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아버지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이영욱
- 작성일 : 08-07-26 14:22
관련링크
본문
요즘들어 시간이 조금 나서 숙소에 있는 앨범들을 스캔해 봣다..
하다보니 양도 많고 맨 독일군, 일본군 사진들만 했다..
회원한분이 남들 사진만 하지말고 본인가족사진도 스캔해 올려보라고 권유를 하셧다..
그래서 찿아보니 많지는 않고 집에 몇장 있어 스캔해 봣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때 일본 간사이(관서)대학(오사카 소재)을 다니셧다고 한다(아버지 왈)
사진 뒷면을 보니 소화13년(아마1938년경). 4. 5일이라고 써있다..
거의 박통과 같은 시기에 일본서 유학한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도 고향이 일본 오사카 이시다..
전에 일본 오사카 갔을때 시간이 남아서 할아버지 흔적을 찿으려고 대학교에 가려는데
아버지가 가지 말라고 하셧다.. 창씨개명때문에 일본식 이름이라서 찿지 못한다고 하셨다..
그 뒷이야기는 잘 모르겟고 그당시 전북 김제촌에서 대학에 다니던 분이 할아버지
혼자라고 고향친척분들에게 들엇다..
고모 할머니 왈 그당시 학비와 생활비가 없어서 고모할머니가 끼고 계시면 금가락지
팔아서 생활비에 보태 쓰라고 주셨다고 한다....
그뒤로 들은 얘기는 해방후 한국으로 넘어와 군산 내무서(지금 경찰서) 서장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아버지도 예전에 라이카를 쓰셨다고 한다..
아마도 외국서 들어오는 배가 많으니까 할아버지가 선물로 받지 않았나 싶다..
그후 전쟁이 일어나고 할아버지와 식구들은 제일 먼저 피난을 갓다고 한다..
북괴군이 경찰 가족을 제일 먼저 죽엿다고 한다...
피난가시시 전에 집에 있었던 귀한 보물(듣기로는 칼,도자기, 골동품, 부피 큰것)은 땅속에 다 묻고 피난갔는데 나중에 전쟁 끝나고 군산 집에 돌아와보니 군산 시내 전체가 폭격을
맞아서 집의 위치를 찿을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친척분들 사시는 김제에 내려가면 할아버지 얘기를 하시곤 한다..
나야 충남에 사니까 자주 가볼일은 없지만....
장재민 선생님이 장인어른 일본군 사진 올렸길래 두서없이 써봤습니다..
ps:두번째 사진은 일본서 할배와 같이 공부하던 한국인 학생들 사진입니다.
교복이 무척 낡았지요? (맨왼쪽이 제 할배)
마지막 사진은 아버지 일본서 돍때 사진 입니다..
댓글목록
박 강 민님의 댓글

점점 깊이를 더해 가시는군요..
할아버님께서 상당히 미남이십니다.
선배님의 활동적이면서 자상한 성품도 할아버님께서 물려 주신듯 하구요..
마지막의 아버님 사진을 보면서 선배님의 얄개스러운 모습도 함께 떠올려 봅니다.
귀한 사진 감사히 보면서 짖궂은 날에 흐뭇해 집니다.
이어서.. 이영욱선배님의 돐사진도 부탁드립니다. 백일의 누드사진 까지...
ps. 내일 일본에 들어갑니다. 담에 나올때 두배로 갖고 나오죠.. 단, 누드사진 올려 주신다면..ㅋㅋ
無限/박성준님의 댓글

할아버지...
아버지 약주 하시면 항상 눈물을 훔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할아버지 계급이 소좌 셨다고 하셨는데, 북한군 계급 같기도 하고요...;;;
그 시절엔 군인이 아니셨던 분이 없으셨을 정도로 징용(?)이 많았었나 봅니다.
또, 저처럼 작은 몸집 이셨는데 말씀 한마디 하시면, 동네 어르신들이 다 벌벌 떨었고..
그도 그럴것이, 군인이셔서 항상 권총과 칼을 차고 다니셨답니다...ㅎㅎㅎ
아버지 소시적엔 군용 찌프차 안태워 주시면 학교 안가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용돈도 하루에 십원(?)씩 받으셨다고 하시는데..그 십원의 가치가 요즘엔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아버지하고 똑~ 닮았다고, 할아버지가 보셨으면 좋아 하셨을 거라 하실땐,
저도 할아버지가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다음에 귀국 하면, 할아버지, 아버지 앨범을 좀 들춰 봐야 겠습니다...^^*
이메일무단수집거부
이메일주소 무단수집을 거부합니다.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 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