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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에 아나로그사진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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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태영
  • 작성일 : 02-12-09 02:08

본문

문득 그런 생각이 언제부터인지 들기 시작했다.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서도 인화를 하는일이 부쩍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라이트박스와 루빼를 가져다 놓고 현상을 마친 필름을 드려다보며 즐거워하던 기억들이 조금씩 희석되가기 시작했다.
바로 그놈의 필름스캐너 때문이다. 불과 몇주전까지만해도 니콘의 쿨스캔4ED 라는 필름전용 스캐너가 있었지만, 꽤나 걸리게 되는 스캔시간 때문에 더디게 사용하곤 했었다. 하지만 모니터로 보지 않아도 루빼안에 펼쳐지는 슬라이드의 세계는 그자체로서도 정말로 황홀한 것이었고, 조그맣게 인화되어 나오는 사진은 뭐랄까 그 자체로써도 충분히 극치감을 안겨주었다.
사실, 네가티브 필름의 경우는 한롤 모조리 맞기고 인화를 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서도, 슬라이드 필름의 경우 가장 작은 사이즈의 인화가 500-900원 정도 하고 약간만 사이즈를 키울라치면 대번 몇천원씩이나 인화료가 뛰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인화를 마구하기가 부담스러운게 사실이다. 더구나 이 필름은 바로 맨눈으로도 확인할수 있는 슬라이드필름이 아닌가? 아직 환등기 같은것은 구입하지 못하여 루빼를 통해 맨눈으로 확인해볼 뿐이지만, 그래도 그 안으로 투영되어 나오는 오묘한 빛을 보고 있자면, 무언가 그순간만큼은 하나의 사차원 속 시간에 놓여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분별해낸 마음에 드는 몇몇 필름들을 커다란 사이즈로 인화해낼때는, 사진의 좋고 나쁨을 떠나 하나의 극치감마져 들게 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후지FDI 현상소를 이용하면서 부터 이런일마져 드물어지기 시작했다. 한롤 꼬박하려면 한시간여나 걸리던 스캔시간이 불과 몇분만에 끝나서 시디에 따끈하게 구워져 나오는 것이었다. 비용은 롤당 겨우 3000원. 현상료 또한 포함하는 금액이고 더우기 5롤을 한번에 할때는 10000원의 비용이니, 그렇게 생각해보면 한롤 스캔하여 시디에 넣어주는것이 1000원이라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바로 나의 아까운 한시간을 1000원과 맞바꾸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스캔의 품질은 훨씬 좋으니 더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경제적, 시간적 이득때문에 요즘에는 좀처럼 주변 사람들의 사진을 찍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화를 하는 일이 퍽이나 드물어졌다.
그래도 요즘에는 거의 사진에 손을 대지 않지만, 이전에 엡슨의 1650P 라는 필름스캐너를 사용할때는 꽤 떨어지는 퀄리티 때문에 색보정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원본 필름이 색감이 약간은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커브와 레벨조절 등으로 색감의 조절은 필수조건이되어버렸다.
하지만 디지털의 문제는 바로 그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 되는데, 힘들게 머리를 조아려 노출보정한 결과물이 간단하게 그래픽 프로그램의 조절로 모조리 수정이 되거나 커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사진을 찍는 의미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고 마는 것이다.
사실 사진을 조금 오래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사진은 피사체를 찍는 것이 아니라 빛을 찍는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깐 이건 어찌보면 꽤나 실존적인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우리앞에 놓여있는 그저 한 덩어리를 그것을 둘러싼 빛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란걸 상기할 수 있다. 그리고 사진은 바로 그 빛을 포착하는 거란 이야긴거지.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것인데, 디지털을 사용하면 할수록 빛에 둔감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왜냐면 후반작업으로도 쉽게 커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디지털시대에서는 사진가는 필히 그래픽전문가가 될 필요성 또한 대두되게 된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내 자신이 좀 시대에 뒤떨어진것일런지는 모르지만, 자고로 예술이란것이 매체의 발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매체를 도구로 한 정신의 발전이란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면, 디지털의 사용은 그 정신을 좀먹고 있는 건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보게 된다. 뭐 이것또한 그 밑바탕을 아나로그에 두고, 또한 사진의 행위의 종결을 찍는 그 순간에만 한정하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이다. 사실 아나로그에서도 인화할때 버닝과 덧징등의 수법을 동원에서 얼마든지 후반작업에서의 보정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그런와중에서도 중요한건, 인화를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정작 문제는 찍는 과정에서의 즐거움이 줄어들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 때문이다. 정확한 빛의 포인트를 찾고, 그것을 감지해서 나름의 경험으로 빛을 조절하는 그 숨죽인 시간들이 너무나도 펑키해지고 마는 것이다. 사실 이런 과정에서만 즐거움을 느끼는 내가 다소 고전적인 테두리에서만 머무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좌우지간의 나의 느낌이 그런것만은 사실이다.
이런것, 저런것, 이런방식,저런방식.. 그 모든것이 전부 다 사진이다. 라고 어느 중도주의자는 이야기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여전히 글쎄올시다? 라는 생각을 쉽게 지우기가 어렵다. 도대체 그 모든 사람들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을 왜 찍는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는걸까? 아니 이것이 다소 교만스런 말이라면, 도대체 사진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하고 혼자서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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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고동식님의 댓글

고동식

길진 않지만 2년동안 디지탈카메라를 만지면서 느끼는점은

필름카메라는 촬영전에 한컷에 의도하는걸 모두 집어 넣기위한 노력이고

디지탈카메라는 촬영후 컴퓨터로 자기가 원하는 사진으로 만들어가는 작업.

디지탈카메라 메니아라면 펄쩍뛰겠지만 ,

양쪽을 다 만지면서 느낀 제 주관적 의견입니다.

신찬진님의 댓글

신찬진

디지탈시대로 가면서 오히려, 사진 그 자체의 내용에 대한
작가의 성실성과 예술성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어,
이제 color와 sharpness 등은 기본적으로 좋아야 하는 것은
일반화 되었고, 오히려 원래 사진하는 이들의 궁극적 목적이 되어야 하는
사진의 내용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고 최근들어 강하게 느낍니다.

100만원이하의 디지탈 카메라로도 웹에서 보기에는 아주 훌륭하고,
심지어 포토샾으로 상당히 retouching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자연스럽고
보기 좋은 사진이 나올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화려한 color와
칼로 자른 듯한 sharpness를 얼마던지 디지탈 기술로 처리할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러한 color와 sharpness만 가진 사진을 전시해서는 이제 일반인들게 조차도 appeal하기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즉 이제 드디어 사진의 본질인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 메세지 등에 더 눈이 가는 것은 저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생각되어집니다.

해외의 인기있는 인터넷 웹 갤러리를 보면서,
(물론 상당수의 일반 아마추어들과 갤러리 전시 방식과 인터페이스 때문에,
화려하고 선예도가 칼 같은 사진이 일반적으로는 인기가 있지만)
사진의 내용 자체에 대해서 그네들이 더 점수를 많이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hotograph을 만든 media가 무엇이던지 간에 그것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30만원짜리 디지탈 카메라로 만들었건 ,300만원짜리 hasselblad이건 간에, 이제 진정 중요시되어야 하는 '사진의 내용' 그 자체에서 받는 느낌이 더 부각되어지고 있습니다.

필름을 스캔받는 순간, 여러분은 이미 그 필름의 실체와는 다른 무엇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profile이 뭔지 몰라도, color conversion 이론이 뭔지 몰라도, 여러분은 이미 원본과는 어쨋던 다른, 그런 이미지를 모니터에서 보고 있게 됩니다.
디지탈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나 전문 필름 스캐너로 스캔한 사진을 여러분이 모니터로 보는 것,
그것은 이미 디지탈 카메라에 담긴 이미지의 실체와는 거리가 멉니다.
모니터 calibration을 했더라도 이미 다른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지탈 카메라에 담긴 실제 이미지나 필름으로 저장된 실체의 이미지를 여러분이 대체 '모니터'로 볼 수 있기나 한걸까요?(필름의 경우 색온도가 제대로 된 30만원 이상의 light box에서 슈나이더나 로덴스톡 루뻬로 보면 되지만)
전부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즉, 주변의 조명에 따라 또한 모니터에 따라, calibration 여부에 따라 전부 다른 이미지를 보게 됩니다. 이미 원래 디지탈 카메라로 찍은 실체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항상 실체를 변형한 어떤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설사 그 이미지를 100만원이 넘는 모니터에서400만원짜리 모니터 calibration tool로 설정한 상태에서 제대로 보면서 화려한 포토샾 테크닉으로 아주아주 자연스럽게 retouching한 이미지로 만들고 그것을 웹에 올렸더라도,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은 전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즉, calibration 안된 모니터에서, 주위의 조명에 막대한 영향을 받은 현재의 자신의 눈의 상태로, 원래의 사진을 만든 모니터와는 다른 전혀 다른 성능의 모니터로 보면서, 여러분의 사진을 보고 '이 사진이 좋네 안좋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color와 sharpness도 아주 중요한 visual 요소이기는 하나,
최소한 웹에서는 그러한 것들은, 조금만 더 있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이 되어 버릴 겁니다.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꽤 괜찮게 사진을 웹에 올릴수 있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의 내용 그것은 자신의 현재의 사물과 인간을 보는 수준 딱 그것,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진을 보는 심미안과 마음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쉽게 늘지 않습니다.

Digital photograph 시대가 오면서,
이제 진정 사진의 내용, 그 사진을 보고 느낌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사진의 본질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디지탈 기술로 인해 아날로그 35mm 필름의 한계가 밝혀지고 있듯이,
최소한 '웹'에서는 이것이 사실로 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프린팅 분야에서는 전혀다른 이야기지만 )

이태영님의 댓글

이태영

아, 좋으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사실 뭐 그렇죠. 예술이라는것이 어느 한정된 영역안에서의 소수의 감식가?들에 의해서만 향유되어지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또한 해봅니다. 예술이라는 하나의 벡터를 가정해본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나의 방향성과 그리고 그 방향성을 받쳐 나르는 하나의 힘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물론 예술사적으로 생각해볼때 중요한 분기점 분기점마다 대두되었던 것은 하나의 방향성 이었습니다. 다른말로 하면 또다른 시각 또는 세계관의 대두 같은 것이었죠. 그것이 헤겔의 말마따나 정반합으로 진행되어오건 장강의 긴흐름속에 굽이쳐 흐르는 물길이건간에, 결국 그런 변혁들은 그 방향성에 의해서 좌우되어왔다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하지만 또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다면 예술의 본질은 그러한 정치적인것에만 한정되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비근한 예로 현대의 미술을 보면 실지 눈으로 볼수 있는 작품보다도 너무나도 많은 담론들이 떠다니고 있는걸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해하고 보자면 그것이 중요한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그것의 중요한 문제점은 아무나 말만? 잘하면 작가로 우뚝 설수도 있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뭐 사실 학계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어서 그 자리에 서서 말로만 읊조리는 수준에 다가가기 위해서 많은 검증작업을 거치게 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게 그들이 펼쳐놓은 담론들로만 따진다면, 국민학생이나 심지어 유치원생들 또한 하나의 담론을 펼쳐낼수 있는것 아니겠나요? 이렇게 말하면 그들을 폄하하는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전 그저 머릿속에 떠돌아 다니는 모호한 개념으로써의 예술과 산경험을 거치고 난 뒤에 정수처럼 떠오르는 예술에 대한 본질적인 생각의 정립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아 이말또한 솔직히 자신은 없습니다만..)
그래서 가끔 해외토픽같은곳에 보면 유치원생이 그려놓은 작품들이 센세이셜을 일으켜서 메스컴을 타는 것을 드물긴 하지만 볼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종국에는 어떤 대단한 미술가로 성장했는지 찾아보기가 힘들죠. 어찌보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정치적으로만 흐르게 되는 예술은 그 추진력을 잃어버리고 아무도 모를 그런 지점에 불시착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죠.
사실 사진사에 있어서도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의 면모를 엿보게 되면 결코 기자재의 성능(선예도라던지 컨트라스트라던지)등등 때문에 주목받았던 적은 없는것 같아요. 물론 그들은 적어도 평균이상의 사진기를 사용했음에야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결국은 그들의 작품이 가지는 내적인 완결성, 정치성, 사회적인 의미, 등등이 합집합으로써 지금의 그들이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진의 내용이 주목받지 않았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은 좀 더 쉽게 모든 사람이 사진이라는 장르에 뛰어들 수 있는 토대가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입니다.
어찌되었건 일련의 상황들은 결국 하나의 문제를 일으키고 말게 되는데, 바로 벡터의 운동에너지의 결핍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수의 참여에 의해서 정말로 수많은 정치적 방향성의 분출이 일어남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중요한것은 그런 다수의 양적 압박에 의해서 흐늘거리게 되는 운동에너지의 추진력 말입니다. 왜 이것이 문제가 되냐면, 사실 그냥 고전적으로 우직하게 사진하시는 분들이 그냥 하던데로 하면 되는것 아니냐? 라고 해도 결코 그렇지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를 영화쪽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것입니다.
로베르 브레송이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잉마르 베르히만 같은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영화감독들이 갈수록 드물어 진다는 것이죠. 영화계에도 도입되고 있는 디지털, 어쩌면 혁명으로까지 불뤼어 지는 일련의 변화는 결국 정치성의 확대를 일으키기 보다는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 그러니깐 상업적인 영화의 양적비대와 고전적 의미의 예술영화들의 입지를 축소시켜버리는 결과를 낳게 되는걸 쉽게 알수가 있죠.
그러니깐 처음의 재 생각은 그런것이었습니다. 정치적 발언의 다양성이 결코 예술의 발전에 있어서 순기능만을 하는 것이 아니란것이죠.
쓰다보니 너무 장황하게 말한것 같네요. 그러니깐 이를테면 어찌할수 없는 시대적 조류에 대한 그저 보잘것없는 한 초보가 부질없는 넋두리를 했다고 이해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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