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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네팅과 포스트모던 괴변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이태영
  • 작성일 : 02-12-15 01:10

본문

adayofwoopo.jpg

..

이전에 우포에서 찍었던 사진입니다.
어떠신가요? 한눈에 들어오는건 약간의 몽환적인 분위기 입니다. 나른한 듯한 빛과 그리고 은은한 호수 저멀리 조용히 솟아 있는 나무 한점. 그리고 투명한 하늘빛.
하지만 제가 이 사진을 몽환적인 분위기를 생각하거나 어떤 은은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냐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투사라는 것은 의식 외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정말로 제가 그렇지 않았느냐고 꼭 부인하기는 힘들테지만 말입니다.
어찌되었건 이 사진은 그런 분위기를 띄고 있는 것이 사실지요.

왜 그럴까요?
이미 많은 분들이 눈치 채셨겠지만, 바로 화면 주변부의 비네팅 때문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전 바보같이도 줌렌즈에서 최고 광각으로 찍으면서 두꺼운 UV 에다가 다시 두꺼운 CPL 까지 덛씌워서 찍었답니다. 필터 두개 연달아서 놓으면 광각에서 비네팅 생기기 쉽다는 건 상식인데도 말입니다. 그리고 전 미쳐 사진을 찍을 당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죠. 비네팅이 좋아서 일부러 의도했을수도 있다고요? 가끔 그런분들도 있더군요. 물론 비네팅은 사진의 외적으로 생기는 물리적인 현상이지만 그것까지 계산에 넣어서 찍으시는 분들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럼 실수로 비네팅이 생겻는데도 가끔 의도한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 또한 눈치채신 분들 많으실테지만 이 사진은 수평선도 기울어 있습니다. 비네팅까지 계산에 넣는 사람이 수평선을 못보는 경우는 참 드물겠죠. 하지만 이 사진은 제가 생각하기에 묘한 꽤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로모 사진기 이야기도 심심찮게 등장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전 로모 사진기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제가 싫어하는건 로모의 메카니즘 자체이지
결과물들은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왜냐면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죠.
단지 제가 로모를 싫어하는 이유는 결과물에 대한 창작자의 통제가 불확실 하다는데 있습니다.
내가 사진을 찍는지 기계가 사진을 찍는지 혼동될 상황 말입니다.
어찌 되었건 위의 비네팅 이야기와는 퍽 유사한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였던 미셀 푸코는 초기저작인 광기의 역사를 쓰고 나서는 당시의 첫 목적이었던 지식의 고고학적 측면 외에 권력의 문제 그리고 나아가 구조주의적 문제에까지 천착되어 자신의 저서가 해석되어 나가는 것에 발마추어 서문을 바꾸어 버립니다. 즉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 없었지만, 최종 독자앞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진 텍스트로 바뀌어 재생산 되는 것에 대한 발빠른 변신이었지요.
이탈리아의 언어학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트 에코 같은 경우는 한발 더 나아가 모든 작품의 완성은 작가에서가 아니라 독자앞에서 이루어 진다라고 까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작가의 종말이고 포스트 모던의 도래를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죠. 사실 요즈음에 들어와서는 그 포스트 모던이라는 단어조차 진부해졌지만 당시엔 퍽이나 센세이셜한 이슈였죠.
그런 경우는 참 많습니다. 사진가 워커 에반스는 앨리 매 필즈 버러우즈의 사진을 그대로 배껴서 전시회를 엽니다. 아니 모방이 아니라 그냥 버러우즈의 작품을 그대로 갖다 걸어놓은 것이죠. 이런일은 사진뿐이 아닙니다. 삐에르 메나르라는 작가는 세르반테스의 작품인 소설 돈키호테를 글자하나 바꾸지 않고 그대로 배껴서 소설을 출간합니다. '돈키호테의 저자 삐에르 메나르' 라고 말이에요. 하지만 보르헤스 같은 이들은 그것을 가르쳐 "메나르는 새로운 테크닉을 통해 그때까지 여전히 초보적이고 불완전했던 읽기라는 예술을 풍요하게 만들었다. 고의적인 시대교란과 잘못된 원저자 설정의 테크닉을 통해서 말이다" 라고 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원본을 우발적이라 말하면서 삐에르 메나르의 것이 훨씬 더 오묘하다고 한것이죠. 이것이 뜻하는 바는 바로 기존의 작품을 새롭게 읽기 입니다. 사실 포스트 모던의 핵심이 거기있죠.

사실 이지점에서 전 문득 사진찍기야 말로 그러한 행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애초에 자연이라는 원본이 있엇고 우리는 그것을 새로운 시선을 가진체 바라보고 찍어 나가는 것 말입니다. 내가 찍은 것이 진정한 원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미 몇년전에 그자리에서 어떤 이가 똑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사진을 찍었을지도 모르고, 렌즈에 가 닿을때의 빛이 원본인지, 필름에 그려진 화학입자가 원본인지, 현상된 필름이 원본인지, 최종 인화물이 원본인지, 아니면 필름스캐너를 통해서 이렇게 저렇게 보정까지 마친 것이 원본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펼쳐져 있는 자연을 그저 하나의 시각을 가지고 재생산 해나가는 것이죠.

우리는 항상 고전주의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무엇이 최고고, 무엇이 더 우월하고, 아니 무엇이 가장 절대적인 것인지 계산하고 가닿으려 노력하는 일련의 행위들 말입니다. 사실 그것은 도달할 수 없는 어느 낯선 상상의 공간에나 있는 것이죠. 이런걸 이데아 라고 플라톤이 말햇던가요? 하지만 그것은 라캉의 말마따나 채워질수 없는 빈독 같은 것이기 때문에 계속 스스로 확대재생산을 반복해 나갑니다. 이런것들이 변질되어 투사되면 이른바 장비병 같은것이 생기는 것일런지도 모르죠. 긍정적으론 절대의 한순간을 남기기위해 강태공 처럼 기다리는 사진사 일수도 있구요.

두서없는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자.. 여러분은 이사진이 어떠싶니까? 우연찮게 잡힌 묘한 풍경일까요? 아님 그 자체로 좋은 사진일까요?

..

참,, 필름은 프로비아100 이었고, 스캐너는 엡슨1650P 필름겸용평판스캐너 입니다.
추천 0

댓글목록

최민호님의 댓글

최민호

이런 실수에 의해 의외의 결과를 얻었을 때 고민 하는 것은 사진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일 것 입니다. 너무나 잘 아는 라이카 혹은

레인지 카메라의 장단점 중 저 개인적으로 꼽는 가장 큰 장점은

사진을 최초로 시작할 때 가졌던, 사진을 촬영해서 현상, 인화가 되어

내 손에 쥐어 질 때 까지 기다리는 동안의 설레임을 몇 십년이 지나서도

역시 그 설레임을 간직하게 해서 매번 사진에 대한 열정을 식지 않게

만든다는 것 입니다. 약간의 의외성도 기대하고, 그 의외성에 환호하고....

SLR카메라에서 이런 즐거움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프로로서 사진을 의뢰받아 정확한 사진을 납품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이런 의외성을 기꺼이 즐기는 것도 라이카 혹은 레인지 카메라를 만지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모두 이런 점을 충분히 즐깁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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