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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김명기
  • 작성일 : 08-09-05 10:16

본문

산골통신 IIX (희망과 좌절의 나날)



첫 번째 소식 - 농부의 제 땅 사랑

초가을이다. 여전히 늦여름과의 경계에서 얼음땡 놀이를 하고 있는 날씨지만, 아침저녁으로 산골 공기가 얼마나 뽀송뽀송한지 모른다. 가을은 분명히 가을이다.

초봄과 마찬가지로, 산골엔 농부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한적하던 산골은 야채나 과일, 나뭇잎보다 농부들의 옷차림으로 울긋불긋 단풍이 들었다. 농부의 손길이 스치는 초가을 산골 들판은 생기가 가득하다.

저기 저 밭 좀 봐라. 이제 겨우 싹이 났다. 우리 집 배추에 비하면 파이다.
아, 네.
우리 집 땅은 이 근동에서 최고라카이. 게다가 나는 농약도 안치고 순 유기농으로 안키우나? 그라이까, 우리 집 야채는 아삭아삭하재.
맞습니다.

나는 어른의 자랑을 들으며 맞장구를 친다. 공짜를 얻어먹는 주제에 그 정도 값어치는 해야지. 효도가 뭐 별건가? 그나저나 어른의 집과 밭 사랑은 유난하다. 말뚝 몇 개 경계를 쳤다고, 윗집 아랫집과 땅이 다를까? 다르다면 새벽부터 저녁까지 마치 원예를 하듯, 농작물을 정성스레 가꾸는 손질과 쇠똥과 말똥으로만 비료를 주는 까닭일 것이다.

자기 땅, 자기 고향, 자기 사는 고장에 대한 사랑이 결국 애향심과 애국심의 근본이다. 이런 사랑에 남들도 역시 자신과 같이 제 땅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 그 정도라면 충분할 것이다. 농부의 마음만 같으면 땅 투기도, 삐뚤어진 지역감정, 정치색 따위는 모두 사라질 텐데. 농부들이 가득한 들녘을 어슬렁거리며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안다. 이 세상에서는 불가능하다는 것.

오후엔 농부들이 모여 고기를 구웠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고기였다.

두 번째 소식 - 연목구어(緣木求魚)



내가 알던 P 양은 상당히 비대한 여자다. 그녀는 늘 문화적인 행사의 중심에 있기를 원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그 행사들을 주관하고 참가하고 참견한다. 물론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그녀의 의도를 눈치 챈 것은, 그녀가 그런 행사가 있을 때마다 늘 남자들을 데려 온다는 것이다. 만난 지 얼마 안 된 서푼짜리 풋내기들.

결국 그녀의 목적은 평범한 연애다. 그녀가 얼마나 눈이 높은지는 그녀의 입을 통해 늘 들었지만, 그건 그녀의 주장일 뿐이다. 아마 남자라면 누구라도 괜찮을 것이다. 이건 내 짐작이다. 그녀의 외모와 비대하기보다 거대한 몸집을 보면 누구라도 내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물만 먹어도 살이 쪄. 어제는 계속 굶었어.

그 말은 50%만 진실이다. 굶은 것은 사실이겠지만, 그녀의 손에는 늘 뭔가 먹을 것이 쥐어져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식사를 굶은 그 시간만이 그녀가 뭔가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지 않는 유일한 시간인 것이다. 아우스피츠의 유대인 수감자들 사진을 보라. 먹지 않으면 살찔 수 없다. 그건 진리다.

그녀는 결코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방법에 따라 평범한 연애를 찾아 오늘도 바쁘게 여기저기 문화행사 모임을 쫒아 다닌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일이면 이름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서푼짜리 풋내기와 함께, 덩치가 1/10도 안 되는 수컷을 달고 다니는 암컷 아귀처럼, 유유히 사람들 사이를 헤엄쳐 다닐 것이다.

그녀는 잠깐 주목받는다. 그리고 곧 존재감 자체가 사라진다. 나는 그녀에게 동정을 느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 바쁜 시간에 쓸 데 없는 행사, 서푼짜리 남자들을 쫒아 다니지 말고, 다이어트나 하는 게 더 나을텐데. 하지만 이런 것은 충고할만한 내용이 못된다. 누군가에게 원한을 심어주기 싫다면 절대로 입 밖에 낼 일이 아니다.

잠깐, 나는 여기에서 머리를 턴다. 연목구어. 엉뚱한 장소나 행동으로 엉뚱한 결과를 기대하는 것.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바라는 것. 어쩌면 P양의 이야기는 바로 나 자신의 이야기 인지도 모른다. 직접적인 경우만 조금 다를 뿐. 나는 또 결심한다. 아무려면 어떤가? 작심삼일이면 삼일에 한 번씩 결심하면 되지.

더 이상 엉뚱한 일에서 행복을 찾지 말자. 내가 곧게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나는 내 삶의 지도를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잠을 핑계로 술잔을 기울이지 말자. 고상한 취미를 핑계로 눈의 욕망에 현혹되지 말자. 사막처럼 메마른 길이라도 내가 가야할 길, 그렇다면 잔말 말고 가자.

더 많은 지혜와 지식이 필요하고,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 간단한 길이 아니었음을 이미 짐작하지 않았던가? 넌더리를 내는 것 보다, 넌더리를 내게 만들자. 무엇보다 행복을 찾기 위해서 연목구어와 같은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자. 행복의 땅이 있는 곳으로 곧장 가자. 한 눈 파는 일 없이.

세 번째 소식 - 절주 첫날

잠을 위해 소주를 마시지 않은 첫날. 일을 마치고 보조교관들과 생맥주 몇 잔. 저녁식사도 거른 밤에도 나는 생각보다 잘 잤다. 어쩌면 그간의 잠을 위한 음주는 일종의 나쁜 습관이 아니었나 싶다. 열심히 일하고 몸이 피곤하면 잠은 저절로 달콤해 지는 법인데.

꿈까지 달콤했으면 좋았겠지만, 요즘 이상하게 꾸는 꿈마다 별로다. 한동안 꿈도 꾸지 않고 잠이 들곤 했는데, 늘 꿈자리가 어지럽다. 가장 아끼는 몇 가지 부서지는 꿈이다. 예를 들면 카메라. 렌즈가 크래커처럼 어이없게 부서지는 꿈이거나, 아끼는 모자를 말똥위에 떨어뜨리는 꿈.

어제 밤엔 누군가의 차 뒷 자석에 앉아 있다가 교통사고가 나는 꿈을 꾸었다. 자전거를 탄 피해자와 눈이 마주쳤는데도 어찌어찌해서 그냥 충돌해 버리는 꿈. 역시 누군지는 모르지만, 상당한 미인(참 이런 상황에서...)인 그녀를 업고 응급실로 뛰어 들어가는 꿈.

역시 절주나 금주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일단 나는 무조건 건강해야 한다. 하던 일도 있고, 해야 할 일도 있고, 돌보아야 할 사람들도 있다. 적어도 잠을 청하려 소주를 마시는 습관만은 반드시 고칠 것이다.

네 번째 소식 - 희망과 좌절의 나날



어떤 것부터 말할까? 를 생각하면 늘 희망 쪽을 먼저 입에 올리는 사람이다. 낙천적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하면 너무 가벼운 판단이다. 오히려 모든 일의 결과를 좀 어둡게 보는 편이어서 낙천적인 일을 입에 올리면서 희망을 거는 편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지금하고 있는 찾아가는승마교실에 몇 명의 교장 선생님과 일반 선생님들이 찾아 오셨다. 조만간 그들의 학교에도 꼭 찾아가는 승마교실이 진행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또 어제는 영화계의 무술 감독을 한다는 사람이 찾아 왔다. 그는 조인성의 이름을 거론하며 참 좋은 교육 기획이다. 라고 말했다. 캐스팅이 어쩌고저쩌고 하며 내 명함도 받아갔지만, 정작 나는 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몇몇 학교의 교장 선생님을 만났고,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연락 주겠다는 말씀을 들었다. 게다가 뜬금없이 M초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내용은 심히 미심쩍다. 그 학교 홈페이지 공지사항에 글을 올리라고 하는데, 그건 그 학교 선생님이 아닌 한 불가능 하다. 아마 개인적인 사람이 개인 적인 소견을 문자로 보내온 모양이다. 여기까지는 그런 대로 희망적인 이야기들.

말 냄새가 많이 나네요.
네. 하지만 영국여왕님이 맡는 냄새 아닙니까?
...
아직은 아무나 맡는 향기가 아니지만, 곧 대중화 되어 많은 어린이들이 이 냄새를 친숙해하며 자라나기를 기대합니다.

1학기부터 공을 들여오던 몇 몇 학교는, 갑자기 거절을 했다. 그것도 단 하루에. 한 학교는 운동장이 잔디 구장이라서 안 된다는 이야기. 잔디를 깔아 놓은 탓이라고 하니, 학생들의 체육활동을 잔디가 막는 역효과가 생긴 듯하다. 또 한 학교는 선생님들이 판단해서 안 된다고 하고, 다른 학교는 어머니들이 위험해서 못한다고 했다고 한다. 물론 선생님으로 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다. 이러니 기가 좀 꺾일 밖에.

와앗! 말이다. 우리 학교에서도 승마교실해요? 난 일등으로 해야지.

실제 교육의 수혜자인 아이들에게는 전혀 승마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선생님들 선에서 마무리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말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오는 아이들이 미소를 생각한다. 조금 답답해진다. 최대의 장애물은 어디서나 행정이다.

하지만 결국 한자리에서 변함없이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승마교육의 소문이 여기저기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다니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어쩌면 조만간 연예인들도, 모델들도 가까운 학교 운동장에서 승마 훈련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서너개의 초등학교에서도. 역시 희망 쪽이 마음 가볍다. 나 자신 다소 어두운 사람이기는 해도 말이다.

다섯 번째 소식 - 셔터 맨

물론 누구를 비하하려거나 비웃을 생각 따위는 없다. 상당한 직업을 가진 여인들의 남편, 셔터 맨이 지금 이 힘들고 복잡한 세상에서 얼마나 대단한 지위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약사나, 의사, 학원원장 같은 직업들이다. 여(女)자가 앞에 붙은...

세상이 힘들수록,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녹녹치 않은 것인가를 절실하게 느낄 때 마다 나는 내가 행운의 셔터 맨이 될 뻔했던 몇 번의 기회를 돌아본다. 그러나 지금도 그 때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나는 나만의 길이 있고, 어렵고 힘들지라도 그 길을 사랑한다. 다만 미안한 것은 아내에게 내가 가진 자부심만큼의 물질적인 혜택을 주지 못하는 점이다.

어때 일은 잘돼?
응, 수강생이 또 늘었어.
야아, 내 꿈에 점점 다가가고 있군.
무슨 꿈?
당신이 직접 학원을 하고, 나는 새 시대의 셔터 맨이 되는 야무진 꿈.

언젠가 아내가 내 꿈 때문에 힘들어 한다면, 나는 정말 셔터 맨이 될지도 모른다. 그건 일종의 행운이겠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내 고독한 꿈을 이해해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에 나는 더욱 용기를 낸다. 나는 내가 지닌 가능성을 진지하게 찾아보는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이다. 설혹 성공을 못하는 일이 있더라도, 후회는 결코 하고 싶지 않다. 오늘의 이 한 발자국은 후회 없는 노력의 발걸음이다. 아내의 사랑이 슬며시 등을 밀어주는.

마지막 소식 - 진짜 눈



자 호두 맛 좀 봐바라
네, 호두가 어딨어요?
아니 눈 없나? 이게 호두 아이가?

맞다. 나는 눈이 없었다. 진짜 이게 호두란 말인가? 바싹 마르고 쭈글쭈글한 단단한 견과류. 그게 호두인줄 알았는데. 껍질과 과육을 벗겨내자 익숙한 모양이 나타났다. 호두다.

산골 생활을 시작한 이래, 돌미나리가 자라는 것을 보았고, 상추가 자라는 것을 보았고, 쑥갓이 자라는 것을 보았다. 동네 노인들이 부추 밭에서 정구지 전을 부치는 것을 보았다. 감자가 꽃을 피웠고, 가지마다 가득한 매실을 털었다.

나뭇가지에서 돌배가 돋아나는 것. 설익은 감이 우박처럼 떨어지는 것. 토마토와 비트가 새빨갛게 익어 가는 것. 도종환의 접시꽃을 만져보았다. 새봄에 꽂은 손가락만한 모가 자라 이삭이 패이는 것을 매일보고 있다. 진짜 눈이 없었던 내게, 조금씩 눈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고성(古城) 아래 별자리...

www.allb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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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강인상님의 댓글

강인상

좋은 글과 사진 감사드립니다.

사진 중에 마지막 호두 사진보니 반가워서 글 남깁니다.^^


지금은 전주에 살고 있지만,

어렸을 적.

시골에 살 던 저는 저 호두를 무척이나 많이 보았고,

그리고 많이 먹고 자랐습니다.

호두가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추억이 떠오릅니다.


참 잘 익어갈 때 쯤 사진이네요.^^

이상호58님의 댓글

이상호58

* 언제나 멋지십니다...

언젠간 금메달 따실겁니다...ㅎㅎㅎ

여기서 금메달이란................ 정상을 말합니다...

성인규님의 댓글

성인규

항상 재미있는 좋은글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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