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카메라가 가져다 준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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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허은순
- 작성일 : 08-10-05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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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도 덩치려니와 엄청난 무게 때문이라는 것, 모두 아실 겁니다.
늘 가방은 크고 무겁고, 어깨 아프고.....
그런데, 라이카를 손에 넣으면서는 무게에서 해방되어 정말 아무 때나 가지고 다니는 것이 가능해졌어요. 게다가 몇 주 전 바르낙을 만나게 된 순간부터는 산책 갈 때도 주머니에 쏙! 조그만 핸드백 안에도 들어가니 그 어디든지 데리고 다닐 수 있게 됐지요. 그 결과, 정말 아무 때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산책을 나갈 때, 동네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길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되었지요.
마치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듯 말입니다.
제가 그동안 갤러리에 올린 길모퉁이 시리즈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의 아주 후미진 곳이었습니다.
동네 길모퉁이 사진 찍으러 갈 때면, 그 곳에 사시는 아줌마들이 먼저 말을 걸어오곤 하는 바람에 어느새 저도 으레 모르는 분들에게도 먼저 인사를 하게 되더군요.
‘이 집에서 26년을 살았어’ 에서부터 시작되는 아주머니들의 이야기는 그대로 그 길모퉁이에 흔적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이 동네에 그런 곳이 두 어 곳 있었는데, 그 가운데 그나마 집 여러 채 있었던 골목길이 며칠 전에 모두 헐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래 사진처럼요.
그렇게 빨리 헐려버릴지는 생각도 못했어요. 지난 해 이 동네에 이사 와서 좀 더 일찍 동네에 관심을 가지고 돌아다녀보지 않은 저의 무관심을 탓해봐야 늦은 일이었죠.
좀 더 많이 찍어두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눈 오는 날 꼭 찍고 싶었는데 말에요.
이제 남은 한 골목(아줌마, 참 푸짐하기도 하시지...찍은 곳)은 당분간 헐리지 않겠지만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그 길모퉁이의 모습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저 어렸을 때는 그런 골목에서 해가 지도록 숨바꼭질 하면서 자랐는데 말이죠.
이래서 사진을 기록이요, 역사라 하는가 봅니다.
전에 디카로 사진을 찍을 때는 마구 움직이는 역동적인 것들을 찍는 게 주된 일이었는데,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즐기게 되면서 부터는 오히려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들, 그것들이 품어온 흔적에 주목하게 되더군요. 나이먹어 체력 딸리니 움직이는 것들 쫓아다니기 힘에 부치는 까닭일까요...
오랜 세월을 끄덕 없이 견뎌온 낡은 카메라가 제게 나이 먹는 즐거움을 가르쳐 주는가 봅니다.
댓글목록
권기창님의 댓글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의 일부처럼 작업 하시는 님이 부럽네요.. 시간에 핑계라는 놈을 부쳐 게으런 저에 비하면 ..... 좋은 사진 잘보고 좋은글 동감합니다....
양나라님의 댓글

저도 항상 무거운 DSLR을 찍지도 안으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고다니다 바르낙을 사용하니
다시는 DSLR들고다닐 엄두가 안납니다.
또한, 바르낙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 같습니다.
선배님 많은 기록남기시기 바랍니다...
강인상님의 댓글

저는 늘 M3을 휴대하고 다닙니다.
저의 사진 모토는 "생활의 기록"입니다.
정물의 경우도 좋고, 주변의 인물도 좋고 뭐든 다 좋습니다.
피사체에 따라
정물의 경우는 어느정도 정적일 수 있지만,
인물의 행동과 표정은 그 "순간"이 지나면 좀처럼 오기 힘듭니다.
그래서 항상 휴대를 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혹, 사진기가 곁에 없을 때 그 순간이 지난다면 얼마나 아쉬운지요. ^ ^
제가 사진기를 잡고 있는한 담고 싶은 삶의 기록을 꾸준히 하고 싶습니다.
먼 훗날,
사진첩을 들추며 바라보기 원하는 것은 사진을 찍는 지금 "이 순간"입니다.
허은순 선배님,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조윤성01님의 댓글

저도 요즘은 바르낙에 빠져 살고 있읍니다.특히 휴대성엔 저도 공감하는 바 입니다
집에 있는 캐논DSLR은 오히려 손이 안가네요
강정태님의 댓글

다루기 까다로운 바르낙을
이제는 능숙하게 다루는 것 같아 놀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좋은 사진을 기대합니다.
손현님의 댓글

바르낙 급 땡기는군요.
바르낙에 리지드 렌즈를 쓸 수 있나요?
기추만이 정녕 살 길인가요.
이 늦은 밤에 심히 갈등이 생기네요.
심성보님의 댓글

공감이 가는 말씀이네요
저도 바르낙 들고 재건축 현장을 찍다
현장사무실에 끌려가서 봉변당한 기억이.....
그 사람들 뒤가 구린 모양입디다
현장마다 다 그렇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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