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처 즈미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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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손현
- 작성일 : 07-09-1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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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동안... 몇 주 전에 자금 사정으로 보낸 elmar 50mm가 사무치게 밟혔다. 급히 노트북을 사야해서 자금이 필요하긴 했는데, 실은 고백컨대 elmar의 강한 개성에 적응 못했다. 까칠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3롤을 써보고 단기간에 결정을 내렸다. 나중에 좀 내공 쌓이면 그 때 다시 보자. 무엇보다 통장에 '나 좀 써줘'라고 돈이 아우성칠 때! 그 때 다시 똘똘하고 이쁜 녀석으로 데려오자. 한 30분 동안 매물 올라온 elmar를 보며 혼자 마음을 줬다, 닫았다 추스리고 있는데... 옆을 쓱- 보니까 뭉툭한 summicron 50mm가 묵묵히 M에 물려 있다. 순간적으로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진을 찍은 지 좀 오래되었다. 중간에 TC-1 테스트롤 제외하고. 한 3주? 한달 전에 부산을 다녀온 이후로 일 땜에 틀어박혀 계속 모니터와 눈싸움만 하고 있었으니... 한 3주가 넘었나보다. 며칠 전엔 도저히 답답해서 이것저것 다 때려치우고 명동으로 나갔다. 간만에 거의 신들린 느낌으로 찍었나보다. 무슨 터미네이터처럼 내 눈 안에 50mm 화각이 장착이라도 된 줄 알았다. 웃긴 건... 나원참... 수동 필카를 언제 그리도 능숙하게 다루었던 적이 있었나? 갑자기 즈미크론의 (엘마에 비해) 간편한 조리개와 셔터를 돌리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은 거다. 무엇보다 즈미크론이 손에 착착 와서 감기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실은 그날 이후로 즈미크론과 몇달 만에 처음으로 情이란 게 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느낌이다. 엄마한테 관심 못받고 자란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엄마랑 서먹해졌다. 근데 엄마가 그 아이를 데리고 하루종일 뒹굴면서 놀다보니 어느새 그 서먹함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솔직히 이 녀석 영입하고서 한번도 100% 올인해서 빠져본 적이 없다. 코끼리 코처럼 생긴 묵직한 모양새와 몇 달동안 내 손에 익숙치 않아서 이리저리 헛돌던 녀석이었다. 우선은 "가벼운 RF카메라"와는 참 언발란스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에겐 무거웠다. M6에 즈미크론을 물려서 매일 들고 나가본 적이 없다. 자그마하고 여성스러운 엘마처럼 처음부터 착- 감기는 맛도 없었다. 허나 이 녀석이 군말없이 쭉쭉- 뽑아주는 결과물 앞에서는 난 찍- 소리도 못하는 초보다. 고백하자면, 즈미크론을 옆에 두고서 항상 즈미룩스나 엘마, 즈미타에 눈이 휙휙 돌아가고 있었다. 근데 신기하게... 그 날 이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난 이 아이와 꽤 오랜 시간을 함께 갈 것 같았다. 직감적으로 그걸 알았다. '나 카메라용 가방에요'라고 쓰여있는 빌링햄을 과감히 팔아 버렸다. 이유는 (나의 다른 소지품들과 함께) 언제, 어디서나 이 녀석과 함께 하기 위해, 어느 복장에도 어울리는 튼튼한 가죽쌕을 하나 구입했다. 여러 선배님들 말씀대로 기추는 있되, 기변은 없을 것 같다. 일단 나의 첫 렌즈이자, 조강지처 즈미크론 50mm와는.
댓글목록
김형배님의 댓글

50mm Summicron..
꽤 오랜 시간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듯 합니다..
헌데.. 조강지처.. 라는 말씀은? ^^
신 인수님의 댓글

조강지처가 방출되면 안되는디...ㅠ.ㅠ
손현님의 댓글

아무래도 저의 첫 렌즈이고, 우직하게 함께 해줄 것 같아서
'조강지처(糟糠之妻)'란 표현이 떠올랐나 봅니다.
또 오해가 생길 뻔 했군요. 저 남자 아닙니다. 흐흐흐-
JK이종구님의 댓글

즈미크론이 조강지처라는데는 동의 합니다만, 그럼 엘마와 룩스들은 어찌 불러야 하는지요. 많이 서운해 할 듯. ^^
강웅천님의 댓글

'조강지처'하니 편안하고 변함없이 주는 신뢰가 함께 떠오르네요.
그러나 50mm 즈미크론은 때론 감각적이고, 자극적이기까지 해서 조강지처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
제게는 50mm 즈미룩스 pre-asph가 조강지처 같은 렌즈입니다.
김병인님의 댓글

문제는 첩욕심이 너무 많다는... ^^;
김용수JKT님의 댓글

원 작성회원 : 김병인
문제는 첩욕심이 너무 많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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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하
선생님 ^^
3천궁녀를 거느려도 아직도 배고프다 하실듯 합니다 ^^
김기현님의 댓글

35mm건, 50mm건 summicron이 조강지처와 같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첩실을 얼마나 거느릴지, 또는 조강지처를 버릴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일 것이고....
손현님의 댓글

첩 욕심... 3천 궁녀......
정말 와닿는 표현들이네요. 흐흐-
다른 분들의 조강지처같은 렌즈들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꼭 첫 렌즈는 아니더라도 평생 함께 할만한 렌즈.
설문을 한번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드네요...ㅋㅋ
JK이종구님의 댓글

50미리 즈미크론 1세대(리지드)
35미리 즈미크론 1세대(M3용 6군8매)
전 조강지처가 둘이네요. ㅋㅋ 다른 M렌즈는 없습니다.
김형배님의 댓글

제 조강지처는 무슨 렌즈일까 고민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50mm Summilux ASPH 이 놈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손현님, 남자 아닌거 잘 알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