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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에서의 하룻밤(사진 없는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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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임웅
  • 작성일 : 07-09-10 10:48

본문

** 갑작스레 결행하느라 사진을 찍지를 못했습니다.
** 제가 활동하는 다른 동호회에도 올린 글입니다.
** 조금 깁니다.

대략 2시쯤, 사무실에서 스케줄을 체크하며 오늘 오후와 내일 오전까지는 비워도 되겠다 싶었다.
그간 빼곡히 다이어리 To Do List를 채우왔지만, 빈칸도 때로는 필요함을 느낀다.

서둘러 책상을 정리하고, 몇일전 뉴스검색으로 우연히 본 곳을 찿아가기로 했다.
세심원...마음을 씻는곳이라.
우선은 이름에 끌렸고, 그곳 주인장의 마음 씀씀이에 끌렸다.
'전남 장성의 금곡마을에 위치한 세심원'
이것이 내가 그곳을 찿아가기위한 정보의 전부였다.
이것이면 되려니 했다.
네비게이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마음의 여유를 찿아보겠다고 떠나는 사람의 마음에 갈곳을 시간내어 찿아보고자 하는 여유가 남아있을리 없었다.
또한 이미 인터넷 뉴스에까지 실릴 정도이니 누군가 나보다 선수쳐서 도착한다면 나는 머나먼 외지에서 졸지에 잘곳을 잃어버리는 셈이 된다. 마음이 급했다.

사무실에서 나온 것이 3시 40분,
집에 도착하여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기고 나온 것이 4시.
그곳 주인장은 애초부터 이곳을 여러 사람을 위하여 무료로 개방해 놓았다 한다.
그러니 예의상 기본적인 것은 가져가야 되리라 생각했다.
'아니온듯 다녀가소서'
그곳 주인장이 툇마루 현판으로 걸어놓은 글귀이다.
숙박비도 받지 않는다 한다.
미리 연락하고 가면 된장국 한그릇과 반찬에 밥한그릇을 차려놓고 우렁각시처럼 보이지 않더란다.
위치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나온 나는 주인장의 연락처를 뒤져서 찿아볼 생각도 못했다.
오늘 저녁은 어디서 때우고 가야할라나보다.

떠나는 마음이 가벼웠다.
먼저 집사람에게 연락하여 어디좀 갔다온다 하니 순순히 그러란다.
아들놈과의 간단한 안부전화를 끝으로 나는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오늘은 파바로티가 운명한 날...
파바로티가 있는 그곳도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채널로 주파수를 맞추자, 파바로티의 죽음을 애도하며 생전 그의 노래들이 연이어 연주되고 있다. 그의 진가를 나는 알지 못하나 많은 이들은 안다 하니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이 사람과 동시대를 살았다는것을 고마와 한다는 DJ의 말은 동의할 수는 없으나 공감은 할 수 있었다.

오늘 오전, 운전석쪽 타이어의 공기압이 떨어져 있길래 카센타에서 바람을 보충했다.
먼 길을 떠나니 마음에 걸렸으나 휴게소에서 내려 요리보고 조리봐도 별 이상이 없는듯 했다.
그 곳에는 경정비 센타가 없었다. 다음 휴게소에 있단다.
다음 휴게소에 들렀다. 전문가가 보면 확실히 알겠지.
"계세요?"
"......."
"저..타이어 공기압좀 보려구요"
"정상입니다."
그 사내는 미처 '봐줘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뒤돌아서 사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다시 길을 잡았다.
좀 마음이 편해졌다.
서울에서 거리가 멀어지자 라디오는 지직거리기 시작했다.
BEE GEES의 CD를 튼다.
이 히트엘범은 중독성이 강하다.
HOLYDAY에서 몇번을 리와인딩 시키며 가사를 들어보려 했다.
참 좋아하는 곡이지만 가사를 들어보려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FIRST OF MAY는 멜로디와 가사를 동시에 들어가며 몇번을 리와인딩 시켰다.
씨익...웃음이 나온다. 전체적으로는 조금 우울한 내용인데도 말이다.
"WE USED TO LOVE WHILE OTHERS USED TO PLAY...."
'참 조숙한 녀석들이었군...'

출발할 때 내비게이션으로는 그곳 마을이 검색이 되지 않아서 '장성IC'를 목적지로 정해놓고 온 길이 이제 거의 종점에 다다랐다. 시간은 대락 7시. 가뜩이나 해가 짧아진 터에 하늘마저 구름에 가려 무척이나 컴컴했다. 목적지에 가까와질 수록 마음은 급해졌다. 길을 잃으면 어쩌나, 너무 늦게 도착하면 어쩌나...아니, 이미 너무 늦은것 같은데...
그리고 마지막 휴게소에 들렀다. 관광안내 부스는 이미 문을 닫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누군가는 알겠지 싶어 원두커피 한 잔을 사며 물었다.
"금곡마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죠?"
"아...저기 분홍색 유니폼 입은 분께 여쭤보세요"
상냥하게 안내해 준다.
분홍색 유니폼에게 같은 물음을 던졌다.
"초행길이세요?"
"네"
"따라오세요"
관광안내부스의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 불을 켜더니 관광지도 하나를 펼치며 안내해 준다.
"장성ic에서 나와서...어쩌구저쩌구...금방이에요"
난 믿지 않았다.
분명 금방 나오지 않을것이다.
항상 초행길을 가는 사람은 그렇게 느낀다.

도착하면 주인장에게 뭐라 하나...
"이 곳에 와보고 싶었습니다."
아니면 "지나가다 이 곳에 들렀습니다"
아니다...확실히 말해야 한다.
지나가다 들렀다면 따로이 목적지가 있는 터일테고, 그렇다면 그 곳에 묵는것이 그다지 절박하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절대로 난 그 곳에 묵어야 한다.
"이 곳을 찿아왔습니다."
그래 이것이 좋겠다.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그렇게 생각했을 때) 관광지도를 펼쳐들었다. 분명 포장도로다. 지방도 번호까지 있다. 끄트머리에 가서는 조금 모호할 것 같았지만, 지도로 보는 길은 단순했다.
따라 올라갔다.
아스팔트 포장이 끊기고 거친 콘크리트 포장길이 나왔다.
어느 정도 들어가니 차는 겨우 빠져나갈만 하고 사람이나 걸어다닐 듯한 길로 좁아진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든 듯 싶었다.

장성군의 축령산은 측백나무 숲으로 유명한 곳이다.
측백나무는 일본에서 건너온 외래수종으로 고급 건축내장재로 쓰인다 한다. 50여년전 이 나무의 가치를 알아본 임종수라는 분이 축령산자락에 조림을 시작하여 지금은 일본에서조차 견학을 올 정도로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한다. 밤이 아니었다면 내 눈에는 곧게 뻗어 자라는 나무숲의 모습이 보였으리라.

아주 가끔씩 나타나는 집들은 사람이 사는 민가같아보이지 않았다.
내가 지나온 집들 중 상여집도 있을지 모른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한참을 오르니 길가에 불켜진 집이 보인다. 卍자가 그려진 것으로 보아 암자 아니면 점집이 아닌가 싶었다. 방금 돋은 소름으로 웬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차를 세우고 헤드라이트를 미등으로 바꿨다. 사람이 저쪽에 보인다. 실루엣으로 보기에도 목발을 짚고 있는것 같았다. 그 사람을 향해 소리쳤다.
"계십니까?"
물론 계시는거 알고 소리치니 대답해달라는 뜻이었다.
"........"
"계십니까?"
빨리 대답해 달라는 뜻이었다. 발밑이 어두워 종종걸음을 치며 다가갔다. 갑자기 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간다.
'헉..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계십니까?"
발밑에 뭐가 있건 말건 뛰었다. 그리고 그사람이 문을 닫기 직전 문을 잡았다. 잠깐동안 혹시 귀가 먹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그는 보통사람에 비해 유달리 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형형한 눈빛으로 괴기스럽기까지 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 승려는 마치 나를 꿰뚫어 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그와는 걸맞지 않게 얇았다.
“저…금곡마을 가려는데요…”
이상하게 겁이 덜컥 난 나는 기어들어가듯 물었다.
“산을 넘어야 하는데…”
“이 길을 차로 넘을 수 있나요?”
“포장 되있어요”

젠장…믿지 말았어야 했다. 포장은…개뿔…
한 백여미터 포장길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비포장에 비는 부슬부슬 내리지, 차는 겨우겨우 지날갈 만큼 좁지, 내 차는 유달리 낮지…갈등에 갈등을 하며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그놈의 갈등도 옵션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에게는 옵션이 없었다. 헤드라이트 불빛으로도 모자란 판국에 차 돌릴 곳도 없는 이 좁은 산길에서 후진등에 의지하여 수백미터를 간다는 것은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이다. 측백나무의 번지르르한 나무껍질이 헤드라이트 불빛을 반사하며 마치 장승의 주열처럼 양 옆으로 늘어서 있었다.
‘내가 온 길이 맞기는 한건가?’

얼마 더 가다 보니 세갈래 길에 등산객을 위한 이정표가 나온다.
‘영화마을 1.5km’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바로 영화마을이다. 금곡마을에서 영화가 몇 편 촬영되었다 한다. 그래서 그렇게 이름 붙였다 한다. 차의 미터기를 0으로 맞추고 출발한다. 차체는 양옆의 잡풀들을 쓸며 겨우겨우 내리막을 끼익끼익 내려간다. 헤어핀 구간을 몇 개를 지나 겨우겨우 1.5km를 왔을 때쯤…

믿지 말았어야 한다. 이놈의 시골거리 계산법은 특이한 뭔가가 있음에 틀림없다. 늘상 그랬다. 산하나 넘으면 된다, 조금만 가면 된다, 거의 다왔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이 산하나 넘는거다. 여길 벌써 30분째 헤메고 있는거다. 그놈의 이정표는 1.5km라면서 당당하게 말해놓고서, 2km가 넘도록 도대체 인가라고는 보이지 않는 산길이다. 그래도 앞으로 나가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 문제다.
이와 비슷한 거리계산법이 몽골의 초원에도 있었다. 그들의 시간과 거리는 나의 그것을 항상 몇배씩 넘기기 일쑤였다. 조급했다.
2.5km를 가서야 희미하게 전깃줄을 볼 수 있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전깃줄이 있다는 것은 근방에 집이 있다는 말일 테니 말이다.



첩첩산중 두메산골은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태백산맥을 찍었지…
내가 택한 곳이지만, 오는 길은 좋기를 바랬다.

전깃줄이 나오고 얼마 가지 않아 불빛이 보였다. 마을이었다.
‘금곡 팜스테이…’
제대로 오긴 한 모양이다. 시간은 8시 30분.
첫번 불켜진 민가로 들어갔다.
“계십니까?”
중학생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고개만 빼곡이 내민다.
“세심원을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쩌~위로 한 십분 가시면 되요”
이번에는 정말로 믿지 않았다. 분명 30분 이상일 것이다.
“거기서 묵으려면 미리 연락해야 한다고 하던데, 제가 연락을 미리 안했거든요”
“…..”
“집에 어른 계시나요?”
“없는데요…”

다음 집으로 갔다.
노부부가 마침 마당에서 세수하던 중이었다.
“어르신, 말씀좀 여쭙겠습니다”
“세심원 가려는데요, 어느분께 연락드리면 될까요?”
“채판소한티 **&&??##”
‘음…..못알아듣겠네…’
“채판소요?”
어찌어찌 짜맞추어 새겨들었다.
최판수라는 분께 연락해야 하는데 그분 집은 아랫쪽의 초가집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미리 연락을 못드렸어요”
“연락 못했어?” 황당한 표정을 지으신다. 오늘 그곳에서 묵는 것을 포기한 순간이다. 조용하시던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한말씀 하신다.
“근디, 밥은 묵었는가?”
“아뇨, 아직…”
“그럼 여서 묵고가게”
할머니가 난처한듯 손사래를 치며 말씀하신다.
“밥 다 떨여졌어요. 저 아랫집에 밥이 남아있을랑가…원래 그집이 인부들 밥해는디, 낼은 인부들 쉬어서 밥이 있을랑가 모르겄네. 식은밥이라도 있을랑가…”
시골인심 다 사라졌다지만, 이곳에는 아직도 이런 정이 있었다.
“아녜요, 근처 민박집에 묵으면서 사먹으면 되요. 감사합니다”
두 노인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 것 같아서 급히 나왔다.


‘세심원에 묵는다’는 목표는 사실 이번 여행중 그다지 중요치 않은 과정의 하나일 뿐이었다.
‘산이네 민박’이라는 길가의 표지판이 보였다.
앞마당의 개 한마리가 근방에 차를 세우는 것을 보고 짖기 시작한다.
“이녀석아 짖지 마라. 여기 온 손님이다”
알아들을리 없었지만 한마디 하고 개짓는 소리에 마당으로 나온 주인을 보며 들어갔다.
“여기서 하루 묵어가려 합니다”
“아….네….이거 미리 연락하고 오셨으면 깨끗이 치워놓았을텐데…”
갓 서른을 넘겨보이는 젊은 부부와 어린 아이가 난감한듯 손을 맞는다.
“저녁을 안먹었는데, 밥 한그릇 먹을 수 있나요?”
“아직 안드셨어요? 찬이 없어서 어떡하나…”
“찬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방은 깨끗하고 밝았다.
소설책 몇 권과 CD플레이어, CD 몇 개가 비치되어 있었다.
바닥과 벽은 황토흙으로 발라 주황색을 띄었으며 천정은 측백나무 박공으로 되어 있었다. 방에 들어와 잠시 쉬며 옷을 갈아입었다.
‘새로 밥을 차리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
동네 산책을 나갔다. 누런 황토빛으로 포장된 길은 아마도 이곳 장성군에서 ‘영화마을’로 지정하고 깔아놓았나보다. 길 옆으로 ‘쏴아’하며 초가을 비에 불어난 개울물 소리가 들린다. 풀벌레 소리와 개울물 소리 외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찬은 생각보다 푸짐했다.
푸성귀 몇 개 나올 줄 알았더니, 제법 손 맞이하듯 굴비 한마리도 구워놓고 반찬을 담은 접시들은 정갈하기 그지 없었다. 밥상을 물리고 커피 한잔을 마셨다. 그제서야 몸과 마음이 여유로왔다.

올 때 가지고온 책을 펼쳤다. 구들장이 후끈했다. 아직은 여름기운이 덜 가셔서인지 방이 더웠다. 측백나무 툇마루로 나갔다. 밝은 전구 하나가 바람에 대롱대롱 흔들리며 제법 책읽기에 좋았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중에 ‘칼날’편을 읽는다. 방으로 들어가 비치된 CD가운데 라흐마니노프를 틀었다. 그리고 역시 비치된 소설중 ‘그리스인 조르바’를 집어들었다. 방문을 닫아놓아도 창호지 바른 문은 음률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찬바람과 조르바, 라흐마니노프는 썩이나 잘 어울렸다. 집 바로 옆쪽에 있는 가로등(그 동네 몇 개 없는) 불빛이 측백나무 처마 밑으로 파고들었다. 무슨 풀벌레인지 ‘츱 쓰으으으’하며 제법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박자에 잘 맞는다.
‘이 녀석도 박자감각이 있네…’
전구 주위를 맴도는 나방의 그림자가 책으로 비추면 나는 흠칫 놀라 전구를 본다. 내 새끼손톱만도 안하는 녀석의 그림자가 참새만큼이나 커보였다.

툇마루의 전구를 껐다. 그제서야 앞산의 실루엣이 어슴프레 눈에 들어온다. CD를 바꿨다. 김영동이 ‘훈’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바람의 소리’에서는 흙냄새와 바람냄새가 났다. 툇마루에서 풀벌레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담배 한대를 피웠다.

깨어나니 우선 시간이 궁금했다. 그러나 일부러 시간을 찿아보지 않았다. 앞마당의 개는 벌써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든다. 세살난 주인댁 아들녀석 ‘산이’는 진작에 마당에 나와있다. 다시 책을 집어들고 툇마루에 앉았다.
산이는 마당에 듬성듬성 난 잡풀 하나를 뽑고는 나를 보며 웃는다.
돌맹이 하나 던지고는 또 나를 보고 웃는다.
바위로 만든 물받이의 연잎을 한 번 건드리고 또 나를 보고 웃는다.
그러더니 자기 책을 가져와 내 앞에 떡 펼치고
“이게 뭐야?”
“이건 소방차”
“이게 뭐야?”
“이건 병원차”
문득 이 녀석은 무얼 하고 놀까 하는 측은한 생각이 든다.
“산아, 너 책 읽을줄 아니?”
“이게 뭐야?”
“????”

주인남자는 마당 한켠 작업장에서 측백나무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무언가를 재고 있었다.
“뭐 만드시나보네요?”
“아…네…그냥 취미삼아요”
“혹시 제가 잤던 방도 손수 지으신건가요?”
수줍게 미소지으며 그렇다 한다.
갑자기 이런 젊은 나이에 이곳에 들어와 사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묻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객들이 모두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또 개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궁금증을 못이겨 질문을 던졌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가보겠습니다”
“벌써 가시려구요?”
주인 아주머니가 수줍게 숙박록을 가져온다.
“엄마, 아저씨 가?”
엄마의 다리 하나를 붙잡고 산이는 연거푸 같은 질문을 해댄다.
“사람이 너무 없어서, 아이가 손님 가실때면 너무 섭섭해 해요…”
무안했던지 엄마는 한마디 한다.

내가 온 길 반대로 나가면 금방 포장길이란다. 어제 나는 길을 잘못 든 것이었다. 주인 내외와 산이는 마당 앞까지 나를 배웅한다. 산이에게 손을 흔들고 출발을 했다. 시계를 보니 아침 9시 반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자꾸 갈증이 났다. 휴게소 몇 군데를 들르며 들를 때 마다 음료수를 샀다. 지금 내 차에는 다 마신 커피 한 캔, 아직 따지도 않은 음료 한 병, 반쯤 마신 비타민음료 한 병이 있다. 라디오 채널을 뉴스채널로 바꿨다. 어느 대선주자가 역겨운 자화자찬과 근거 없는 낙관을 하고 있었다. 듣고 싶지는 않았지만, 다른 채널로 돌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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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오익렬님의 댓글

오익렬

금곡마을을 거꾸로 들어가셨습니다. 주무시고 들어오시던 길을 다시 거꾸로 가보시면
중간에 혼자 차도 마시고 싶고 여러가지 생각이 드실터인데...
거꾸로 가셔야 제대로 운치를 느끼실터인데 그랬습니다.
그래도 혼자 이리 저리 다니시는게 부럽습니다.

신현동님의 댓글

신현동

멋진 여행기 입니다. 저도 이런 여행 하고 싶어요.
여전히 To Do List 에 세심원이 남아있으니 더욱 행복하시겠네요!

김대석님의 댓글

김대석

긴긴 글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습니다...다음에는 세심원 방문기를 꼭 기대합니다.

Lee Seob님의 댓글

Lee Seob

그 민박집 내외와 아이가 전생에 큰 인연이 었던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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