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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표현주의 거장 ‘프리츠 랑’ 회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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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권오중
  • 작성일 : 02-10-19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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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지인들과 함께하는 일요일 새벽 촬영을 ' 장충단 공원' 에서
함께 나눈 후 ' 프리츠 랑' 회고전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
사진에서 내면의 깊이를 표현하는데 있어
영상과 내면의 심리가 어떻게 만나고 표현되는지 짧은 시간 즐겁게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기회인 듯 합니다 .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fritzlang.jpg

프리츠.jpg

프리츠_02.jpg

독일 표현주의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프리츠 랑 회고전이 18일부터 2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문화학교 서울과 주한독일문화원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지난해 독일에서 디지털로 복원된 프리츠 랑의 대표작들이 한국 관객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다.
초창기 독일에서의 표현주의 시기와 필름 느와르를 탄생시킨 미국 시대를 거쳐 말년의 독일 복귀 시절에 이르기까지 그의 주요작품 13편을 상영한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역시 그의 대표작이자 독일 표현주의를 집대성한 <메트로폴리스>(1927)다. 지난해 디지털로 복원하면서 개봉 당시 연주됐던 음악을 새로 입힌 ‘원작’이다. <메트로폴리스>는 불규칙한 건물의 윤곽, 흑백의 선명한 대비, 과장된 인물들의 연기, 기계문명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철학적 테마로 표현주의 영화의 교과서가 된 작품이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기괴한 건물과 극단적으로 분할한 공장 내부시설 등 메트로폴리스의 음산한 풍경을 보다 선명한 화질로 볼 수 있다.



△ 이번 회고전엔 프리츠 랑 감독의 대표작이자 독일 표현주의의 상징적 작품인 <메트로폴리스>가 디지털 기술로 복원돼 상영된다. 문화학교 서울 제공.


2차대전 중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프리츠 랑은 할리우드에서 23편의 작품을 찍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한번뿐인 삶>(1937)과 <당신과 나>(1938)는 도시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통해 사회문제를 파헤친 프리츠 랑의 ‘사회 삼부작’가운데 두편이다. 감옥에서 출소해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치지만 사람들의 냉대로 좌절하고 결국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는 인물의 내면을 그린 <한번뿐인 삶>은 30년대 할리우드 느와르의 걸작으로 꼽힌다. ‘히틀러의 사형집행인’이라고 불리던 잔인한 나치 사령관 라인하르트 하드리치의 암살 사건을 계기로 만든 <사형집행인 또한 죽는다>(1943)은 그의 절친한 동료였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공동작업해 더욱 유명해진 작품이다.

이번 행사는 50년대 중반 독일로 돌아가 만든 랑의 마지막 작품 <마부제 박사의 천개의 눈>(1960)을 비롯해 <마부제 박사>(1922), <마부제 박사의 유언>(1933) 등 마부제 박사 시리즈 전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드문 기회기도 하다. 전체 상영작 가운데 디지털로 복원된 영화는 <메트로폴리스>와 <마부제 박사>, <진홍의 거리>(1945) 세 작품이다. (02)533-3316, 595-6002

=== 참고 ======

독일 표현주의
" 대상의 표현 묘사보다는 작가의 주관적인 내면의 의지나 감정을 약동하는 선과 형태의 변형, 단순화에 의해 표현한 화파이다. 어찌보면 20세기의 미술은 다양한 양식으로 이루어진 표현주의적 표현으로 가득차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넓은 의미의 표현주의는 모든 시대에 걸쳐 예술가 자신의 감정상태, 불안, 갈등 등의 내면적 긴장을 극적으로 나타내는 것을 말하는데, 20세기의 표현주의자 들은 보스, 반고호, 엘그레코, 고야, 등의 화가들에게 호감을 갖는다.

-다리파(Die Brücke)-========================

1905년 드레스덴에서 4명의 젊은 건축과 학생들인 키르쉬너, 헤켈, 슈미트-로틀러프 그리고 블레일리 조직한 미술단체. Brücke(다리)라는 단어는 bridge의 돌어인데 부르케의 목적은 독일의 구예술과 신예술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자는 것이었다. 공격적이고 반 부르조아적인 그들은 모든 학파와 논리들을 거부한다. 표현의 법칙을 강화하면서 더욱 유동적인 필체를 위해 조금씩 색깔을 두껍게 칠하는 것을 포기하고, 재빠르고 솟아나는 듯한 터치와 단순화된 뎃상을 이용하여 모가 난 형태와 단순하고 부조화한 색채로 주제들을 다듬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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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의 표현주의는 독일을 배경으로, 1905년 드레스덴에서 디 브뤼케(Die Brücke,다리파)가 창설되면서 새화풍을 일으키는데서 비롯되었다. 그들은 회화의 목적을 단순한 자연의 재현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르네상스 이후 유럽 미술의 전통적인 규범을 떨쳐버리고 감정과 감각의 직접적인 표현에 회화의 진정한 목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표현주의 회화의 선이나 형태, 색채 등은 이 같은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된 수단이었다. 균형과 질서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전통적인 개념을 무시했던 이들은 오직 감정의 강렬한 전달과, 왜곡을 통한 주제와 내용의 강조를 추구했다.

현대 표현주의의 창시자는 에드바르트 뭉크로 본다.

현대 표현주의의 창시자 뭉크


현대 표현주의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뭉크. 그의 작품「사춘기」「절규」등을 보면 그는 노스탤지어와 공포, 절망으로 가득찬 내면세계를 표현해낸다. 「절규」는 표현주의의 대표적 작품으로 격렬한 색채, 터치의 소용돌이, 극적인 원근들은 절망적으로 일그러진 인물의 내면적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뭉크 : 절규>



이후 당대 진정한 표현주의자인 코코슈카는 작품을 통해 환각적인 분위기를 느끼게하는데 그는 밝고 불안정한 텍스처와 대조효과를 얻기 위해 두터운 임파스토와 꿈틀거리는 붓질을 사용했다. 그리고 극도로 왜곡되어있는 누드를 그린 에곤쉴레, 종교적이면서도 세속적인 작품을 그린 조르주 루오, 실재와 환상의 경계를 초월하는 분위기의 그림을 그린 샤갈 등이 표현주의의 대표작가라고 할 수 있다.

표현주의 미술은 가난과 고통, 폭력, 격정 등을 예민하게 느꼈고 그것들을 미화하지 않고 곧바로 과장적으로 표현해내어 일반대중들로부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일반인들은 여과되지않은 그들의 감정을 추하다고 본것이다. 표현주의 운동은 짧았지만 그 영향은 지대해서 제1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는 수틴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했지만 독일에서는 더욱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어 이후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http://iartedu.com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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