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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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명기
- 작성일 : 07-07-19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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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기
어느 날 그녀는 내게 말했다.
“당신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줄 잘 모르시죠?”
내가 어떤 사람? 순간, 머리가 뻐근해 질 정도로 많은 생각들이 회오리친다. 마음은 점심시간의 고층건물 엘리베이터처럼 혼잡해졌다. 정말 나는 어떤 사람일까. 검고 무거운 먹장구름이 빠르게 몰려든다.
그러자 장마철의 두터운 구름을 가르는 햇살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학원 아이들에게 당신을 좀 팔았죠.”
“뭐?”
“당신 이야기만 하면 학원 분위기가 뜬다구요”
“저런! 어떻게?”
“모기가 물면 가만히 물게 두었다가, 근육이 울뚝불뚝한 팔뚝에 힘을 꽉 주어서 모기를 도망 못 가게 만든 다음 손가락으로 가볍게 집어서 버린다구요. 그러면 애들이 경악을 한다구요. 그게 정말이냐고.”
“그게 무슨 신기한 일이라구”
“애들한테는 정말 대단한 거예요. 또 당신이 말에게 가까이 가면 500Kg 짜리 말이 귀를 쫑긋 거리면서 긴장하죠. 그냥 바라만 봐도 말들은 당신 명령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구요. 태운 사람을 떨어뜨린다던가, 게으름을 피워 잘 안 가려고 하다가도 당신이 천천히 다가가면 쪼그만 강아지처럼 슬금슬금 뒷걸음 친다구요.”
“이런 흉을 잔뜩 보았군.”
“게다가 봄이면 털갈이 하는 동물처럼 가죽갈이를 하죠.”
“가죽갈이?”
“지난 봄에 그러셨잖아요. 제가 왜 손바닥 껍질이 벗겨지냐고 하니까, 응. 나는 봄이면 가죽갈이를 해.”
아하! 그러고 보니 나는 봄마다 손바닥이 벗겨진다. 그걸 '가죽갈이 한다' 고 말한 기억이 난다.
“여름이면 말 타고 열흘씩이나 폭우를 맞으며 대학생들과 전국일주 대장정을 하구요.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우산도 없이 카우보이모자 하나만 쓰고 다니구요. 세수할 때는 어찌나 빡빡 문지르는지 얼굴이 새빨개 진다구요.”
“흠. 자세히도 말했네. 당신 학생들은 나를 완전히 무슨 고릴라나 괴물 정도로 알겠는 걸?”
“애들이 당신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승마 교관이시고, 대학교 연구소에서 일하시고, 작가이시고, 예전엔 사업가였다고 말했죠.”
“애들이 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겠는 걸?”
“그 정도가 좋아요. 약간 헷갈리는. 그러나 함께 있으면 즐겁고 재미난 사람.”
“내가 그래?”
“그럼요. 당신은 스스로 나이가 들고, 노안이 오고, 난청이 생기고 있고, 점점 완고한 노친네처럼 변한다고 걱정하시지만, 당신이 얼마나 재미난 사람인지 나는 알아요.”
여기서 나이 들고, 노안이 오고, 난청이 생기고, 완고한 노친네가 되어 가던 나는, 목구멍에 뭔가 둥그런 것이 메어 옴을 느낀다. 코끝이 아리다는 것도 들키기 싫다. 나이가 들수록 인격이 향상된다고는 믿지 않지만, 수줍음이 많아 지는 것은 사실 같다.
진실은 중요하다. 모두가 그것을 원한다. 물론 내가 진실로 어떤 사람인가도 중요하겠지만, 정말로 재미없는 내게서 사금을 캐듯 하나하나 즐거운 모습을 발견하려는, 그 시선도 진실 못지않게 중요함을 안다.
사막에 버려진 낙타의 해골처럼 딱딱하게 굳은 심장 속에 조그만 물줄기가 다시 흐른다. 결국 세상은 살만한 것이다. 그 따스한 마음과 눈 빛. 나는 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마주보는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반쯤 열려진 창에서 한줄기 바람이 불어 온다. 이윽고 찬바람을 맞은 나는 정신을 차린다.
이러다, 매일 저녁 10시면 죽은 사람처럼 쓰러져 트레일러트럭처럼 요란하게 코를 골고, 아침마다 변기에 작은 섬을 만들고, 담배 끊었다고 큰소리 뻥뻥 치면서 하루에 1~2 개피 씩 살짝 숨어 피는 것 까지 몽땅 까발리면 어쩌지?
천당(天堂) 아래 분당(盆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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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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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김형민2님의 댓글

앗 담배에 관해서는 저와 같으시군요.. 그런거 소문나면 안좋은데...
말 파신다고 했던게 기억나서 회원님이 낯설지 않네요..
암튼 제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야 할 것 같습니다.
손현님의 댓글

마주보기. 너무 따뜻한 느낌의 글이네요.
단편소설 속의 하나의 챕터 같습니다.
"마주보는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어제 이글루스에서 고양이 길들이기란 블로그를 하나 봤는데
일본인이 지하실에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데려와 기르는 영상이었죠.
첨엔 쬐깐한 것이 으릉릉 대다가 소통을 계속 시도하다보니
결국 그 날밤 그 사람의 품에 안겨 잠이 들더군요...
사소한 영상이었는데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하물며 새끼고양이도 그 마주보는 시선을 느끼는데...
사람은. 더더욱 희망적이겠죠.
김명기님의 댓글
인용:
원 작성회원 : 김형민2
앗 담배에 관해서는 저와 같으시군요.. 그런거 소문나면 안좋은데...
말 파신다고 했던게 기억나서 회원님이 낯설지 않네요.. 암튼 제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야 할 것 같습니다. |
하루에 한두 개피 정도인데, 이게 끊은 것도 아니고, 안끊은 것도 아니고...
참... 담배는 끈질깁니다. ^~^
김명기님의 댓글
인용:
원 작성회원 : 손현
마주보기. 너무 따뜻한 느낌의 글이네요.
단편소설 속의 하나의 챕터 같습니다. "마주보는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어제 이글루스에서 고양이 길들이기란 블로그를 하나 봤는데 일본인이 지하실에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데려와 기르는 영상이었죠. 첨엔 쬐깐한 것이 으릉릉 대다가 소통을 계속 시도하다보니 결국 그 날밤 그 사람의 품에 안겨 잠이 들더군요... 사소한 영상이었는데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하물며 새끼고양이도 그 마주보는 시선을 느끼는데... 사람은. 더더욱 희망적이겠죠. |
넵. 사람은 더욱 행복해 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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