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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IRAN)에서 어느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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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정성시
  • 작성일 : 08-01-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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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을 며칠 앞두고 있습니다. 반년 전 모로코에서 필름 25롤을 분실하고, 이어진 이란 여정에서도 첫날부터 UAE공항에서 배낭을 받지 못하는 탈을 겪었습니다. 차이나 에어라인스가 밉습니다.....
설익은 글이고 개인적인 체험에 불과합니다만 틈틈이 작성한 것 중 세 편을 엮어서 인사로 대신합니다.

(1) 후세인 추모행사

시르잔(Sirjan)은 소설 모모에서 각박하고 경쟁적이고도 성공지향적인 현대문명의 맹점을 암시해 주는 배경인 회색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고유한 특징이 없이 성냥곽처럼 회색빛 건물만 길쭉한 방사형 도로가 십자형을 따라 주욱 늘어선 삭막한 인상을 주었다. 낮 시간에 이곳에 와서 거리를 둘러보니 비교적 고원지대에 형성된 촌락치곤 굉장히 넓은 면적임에도 불구하고 행인들은 드물고 텅빈 분위기였다.

다음날 짐을 챙겨 다음 목적지인 메이만드로 가기 위해 거리로 나섰으나 도로변의 건물들이 모두 문을 열지 않은 모습에 의아스러웠다. 터미널 차편도 모두 오늘만은 쉰다기에 까닭을 물어보니 오늘이 680년 카르발라 전투에서 수니파에 항거하다 전사한 마호메트의 손자 이맘 후세인을 기리기 위해 이슬람력으로 매년 1월 10일 열리는 후세인 추모의 날이란다. 얼마전 미군에 잡혀 처형당한 사담 후세인과는 다른 인물이니 혼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지난주부터 이와 관련한 프로그램들이 텔레비전을 통하여 계속 소개되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시내의 중심과 주요한 거리에는 검정옷을 입은 이란인들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삼삼오오 몰려들었는데 텅빈 회색도시임을 무색케 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인파였다. 특히 이 날은 전국적으로 차량 소통을 통제하고 추모 행사에 전심하는 날이니만큼 비중이 큰 날임을 알 수 있었다. 이소룡의 쌍절곤 크기만한 나무막대 끝에 여러 갈래의 철로 된 고리를 달아 이것을 확성기에 나오는 후세인 추모 노래에 맞추어 어깨 넘어 대각선 방향으로 등에 치거나, 도구가 없는 사람들은 손으로 가슴을 치며 애통해하는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는 이색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이곳 촌락에도 수 만명의 거주민 대부분이 참여한 행사여서 장관 그 자체였다. 뜻하지 않은 촬영 소재가 생겨 흥분된 마음을 가눌 길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왔기에 사건현장에서 리얼한 표정들을 포착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저널리즘 사진가처럼 좋은 장면을 얻기 위해, 때로는 과감한 접근을 통해서, 종교관습상 촬영금지인 무슬림 여성에 대해서도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흑백필름에 기록하였다. 맨 앞줄 가운데에 위치한 종교지도자를 중심으로 그 뒤에는 많은 남성 무슬림 신자들이, 또 그 뒤에는 여성 검정 차도르를 입은 무슬림 여성들이 광장을 가득 메웠다.

원형광장에서 드디어 종교의식이 거행되었고 종교지도자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고 머리를 드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기민한 동작으로 접근하여 촬영하고 다시 빠지는 찰라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무전기를 든 경찰은 여권과 비자를 꺼내어 보여주기를 요구했다. 내 여권은 숙소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내가 묵고 있는 호스텔의 주소와 지도가 실린 가이드북을 펼쳐 보여주었더니 그제서야 이해한다는 듯 다정한 미소를 보여주며 놓아준다. 아뭏든 다양한 장면들을 촬영하였는데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 지 궁금해진다. 당연히 필름이니 즉시 확인할 수 없고 한동안 기다리는 묘미가 있을 뿐이다.

(2) 시간을 잃어버린 메이만드(Meimand)

이란에서의 일정이 며칠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시르잔에서의 격정과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튿날 메이만드로 방향을 틀었다. 이곳 산골의 마을을 고른 이유는 규모는 작으나 작년에 들렀던 터키의 카바도키아와 유사한 형태라고 소개되어 있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만원에 택시를 잡아서 대평원이 그 넓이를 하늘과 대보려는 듯 평탄한 생존력이 뛰어난 누런 갈퀴 모양의 마른 식물들이 지천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사막지대를 지나 구릉성 산자락으로 이어진 오르막 도로를 질주하자 작은 계곡 주변으로 납작하게 엎드린 듯한 바위지대에 구멍을 뚫어 그곳에 주거지를 만들고 양을 가두어 목축에 활용하는 공간도 만들어 놓은 메이만드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기대는 곧 실망과 탄식이 뒤섞인 모습으로 변했다. 터키의 카바토키아와 닮았다고 하는 얘기가 무리가 있을 정도로 너무나 보잘것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곧 경솔한 외국여행자의 과욕에 기인한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일일이 악수도 청하고 차 한 잔 하는 시간을 통해 친밀한 분위기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그 후 언덕길을 걸어가며 거주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이슬람식으로 인사를 나누며 촬영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린 아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젊은이들과 중년의 사내들 그리고 노인들이 많이 보였다. 암굴 입구에서 세 노인이 밝은 햇빛을 쬐며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분이 왼뺨과 오른뺨을 서로 맞대고 따스하게 포옹하며 여행자를 맞이해 주는 모습에서 따뜻한 감동을 느낄 수가 있었다. 복잡한 대도시의 바쁜 사람들과 비교해서 이곳 사람들은 시간이 무척 많은 사람들일게다. 그리고 물욕을 떠나 최소한의 생존에 필요한 산물을 공유하며 또 서로 돕고 사는 공동의 모둠살이를 영위하는 사람들일게다.

사진 촬영에도 전혀 기피하거나 인색하게 구는 표정도 없이 편안하게 촬영자를 대해주어 무척 감격스러웠다. 차만 연거퍼 얻어 마시고 내어놓는 것 없이 그냥 떠나려는 여행자를 미안하게 하는 마음의 짐을 안은 채 총총 산골 마을을 떠났다. 언덕길을 내려가다가 저절로 자꾸 뒤를 돌아보며......

(3) 새로운 '부르카'와 반데르압바스

이곳 반데르압바스에서 본 이란 여성의 의상에서 색다른 풍속을 체험한 것은 바로 이상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것이다. 눈과 코 그리고 입만 노출하고 나머지는 검정색이나 붉은색 등의 실올이 굵어보이는 헝겊으로 얼굴을 가려 양쪽 귓바퀴에 고정시킨 '부르카'이다. 이 부르카는 극심한 이슬람주의를 강조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착용하게 한 여성복장의 이름과 같다. 머리부터 발목근처까지 내려오는 주름진 엷은 파란색의 천을 뒤집어 쓴 의상인데 밖의 세상을 구별할 수 있도록 눈부분에는 약간 넓은 망사로 처리한 것이다. 그런데 반데르압바스의 부르카는 별도로 가면을 착용하여 여성의 얼굴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한 형태라 굉장한 눈길을 끌었고 꼭 사진에 담고 싶었다. 이슬람여성에 대한 사진촬영은 관습상 터부시하는 경향이어서 처음에 우려를 했으나 다음날 과감하게 여러컷을 촬영하는데 성공하였고 아무런 뒷탈이 없어서 다행스럽다. 사실 카메라에 눈을 대지않고 감각적으로 촬영하는 노파인더 기법으로 촬영한 것이 대부분이기도 하다.

반데르압바스에서 이튿날 해상에 납작하게 업드려있는 호르무즈섬에 이르는 과정은 흥분과 드라마틱함 그 자체이다. 쾌속보트로 찰랑거리는 수면을 칼처럼 질주하는데 칼은 예리하게 물을 가르고 고물에서 거친 물거품을 토한다. 수면과 보트의 바닥면이 맞장구치는 순간에 허리에 통증이 올 정도여서 경마장의 기수와 같이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진동이 온몸을 울린다. 섬의 세세한 표정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바다도 저항을 거둬들이고 방문객을 품안으로 맞이한다. 선착장에서 보트에 실려있던 거주민과 상인들의 물품을 부려놓고 길게 늘어진 섬의 끝자락을 보니 포르투갈 요새인 듯한 시커먼 구조물이 바다와 맞선 채 버티고 있다. 주민들은 가식이 없고 맑은 가슴을 가진 투명한 이슬과 같은 사람들이다. 좁은 길거리에서 아이들과 청년들이 공놀이와 자치기를 즐긴다. 고양이는 기둥을 만나자 킁킁거리며 오른다리를 번쩍 쳐올리더니 사타구니에서 분수처럼 액체를 방사한다. 닭들과 양들과 고양이들이 서로 공생하는 모습이 마치 에덴동산을 닮은 모습이다. 한줄기 길을 오래 걷는 동안 다리가 노곤해져서 한 과일가게에 들러 바나나 한 쪽과 시큼한 귤을 맛보고 차 한 잔 부탁하니 옆집에서 물을 끓여 가져온다.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은 쾌활한 표정과 함께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곳 섬주민들은 시간을 굉장히 많이 가진 사람들임을 알게 한다. 자신의 일터에서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고 그밖에 자기 발전과 대내외적인 일에 묻히다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기 마련이다. 현대인의 속성중의 하나가 바로 '시간이 없다' 로 대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섬은 주변의 낮은 산들이 검붉은 색깔을 띤다. 날카로운 검붉은 창날이 길게 섬의 한쪽에서 시작하여 다른쪽 끝은 바다 속으로 그 꼬리를 담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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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원석5님의 댓글

이원석5

해외로의 여행은 몇 년에 한 번이나 할까 하는 입장에서 Iran과 같은 나라들은 흔히 혹은 쉽게 가지 못 하는 곳이죠.
사진이 많이 궁금합니다. ^^;;

최성호님의 댓글

최성호

정성시선생님, 이란에 다녀오셨군요...
81년부터 85년까지 만 사년여를 장기체류했고, 그 이후에도 90년대 초반까지 수시로 들락날락 출입하면서 제 젊음의 상당부분을 바친 저로선,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다 가슴에 와 닿는군요... Tehran은 물론, 업무로 들락날락한 이스파한, 또 성도 곰, 카스피해 연안 , 그리고 반다르 압바스에, 퍼스폴리스까지... 무사귀환 축하드리고, 귀한 사진들 기대합니다...

이재유님의 댓글

이재유

글이 너무 좋아서 머리속에 사진이 그려질정도입니다.^^ 저역시 사막... 아랍세계에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하준완님의 댓글

하준완

글을 읽다보니 사진이 무척 기대됩니다.

최준석님의 댓글

최준석

오랜만에 선배님의 소식을 글로 접하니...
반갑고 감사합니다.

좋은 곳에 다녀 오셨군요..사진도 기대하겠습니다.

공 명님의 댓글

공 명

사진이 안보여서 어디 가셨나햇었습니다...
좋은 사진들 기다려집니다...

정성시님의 댓글

정성시

여운을 남기고 26일 밤 서울에 왔습니다. 마음의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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