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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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선근
- 작성일 : 07-12-01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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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님 중에서도 추억의 한켠을 차지하고 계시는 분이 있는것으로 압니다.???
사진구경----아래
댓글목록
김주홍님의 댓글

어릴적 보기만 하던....
제게는 이렇할만한 추억은 없는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왠지 오랜시간 지켜온 다리가 사라진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왠지 모를 아쉬움이 생깁니다.
하효명님의 댓글

회원님들은 만약 전쟁이 나서 가족들이 뿔뿔이 헤어져야 한다면
다시 만날 약속 장소를 어디로 정하시겠습니까?
6.25 때 남으로 피난 오신 분들이 다시 만날 약속 장소를
영도다리로 정한 분들이 많았나 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매일 영도다리에 나와 가족들을 애타게 찾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을 못 만나자 슬픈 일을 저지른 분들도 있었습니다.
정오가 되면 먼지를 아래로 쓸어내리며 다리가 서서히 서고
많은 사람들이 시간 맞춰 모여 구경하곤 했었습니다.
빨리 빨리 나라에 사니
빨리 빨리 없어지고 빨리 빨리 생기는 일을 감내하고 사는 수밖에 없나 봅니다
손현님의 댓글

영도...
제 어머니 고향이신데.
어린 시절 거기서 사셨다더라구요.
차로 한번 지나가본 적은 있습니다.ㅎㅎ
박상덕님의 댓글

어릴적 부산에 몇년 살면서 자주 가보던 곳인데....
이제 저 다리도 역사속에 묻히는군요...
서상희님의 댓글

기억에는 없지만 제가 어릴때는 전철(Tram)도 다녔다네요. 조만간에 MP들고 사진찍으로 한번 놀러가야되겠네요.
김기현님의 댓글

제가 좀 많이 어렸을적에 ,
그러니까 거의 미취학 아동이었을 즈음,
부산가는 기차는 시커먼 증기 기관차도 있었고,
영도다리가 올라갈적엔 무슨 사이렌 소리같은 것도 들렸던것 같은데..
이모님이 부산에 사셔서 어릴적 부산에 몇 차례 다녀간 기억이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유난히 영도시장에서 고래고기도 많이 팔았던것 같던데...
성인이되서는 출장으로 부산을 수시로 오갔지만,
업무와 술자리외에는 별 새로운 기억이 없네요.
아!
오륙도가 보이는 해운대의 오래된 호텔의 바닷가쪽 방도.......
..
...
이영준님의 댓글

예전 이모부께서 영도 청학동 청학교회에 목사님으로 시무하셨기에
중1 때부터 거의 매해 부산을 찾았었습니다.
완행열차 타고 부산진역까지 열대여섯 시간 걸리던 긴 여행이었는데...
그 때 저 영도다리 아래에서 망둥이 낚시를 하곤 했습니다.
종일 서너 마리 잡았던 기억이...
출출하면 광복동 할매집 회국수로 요기를 하던 그 때가 생각납니다.
요즘도 부산엘 가면 저 영도다리엔 꼭 가봅니다.
물론 할매집 회국수도 꼭 먹고옵니다.
영도다리도 보고싶고...
회국수도 먹고싶고...
갑짜기 부산에 가고싶어집니다.
김인택님의 댓글

제가 부산에 처음으로 가본곳이 영도다리였습니다
그러니까 꼭 35년전입니다
그시절 제모습이 아련합니다....
전수원님의 댓글

이해가 가지전에 꼭 한번 들러야 되겠군요
남성훈님의 댓글

어제도 이곳을 지나왔지만 사진으로 담아본적이 없네요.
조만간 기록을 남겨야 될것 같습니다.
김용수JKT님의 댓글

하하하하
영도 다리 제 아버님께서 화난 할머니의 빗자루 세례를 피해 도망치며 건너시던 다리라 들었었습니다. 꽤나 말성꾸러기셨나 봅니다
그런저런 얘기를 해주시던 할머님이 그립군요 ^^
無限/박성준님의 댓글

고등학교 방황하던 시절 보름을 지냈던곳이 태종대였죠.
그 이후 매해 열두번씩 가는곳이고 갈때마다 지나면서,
영화 '친구'를 회상 하곤 했는데요...ㅎㅎㅎ
'조오련이 하고~ 바다 거북이하고~... 누가 더 빠르겠노~??'
'우리집에 비디오 있다!!'
'무슨 비디오??'
철거 된다니 아쉽네요...
2월말에나 가볼수 있을텐데..;;;
그나저나, 이영준 선생님 올려주신 회국수 정말 맛있게 보입니다!!!
한국 가면 도움 요청 하겠습니다...^^
지금은 아쉽지만 팔도 비빔면으로...ㅠㅠ
사진이 너무 궁색 한가요???ㅎㅎㅎ
신태호™님의 댓글

영도다리라....제가 태어난 곳이군요.....
어린 시절 말 안듣고 말썽부릴 때 마다 엄니께서 영도다리에서 절 주워서 기르셨다고...
소시적에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가출을 결심한 적도 있었다는...^^;;;
후다닥~~
장욱님의 댓글

아니 신태호 선배님이랑 저랑 혹시 형제?
저도 영도다리 밑에서 주워다 ...
벌써 오십몇년 전 이야기입니다.
백몇층 짜리 건물 짓는다는 롯데 고집 때문에 결국 철거되고 마는군요
얼마 전에는 어릴 때 아버지, 어머니 손 잡고 다니던 청탑그릴에 가보았더니 집기도 없어진채 문이 닫혀 있고 ...
그래도 저희들 기억 속에나마 남아 있는걸 다행으로 여겨야겠습니다.
그런 기억마저도 가지지 못한 세대도 있을터이니
강웅천님의 댓글

저도 다리밑 출생인데 ^ ^
누가 만들었건 추억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것을 걷어 낸다니 아쉽겠습니다.
새로 만들면 편리하고 커지긴 하겠지만 영도다리는 기억에만 있겠군요.
거기다가 회국수까지 곁들이니 고향생각이 절로 납니다.
박성준님처럼 팔도 비빔면이라도 하나 끓여야겠습니다.
최민호님의 댓글

다리가 들리는 모습을 봤다는 것은 벌써 세상을 오래 살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인가...
어릴 적에 시내 중심가로 나가는 것은 중대한 일이 아니면 좀체 나가기가 힘든 곳이었는데,
뭔 일이었던지 영도다리가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다리가 들리는 모습을 몇번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르스브라더스"같은 외국 영화에서 조차 다리가 들리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콩콩 뛰는
경험도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어릴적 부산에서의 가장 소중한 이미지들은 영주동 메리놀병원에 갔다가
보수동 책방 골목 건너편에 있던 가마솥을 여러게 놓고 고동을 삶아 팔던 집들이 줄지어 있던 곳에
어머니와 자주 가던 기억과 과거 서면 로타리에 있던 4.19기념탑 아래로 전차를 타고 지나가던 기억입니다.
언제나 그 아래로 안지나가고 그 옆으로만 지나가는 것을 안타까워 하다가 기억에 딱 한번
그 밑으로 지나가게 되어서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도 사진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지금 정말 소중한 보물 같은 자료가 되었을텐데...
그때 내 나이 국민학교 입학도 하기 전이었다는... ^.^
영도다리가 다시 들리게 되었다죠? 철거 운운할 때는 언제고...
김선근님의 댓글

제가 "곧 철거"이라고 표현하였지만 길게 보면 약 2년후 정도 되겠죠?
해방후 6.25...
당시는 영도를 육지로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가 영도다리였나 봅니다.
물론 이 다리위로 전차도 다녔구요,
전차 종점이 영도 영선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기념 비석 (?) 하나 정도 밖에 없습니다.
6.25를 피해 부산으로 모이고, 그 중 이 다리와 애환을 공유하신분들이 50만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그 분들의 철거 반대로 수년을 끌어 오다 , 철거후 재설치하는 다리는 일주일에 2번 든다는 조건으로 철거가 확정되었답니다.
이 영도다리도 1930년대에 만들어 졌다니깐, 바르낙 I 또는 무코팅 엘마와 비슷한시기에 태어났나 봅니다.
이 다리도 태어날때 다리밑에서 주워와서 만들었을 것 같다는 추측이...ㅋㅋㅋ
하기야 태어 날때 제왕절개를 거치지 않으신분은 모두 다리 밑에서 주워 온건 사실이죠
이효성님의 댓글

영도다리는 제가 태어나고 살았던 곳과 거의 반대 끝에 있어 추억이 없군요,
다만 과거의 것들이 부정되고 다시 새로운 것으로 채워 져야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사람들은 어쩌면 그리움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윤기를 얻고 살
아 가는 데 그 근원이 소멸되어 진다는 것은 영도다리와 함께 동 시대를 살았
던 분들에게는 비극이 아닐런지요.
동대문 운동장도 그런 처지에 놓여 있다고 들었습니다. 도시설계 전문가들
에게는 이래 저래 할 말이 많겠지만 곧 추억의 저편으로 사라져갈 영도다리
를 생각하니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가까이 계시니 종종 추억에 남을 좋은 사진들 틈틈히 담아 주셔야 겠습니다.
팀버스/이상길님의 댓글

저는 서울 토박이이지만, 부산은 대략 200번 정도는 다녀온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는 피난생활을 부산에서 하셨구요.
얼마 전에 근 5년여 만에 다녀왔는데.....광안대교로 해운대를 들어가다 보니
정말 엄청나게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갈치 시장도...부산역도...해운대 쪽은 대단하더군요.
조선비치 호텔이 그나마 정겹게 느껴지니.....극동호텔도 재개발에.....
이제 영도다리도 없어진다니 .....저도 사진 찍으러 한 번 가 보고 싶어집니다.
듣다보니 요즘 달맞이 고개에 여러 문화 예술쪽 개인 투자자들이 .....
몇 년정도 지나면 해운대와 연계된 명물 거리로 변해 갈 것 같기도 합니다.
아뭏튼 개발도 좋지만 아쉬움도 남는 것 같습니다.
안승국님의 댓글

참으로 오랫만에 영도다라를 보게됩니다...피난때 부산에 부모님과 충무동에 살았는데
어릴적 충무동에서 영도까지 자주같다왓다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어느정도의 거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릴적 꽤나 멀었던 기억으로 남아있읍니다....
한번은 다리중간쯤에서 싸이렌이 울려 죽어라고 뛰어 건넜던 기억이 납니다....그리고 다리는 들어 올려지고 했었는데.....
추억속의 영도다리 한번 가 보고싶어집니다....감사합니다...
無限/박성준님의 댓글

어제 팔도 비빔면에 이어 오늘 먹은것...;;;
갑자기 매운 음식에 탄력 받아버려서,
이른 아침에도 불구 하고,
떡볶이를 아주 맵~게 만들었습니다...ㅠㅠ
헉헉~!! 거리면서 먹는데, 콧등과 등줄기에 식은땀이 막 납니다...^^;;;
건조한 피부엔 떡볶이를 드십시다~!!!ㅋㅋㅋ;;
혹시...불량식품??ㅠㅠ;;;
최민호님의 댓글

부산의 대표적인 먹거리 중의 하나인 당면국수와 이영준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할매회국수입니다.
(사진이 좀 두서가 없군요. )
이영준님의 댓글

할매집 회국수...
마지막 빈 양은그릇이 인상적입니다.
부산에 꽤 드나들면서도 당면국수는 아직...
회국수 먹느라고 다른 명물을 맛볼 틈이 없었나 봅니다.
조만간 부산에 한번 내겨가야겠습니다.
서병수님의 댓글

고등학교 시절 3년동안 넘나들었던 다립니다.
수년전에 영도다리를 없앤다고 해서 반대 서명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영도 다리옆 곰장어집, 아직도 자갈치쪽에서 노점으로
팔고 있는 고래고기집이 생각납니다. 고래고기 참 맛있습니다.ㅎㅎ.
無限/박성준님의 댓글

최민호 선생님 올려주신 사진들을 보니,
오전에 먹은 떡볶이가 채 소화도 되기전에,
또 매운것이 당기는군요...ㅠ_ㅠ;;
외국에 있는 자에겐 고문 입니다..음식고문...ㅎㅎㅎ;;
할매집회국수...여기가 도대체 어디쯤 인가요??ㅠㅠ
김봉섭님의 댓글

부산에 몇번 가보지는 않았지만 영도다리가 열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앨범에서 본적이 있는데 찾지를 못하겠습니다.
올려주신 사진과 함께 회국수에 얽힌 이야기도 감사합니다. 모든것이 사라져간다는것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지충구님의 댓글

저는 다리는 봤는데 들리는걸 못봤습니다. ㅜㅜ
최민호님의 댓글

오랜 만에 다시 사진 한번 올려 봅니다.
영도다리 밑은 제가 최초로 야경 사진을 촬영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때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 추운 겨울날 어린나이에도 불구하고 사진에 대한 열정에 칼같은 바닷바람도 추운줄 모르고
열심히 셧터를 눌렀던 것 같았는데. 1컷에 3분정도 노출을 주었으니 10컷 만 눌러도 30분인데...
솔직히 외투도 없이 교복 만 입고 지금 하라고 한다면... 자신 없습니다. ^.^
이영준님의 댓글

제가 1970년에 점을 딱 한번 본 적이 있는데...
맨 아래 사진의 계단 오르는 아줌마 왼쪽에 보이는 집입니다.
부산 친구와 둘이 지나다 호기심에 들렸었는데
긴 수염을 가진 풍채가 멋있는 할아버님이셨습니다.
지난 번 지나가며 슬쩍 들여다보니 당연히 다른 분이 앉아계시데요!
저 코너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전어 구워먹는 맛도 일품인데...
윤병식님의 댓글

검색을 해보니 영도다리는 34년 3월에 준공, 66년 9월 부터 개폐가 중지되었다고 합니다.
다리의 나이는 그러니까 73세...
인간의 수명기준으로도 몇년은 더 살아야 평균이 될텐데, 벌써 퇴물이 되서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는군요.
이종원(JW Lee)님의 댓글

부산 영도에 2년 동안 살고 있읍니다만...우리 클럽에는 부산을 잘 아시는 분들이 정말 많군요.
김선근님의 댓글

원 작성회원 : 이종원(JW Lee)
부산 영도에 2년 동안 살고 있읍니다만...우리 클럽에는 부산을 잘 아시는 분들이 정말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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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유일하게 6.25를 피해간 도시가 부산입니다.
그러다 보니 전국에서 많은 피난민들이 부산행을 하게 되었죠,
대부분 귀향하여 현재는 20만명도 채 안되지만,60년대 중반 까지만 하여도 피난민들로 인하여 영도 인구가 50만명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戰禍를 피하여 모이신 분들,어려운 시기를 같이 했었기에 이분들에겐 많은 애환이 간직하게 되었나 봅니다.
영도뿐만 아는게 아니고 부산젠체가 6.25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다 보니 부산과의 인연을 가지신 분들이 현재는 전국에 흩어져 있습니다.
현재는 보잘것 없지만 그당시 영도다리는 과히 부산의 명물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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