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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이동원 & 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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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박균영
  • 작성일 : 03-02-1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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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 이동원 & 박인수 ♣ 넓은 벌 동쪽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내마음 ♪♬♭)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그리워 ♪♬♭),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꿈엔들..) 잊힐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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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춘호님의 댓글

김춘호

지금 새벽 5시 25분 라디오에서 향수의 노래가 흘러나온다...우연의 일치일까

가사의 내용을 읽거보며 그림을 보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디제이가 향수를 소개

해주네.....

저두 갠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지금은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살고 있으니

고향이란게 저에게도 있군요...

울집도 노래 가사처럼 시골은 아니지만 집이 그리워지네요...

정종한님의 댓글

정종한

내나이 6살때 한밤중에 소피가 마려워 자다말고 밖으로 나왔는데 저쪽 마루 끝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나누고 있더군요. 무슨하실 얘기가 있는걸까

어머니는 마루밑 저 안쪽을 향해서 '괜찮냐 안아프냐 힘내라'라고 조용히 말씀하시더군요. 누구한테 하는말일까 저 밑에는 복실이가 있을텐데...

아침에 깨어나서 보니 복실이가 강아지 6마리를 낳았더군요.
꼼지락 꼼지락 너무 귀여워 한참 쪼그리고 앉아서 보고 있었더니 힘들어 핼쓱한 복실이가 고개를 숙이고 쑥스럽게 날 쳐다보고 있더군요.

밤을 새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복실이를 지켜주시고 계셨던거로구나

며칠 전부터 복실이가 마루밑 흙벽을 자꾸 파헤친다고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더니 강아지를 낳을려고 그랬던 거로구나 강아지를 낳을려고 할때는 마루밑을 판다는어머니 말씀에 아버지는 헌옷을 하나 더 깔아주시고 두분이서 백열등을 켜고 밤을 새우셨던가 봅니다.

노래를 듣고있자니 어릴적 생각이 나는군요. 잘 들었읍니다.

이충우님의 댓글

이충우

항상 이음악을 들을때 마다 눈을 감고 어린시절 논둑길과 밭고랑 사이로
뛰어 돌아다니다, 목마르면 길옆 무밭에서 무 서리를 해 이로 까먹던일이
생각납니다. 동내 실개천에서 송사리,붕어, 개구리를 잡던 아득한 옛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만듭니다.

지금은 시멘트로 구분지어진 아파트라는 곳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항상 옛날의 자유롭고 게으름을 피우던 어린시절... 그리워 하지만,

언제 이런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런지..

기다려 봅니다.

좋은글 음악 감사합니다.

박균영님의 댓글

박균영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고 ,
얼룩백이 황소가 /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 비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위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섭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벌 /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이 22살 되던 1923년에 지은 서정시입니다.

그는 서울로 올라가 휘문고보를 졸업하고,일본의 동지사(同志社)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며 서구 문학에 심취하여 모더니즘 경향의 작품 세계를 개척한 인물입니다.

작은 굽이를 이루고 흐르는 개울 저쪽 끄트머리쯤에 늦은 오후엔 나지막한 소리로 울어댄다. 저녁 무렵의 고향 모습은 언제나 한가롭고 평화롭다 못해, 외롭고 적막한 고요를 자아내게 하지요.

여느 집이나 소 먹이는 일은 아이들의 차지였지요.아침엔 산이나 개울가에 소를 매어놓은 뒤에나 학교에 갈 수 있었고, 심지어는 학교 길에 함께 몰고 가다,오가는 길 옆 개울가 나무 그늘에 매어 두었다가, 점심시간이면 나와 소에게 물을 먹이곤 했다. 학교가 파하고 돌아오는 길엔 다시 고삐를 몰고 풀을 뜯기다 집으로 오는 일이 일상이었지요.

고삐를 뿔에 감아두고 아이들끼리 놀다보면 해가 저물어 허둥대기 일쑤였고요.

쇠죽을 끓인 불을 화로에 담아 놓았지만, 추운 겨울 바깥에는 싸늘하고 매서운 바람소리가 마치 황야를 달리는 말굽소리처럼 냐뭇가지를 흔들어대며 세차게 휘몰아치고.밤이 깊어가면서 질화로에 담아둔 불이 재로 사위어지면, ****를 꼬거나 가마니를 치던 아버지께선 피곤에 지쳐 짚단을 베개 삼아 눕거나 잠드시던 모습이 선합니다.

잊혀지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목말라 하는 시인의 안타까움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흙에서 태어나 고향 밖을 벗어나 보지 못한 아이들에겐 하늘 끝 산 너머는 가보고 싶은 동경의 세계요, 꿈이 가득 서린 이상의 세계입니다.

수수깡을 잘라 가느다란 못이냐 바늘을 꽂아 화살 삼아 쏘면, 무게가 가벼워 풀섶으로 엉뚱하게 날아가 버려 찾지 못한 채, 눈물을 훔쳐내던 일이 어디 작자뿐이었겠는가요.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누구나 고향의 산천과 가족들의 얼굴이 파노라마로 되살아 납니다.

정지용은 장손으로 태어난 탓에 조부의 성화로 일찌감치 결혼하여,나이 어린 아내를 두고 서울로 일본으로 유학길에 나서야 했습니다. 방학이 되어서나 고향 옥천을 찾게 되는 그로서는 고향에 남겨두고 온 어린 누이동생과 젊은 아내가 그지없이 측은하게 여겨졌을 것은 물론이지요.

층층시하 시부모 밑에서 농사일에 시달려야 하는 시골 아낙네로서는 얼굴을 가꿀 틈도 없을 뿐만 아니라, 햇볕에 검게 그을린 모습이며, 버선조차 신지 못하고 사철 맨발의 모습으로 흙 속에 딩굴어야 하는 애처로운 영상이 뇌리에서 잠시도 떠날 날이 없었을 것은 당연합니다.

작품 전편에서 느껴지는 향토의 정서는 물론이려니와、 늘 마음에 애잔한 아픔으로 살아나는 것은 아내에 대한 작가의 각별한 연민의 정입니다. 하늘에 별이 하나 둘씩 드물어지고 별빛조차 희미하게 느껴질 즈음이면 늦가을 된서리가 초가지붕에 하얗게 내리는데도, 흐릿한 등잔불은 꺼지지 않고 마실 온 이웃들과 밤이 깊도록 무슨 사연인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정겨운 모습이 주마등처럼 피어 오릅니다.

이 작품은 고향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의 주정적 어조를 특히나, 매연마다 반복되는 후렴은 단순한 표현 기법을 극대화 시키고, 우리를 수구초심(首邱初心)으로 몰아 갑니다.

고향을 차마 잊을 수 없는 것은 정겹고 따스한 추억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의 고난이 아픈 기억으로 겸쳐 오르기 때문이지요.

고향의 추억은 우리 한국인에게서는 평생을 두고 혈육이란 생명과도 맞바꿀 만한 대상이요,나서 자라고 꿈을 키운 고향의 산과 들은 내 몸의 살덩이고 영혼의 영원한 귀의처 이지요-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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