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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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명기
- 작성일 : 07-09-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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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새벽에 뭔가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에 일어나 개를 혼냈다. 식탁으로 기어 올라가 남은 음식을 훔쳐 먹다 유리잔을 깬 것이다. 거리를 헤매는 것을 주워온 탓일까? 개에게는 유기견의 습성이 남아있다. 집안 쓰레기통 뒤지는 버릇을 고치는데 한참 시간이 소모된 것처럼, 이제 음식 도둑질 없애기에 실랑이를 벌여야 할 것이다.
결국 실험은 실패로 끝났다.
한참 어려운 시기를 통과할 때, 숲에서 만난 인연들이 있었다. 그 중 둘을 아우로 삼아, 힘들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추억을 만들며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가까운 어른의 도움으로 사무실을 얻어 일을 함께 한 적도 있었다. 곤고한 날에, 나 혼자 몸도 버거운 시절에, 기꺼이 그들의 뒤를 돌보았다. 그랬기에 지금 이 새벽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놈은 지급해야 할 공금을 횡령하여 몇 달이나 속이다가, 상대 업체로부터 전화가 오는 바람에 모든 것이 드러났다. 나는 나를 믿고 사무실을 열어주신 어른께 드릴 말씀이 없었다. 놈이 보는 앞에서 고소장을 쓰고, 기일을 주었다. 공금횡령이 어떤 처벌을 받는지는 대략 알테니 기일내로 돈을 갚아 드려라. 그걸로 인연은 끝났다. 아직 연락은 없다. 필경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보다는, 나를 원망하고 있으리라.
또 한 놈은 사업이 어려워지자 새로운 곳에 취직을 시켜 주었다. 어디에 있든 우리는 함께 일하는 것이니 염려 말아라. 그리고 그는 예전에 내가 꾸며놓은 기획서를 대충 주물러 다른 곳에 제출하여 일을 따냈다. 그 기획서는 처음 기획을 한 나부터, 내 주위의 몇 분이 함께 노력을 기울인 일이었다. 그 놈은 기획서에 쓴 오자(誤字)까지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베낀 것이니 알 수가 없겠지.
아니 어떻게 된 거예요. 아직도 연락이 없어요? 기획에 참가했던 분이 내게 물었다.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어이가 없어요. 그 사람이 그럴 수 있나요? 나는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내 안목이 부족한 탓이니 창피하고 몸 둘 바를 모를 뿐이었다.
기다렸다. 내가 그 기획서를 다른 업체에 제출할 때, 나는 그놈이 일하는 직장과 함께 추진하려고 했었다. 공동으로 추진하는 란에 꼭 그놈이 근무하는 곳을 기입하여 제출했다. 그것이 사람 사는 인정이 아닌가? 그러니 그놈이 어찌 일을 처리하는지 지켜보았다. 이제 그놈은 그 기획을 마치 자신이 한 일인 양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옳지 못한 방법으로 뒷돈을 챙기는 것도 알았다. 근본이 없는 놈이라서 그래요. 함께 기획했던 분은 그렇게 탄식했다.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디어 내고 생각하는 바를 이루어 기쁨을 나누고자 하는 모든 시도가 배신과 도용으로 끝났다. 그래서 부처까지도 머리 검은 짐승을 도우면 안 된다고 경고했던 것인가? 몇 년 동안이나 내가 준, 정과 의리는 결국 실수가 되어 버렸다. 뭐가 잘 못된 것일까? 이제는 나의 어리석음을 돌아볼 시간이다.
기저상태로 가라앉아 있어도 역시 희망은 절망 속에 피는 꽃이다. 그건 진리다. 요즘 비로소 제대로 된 반듯한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든다. 나 역시 같은 실수를 반복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어쨌든 비싼 수업료를 내며 삶을 꾸준히 수정해 가고 있는 것이다. 바쁜 길이 조금 늦어진다고 해도 나는 멈출 사람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소파 밑으로 숨은 개를 바라본다. 개도 반들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결국 잠들지 못하고 거실에 앉아 새벽을 기다린다. 새벽은 아직 멀다.
천당(天堂) 아래 분당(盆唐)에서...
www.allbaro.com
[사진 : 모래알]
LEICA V-LUX1
댓글목록
無限/박성준님의 댓글

아...왜인지 모르지만 제가 가슴에 새겨야할 내용 같습니다...
유민수님의 댓글

주려면 바라지말고 주어야하고,
죄를 지면 추상같이 다스리고,
배신자는 등 뒤에서 칼맞는 아픔을 가르쳐준다.
하나하나는 맞는말 같으데 합쳐놓의니까 이율배반적인것같다.
김명기님의 댓글
주변에서 말릴 때, 저는 저 자신을 믿고 그들을 믿었지요. 사람은 변하지 않는가 봅니다.
비인부전, 비슷하지 않으면 어울리지 말아라 등 선현들의 말씀이 뼈에 새겨지는 요즘입니다.
김주홍님의 댓글

저도 그런 친구가 한 명있습니다
....그 친구가 그렇더군요. 제모습을 보고는 자기주위에 존재하는 공기같은 녀석이라면서....
모든 사람들이 그친구녀석이 사고를 칠때 뭐라고 해도 저는 그저 바라만 보고 지냈거든요. 그넘 때문에 그 녀석의 군대시절 후임에서 부터 선임들까지 어떻게 제 번호를 알아냈는지? 한 두푼도 아닌 돈을....그때는 그친구녀석이 원망스럽기 보단 무엇때문에 그랬을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정신차리고 무언가를 한다고 하는데, 제발 남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변하지 않더라도, 그리고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그냥 그녀석이 밥한끼 사달라고 하면 사줄수 있는 친구이고 싶네요. 명절인데, 집에는 인사차라도 들어갔는지 궁금합니다.
김명기 선배님 글을 읽고 있으니, 그 친구가 생각이 납니다.
김명기님의 댓글
실은 이 글을 다른 곳에서도 올렸는데, 훨씬 스펙터클한 일을 당하신 분들이 많으시더군요, 저더러 몸 안 상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다른 일은 몰라도 정말 사람만은 가려서 만나고 사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추석 명절 잘 지내시기 바랍니다.
오규진님의 댓글

저도 이런 종류의 얘기를 꺼내면 다들 사연이 하나씩은 있더군요.
어쩌면 우정은 배반으로 완성되어야 하는것인지도...
그래도 개는 물기는 하지만 등 뒤에 칼을 꽂지는 않으니 다행이네요.
無限/박성준님의 댓글

남들 도와주기를 밥 먹듯 했던 저로서는 지난 사건들의 경험이 도움이 됬는지,
비슷한일 격을때마다 가슴에 새기고 새기고 또 새기고...
요즘은 좀 덜합니다.
그냥 덜...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없나봐요...ㅎㅎㅎ
Kim정수님의 댓글

전 다행히 그러한 경험은 아직 없지만..참 슬픈일입니다..
글 참 잘쓰시네요..그리고 꼬릿말의 "사진은 타임머신이다....어쩌다 심장을 한 입 베어 먹힐 수도 있다." 정말 멋진 말입니다.
손영대s님의 댓글

http://dory.mncast.com/mncHMovie.swf...4502&skinNum=1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동영상 입니다..
인간은..짐승보다 못 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어떤 면에서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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