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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탑 미움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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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김명기
  • 작성일 : 08-06-25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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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탑 미움탑



나는 중년이다. 이젠 제법 뒷줄에 서야할 나이다. 그래서 농담도 제법 늙수그레한 것들을 듣게 된다. 하지만 그런 블랙 코미디가 이해된다는 자체가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예를 들면,

어떤 40대가, 자기 섹스시간은 31분이라고 했대.
오호, 그건 제법인 걸?
그게 말이지, 섹스는 1분이고, 아내 앞에서 손들고 벌쓰는 시간이 30분.

뭐 이런 정도의 농담들이다. 솔직히 나도 이런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좋겠다. 대개의 남자들은 이런 농담 앞에서 전혀 진실 되지 못하다. 어느 정도 선에서 이야기를 끊어야 하는지, 늘 양심과 다투는 것이다. 쓸데없이.

요즘 들은 농담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나이든 여자가 필요한 것.
첫째 건강,
둘째 돈
셋째 친구
넷째 딸
나이든 여자가 버려야할 한가지 남편.

나이든 남자가 필요한 것.
첫째 아내
둘째 마누라
셋째 부인

나이든 남자가 두려워하는 것. 곰탕 - 아내가 혼자 여행 간다는 징후이므로.

나는 나이든 주제에 여전히 철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위의 농담은 이해는 되지만 실감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에 대한 의존도가 나날이 커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최근의 유가인상처럼 내 삶의 위기일까?

얼마 전 내게 승마를 배우시는 분들께 승마의 낭만적인 점에 관해 설명을 하다 실패했다.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지신 여성분들이었다.

만약, 바깥분도 승마를 배우신다면, 언젠가 햇살이 쏟아지는 숲에서 함께 말을 달리며, 부부가 멋진 숲의 바람을 느끼며 대화를 나누는...
그만둬요. 그런 좋은 곳에 남편을 왜 데리고 가요?

물론 악의 없는 농담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뾰족한 반응이었다. 역시 친구나 딸을 데리고 가시겠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내심 상당히 놀랐다. 아하, 정말로 농담이 아니로구나. 그리고 마음속으로 연민을 느꼈다. 그간 살아오면서 얼마나 여러 가지 사연이 쌓였으면 그런 말이 이리도 쉽게 나올까?

불행은 혼자가 아니다. 불행은 늘 짝이 있는 것이다. 한쪽이 불행하면 그 상대방도 역시 행복할 수 없다. 길지 않은 인생. 행복하게 살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서로를 불행하게 하고 서로를 미워하면서 살기란 얼마나 힘들고 지루할까? 더욱 가슴 아픈 것은, 이제 인생의 황혼기인 그들. 그 분들의 삶은, 지나가버려 다시는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이미 너무 늦었다.



아이고 좋은데 가는데, 와 남편을 안델고 갈라케?
그런가요?
이 양반은 내 인생의 봉이라카이. 봉.
봉이요?
그라제. 평생 동안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 안 키웠나? 식구들 어딜 가나 돈 내주고, 맛난 것 먹게 해줬데이.
얼씨구, 니는 그래서 내캉 살았나?
당연하제. 우리 소중한 봉님을 두고 내가 혼자 어딜 가겠노? 자, 봉님, 저그 재 너머에 순두부집 새로 생겼다카이. 빨리 가서 같이 묵고 돈 내주소 마.

아침상은 산처럼 쌓인 상추와 쑥갓, 미나리, 잡곡밥과 햇감자 조림이다. 커다랗게 상추쌈을 싸서 드시며 아옹다옹 하시는 어른들을 보고 생각한다. 70평생 해로하고도 늘 함께 다니시고, 하루라도 떨어지면 기운 없어 하시는 두 분. 작은 일에도 서로 고마워하고, 함께 산 세월만큼 미움 탑이 아니라 사랑 탑을 쌓아온 두 분.

사람이 한 평생을 제대로, 잘 산다는 것은 결국 이런 것이로구나. 문득 라이너 쿤체의 [당부, 그대 발치에] 라는 짧은 시가 떠오른다.

[당부, 그대 발치에]

나보다 일찍 죽어요,
조금만 일찍

당신이
집으로 오는 길에
혼자 와야 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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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無限/박성준님의 댓글

無限/박성준

적은 나이에 혼인을 한 저로써는 참 가슴이...ㅎㅎㅎ;;;
뭐라 말 할 수 없게 만드는 글이네요.
잘 보았습니다.


대구 팔공산...Blue Moon 까페가 그립습니다.
와이프에게 프로포즈 했던 곳 인데...;;;^^*

이현주님의 댓글

이현주

"나보다 일찍 죽어요,
조금만 일찍

당신이
집으로 오는 길에
혼자 와야 하지 않도록"

서로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또 사무치게 당부하고싶은
한 사람을 찾으셨다면
참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시는 걸꺼예요..... ^^

양진구님의 댓글

양진구

큰 일입니다..
이글을...나도 모르게 재미 있게 읽었습니다..

글을 다 읽고 위의 사진을 다시 자세히 보았습니다.
동네 어르신은 아닌 듯하고 마음 묵고 나오신게 아닌가 합니다.

보통 시골길이였다면
할머니는 보따리 하나쯤 머리에 이고 저만치 떨어져 오실텐데..

언듯 이런 농담이 떠 오릅니다.
금술이 좋으신 어느 할머님께 다음 세상에도 할아버지를 만나면 같이 사시겠냐고 여쭸더니
'그런다'고 대답을 하셨어 '왜요?' 라고 하였더니

할머니曰

기 놈이 다 ~~ 기 놈인기라 ~
기래도 질(길)든게 조ㅎ타!

오 민재님의 댓글

오 민재

아직은 어리지만..
먼가 가슴에 와닿는 글이네요..

도혜옥님의 댓글

도혜옥

나이를 먹는다는 것..
새삼 생각이 깊어집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면 언제로..? 라는 질문에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라고 단호히 말하지만 세월은 무섭네요..
나이를 먹어가나 봅니다. -_-

김동현®님의 댓글

김동현®

좋은 글 너무 감동스럽게 읽어버렸어요. 가슴이 콕콕 찔리는 느낌이 드네요.
사진 또한 잘 봤습니다.

김기환★님의 댓글

김기환★

저도 작년에 잠깐 승마를 배워 해봤었습니다...

떼제베라는 곳이었는데....

집이 서울이라 다니기에 에로사항이있어서

뚝섬쪽으로 갔었드랬죠....

자기네는 독일산말이 없고 호주산만있는데 몸무게가 80이 넘으면 말이 괴로워해서

안된다 하더군요 흐으

그뒤로 다이어트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조금씩 더찌고있는거 같습니다...

얼마전에 그냥 아버지 타신다길래 슬슬 따라갔다왔는데.. 장수돌침대(?) 별이 다섯개

사장님도 승마를 상당히 좋아하시는거 같더군요... 자마도 멋진놈으로 있으시고...

부러웠습니다...

제가 집이 서울 천호동(잠실근처)인데 주변에 독일산 말을 갖고 있는 승마장이있으면

다시 타고싶습니다... 모자며 팬츠며 부츠며 다사놨는데 말이죠...

손영대s님의 댓글

손영대s

많은 한국의 가정의 문제가 아닐까요?

승마 배우던 여성들의 농담같은 진담..

참 거시기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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