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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지킨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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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허은순
  • 작성일 : 08-07-03 09:57

본문

지금은 고3, 중3인 두 아들이 아주 어릴 적이었습니다.
저는 여느 엄마가 그러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날마다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재미있고, 아름답고 때로는 짠한 감동이 있는.... 그런 책을 찾았습니다.
우리 정서에 맞는 책이면 더 좋았죠. 그렇지만, 의외로 제 아이들에게 읽어줄 만한 괜찮은 책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추천도서로 낙점(?) 받은 책들은 외국 책을 번역해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고,
장삿속으로 만들어낸 조잡한 책들이 그 나머지를 차지하고 있었죠.
우리나라 작가의 손으로 만든 멋진 책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사실, 그 때 어린이책 출판계의 현실은 너무 암울했습니다.
남의 나라 것 수입해다가 번역해서 내는 것이 돈도 덜 들고 간단히 돈 벌 수 있는 방법이었고
(저작권 계약이 제대로 되지 않은 해적판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창작물을 만드는 것은 투자비용이 엄청나기 때문에 출판사에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나서기를 꺼려했습니다.

저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줄 때는
그리도 깐깐하게 따지는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보여줄 책은 어찌 이리 허접하게 만드는 거지?
그러던 어느 날, 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이라는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다가
그만 울컥 목이 메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온몸에 전율이.....찌릿! 마치 번개를 맞은 것처럼 말이죠.
깊은 울림이 있는 책은 가끔 사람의 길을 바꾸어 놓는가 봅니다. 저는 ‘이 일을 해야 겠다’ 마음먹었고,
아이들에게 대책 없는 약속을 하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만들어줄게. 조금만 기다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나 막막했지요. 그 때 제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 때는 작가도 아니었으며, 출판사 사람 하나 알지 못하고... 저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 마음먹은 일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라.....
더구나 그 일이 너무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이라면 더욱 더요.


저는 화가가 되고 싶었던 어릴 적 소망을 떠올렸습니다.
그렇다고 그 때 두 아들을 키우면서 그림공부를 다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택한 것이 글을 쓰는 일이었지요.
만약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저같이 소심하고 낯가리는 사람은
제가 쓴 원고를 다른 사람에게 들고 가는 일은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메일이 저를 대신해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주었고, 문단의 선배들에게 읽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출판사에 보내고 퇴짜 맞고, 다시 쓰고 또 퇴짜 맞고....를 반복했습니다.
지금에야 웃으면서 하는 말이지만,
그 때 ‘당신의 글은 글이라고 볼 수 없으니 더 공부하시기를 바란다’는
모 출판사 편집장의 답신은 비수처럼 꽂혔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들의 아픈 조언이 지금의 저를 만든 셈이죠. 어쨌든 저는 꼭 만들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줄 책을!


맨땅에 헤딩하는 게 꼭 그 때 저를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겁니다.(사진을 시작하면서도 이 과정을 다시 거쳤지요.)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지요? 어찌어찌 등단하고, 창비(창작과비평사)에서 첫 책을 낸 뒤,
이런저런 일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죠.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은 보통 책이 아닌 ‘그림책’이었으니까요.

2년여 동안 글을 쓰지 못하는 심한 슬럼프에 빠져있던 어느 날,
현암사의 자회사인 은나팔 대표이사가 제게 팜플렛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제 앞으로 보내오는 많은 신인화가들의 포트폴리오는 지겹도록 많이 봐 온 터라
(그 사이 입장이 좀 바뀌어 이제는 제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골라내게 되었지요),
그리 기대하지는 않았더랬습니다.
그런데......그녀가 가지고 온 것은 달랐습니다.
홍대 미대 교수인 김호연 선생님의 그림이었는데, 제 눈이 번쩍 뜨인다고나 할까요.
저는 그녀가 소개한 화가의 전시회장으로 갔죠. 그 전시회장에 들어서는 순간.....
제 머릿속에는 파노라마처럼 이야기가 펼쳐졌습니다.
‘그래, 이거다!’


저는 밤을 새워 스케치를 하고, 더미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스케치를 화가에게 보였습니다.
그림 그리기에는 아마추어인 제가 감히 홍대미대 교수님에게 허접한 스케치를 들이댄 것이지요.
그 화가는 개인전이 연달아 계획되어 있는 분이어서,
제가 만든 더미북을 보시고 작업을 하시겠다고 선뜻 나서기는 힘들 거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걸 보시면 필 받으실 거다!’ 생각했지요.


저의 믿음이 틀리지 않아 화가는 제 스케치를 보자마자 모든 스케줄을 뒤로 제끼고 바로 작업에 들어가셨고,
그야말로 1년 가까이 쉬지 않고 그리고 또 그리셨습니다.
저는 그 그림들을 책으로 만들기 위해 일했고요.


마침내 열매를 맺어 제가 기획하고 만든 첫 그림책이 며칠 전에 출판되었어요.
손으로 꼽아보니 아이들에게 약속한지 꼭 10년 걸렸네요. 그런데 이걸 어쩌나요?
그 사이 우리 아이들은 다 커버렸습니다. 저는 흰머리가 늘었고요.
아이들은 저와의 약속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듯한 무덤덤한 눈빛으로 책을 쳐다보네요. 이런.....!

설이 길었지요? 간단히 ‘와주세요’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이 전시회를 열기까지의 일을 조금 설명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부디 흉하지 마시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이 책, 이 전시회, 제게는 너무나 뜻 깊은 자리입니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셨던 라이카클럽 여러분들을 초대하고 싶습니다.
꼭 와주세요. 제가 아는 몇 분께 오픈 행사 초대장을 보내긴 했지만,
초대장을 보내지 못한 여러분들을 위해 이곳에 초대장 올려놓습니다.
오셔서 멋진 그림 감상하시고, 맛난 것도 드세요.

혹시 눈썰미 좋으신 분들은 제가 처음 프로필 사진으로 올려놓았던 이 그림을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이 그림의 전시회입니다.





‘하늘로 날아간 물고기’ 원화전시회



초대날짜: 7월 11일(금) 4시 - 시간이 혹 되시거든 이 시간에 오셔요. 맛있는 다과도 준비되어 있어요.

전시일정: 7월 11일(금)-22일(화)

시 간: 아침 10시-저녁 7시(평일)
아침 10시-저녁 6시(주말)

장소: 한벽원 갤러리(732-3777)


오시는 길: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역에서 내려 교보문고 정문 앞에서 11번 마을버스를 탄 뒤, 삼청파출소 앞에서 내리면 건너편에 있음
주차장은 있으나, 주말에는 조금 복잡하겠죠?


화가. 작가와의 만남


- 화가와 작가의 사인회를 함께 합니다. 화가 선생님은 친히 예쁜 물고기를 그려주시기로 했답니다.
화가, 작가를 만나고 싶은 분은 다음 시간을 참고해주세요.



7월 12일(토) 오후 1시부터

7월 19일(토) 오후 1시부터

7월 21일(월) 오전 11시 부터


* 혹 제가 있는 날 오시거든 못 알아본다 서운해 마시고, 먼저 라이카클럽 회원이시라고 꼭 알려주세요!

추천 0

댓글목록

김한수(hans)님의 댓글

김한수(hans)

참... 감동적인 이야기군요. 한국에 있었다면 아들손을 잡고 꼭 갔을겁니다.
아직은 너무 어리지만, 아중에 글을 읽을줄 알게되면 아들에게 꼭 사줘야할 동화책이 생겼군요.
감사합니다.

김종오님의 댓글

김종오

오래된 약속을 드디어 지키셨군요...
아마도 아이들에게 한 약속이기보다 자신에게한 약속이 아닐런지요?
축하. 축하드립니다.
시간을 내어 아이들을(작은녀석이 초등 2학년 이랍니다) 데리고 전시장을 찾아보겠습니다.

장재민님의 댓글

장재민

어쩐지 범상하지 않은 느낌이 있었는데
드디어 해 내셨군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전시회가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하는 욕심을 내봅니다.
책으로 뵙겠읍니다.

☆이수호님의 댓글

☆이수호

오랜시간에 걸쳐 조금씩 꿈을 이루어간다는 것..진심으로 축하드리고 한편으로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아직 책을 읽을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미리 구입해서라도 나중에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
좋은 작품에 감사 드리면서..

김찬님의 댓글

김찬

축하 드립니다...
책이 몹시 궁금해 지는군요...

홍건영님의 댓글

홍건영

제가 모 출판사 편집장의 답신을 받았으면 어땠을까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꼭 가보고 싶은 전시회네요

김대석님의 댓글

김대석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박경복님의 댓글

박경복

꿈(약속)을 이루신 전시회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하늘로 날아간 물고기"를 꼭 보려합니다.

이용훈님의 댓글

이용훈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꿈도 이루어 지구요.
주말에 손주와 함께 가야되겠습니다.

정규택님의 댓글

정규택

감동입니다. 열정에 깊은 박수를 드립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사인회+그림 받으러 꼭 가야겠습니다.ㅎ~

임규형님의 댓글

임규형

최고세요.
뜻이 있는 곳에....하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요즘은 너무 시간이 없어 라클의 카페란 조차 잘 못보는데
연이 닿았는지 끝까지 읽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점심을 거르게 되었어요 ㅜㅜ)
갈 시간이 있을리 없지만 여기서라도 감동을 느끼니 참 다행입니다.
멋진 전시회가 되기 바랍니다.

김용준님의 댓글

김용준

이제는 그림책을 구입 할 때가 이미 지나 버린 아이를 가진 게 아쉽습니다.
저 또한 그림책을 고를 때 항상 고민하게 되었던 게 모두는 아니지만 외국 번역도서의 범람이었는데....^^

우리네 정서가 녹아 든 짧은 동화 한편의 탄생과 전시회를 축하합니다.

김형배님의 댓글

김형배

감동적인 글입니다..
역시 라클에서는..

이런 분도 계시는구나..
또 한 분의 거장을 뵙게 되어 더욱 반가울 따름입니다..

lee ju yeon님의 댓글

lee ju yeon

반듯한 종이를 보는 듯, 맑은 공기를 만난 듯.
아주 기분 좋은 글입니다.

너무 너무 축하드립니다.
개인적으로 한번 뵙고 싶은 기분마저 듭니다.

꼭 가보겠습니다.

김영모님의 댓글

김영모

축하드립니다....

하효명님의 댓글

하효명

정말 대단하십니다.
대한민국 어머니의 힘을 봅니다.
축하 축하드립니다.

맛난 다과 먹으러 가겠습니다.

박_상 욱님의 댓글

박_상 욱

정말 어느 책에서나 볼법한 이야기를 직접 보고나니 참 대단하십니다.
그리고 존경스럽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부끄럽기까지 하네요.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꼭 시간내어 가보겠습니다.

강정태님의 댓글

강정태

대단한 집념, 감동적입니다.
출판기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강인상님의 댓글

강인상

정말 그 동안의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말씀하신 것을 실천하기에는 많은 가시밭 길이었을텐데...


정말 대단한 일을 하셨습니다.



좋은 책일거라는 믿음.

방금 읽은 짧은 글만 보아도 너무나 깊이 다가옵니다.



책 출간과 전시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조만간 서점에서 꼭 구해서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봉섭님의 댓글

김봉섭

정말 감동적입니다.
출판과 전시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annie/정은주님의 댓글

annie/정은주

정말 뜻깊은 전시회네요...^^
축하드립니다. 제 사진의 꽃보다 더 활짝 웃으시길!!^^

손영대s님의 댓글

손영대s

축하드립니다..

요즘엔 좀 나아진거라지만..
아이들 동화책 보면..유럽작가와 일본작가들의 책이 많더군요..

좋은책..많이 내주세요 ^^

장일우님의 댓글

장일우

멋지십니다 두아드님들이 자랑스러워
하실거예요~ 앞으로두 더좋은책 많이
쓰세요 손주분들 보여주세요...^^

하상길님의 댓글

하상길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런 책을 만들어 주신 것도,
한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깨닫게 해 주신 것도
모두 고맙고 감사합니다.

손주 녀석 손 잡고 가고 싶은데
인석이 시간을 내줄지 모르겠군요.
할아방 혼자서라도 어슬렁거리며 가보겠습니다.

백철원님의 댓글

백철원

글을 읽고있노라니 열정과 노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느군요...
라클에는 정말 다양한 재능을 가지신분이 많군요..
가까이 있었다면 꼭 가보고 싶네요.. 나중에 아이 낳으면 꼭 읽어줘야 되겠네요..
아니 기다릴것이 아니라 제가 먼저 읽고 그느낌 그열정을 받아야 겠네요...
축하드려요.. ^^

無限/박성준님의 댓글

無限/박성준

오늘 뵈었는데...ㅎㅎㅎ
책에 직접 글도 적어 주시고 정말 감사 했습니다.
또 그림이 정말 예뻐 한장한장...한참이나 보고 있었습니다...ㅎㅎㅎ

다시 한번 축하 드립니다...^^*

허은순님의 댓글

허은순

박 선생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멀고 먼 러시아에서 오신 손님이네요?
그리고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려요. 덕분에 어제 오픈행사는 아주 성황리에 잘 끝났어요.
오늘도 사인회가 있어서 저는 대기하러 갑니다. 오신다고 하신 분들 이따 뵙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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