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에도 수세식화장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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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박유영
- 작성일 : 07-10-17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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싶었던 雲鳥樓를 찾았습니다. 류씨집안의 고옥인데 명당의 터전에 아직
까지 옛 정취를 그런대로 간직한 몇 안되는 고택들 중 이름난 곳이지요.
그 날 그 댁에서 인상 깊었던 것 가운데 하나는 화장실이 수세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명문대택의 특이한 호사로구나하고 여기곤 그저 지나쳤는데 지난 주말
밀양시 산외면 밀양박씨 고가에서 다시 보았습니다. 조선시대이전에도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는지, 아니면 근대 이후의 양식인지, 또 얼마나 일
반화되었는지 슬그머니 궁금해집니다.
다른 회원님들 생각은 어떠신지요?
(김용준회원님은 반드시 답하세요!!)
댓글목록
김봉섭님의 댓글

사진을 보고 짐작컨데 옛어른들의 지혜가 번뜩이네요. 근데 이런형태는 처음봅니다... ^^
그나저나 으윽! 방금 점심 먹었는데... @.@
참... 김용준선배는 조금전 제 작업실에 들리셨다가 휭하고 외출가셨습니다.
공 명님의 댓글

이번 전국모임이 흥미진진해질것 같다는 생각이...으흐흐...
김선근님의 댓글

저도 난생 처음 구경한(?) 화장실 형식이었습니다.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
김용준님의 댓글

위 두 개의 이미지는 한국종합예술학교 김봉렬 교수가 쓴 <앎과 삶의 공간2>에서 경북 상주 ‘대산루’의
2층에 있는 간이 화장실(?)에 관한 설명이며, 아래 두 개의 이미지는 현재 문화재청장인 유홍준 교수의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에서 ‘경주 불국사(상)’의 매화돌에 관한 설명글을 발췌한 것입니다.
수세식 화장실에 대해 설명을 하자면 역사의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삶의 흔적으로 짐작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선 박유영님의 글에서 나온 바대로 ‘구례 운조루’와 밀양의 박씨고가에서 보았다고 하는데 저는 지난번
구례 운조루에 갔을 때에는 차마 저는 화장실은 보지 못하고 와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위에서 보여 드린 대로 불국사에서 그런 유구가 있다니 믿고, 믿지 않고는 우리 회원님들이 결정 해야 할 듯
싶습니다.
다만 조선시대 궁궐인 창덕궁 침전인 대조전에 수세식은 아니지만 실내 화장실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이는 일제 침략기에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궁궐 정전은 물론 침전 등의 내부공간을 수리 하면서 화장실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수세식은 아닙니다.
요즘 공사현장에서 설치하는 이동식 화장실 구조로 하부에 커다란 통을 넣어 놓았다가 바로 치우던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치우는 방식이었으리라 생각 됩니다.
근대건축에서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오면서 대, 소변기가 분리되고 정화조를 설치하자는 운동이 시작되는 것이
1920년대로 보고 있는 만큼 그 시기에 상공업과 광작농업으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지방 중소지주계층 또는
사대부가에서 주택을 건축하면서 자기 신분과시적인, 그리고 누구네 보다 나는 더 커야 한다는 생각으로 경쟁적
으로 기둥이나 대들보의 크기를 키운다던지, 높이를 키우고, 사랑채도 일반적인 칸수 개념을 떠난 건축이 이루어
지게 됩니다. 물론 주택의 내부 공간을 구획하여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오게 되는 때도 이 시기로 보고 있습니다.
ㅎㅎㅎ
그 시기에 지어진 주택들이 구례 운조루는 물론 청도 운강고택, 산청 남사마을 최씨가옥, 경기 김기응가옥, 여주
김영구 가옥등 여러 곳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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