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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동의 하루...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정진석
  • 작성일 : 03-05-19 01:28

본문

시간나면 다녀올것이란 다짐은 부질없이 오랫동안 가보지못한 망월국립묘지의 봄...
그들의 넋을 기리기위한 많은시민들사이에서 존경어린 추모와함께 스케치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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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진석님의 댓글

정진석

묘지입구가 비좁은탓에 극심한 정체를 이뤄 1km전방쯤부터 걸어가며 얘기를 나눈 아주머니...
아들이 저곳에 누워있다며 뜨거운 뙤약볕밑을 덤덤히 걸으시던 그녀의 표정은 묘지에 다다를수록 상기되었습니다. 오랜 슬픔의 반복으로 무덤덤해졌다하시지만
아들에게 가까이 다가설수록 점차 상기되는 얼굴을 느꼈습니다.
차마 더이상 그녀의 얼굴을 볼수없을것같아 입구에서 멈춰섰지만 그녀의 가녀린뒷모습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정진석님의 댓글

정진석

국립묘지지정이전(2002)에는 언론과 극심한 이데올로기의 역겨움에 소외당했던 그들의 영혼...
이제 어느덧 경상도지방에서도 견학을 올만큼 민주화를 위한 그들의 값진 희생이
인정받는것같아 다행인한편으로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진석님의 댓글

정진석

일반인들이 묘지앞에서 길게 줄을 서서 헌화하는 와중에
하나같이 검은색 양복을 입고 거만하게 나타난 정치인들...
마지막 헌화를 하시던 시민한분에게서 이런말씀이 들렸습니다.
"그자리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억울함을 외면하던 이들이 무슨 낮이 있다고..."
헌화대앞의 시민들을 모두 정리하며 자리를 비우게하는 그들을 보며 저도 같은 생각이였습니다.

참고로 제일 앞이 김민새입니다.

정진석님의 댓글

정진석

네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묘지를 바라보는 일반인과 조문객의 시선은
형언하기 힘든 숙연함이 공유됩니다.

정진석님의 댓글

정진석

죽어서 다시 태어나다...
같은 민족으로서 차마 입에담기힘들정도로 처참하게 죽어간이들이 대부분이라 그들의 억울함을 위로할만한 언급이 힘듭니다.

정진석님의 댓글

정진석

시민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러운 추모축제를 펼치는 도청앞에는
보여지는것 이외에 더많은것들이 보입니다.
민주화를 이뤄내기위한 그들의 값진희생은 흐르는물을 막지 못하듯 모든이의 가슴속에 정의라는 파동을 선물하였습니다.

정진석님의 댓글

정진석

시민행사중에도 자리에 가만히앉아 땅만 바라보던 그사람.
주변의 아주머니에게 들은것이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그자리를 지켰다고합니다.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왔지만 모두 슬픈사연뿐이였습니다.
우연히 뒤를돌아보는 그의눈빛속에담겨진 허무함은
오늘날 채 가시지않은 광주의 아픔을 말하는듯 안타까울 뿐이였습니다...

정진석님의 댓글

정진석

2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정열로 이룩한 값어치는 오히려 더욱 커갑니다.
저아이가 자라 엄마가되고 할머니가 되었을때 지금보다 더 낳은 여건속에 살아갈 것이지만 선열들의 희생과 참뜻은 계속 이어지리라 사려됩니다.
그들의 피와 살로 일궈낸 민주화의 정신은 이제 모든이들이 받은만큼 감싸주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All image by MP, 35mm Summilux, TX

김희광님의 댓글

김희광

하루 사이에 찍은 사진이라곤 믿겨지지

않을만큼 많은 메세지가 들어있는 사진들입니

다. 아마두 사진적인 면을 떠나서 그곳과

그곳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맘을 간직한채

카메라와 함께 다녀오신듯 합니다.

조효제님의 댓글

조효제

숙연해질뿐입니다. 고인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무슨 말이 필요있을까요?

한총련과 참배객의 대치가 참 어이없게 만들었는데, 소중한 이날의 의미를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그들은 알기나 할까요.

다시한번 숙연한 오후를 지냈던 것을, 그리고 혼자였지만 오후내내 5.18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정진석 님, 좋은 사진과 글을 잘 감상하였습니다.
수고 많으셨네요.

그럼 좋은 월요일 아침 맞으시기 바랍니다.

도웅회님의 댓글

도웅회

이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의 목숨일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을 던져가며 무엇에 대해 저항 하였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서도 가치 있는 인간의 모습 이기도 하겠지만
더우기 타인의 목숨을 위해, 타인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더더욱 숭고한 인간의 모습일 것이다.
결코 받아 들일 수 없는 것에 대한 저항에 대하여..
무언가를 하여야 겠다는 생각 이전에 무언가를 지켜 내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기록의 차원을 넘어선 함축적 진실의 목소리로 그려졌다.
이제, 모노톤으로 그려진 그 간접화법은 명쾌한 수사를 스스로 절제 하고 있지만,
값지고 소중한 것을 가슴에 품은 그 어떤 이들의 침묵의 모습속으로
우리들의 시선을 이끌고 있다.

타인을 위해 저항하다 그곳에 묻히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좋은 사진과 글, 감사드립니다.

한홍배님의 댓글

한홍배

좋은 글과 함께한 좋은 사진들...
잘 감상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권오중님의 댓글

권오중

토요일 밤에 뜰까 ... 가벼운 망설임은 일상에 젖은 삶의 무게에
가벼움으로 끝나고 말았는데 진석님 덕분에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네요, 그렇다고 망월동이나 광주에 그다지 무거움을
안고 살아온 저는 아니구요. 그저 편안하게 살아왔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들 키우면서 조금씩 더 의미가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KBS 일요스페셜에 나왔던 독일 다큐작가인 힌트피터의
영상을 보면서 저녁 밥상을 물리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싫어지더군요,
열심히 살아야겠죠.

홍건영님의 댓글

홍건영

당시 국민학생이던 저에겐 몇개의 단편적인 기억만이 남아있습니다

전남대 병원앞 로터리에서 시민군이 가득타고 행진하던 트럭과 버스의 바퀴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곧 터질 것 같던 기억...

그 트럭과 버스에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물, 빵, 과일을 한광주리씩 가져다 주시고 박수쳐주던 기억...

그 트럭에서 불려지던 "전두환은 물러나라 좋다 좋다"라는 노래...

길가에서 주은 탄피를 들고 신기해했던 기억... 어떤 아이들은 어디선가 주은 커다란 기관총 탄피를 들고 있었죠

진압군이 도청에 진입하기 전날밤 불안에 떤 시민군이 하늘에 쏴올리던 야광탄이 만들어낸 빨간 궤적의 기억...

유탄이 집에 뚫고 들어올까봐 5월달에 한겨울에 덮는 제일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엎드려 있던 공포의 기억...

큰길 전신주에서 우리집으로 들어오는 전깃줄이 총알에 끊어져 1주일 넘게 전기도 없이 어둠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기억들...


금은방이 즐비한 도청앞의 충장로길은 아무런 약탈도 방화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순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오동익님의 댓글

오동익

정진석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은가 봅니다.
외국인이 세상에 알린 다큐를 보고 우리의 현실을 훗날 아주 훗날 알게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진실 왜곡의 무서움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의 언론에서 당시 폭도로 보도된 그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요.
요즘은 약간 싫은 이야기만 들어도 흥분하는 세상인데 그렇게 억울하게 폭도로 몰린 그분들을 생각만해도 참으로 원통하기 짝이 없습니다.
어제 티브이에서 당시 최고 악날한 보도를 그때의 조선일보 사설을 꼽더군요.
'죽음을 무릅쓰고 광주를 진정시킨 계엄군의 노고를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대충 이렇다. 갑자기 지나가는 내용이라 정확한 표현은 하지 못했지만... 또 너무 어이가 없어서...
누가 정확한 내용을 알고 계시면 정정 부탁합니다. 아마 많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선일보 홈에 가서 내용을 검색하려하니 제목만 있고 본문이 안나오더군요. 그당시 언론인들은 다 알고 있었을텐데....어떠한 변명을 할지...
단 한 언론사만이라도 정확한 보도를 했더라면... 물론 그언론사야 작살이 났겠지만... 그래도 아마 살인마 손에 나라를 통째로 넘겨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한번 그분들의 명복을 빌며...

이정식님의 댓글

이정식

망각이란 때론 좋을때도 있지만 하지만.....
우린 모든것을 너무 빨리 망각 하고 사는거 같습니다....

자신명의 소유 제산은 통장에 30만원이 전부라고 그러더군요....
어떤 넘이 그러드라니깐요....
진짜예요....

신찬진님의 댓글

신찬진

1987년 5월, 그 6월 직선제 쟁취항쟁이 있기 한달전,
그 당시 제가 다니던 대학 강당에서 광주 항쟁과 관련된,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은 외국 기자들의 취재 영상을, 정리된 방송용 영상이 아닌 원래의 그 영상을 그대로 보며, 주먹을 부르르떨며 지켜 본 기억이 떠오릅니다. 500명이 겨우 들어가는 강당에 수도 셀수 없는 많은 청춘들이..여기저기서 흑흑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정말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분노, 억울함 등을 느끼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늘 되풀이되는 심장의 심한 두근거림과, 치솟아 오르는 분노와 억울함 때문에 혼자 방에 들어가 집사람 몰래 뭔가를 하곤 합니다.

사진가는 정녕코, 자신의 생각을, 느낌을, 셔터를 누름으로써 표출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낍니다. 그때 그 장소에 그가 있지 않았던들 ,그리고 그가 그의 사진들을 만인에게 공개하지 않았던들, 지금 내가 보고 느낄 수 있었겠는가.

때로는 감정적이고, 때로는 이성적인체 하는 것이 인간이겠지만,
나는 오늘 내 기억의 한부분을 일깨워준 그에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슴아픈 기억이지만 잊지 못할, 잊어서도 안되는 그 기억.....

정진석님께 감사드리며.....

최한가람님의 댓글

최한가람

어릴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외가집으로 피난을 갔다지만 제 기억속에는 남아 있는게 없습니다.
끼니를 위해 라면을 사두었고 그 라면을 언니네 식구들에게 남겨두고 삶을 위해 7살, 4살, 그리고 1살짜리 아이들을 업고 손을 꼭잡고 몇십킬로 미터를 걸어가야 했던......
그 아이중 하나가 커서 장년이 되었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당시 부대중 하나에 근무하고 있고 세월이 흘러서 모든게 밝혀지고 진실이 현실이된 이때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날의 아픔을 상기시키지 않기 위해 고향에 갈때도 군복을 벗고 갑니다.

강승철님의 댓글

강승철

첫번째사진...
희생자들의 원혼이 깃들린사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든사진이 다 주제가 명확하지만 첫번째사진에서 제눈이 떠나질
않는군요..

좋은이미지 감사합니다.

김근우님의 댓글

김근우

저는 광주출신이며 그당시 전 서울의 직장에 다니고 있었고, 저의 부무형제는 광주에 계셨지요... 총성이 난무하던 집을 뒤로하고..저희 가족들은 한 밤중에 광주를 탈출해서 논둑길 걸어서 송정리역까지오셔서 서울에는 아무일 없느냐고 전화를 하셨던 기억.. 그리고 서울에 계시다 한달만에 뒤돌아간 집에는 나올때 그대로 숫가락하나 건들이지 않았던...그만합시다... 너무 할말이 많아도 말 할게 없다는 진리를 새삼되새기게 하는군요.. 아래 링크에서 언론들의 오보(조선,중앙,동아...의 전두환 용비어천가)를 확인하십시오...

http://www.hanimapo.com/press25.html

그리고 5.18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으시면
http://www.518.org/ 방문하십시오 생생한 기록과 동영상들이 있읍니다..

유동민님의 댓글

유동민

여기도 자료를 잘 간직하고 있더군요.

김선근님의 댓글

김선근

일전에 망월동 일대를 비롯한 일반묘지 및 국립묘지의 영상관(?) 등을 보고 더 이상 할말을 잊어 버렸습니다.
국립묘지에 안장 되지 못한, 더 많은 억울한 넋들 앞에선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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