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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바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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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이호도
  • 작성일 : 02-12-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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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사이 네거티브를 중심으로 사진을 찍게 되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인화비가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보통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 했을 때 처럼 모조리 현상 작업만을 요청한 후에 줄줄이 필름들을 받아 보았다.

오랫동안 사진을 찍다 보면 나중에는 네거티브의 색깔만 봐도 대충의 원본색상을 추려낼 수가 있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 하는데... 이거야 원. 나한테는 별무소용인 말이다.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있나.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출력물이 인화되어 나온다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결국, 인화비를 아끼기 위해 나는 모든 필름들을 싸구려 스캐너로 일일이 스캔받아 볼 수 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또 좌절로 안내하는 지름길 이었다.


스캔 옵션과 포토샵 에서의 간단한 툴 조정만으로 색깔이 (색감 어쩌구가 아닌) 완전히 왔다갔다 하는 것 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 겠지만.

형광등 아래서 찍었기 때문에 초록끼가 돌아야 마땅할 그림이, 컬러보정버튼 한번의 클릭만으로 완전히 자연광 톤으로 휙 바뀌는 것을 보고 나는 한숨을 푹푹 내 쉴 수 밖에 없었다.

이거, 뭐 이래!?

뭐랄까.... 이제까지 카메라가 어떻고, 렌즈가 어떻고... 필름이 어떻고... 주저리 주저리 온갖 폼을 잡아가며 생각해 오던것들이 부정되는 느낌 이랄까? 자신의 소중한 뭔가가 통채로 날아가는 그런 느낌 이었다.

원본이 어쩌구, 필름이 어쩌구, 후작업이 어쩌구 디지탈이 어쩌구... 하는 그 모든게 참 덧없이 느껴졌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은 사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물 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거... 진짜 말 한마디로 어떻게 설명할 수 없는 느낌.

이거야 말로 내가 전지전능한 악마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팍팍 드는 것이다. (직업병이죠 직업병... 전공이 철학이다 보니...)

게다가 요즘들이 많은 전문가들이 힘들여 이뤄내고 있는 컬러 매니지먼트 작업이라는 것도 부질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R : 200 G : 5 B: 10 이런 색깔을 [빨간색] 이라고 정의하고, 모니터에서 뜬 색깔을 보고, 인식하고, CMYK로 분해했을때는 어떤 값이 나오고... 라고 딱 꼬집어 자료를 만들어 놓는다고 해도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 머리속에 [빨간색] 이라는 [언어]가 갖고 있는 그 느낌을 통일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 한 것이 아닌지. 캬라얀의 베토벤이 정답이고 번스타인의 베토벤이 오답이 아닌 것 처럼. 누군가는 다른 색 분해도의 빨간색을 [빨간색] 이라고 인식할 것이다.


음흠. 얘기하다보니 점점 데카르트 아저씨적 분위기가 나는군요.


여하튼.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니 내가 이제까지 줄기차게 메달려왔던 그 [사진적 정의]의 하나인 [현실성] 이라는게 참 어처구니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애초에 [현실] 이란것을 [내]가 보고 [렌즈]가 보고 [필름]에 맺히고(혹은 CCD CMOS) 그것이 다시 우리는 상상도 못할 프로세싱 과정을 통해 일차적인 결과물이 나오고, 그 다음에 또 [인화] [출력]을 거쳐 다른 사람에게 또다른 결과물 하나로서의 [현실]로 인식 되어지면... 이미 열두다리를 건넌 다른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뭐, 완전한 회의주의자 인건가요? 당신은?"

또, 그건 좀 아니다.

나는 그저, 애초에 내가 생각하던 많은 것들이 꽤 쓰잘데기 없는게 아닐까? 하는 정도만을 느꼈을 뿐이다. 모든것을 내가 컨트롤 하려는 생각. 우연성을 배제하고 모든것을 내 지배하에 두고자 했던 자만심 비슷한 것. 이렇게 하면 이 색깔이 나오고 저렇게 하면 저 색깔이 나오고. 내 기준에 맞춰 모든것을 컨트롤 하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들과 말을 맞추고 생각을 맞추려고 노력해서 뭔가 모르게 완벽하다고 할만한 [무엇]을 제시하고 싶어 했던것들. 그런게 참 피곤하고 어이없다는 느낌 정도다.

그런것이야 말로 현실 부정에 회의주의에, 방탕한 사고 라고 한다면 또 뭐 그런 것이겠지만(과연?) 뭐 꼭 그렇게까지 생각 한다기 보다는...

스스로 좀 더 자유로워질 여지를 만들수 있다면 좋겠다- 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만들어 낸 그림이, 글이, 음악이, 소리가... 그 무엇이든지.


그런것들이 나를 몰아붙이거나 옭아매지 않는.


[사진] 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에 붙들려 있지 않을수 있는...


그런 [것] 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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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한완희님의 댓글

한완희

안녕하세요. 이호도님. 수원의 한완희입니다.

님의 글을 읽고 많은 동감을 하였습니다.
저는 색을 좋아?해서 일까요?
그래서인지 아예 그 여러과정을 거치고 싶은 마음이 없습니다.
부득이 어떤 다른 목적이 있다면 몰라도...
그냥 찍어 최소한의 과정을 거쳐 나온 그것?을 봅니다.
물론 셧터를 누르기 전에 많은 생각을 거치지만...

저는 m6을 사용한지 얼마 안되지만 m6이란 것이 눈으로 본 대상을
잘 표현함에 처음엔 엉뚱한 기대로 실망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차츰 그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님의 사진?으로부터 자유로와지고 싶다는 말씀은 믾은 함축된
뜻이 있음을 압니다.
저의 생각은 사진?은 우리가 원하는 각자의 그 무었을 얻기위한 하나의
방법?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봅니다.

삶의 목적이 있다면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듯이....
왜 사냐고 묻는다면 오늘 사진?을 찍고 싶어서라는....
자문자답을 해 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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