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의 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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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장지나c
- 작성일 : 07-09-10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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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언제적인지도 잊어버릴 만큼 아주 옛날 브라질 남쪽 촌동네에 호세라는 6살짜리 소년이 살고 있었다. 호세의 부모님은 그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고 어린 호세는 인색한 숙모가 맡게 되었다. 숙모는 돈이 많았지만 조카를 위해 돈을 쓰는 일은 거의 없었다. 호세는 애정이란게 어떤건지 알지 못했기에 삶이란 이런 거라 여겼고 자신의 처지를 화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숙모가 사는 곳은 부자 동네였고 숙모는 동네 학교 교장에게 월수업료의 10분의 1만을 받고 호세를 학교에 넣어 달라고 떼를 썼다. 만약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시장에게 가서 항의할 거라고 협박을 했다. 학교 교장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교장은 선생들에게 호세한테 면박을 주라고 일러두었다. 그래서 호세가 억울하게 생각하고 불량하게 나오면 그걸 이유로 학교에서 내쫓아버릴 셈이었다. 하지만 호세는 애정이 어떤건지 알지 못했기에 삶이란 이런 거라 여기고 그걸로 화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크리스마스 이브가 왔다. 그 동네 신부가 휴가를 받아 없었기에 학교 학생들은 모두 멀리 떨어진 어느 동네 성당에서 미사를 드려야만 했다. 미사를 드리러 가는 길에 아이들은 모두 다음날 아침 자신들의 신발에 숨겨져 있을 물건들에 대해 디야기했다. 유행하는 옷, 장난감차, 쵸콜렛, 스케이트, 그리고 자전거 같은 것은 말이다. 아이들은 특별한 날 입는 옷들로 잘 차려 입고 있었다. 호세만 빼고. 호세는 매일 입어 누더기가 된 옷과 호세에겐 너무 작고(호세의 숙모는 호세가 4살 때 샌들 한 컬레를 주고는 10살이 되기 전에는 새 신발은 없다고 말했다) 낡은 샌들을 신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호세에게 왜 그렇게 구차하게 입고 있냐고 물어보고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옷을 입고 다니는 친구가 창피하다고 말했다. 호세는 애정이란게 뭔지 몰랐기에 그런 말로 화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성당에 들어가서 오르간 소리를 듣고 환히 켜진 불빛과 잘 차려 입은 사람들과, 한데 모인 가죽들과 부모들이 아이들을 안고 있는걸 보자 호세는 살아있는 생물 중에서 가장 비참한게 뭔지를 느꼈다. 성체배수가 끝난 후에 사람들은 삼삼 오오 떼를 지어 집으로 돌아가고 호세는 성당 입구에 앉아 흐느껴 울었다. 호세는 애정이 뭔지는 알지 못했지만 혼자있다는게 뭔지, 모든 사람에게 소외당하고 버려진게 어떻다는걸 이제는 알아버렸다.
그 순간 호세는 자기만큼이나 초라해 보이고 신발도 안 신은 어린 아이가 옆에 있는 걸 보았다.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였지만 성당에 오기 위해 아주 멀리서 걸어온 듯 해보였다. 호세는 " 이 아이, 발이 아주 아프겠네. 좀 덜 아프게 내 샌들 한 짝을 벗어줘야지 "라고 생각했다. 호세는 애정이란게 뭔지는 몰랐지만 아픔이 뭔지는 알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그 보다 더 고통받지 않았으면 했었다.
호세는 아이에게 신발 한짝을 주고 다른 한짝만을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숙모는 신발 한짝 없이 돌아 온 조카에게 내일까지 그 신발 한짝을 찾아오지 않으면 혼찌검을 내겠다고 야단을 쳤다. 호세는 두려움에 떨면서 침대로 갔다. 아마도 호세는 숙모의 혼찌검이 뭔지는 알았나보다. 걱정 때문에 잠에 들지 못하다 겨우 꿈속에 떨어지려던 때, 호세는 거실에서 왁자한 소리를 들었다. 숙모도 놀라서 뛰어나와 무슨 일이냐고 호세에게 물었다. 거실로 간 호세는 멍하게 자신이 아이에게 벗어준 신발 한 짝, 온갓 종류의 장난감, 옷, 자전거등이 거실 한 가운데 있는걸 바라 보았다. 동네사람들이 몰려와 호세가 아이들이 그 다음날 받아야 할 선물들을 훔쳐갔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때 미사를 집전했던 신부가 갑자기 나타났다. 신부는 성당 입구에서 금으로 만든 옷을 입은 아기 예수상을 발견했는데 그 예수상에는 신발 한짝만이 신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신부의 말이 끝나자 주변은 조용해졌다. 동네 사람들은 하느님과 그 기적을 찬양하고 숙모는 호세에게 눈물로 용서를 구했다. 호세의 마음엔 사랑의 의미와 즐거움이 가득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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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22일 [HOY]지에 크리스마스 특집으로 실린 파올로 코엘류의 동화랍니다. 선보는 조건중 이것만은 기필코! 인 딱 한가지가 '(개신교+구교)기독교인이 아니어야 한다'라는 왕심술 울언니가 개신교인인 제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작년에 번역했어요. 저희 언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은 처음 받았었답니다. 그래서 많이 기뻤습지요. 아직 한국엔 번역본이 들어가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답니다. ...인줄 알았는데요. 2006년 크리스마스에 [조선일보]에 잽싸게 실렸다네요. 아직 크리스마스 시즌은 멀었지만 갑자기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생각이 나서리... 종교를 떠나 '위로, 나눔, 화해'의 의미가 오늘 제게 강하게 왔거든요. 함께 나누고 싶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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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제목은 '마음이 따뜻한 나무'이고요. 제 친오빠같은 신부님의 사제 서품식 상본의 그림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당시엔 부제님이셨던)신부님과 꽤 긴 시간 기도로 나누면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위로'와 '나눔'이 저희 기도 내용이었구요. 또 아래의 곡은 다른 신부님의 작곡, 연주인데요. 제목을 제가 붙일 수 있는 영광을 받았어요. 작곡자의 이름은 소개하길 원하지 않으셔서 곡만 슬쩍 올립니다. 아래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음악을 들으실 수 있어요.

incompletion
댓글목록
김주홍님의 댓글

좋은 글 읽었습니다.
파올로 코엘류가 지은 동화를 이렇게 또 접하게 되다니....
감사합니다.
김형배님의 댓글

감동적인 글입니다..
글은 감동적인데..
말미에 첨하신 내용이 약간 헷갈립니다..
개신교 신자이시라는 점과, 친오빠같은 신부님..
종교의 정체성 관련해서 약간 헷갈렸습니다.. 죄송합니다.. ^^
이영이님의 댓글

아침에 좋은 선물을 받은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박경복님의 댓글

좋은 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루 종일 호세를 생각할것 같습니다.
장지나c님의 댓글

주홍님, 영이님 , 경복님 /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배님 / 음.. 형배님 말씀을 듣고 '장미는 다른 이름이어도 좋은 향을 가졌을 거다'...라는 이야기가 제일 먼저 생각났어요. 형배님께서 말씀하신 '종교적 정체성'이 정확히 뭘 말씀하시는 건지 전 잘 모르겠어요. 그러니 글의 맥락으로 느낀 제 생각을 쓸께요. 기분 나빠하지 않으심 좋겠는데...(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예민한 주제라 조심스럽네요 -_-;;; )
제 생각엔 전 개신교인데 천주교 신부님과 친하게 지내는 부분을 말씀하신 거 같거든요. 전 음... 언젠가 개신교에선 '하나님'이라 부르는게 옳다, 천주교에선 '하느님'이라 부르는게 옳다,하는 공방전을 본 적 있는데요. 그때 뭐라고 부르는게 뭐가 중요해?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중요한건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얼마나 그분을 닮아가려 애쓰는가, 아닌가? 하고요.
개신교의 배타성이 넘 싫구 우리나라의 교회 현실이 넘 욕나오는게 많아서 오래전에 천주교로 개종을 하면 이 괴로움이 사라질까... 하구 고민 상담을 한 적 있었는데요;;; 그 신부님이 막 웃으심서 지나씨는 천주교로 개종해도 교리며 뭐며 (특히 여성문제에 대해)욕할 거 엄청 많을 거니까 개종은 무의미 하다고 하셨구 얼마나 하나님이랑 더 찐하게 사귈지, 그 궁리부터 하라고 하셨댔어요. 그 말씀이 옳다 느꼈구요. 그 후로 어떤 종파나 그런 것보다 어떡하면 뜻을 바르게 읽어서 실천하는가. 그게 제일 중요하고 또 그게 제 종교적 정체성이라 생각해요. 개신교 안에서도 '하나님'을 놓고 바르트는 '우리 위에 있는 하나님' 틸리히는 '존재의 깊이로서의 하나님', 본회퍼는 '중심에 있는 하나님' 그리고 몰트만은 '우리 앞에 혹은 오고 있는(?) 하나님'으로 존재에 대한 해석도 나뉘잖아요? (이론에 대해 무식한 제가 기억하는게 이 정도니까 그 외에도 훨 많겠죠?) 이런 나뉨들은 계속 알아가야 겠지만... 워낙 공부를 싫어라 하는 전 십계명의 의미를 잘 알고 지켜가는 것만으로도 제겐 매일 기쁘면서도 버겁거든요. -_- ;;;
그래서 전 단순하게 보려고요... 개신교의 어떤 종파든 구교든... 하나님 제대로 잘 믿어서 저땜에 그분 욕 안 먹게 하는게 제일 중요하게 느껴지고요. 천주교 신자든 개신교 신자든.. 그리고 불교나 기타등등의 다른 종교의 사람들도 그들의 교리의 말씀대로 얼마나 행하고 사는 사람인가,가 제겐 존경의 대상이랍니다. 그래서 제 친구이자 오라비인 신부님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많이 나누고 싶답니다.
정체성이 무엇인가 생각하느라... 길었죵? 헤헤.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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