시키는 딸이었다. 그래서 이젠 그렇게 날 챙피해하는 아빠를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날 안보면 아빠도 속편하리라 생각하면서. 그런 결론에 또 막막해 했다.

떠나기 전날, 그는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었다. 내가 방으로 가면 마루로 나오시고, 내가 마루로 나가면 그는 안방문을 딱 닫고 밖으로 나오시지 않으셨다. 내 앞에서 닫긴 문을 한참 바라 봤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의 옆에 앉을 수 없었다. 암만 내가 못마땅해도 너무하다 생각했었다. 지금 떠나면 몇년 동안 못볼지도 모르는데, 내가 그렇게 미운 자식인가 슬퍼졌었다. 왜 그와 난 이럴 때조차 가까와질 수 없나 맘 아팠다. 그날 우린 서로가 숨바꼭질 하듯 이 방에서 저방으로 돌아다녔다. 밤이 되었을 때, 아빠.하고 부르는 날 쳐다보지도 않고는 '지나 너 어릴 적에...'하시더니 말꼬리를 흐렸다. 그리곤 막내 동생방으로 쓱 들어가셨고 잠시 뒤, 결국 그는 건강하라던가... 공부 열심히 하라던가... 그런 말 한마디 없이 현관으로 가시더니 '나 간다'하고 주차장으로 뛰어 내려가셨다. 그뒤를 쫓아 내려가며 '아빠- 이러구 가심 어떻해요-'하고 동네 챙피한 줄도 모르고 고래고래 소릴 지르며 불러대는 날 한번 뒤돌아 보더니 도망치듯 차를 몰고 한밤중에 지방공사 현장으로 떠나셨었다. 한참 뛰어가도 멈추지 않는 자동차 뒤꽁무니를 보면서 결국 길 한가운데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공항에서 울듯한 표정으로 서있는 큰언니, 그녀보다 더 빨간 코를 했던 형부, 좋아죽는 남친, 아무 걱정 없어뵈는 엄마. 이들의 표정차이를 보면서 다시 아빠를 생각했었다. 아빠는 대체 무슨 말을 하려다 만 것이었을까. 어렸을 때부터 말 안듣더니 고생 좀 실컷해보라고? 절대 힘들단 말하지 말라고? 어쩜 그렇게 따라가도 차를 세우지 않을 수 있을까? 식구들을 보내고 나서 대기실에 앉아 있으면서 계속 공중전화기를 바라보며 동전을 만지작 거렸다. 걸까 말까... 받고선 너랑 할 말 없다고 그냥 끊으면 어떻하지? 그래도 난 아빠한테 할 말이 있는데...

따르릉. '네, 장상뭅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다시 '네, 장상뭅니다. 누구십니까?' 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렸고 그제서야 '아빠... 세째딸... 여기 공항...'하고 대답을 했다. 그런 내 말을 듣더니 그도 아무말 없었다. 동전만 짤끄닥 거리며 떨어지는 소릴 낼 뿐이었다. '아빠.. 너무해요. 어떻게 그러고 가실 수 있어요...' 원망섞인 내 목소리는 어느새 훌쩍이기 시작했었다. 그러자 그가 띄엄띄엄 말했다. '내가... 이렇게 울까봐... 너한테 그거 보이기 싫어서...'

무표정 그자체인 울아빠가 소리내서 울고 있었다. 부하직원들 다 보는 사무실에서. 그런데 이 못된 딸년은 그때서야 안심이 되었다. '아빠. 사람들 많을텐데 울면 어떻해요~ 차라리 나랑 둘이 있을 때 울지..' 하자 '버르장머리 없는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고 우린 다시 한참을 전화기만 들고 있었다. 라스트 콜이 들렸을 때 난 '잘 할께요'라고 말했고 그 역시 짧게 '잘해야지!'하고 말했을 뿐이었다. 결국 그가 전날 무슨 말을 하려했는지는 까먹고 묻지 못한 채 '다녀오겠습니다'하며 전화를 끊고 말았다.

비행기 안에서 책이라도 읽어야지 하며 가방을 열었다. 노란색 편지봉투 하나가 보였다. 막내동생의 편지였다. 사랑하는 내 언니.하며 시작된 동생의 편지는 우리가 다퉜던 일, 함께 울었던 일, 함께했던 여러 일들이 시간별로 유머러스한 내용으로 써있었다. 중간중간 온가족이 만화의 대화표시 동그라미 속에 그들이 하고픈 이야기를 넣어가며 끼어들기를 했고, 여섯장이나 되던 편지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끝부분에 울아빠 특유의 힘찬 글씨체가 보였다. 편지를 읽으면서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내 딸. 하고 그는 날 불러주었다. 그에게 있어 난, 태어나는 순간을 함께했던 첫딸이었고, 그가 날 안았을 때 첨으로 눈을 떠 그를 마주봤고, 달도 못채우고 태어난게 불안해 더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했다. 그가 자전거 타기를 가르쳐 줬을 때, 계속 넘어지면서도 붙잡지 못하게 했을 때 맘 아팠고 커가면서 다른 자매들과는 달리 혼자 모든걸 처리하는게 다른 사람이 아닌 그를 닮아서임을 알면서도 점점 더 서운해졌었다고 말했다. 공부도 더 잘 할 수있을 것 같은데 노력을 하지 않는게 못마땅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젠 내 인생에서 단 하나의 남자가 아빠가 아닌걸 알게 되었고 난 이미 성인이란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그에겐 난 언제나 어린 딸이라며 내가 그에게 썼던 첫 엽서를 함께 넣었다. 그 엽서엔 맞춤법 틀린 글씨로 아빠가 보고싶다, 몸건강히 빨리 집에 오길 바란다는 네살짜리 내가 있었다.


* Wishing & Hoping.

어른이 된다는 것, 자란다는 건 쉽지않다. 옛것에 더 맘을 주며 새로운 상황에 놀라곤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단순하게 나이를 먹어가는 것과 함께 가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떠나던 그날 밤에 우리는 보낼 것은 보내고, 새로운 것을 맞아야 할 시간이 되었단 걸 서로가 인정하고 느끼고 말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올 새로운 어느 날이든, 어떤 일들이 생기던 잊지말아야 할 건, 우리는 나이들어 가면서 서로를 미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모두가 성인이라 인정받는 나이지만 우린 계속 자라고 있고, 또 우린 잘 자란 어른이 되기 위해서 우리 자신을, 서로에 대한 감정을 용서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후로 내가 그의 마음을 잘 읽는 고분고분한 착한 딸이 되었냐면 그건 아니다. 여전히 우리는 틈만나면 서로를 고집장이라고 부르며,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자존심을 내세우며 서운해하고, 또 다시 모른척 화해하며 살고있다. 중요한건 그날 이후, 그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내게 그가 어떻게 보이는지 우린 조금쯤 더 이해하고 있다 생각한다.



// 아빠, 메롱~ 하고 아까 전활 걸었더니 철 좀 들라고 왁왁 소리치시다가 뜬금없이 넌 늙지마라. 하셨다. 아빠의 어린 딸이 나이 먹는게 보이면 싫듯, 나도 아빠가 늙는게 느껴지면 새삼 그가 원한 방향으로 효도한게 아무것도 없음이 느껴져 맘이 쓰리다. (2006년 압지 생신날 썼음)

// 손현님의 사진을 다시 보다가 예전에 썼던걸 퍼왔습니다.클릭!

// 첨부한 사진은 인터넷에서 작가의 이름도 없는 상태로 본 것이라 출처를 밝히고 싶어도 못 씁니다. 제목은 'Sarah in her Dad's hand'
추천 0

댓글목록

김기현님의 댓글

김기현

어쩌면 드러내지 않은 내 아음과 내 딸의 마음을 함께 펼쳐 보는것 같습니다.

아비의 엄격함은 사랑이 깊을 수록 더한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그것이 딸인 경우에는 더더욱...

험한 세상에서 끝까지 뒤를 돌봐줄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되면

딸을 곧고 바르고 강하게 키우고 싶더군요.

저도 딸이 보고 싶습니다.

.

장재민님의 댓글

장재민

제겐 장지나라는 이름의 딸이 있지요.
대학에 간다고 기숙사에( 멀지도 않은 강건너에 있지만)
내려다주고 잘해라 한마디하고 안아 주었습니다.
지나의 말이 감격하며 "You hug me first time in my life!"
정말 내가 그랬나? 마음은 항시 가까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야단친 일이 칭찬한 것 보다 더 많았고.
무관심하게 보인일이 야단 친 것보다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알고있습니다.
지나는 이 세상을 가장 현명하게 살아나갈 것이고,
가장 따뜻한 어른이 되어갈 것을 알고있습니다.

그려그려/전왕수님의 댓글

그려그려/전왕수

글 읽다가
눈물 콧물 다 흘렸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여서요
저도 10년전쯤 부모님 맘을 아프게 한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요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들하십시요^^

채지현님의 댓글

채지현

.............................................!

박경복님의 댓글

박경복

글을 읽으면서 아버님의 지극히 큰 사랑을 보았습니다.
미국에서 건강히 지내시고 전화 자주 하시는 것이, 아버님께 가장 큰 기쁨이실 것입니다.

성원기님의 댓글

성원기

좋은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표현 하는것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지나님과 아버님의 사랑이 제대로 느껴지는군요.

저의 세아이중, 막네가 세살된 딸아이 입니다.
요녀석을 붙들고 매일 하는 기도가 "천천히...아주 천천히 자라주기를...."
세살박이가 자라는 것도 아빠의 마음은 이리 안타까우니.....

좋은글,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이현주님의 댓글

이현주

콘 플레이크 먹으면서 글을 읽다가 목메이고 가슴이 메어 우유섞인 콘 플레이크를 넘기지 못할 뻔 했네요...
참 공감가는 글 입니다.
모든 아버지와 딸이 공감하는 혹은 공유하는 이야기일꺼예요...

그런데 어른이 된다는 것...말이죠.
그건 아버지와 딸을 넘어서, 그 사람과 나의 차이를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버지고 딸이여서 다 이해하고 다 사랑한다기 보다는,
그의 인생을 이해하고 그 라는 사람을 마음속에 하나의 인격체로 새로이 받아 들이는 것...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화적이고 전설적인 존재로서의 '아버지'또한 내 마음속에 소중하게 자리 잡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지나님의 글, 목 메이고 가슴 에이며... 감사히 읽었습니다...

강인상님의 댓글

강인상

부녀지간의 정이 물씬 풍기는 글 감사히 잘 보았습니다.

많은 생각을 해보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정태인님의 댓글

정태인

아름다운 이야기, 감사합니다. ^^

저는 제 아버지와 큰 아들 생각이 참 많이 납니다.
아버지께는 아들로서의 여러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고, 큰 아들에게는 아버지로서의 생각이 떠나질 않습니다.

참 부족한 아들, 아버지임에도 늘 사랑하려고 했던 두 사람에게 나는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묻게되는 또 한번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

장지나c님의 댓글

장지나c

김기현님 / 유학 오고나서 2년쯤 지났을 때 집이 쫄딱 망했어요. 그렇다해도 뭐.. 저나 작은언니. 우리의 유학중 학비나 생활은 부모님 도움없이 혼자 해결했던 거여서 이제 식구들 어떡하냐 걱정은 했지만 딱히 저희가 실제적인 영향을 받을 건 없었죠. 그러던 어느날 전화가 왔어요. 압지셨는데.. 목소리에 힘이 하나두 없으시더라구요. 느닷없이 '미안하다'란 말만 계속하시대요. 가만히 듣고 있었더니 그러셨어요. 너희가 힘들게 유학생활 하는 거 도와줄 수 있었는데 혼자 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그랬다구. 혼자 해결할 수 없을만큼 어려우면 손내밀겠지. 그때가 되면 잡아줘야지.. 생각하셨다구. 그런데 이제는 너희가 정말 어려워도 못 도와줄 거 같다고.. 다시 미안하단 말만 계속하시더니 흐느끼시더라구요.

그때가 세번째였어요. 압지 우시는 걸 소리라도 들은게. 큰언니 결혼할 때, 저 유학갈 때, 그리고 그 전화. 항상 쩌렁쩌렁 울리는 큰 목소리의 압지께서 그러시는거... 못 견디겠더라구요. 그래서 일부러 더 쉰소리 해서 철 좀 들라구 야단이라도 치시게 해야겠다 싶어서 작은언니랑 서로 쳐다보다가(맨날 싸우는데 그럴땐 맘이 잘 맞아요^^) 전화기 잡고 온갖 수다 다 떨었더니 압지도 기가 막히신지 '느넨 언제 철들래!'하시군 평상시처럼 밥 잘먹고, 몸 건강하고.. 그러군 끊으셨죠. 그날, 언니랑 저는 전화 끊구두 그 앞을 한동안 못 떠났어요.

느낌이 묘했죠. 실질적으로 금전적인 도움은 받지않았었지만 압지 말씀처럼 속으로 '정말 힘들 때'는 기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단 걸 그제서야 깨닫았으니까요. 그런데 이젠 그럴 수 없구나..하는 좀 허한 생각과 함께 '믿고 계셨구나'라는데 판단이 미치자 속이 뜨겁게 꽉 차오르는? 음.. 그런 느낌도 함께 들더라구요. 압지랑 엄니는 당신이 줄 수 없게된 금전적 도움에 대한 생각이 크셨겠지만, 저희 자매들은 몰랐던 혹은 새삼 느낀 '부모님의 믿음'이란 정신적인 것에 더 큰 힘을 얻었었답니다.

아마 따님도 그러실 거에요. 그치만 좀 더 일찍 그런 믿음을 서로가 보일 수 있었다면 더 좋은 기억이 늘어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재민오라버뉨 / ㅠ_ㅠ 따님이랑 저랑 이름이 똑 같으니까 꼭 울압지가 지나는 현명하게.. 따뜻한 어른이 되어... 그러시는 거 같아서 제가 눈물이 찔끔났지 뭐에요. 저처럼 앞이마가 톡 튀어나온 영~ 지나씨는 저보다 훨씬 일찍 알았으니까 더 현명하게, 따뜻하게 세상을 살아갈 것으로 저도 믿습니다. 저번에 산 비싼 부츠 신은 모습 언제 보여주세요. ㅋ

그려그려/전왕수님 / 저두 뭐... 생각은 안 그런데 맘이랑 다르게 팩팩 거리는건 여전해서요. 부모님껜 영원히 애물단지가 될 거 같아요. -_-;

지현씨 / 뭐요뭐요. 지현씨는 속도 안 썩이구 공부도 잘 했을 거면서. 푸핫^^

박경복님 / 그러게요. 전엔 전화하면 1분도 안되서 잘 사는 거 알았음 됐다. 끊어. 하시더니 이젠 며칠 안 하면 뭔일 났나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아직도 저희 몇시에 들어왔나 확인하시지 뭐에요!!! 좀 늦으면 왜이리 늦었냐구 난리. 그럼 저희 자매는 외치죠. '이러구두 우리가 연애하길 바라시냐고오~~ 엄마 아빤 연애할라믄 밤시간이 좋은 거 모르시냐고오~' 그럼 다시 두 분이 외치시죠. '느그가 연애하니라 늦나! 가시나들이랑 놀다가 밥이나 묵고 늦었겠지!(정답-_-; )'

성원기님 / 저희집은 딸만 다섯인데.. 압지가 자주 그러세요. 이렇게 다들 떨어져 살 줄 알았으면 딸을 열쯤은 낳는건데.. 그럼 엄니는 딸 다섯이 어디 작냐고 퉁방이시거든요. 압지두 아들타령을 한번쯤 하실 법도 한데 여즉 한번두 못봤어요. 압지는 딸이 더 좋대요. 손자보다 손녀를 더 이뻐하시더라구요. 형부도 그렇구. 아버지들에게 딸이란 그런 존잰 거 이제야 깨닫는 중이랍니다.

이현주님 / 끄덕. 공감해요. 나와 당신의 차이,를 인정하고 내 잣대를 당신에게 대지 않는 것. 하지만 어른이 된 나이인 지금 내 선택,이나 그에 따른 내 행동 책임, 그 무게가 점점 커져서 생활의 룰은 점점 더 단순해지는 거 같지 않아요? 그래선지 전 어릴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면 내 눈엔 피눈물 흐른다.는 말이 제 생활의 모토가 된 거 같더라구요.

인상님 / 음, 우리는 어찌됐건 불효자의 업을 타고 난 거 같더라구요. -_ㅜ

정태인님 / 좋게 읽어주셔서 제가 더 감사해요.

임규형님의 댓글

임규형

컴터 고장을 손보고서 천천히 읽어 봅니다.
마음 따듯하게 느껴지는 사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무척 씩씩하고 당찬 따님이셔서 아버님이 속으론 무척 뿌듯해 하실 거예요.
어쩜 네살 적 엽서 까지 보관하셨을까....

부모님께 엽서 한장 써 본적이 없고 받아본 적도 없다는 생각에 문득 소름이 돋습니다.
두 분 다 하늘에 계신 지금이라도 한번 써얄까 봅니다.

손현님의 댓글

손현

어느새 눈물이 주룩...
갑자기 저도 아부지 생각이 나네요.

유난히 자식들에게 엄격한 아버지였는데 남겨놓은 저의 사진첩은 5-6권이더군요...
어딜가도 자동카메라로 찰칵. 찰칵. 찰칵... 거의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는데.
중학교 땐가. 인화한 사진에 싸인펜으로 낙서를 한번 했는데 그날 밥을 안주시더군요.
속으로 뭐 대단한 사진이라고! 했는데... 경주 놀러간 가족사진이었습니다.
지금 나이를 먹고보니 그 사진이 아쉽네요. 이런.

삼천포로 잠시 빠졌는데... 글을 읽다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오히려 이럴 땐 무뚝뚝한 '밥 묵자'가 대화의 전부인 부산 가정이 좋은 듯 합니다.
서로 대화나 눈물로 확인하지 않아도... 대략의 이심전심이 되는 희한한 가족이죠.ㅋㅋ
오늘 오랜만에 파더께 전화나 한 통 드려야겠네요.

이훈태님의 댓글

이훈태

카메라 만지작 거리는 저를 보시다가 다른 곳을 보시고..
또, 제가 찍을 포즈를 취하면, '에~ 무슨 사진을 찍어~' 하시면서
꿋꿋한 저를 보시고 포즈를 잡으시는 아버지 모습.
그리고 생일카드와 크리스마스 카드는 꼭 주시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올 겨울에 더 많은 표현을 해야겠습니다.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감사합니다.

최황연님의 댓글

최황연

정말정말정말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준원vw님의 댓글

이준원vw

전 아직까지 아버지께 말썽만 피우고 있네요..^^;;
이휴... 언제 철이 들지 하핫..

강정태님의 댓글

강정태

지나C의 글을 오늘로 세번 읽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는 어머니 이야기였고, 참 흐뭇한 감정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세번 째는 오늘 이 글인데, 왜 내가 감정이 복받쳐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지나C의 글을 통해 지금 30을 향해 가는 과년한 딸을 둔 저를 보는 것 같아
울컥해져 한 참을 멍한 상태로 있다 마져 다 읽었습니다.
애비의 자식 사랑은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 깊이는 얼마나 깊은지 알 수가 없지요.
저도 울 아버지에게서 그 걸 느낀 것이 성년이 되고 훨씬 지나고 나서 였으니....
저도 울 딸에게 지나C의 아버지 처럼 해 왔습니다. 본인이 이해를 허든 말든....
이제 점점 늙어 갈수록 마음이 약해 집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 변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닫기

이메일무단수집거부

닫기
닫기
Forum
Gallery
Exhibition
Collection
회원목록
잦은질문모음
닫기

쪽지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