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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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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쟁이 윤광준 씨의 책 '내 인생의 친구들'을 읽는다.

그 첫들머리에 '비원에서 사는 사나이'라는 근사한 제목이 있는데
비원이란 지하 1층을 뜻하는 B-1의 우리말 발음이라한다.

근사해 보이는 이 작명은 일찍이 지하 작업실을 운영했던 시인 김갑수의 작품이라네.

'비원에서 사는 사나이'를 통해 윤광준 씨는
본인의 직업과 취미생활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에 그야말로 열정을 다한다.
중늙은이 나이에 삶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탄복하기에 아까움이 없다.

직업은 사진쟁이이고 오디어파일이며 글쓰기가 또하나의 직업이 되어버린
이 양반의 작업공간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주변의 공간과 사물에게 붙이는 애정과 열정이다.

나에게도 비원이 있지....

과거 살고 있었는 서민형 빌라에는 한 채에 하나씩 지하 창고가 있다.
제법 넓은 공간의 창고가 마음에 들어 쉽게 이사를 했는데
지하 창고치고는 습기도 없었고 주변 소음도 들지 않았다.
더 좋았던 것은 작게 나있는 창문 밖으로 수풀이 우거진 나무와 풀들이 보인다는 거였고...

서재를 만들기로 작정했다.

도배와 장판을 새롭게 하고 세면대도 만들었다.
천정도 보수공사했고 전등도 독서에 편한 것으로 달았다.

목수에게 주문해 지하 공간 삼면을 원목과 벽돌로 책장을 만들고
정중앙에는 넓찍한 원목 책상을 두어
고개 처박고 책이나 읽으며 재미나게 살기로 했다.

오디오와 음반은 고민하다 지하 공간에 두지 않았다.
책과 음반이 함께 있을 경우
하나에 집중하기 힘들어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었다.

나의 비원에 들어가면
한가운데 원목으로 만든 그윽한 향의 책상이 있고 책상 위에는

요즘 읽는 책과 필요한 자료들이 놓여있었다.

좌측 책장에는 주로 종교, 동양학, 그리고 구하기 힘든 절판된 책들이나 원서들이 있었다.
정면 책장에는 역사와 문학과 문화 전반에 관련된 책들 영화, 음악, 사진집들(이때는 사진만 좋아했지 카메라는 없었다)
우측 책장에는 사회, 정치, 심리학 기타등등 등에 관련 서적들

나의 독서 행위나 도서 구입 방식은 호기심에 기인한다.

어떤 책을 읽다가 눈에 띄는 인용 구절이 있으면 그 인용된 책을 사버린다.
저자가 어떤 사람이나 책을 통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면
역시 그 사람의 책들, 소개한 책들마저 사버린다.

그러다가 곧 다른 것에 호기심이 발동하면
구입해놓고 들쳐보지도 않은 책들을 외면해 버린다.

언젠가는 읽겠지 라는 위안과 함께......

그 공간은 분명 나의 허위의식과 과소비의 상징이기도 했다.

이렇게 모은 도서들이 1,000여권 넘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다.

그러나 어쨌든간에
나의 공간 비원에서의 짧은 추억은 참 아름다웠다.
행복과 힘을 주고 슬픔과 탄식을 알게해 주었기에.....

2001년이었던가 중부 지방에 폭우로 인해 홍수가 크게 난적이 있었다.

내가 사는 의정부도 예외가 아니어서
늦은 밤 거세게 불어난 푹우가 내가 사는 동네까지 휩쓸고 지나갔다.

한밤중에 소란스러움에 깨어 지하로 황급히 내려가보니 벌써 불어난 물이
지하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감전 위험이 있다고 말리는 어머니와 이웃들을 뿌리치고 지하로 내려갔다.
벌써 물은 허벅지정도에 차있었고 책장 아래쪽에 있는 책들을 위로 옮겨놓는
몇 번의 몸부림 가운데 물은 허리까지 치고 올라왔다.

망연자실...........................

비가 그치고 아침에 다시 내려가 보니 흙탕물 속에 내 책들이 고이 잠들어 있었다.

물과 흙으로 회생불능이 되어버린 책들을 내다버릴 때의 심정이란...........

삼일정도 지나고 나서야 서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 먹은 책장과 책들은 곰팡이가 피기 시작해서 다 버리고
남아있는 책들은 박스에 담아 정리된 지하 창고에 처박아 두었다.

다시 돌아 본 비원은
황량하고 처량하다.
슬프게 아려온다.

다행히 수마를 견디어 준 책들과 윗층에 있었기에 안전했던 음반들을
쓰다듬으며 한동안 마음 고생 꽤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남아있는 책과 음반이 내 어깨를 심하게 내리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일주 이주 한달 두달 정도가 넘어서는 동안 왜이리 마음이 무겁고 심란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결단을 내리고 책과 음반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꼭 품고 있고 싶은 책 300여권과 음반 300여장만 남기고 모조리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지인들을 불러모아 갖고 싶어하는 책과 음반들을 주고
나머지 책들과 음반들은 팔아버렸다. 음반만 1,000장이 넘게 팔려나가는...

이후로 책과 음반에 욕심부리지 않기로 결심하고
읽고난 책들은 지인들께 선물하고 음반은 웬만하면 사지 않는다.

요즘 사진과 카메라에 대한 애정이 점점 커짐에 따라
사진관련도서와 사진집이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이정도야 애교로 봐줄만한데
카메라가 늘어나는건 못 봐주겠다.
어떤 유혹이 내 손목을 잡고 비틀어 당겨도
실사용 딱 두대만 남기고 무조건 처분한다.
처분하고 나면 한동안은 가슴앓이하느라 허허로운 마음 감당하기 힘들다.

그래도 한대는 넘기고, 한대를 또 들이기로 하는 요즘
기뿜과 아쉬움의 교차.

새로 이사가는 집
아내가 아파트를 싫어하기에 단독주택을 선택했다.
삼층은 우리가 쓰고 이층은 세를 주고
반지하 일층은 비어있기에
다시 비원을 만들어볼까 궁리중이다.
그 비원에 암실을 만들면 어떨까도 생각중인데
행복에 겨워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떠오르지만
과거에 된통 혼났던 반지하라 걱정 역시 모질게 고개를 드미네.
추천 0

댓글목록

손현님의 댓글

손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물과 곰팡이에 대한 트라우마는 오래 가는 듯 합니다.
이사가신 집에는 암실로 꾸미면 참 그럴싸할 듯 합니다만...
암실과 서재... 공용도 괜찮지 않을까요. 후후-
다시 멋진 비원을 가꿔보시길 바랍니다.

이현주님의 댓글

이현주

심청가 완판 씨디 들고 다니실때 알아봤어요...^^
300권의 라이브러리와 300장의 레파토리가 궁금해집니다.
잘 계시지요?

김형배님의 댓글

김형배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폭우 관련 내용에서는,
제가 다 안타까와졌습니다.

그 심정이 어떠셨을지 짐작이 갑니다..

카메라는..
두 대만 남겨 두신다는..
그 대목에서 저는 가슴이 찔립니다..

아직도 장식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각종 브랜드의 카메라와 렌즈들..

저는 아직도 팔지 못하고..
가끔씩 꺼내서 쓰곤 합니다..
도저히.. 아직은 팔 자신이 없습니다..
그 동안 팔아버린 장비에 대한 아쉬움을 충분히 겪은터라..
더 이상은 팔고난 후의 허전함을 달래기 어려울 것 같아서 입니다.

하지만,
저도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가 오겠지요..
그 날이 언제 일지..

좋은 글에 감사드립니다..

강정태님의 댓글

강정태

공들여 구입한 책들이 흙탕물에 잠겨서 버려야 할 때
그 아픔을 어떻게 참으며 치유하셨습니까?
실로 큰 마음 고생을 하신 것 같군요.

김대석님의 댓글

김대석

나만의 비밀정원.... 자신의 소중함.... 정말 지켜나가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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