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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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장지나c
- 작성일 : 07-07-06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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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녀가 아무리 이기적이어도, 아무리 여시 같아도 우린 그녀에게 약할 수밖에 없다. 단지 엄마와 딸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그녀가 겪어왔을 삶은 참 아프다. 도회지에서 귀한 외동딸로 곱게 자라 7형제의 장남인 아부지를 따라 깡촌으로 시집 간 후, 딸만 줄줄 다섯을 낳은 그녀는 평생 죄인이었다. 큰언니가 손 귀한 집 장손에게 시집을 갔을 때, 혹시나 딸 낳으면 엄마 닮아 그렇단 소리 들으며 고생할까봐 점 봐서 골라준 달에 임신 안했다고 말도 안 되는 한탄을 하며 큰언닐 나무랐었다. 당신의 큰딸이 첫아들을 떡하니 낳았을 때, 정작 큰언니는 덤덤한데 그녀는 얼마나 울었던지. 하두 서럽게 울어서 형부도 따라 울었다 했었다. 어렸을 때, 그녀의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자다가 이웃 아주머니들과 두런거리며 나누던 이야기에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첨으로 들었다. 이 둔한 딸년은 친할머니의 이유 없는 차별이 억울은 했지만 그게 내 엄마에게도 이어지고 있었단 생각은 못했다가 자분자분 서로들 털어놓아가며 위로해가는 그 이야기에 어느새 낮잠은 깨어 버렸지만 눈도 못 뜨고 자는 척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한이 된 아들 땜에 그녀는 자신의 딸들을 아들보다 더 강하게 키우고 싶어 했고 우린 그 기대에만(?) 부응했던지 혼자 서는 게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이제는 제 각각 떨어져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딸들에게 쓰는 편지엔 항상 '사랑하는 내 딸아'라는 머리말이 붙어 있다. 그 편지들은 엄마로 살면서 느낀 일, 아내로 살면서, 며느리로, 그리고 학문을 배우고 나누는 자의 생활이 때로는 감정이 넘쳐서 우린 신파야... 하고 놀리지만 남자처럼 힘 있는 그녀의 필체로 또박또박 씌여져 우리 손에 오는 날이면 왠지 모를 원군을 만난 기분이 되곤 한다.
이 낡은 사진을 꺼냈던 날, 모친에게서 받은 편지는 여느 때처럼 '사랑하는 내 딸아'라는 글귀로 시작되지 않고 '나무는 기운 쪽으로 넘어진다.'라고 시작되었었고,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미래에 기대와 불안을 함께 가지고 산다.
너는 지금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행위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희망이던 절망의 방향이던 간에.
만남이라고 하는 인연이란 것은 하나의 훌륭한 수행의 도량이듯이 만남 후의
헤어짐이란 것 뒤의 생활도 언제나 수행을 지속시켜야 할 삶의 방식인 것이다.
그리곤 다시 '사랑하는 내 딸에게'라며 글을 맺으셨더랬다. 당시 심드렁한 맘에 흔들렸던 딸년을 느끼시고 스스로 깨 닫으라 하심이 분명했었고, 그런 그녀의 본능이 놀라와 언젠가 물었더니 이렇게 말씀했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내 자식은 금테 둘러 보인다.'고. 아주아주 가끔이지만 꼭 필요할 때 이런 멋진 말을 던질 줄 아는 그녀를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으랴.
사진속의 그녀는 31살. 그리고 아기인 나는 백일. 이 사진은 내가 서른한 살이 되었던 날. 꼭 31년 후, 사진 속 그녀와 내가 같은 나이가 되었을 때 찍었다. 사진속의 그녀는 집안일 하다 뛰어나온 모습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녀는 딸만 셋을 주루룩 낳은 죄인이 되어 백일상은 말도 꺼낼 수 없었으나, 제 몫 하나 챙길 수 없는 어린 것이 안쓰러워 나만 챙겨 입히고는 당시 동네마다 돌곤 했던 이동사진관을 찾았음일 것이다. 사진 속 나는 그 억울한 사실을 느끼고 있었는지 뿌루퉁해서 입을 댓발로 내밀고 있지만 그래도 31살, 세 딸의 어미인 그녀, 앞으로도 딸 둘을 더 낳을 그녀는 웃고 있었다. 지금 난 사진 속 그녀의 나이보다도 몇살 더 많아져 버렸고 남편도 자식도 없지만, 때로는 여시처럼 남편을 녹이고 때로는 특유의 신파로 딸들을 울릴 줄 아는, 그때도 지금도 고운 내 어미의 모습을 닮고 싶다.
* 아래에 아버지에 대한 글이 있기에. 헷. ^^
댓글목록
김병인님의 댓글

갑자기 다시 볼수 없게 된 옛 앨범에 빼곡이 붙어 있던 옛사진들이 그리워집니다.
괜히 늦은 밤에 클릭했다 싶어지기도 합니다. ^^;
귀한 사진까지 올려주시고 ...
일찍 주무시지요.
Jeanie님의 댓글
얼마나 아름다운 어머니와 삶을 향유하고 계신지...좋은 밤 되세요.
‘운명아 비켜라! 내가 나간다“ 하시면서요.^^
김용준님의 댓글

우리네 강한(?) 어머님을 뵙고 있는 거 같아 기분 좋습니다.
그게 다 '어머니' 세글짜 때문이겠지요.
글도 구성지게 잘 쓰시는 군요.
아름다운 사진과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박유영님의 댓글

한 장의 낡은 사진, 그리고 붙여주신 지나님의 담백한 글이 아침부터 마음을
흔들어댑니다. 어느 날 훌쩍, 사진 속의 부모님보다 더 나이 먹어버린 자식이
젊은 시절 부모님의 사진을 바라볼 때 솟는 감정은 이루 말로 형용할 수 없지
요. 좋은글, 감사하게 읽었습니다.
손현님의 댓글

아름답고 강한 어머니이십니다.
서른 한 살.
저도 올해로 서른 한 살인데
왜 이렇게 철부지 같은지. 원...
아침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저도 좀 강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때론 여시처럼...ㅋㅋㅋ
노동환님의 댓글

결론이 혹시.. 공개구혼이신가요? ^^~
농담이구요..
훈훈한 글 잘 보았습니다.
어머님께 감사인사라도 드려야 겠습니다..
장지나c님의 댓글

병인님 / 전 지금이 낮이에요.
예전엔 거의 모든 집에가면, 그리고 좀 지나선 시골집 마루에나 걸려있던 흑백사진만 빼곡히 모아놓은 액자 있지요? 그런 액자를 다시 보고 싶네요. 어제 이 글을 올렸을 때, 괜히 센치해졌었거든요. 제 청승에 말리셨어요! (보람있네요... ^^)
Jeanie님 / 같이 살면 다 밉구 곱구 그렇죠?
용준님 / 엄니세대도 강하다 느꼈지만 젤 안쓰럽고 보듬고 싶은건 더 윗세대. 할머니 세대들이라 느껴져요. 어쩜 그리 힘든 시절만 사셨는지. 음, 근데 울엄니 신파라고 제가 젤 흉봤는데 그 성격은 제가 젤 닮았지 뭐에요. 여시같은 것만 좀 닮아서 베갯머리 송사의 여왕이 되고프구만 그런건 안 닮고! 아하하하 ^^
유영님 / 저도 유영님 사진과 글, 잘 읽어내려하고 있답니다. 음... 어릴 땐, 부모님이 엄한게 너무 싫어서 도망가고 싶었댔는데 이젠 더 이상 엄하지도, 무섭지도 않아서 그게 더 쓸쓸하게 다가오네요. 예전관 달리 자신의 맘에 대해 솔직해지신 부모님을 볼 때마다(특히 아부지ㅠ.ㅠ) 엄니 압지 제발 효도해보게 오래 사세요. 앙살도 좀 부려감서. 그래야 나도 힘내서 패악이라도 부려보지! 라고 혼잣말 할 때가 점점 늘어나요. 잉~
현님 / 외자 이름이 참 멋있어요. ^^
음... 어렸을 땐 서른이면 어른이 되는 나인줄 알았댔어요. 그래서 서른이 되었을 때, 참 막막했지요. 그때보다 몇 더 먹은 지금은 암만 나이 먹어도 부모님께는 철부지고 무슨 수를 써도 불효자가 될 수밖에 없단 생각을 하는 요즘이랍니다. 어떤 자식도 만약 부모님 돌아가시면 그 앞에서 불효 안 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럼 불효자란 우리 생의 업인데... 부디 살아계실 때, 그 업을 조금이라도 풀어보고 싶은데... 매일매일 지치지도 않고 모자란 모습만 보여서 항상 죄송하구. 어르신들은 점점 솔직해지시는데 이 못난 딸년은 죄송하니까 더 팩팩거리구. 언제 정말 어른이 될까 싶어요. ㅠ.ㅠ
동환님 / 음, '스캔들은 뿌리고 보자'가 기본적으로 지향하는 바이긴 합니다만... 아녀욧! 어르신들께 안부전화라도 하실 수 있었다면, 저 기쁠 거에요! 아하하하 ^^
강정태님의 댓글

사진 속의 어린아이가 지나님이라고요?
수 십 년이 지난 지금은 어떤가요?
자식에게 지나치게 헌신적인 어머니의 자식 사랑보다는 스스로 알아서 처신할 수 있도록 키우는 어머니의 사랑이 훨씬 더 자신에게 값어치가 있는 알찬 사랑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지나님의 어머니는 훌륭한 자식 사랑의 귀감을 보여주신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손영대s님의 댓글

저도 저 배경으로 찍은 흑백사진이 있을겁니다..^^;;
어머님..사랑합니다..라고 하셨죠?
장지나c님의 댓글

선근님 /
이를 어째요. 이제야 답글을 보았어요. 죄송합니다. (알고보면)친절한 지나c인데... 잉.
40년이나 지난 사진을 복원하시구, 것도 이미 20년 전에 떠나신 분을 그리는 마음이 어떨까... 잠깐 생각해 봤어요. 후회 남지않게 효도해야 하는데, 그쵸?
정태님 / 네, 사진 속 애기가 저에요. 수 십 년이 지난 지금의 저는 가끔은 거울보고 자뻑하고 훨씬 더 많은 빈도로 (거울 보고)좌절해요. ㅠ.ㅠ 어릴 땐 아부지를 닮았다 했는데 커서는 웃는 모습이 엄니 닮았단 이야길 많이 들어요. 제 속에 있는 두 분을 볼 때면 재미있어진답니다. 음... 네, 혼자 서는 방법을 알려주셔서 지금은 많이 감사하고 있어요.
영대s님 / 사진, 있으시면 보여주셔야죠! ^^
음.. 저희 식구들이 이제 다 떨어져 살아서 전화도 그렇지만 서로 편지로 나눌 때가 많아요. 삼일에 한번쯤? 며칠전 새벽에 단지 편지 확인하라는 용건으로 전화를 거셨어요. 저희가 옆에 없어 쓸쓸하신 거 같아 맘이 짠하더라구요. 전화나 편지나 하시는 말씀은 매 한가지지만 그래도 편지를 받으면 대답이 '네! 엄니 딸 열씨미 살겠습니다' 하는 대답이 나온답니다. 엄니, 사랑해요! 대신, '엄니 신파...'하구 전화드렸어요. 아하하하하 ^^ 며칠 전에 받은 편지의 내용 올릴께요.
*
지나야.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구나. 장마비 뒤에 농가에서는 여기저기 널브러진 일감이 너무 많구나. 오늘에야 대충 일이 끝났지만, 눈뜨면 일이라 하루해가 짧다. 손등이 거북이 등처럼 부어올라 쑤시고 아프지만 쉴 수가 없다. 하지만 시골생활도 벌써 6년이 되어가니 이제야 농촌에서의 삶이 어떤지를 안다 싶어 마음은 고맙다. 딸아, 언제나 주변을 돌아 보아라.
경희는 12평짜리 빌라를 4000만원 전세로 성남에 계약했다는구나. 엄마가 신경을 써주지 못해 혼자 방구하러 다니며 속이 많이 상했데. 그래도 엄마 걱정하지말라며 안심시켜 주는 경희가 고맙지만 이젠 능력이 없는 부모라 생각하니 맘이 아프다. 그래서 앞으로 살면서 하나씩 이루어 기쁨을 두배로 키워가라고 했다. 경희를 축복해주고 너희들도 하루속히 엄마의 희망인 소식을 좀 주렴. 그리고 지나야 혜지는 그렇다치고... 너는 바쁘드라도 좀 더 자주 엄마에게 소식주면 안되겠니? 요즘 그린 그림도 보내주고.
딸아, 날마다 좋은 날이 되도록 삶을 소홀히 하지말고 내 안에서 내가 귀히 여길 수있는 삶을 찾도록 노력하여라. 작은 소유욕으로 상대방이 힘들지 않게 마음을 살펴주고, 한사람이 아닌 이 우주를 끓어 안을수 있는 욕심을 가져라. 마음에 문을 활짝열고 아낌없이 주듯이 보답을 바라지 않는 선한 마음으로 진실하면 모든것이 다 이루어진다는걸 명심하고. 외롭고 힘든 타국생활에 고생이 많겠지만 아무도 없는 사막에 모래알이라 생각하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한다. 엄마 아빠의 간절한 염원을 보낸다. 뜨거운날 몸조심하고....
항상 너의 행복을 비는 엄마가.
안미희님의 댓글

"벼락 속에 들어앉아 꿈을 꿀 때에도
네 꿈의 마지막 한 겹 홑이불은
永遠과, 그리고는 어머니 뿐이다."
어머니의 편지는 늘 울컥하게 만듭니다.
이 글을 읽을때마다 차마 댓글을 달지 못했어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김형배님의 댓글

이런 좋은 글을
저는 왜 이제사 봤는지..
필력이 예사롭지 않으심은..
분명.. 어머님의 그 피를 이어받으셨음에 틀림이 없군요..
참...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고원영님의 댓글
저도 31살 입니다. 77년생 맞죠?^^
선배님들이 워낙 많으셔서 말끄내기가 좀 그런데요..
30살이 되면서 생각의 중심이 어른 쪽으로 기울어지는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대할 때 "~해 주세요."에서 "해 드릴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아무리 고민해도 "~밖에는" 못해드리는 안타까움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들은 항상 더 못해주는걸 안타까워 하시지만..
이젠 저도.. 부모님께 진 빚을 언제 갚을지 막막하네요.
장지나c님의 댓글

미희님 / 가끔 엄니께 받은 편지를 친구들에게 포워드 하거나 블로그에 옮겨서 함께 나눌 때가 있어요. 친구들이 엄마, 아빠 어떻게 지내시냐고 묻곤 하거든요. 음.. 이젠 엄마도 아빠도 안 계신 친구가 하나씩 늘었는데요. 그중 몇은 울엄니께 빗자루로 얻어 맞기도 했어요. 저랑 똑같이. 딸 친구는 내 딸이라고 구박하심서 (예를 들면 부모님 집에 안 계신 틈타서 나이트로 샜는데 들켰다던가 할 때..-_-
그렇게 뚜디 맞았던 제 친구들은 저 없어도 저희집에 자주 다녔어요. 서울집뿐 아니라 시골집에도요. 이제 걔들은 결혼해서 다 외국에 나와서 저희 엄니가 걔네들에게도 가끔 따로 편지를 주시는 모양인데 걔들은 비밀! 외치면서 그거 제게 안 보여줘요. 그래선지 이곳에도 나누고 싶었어요. 세상의 딸들에게 주는 엄마의 편지라고 치자고... 막상 쓰려니 오버같아서 그렇게 덧붙이진 못했었는데 제 맘 읽어주신 거 같아 제가 더 고마워요.
형배님 / 에고.. 과찬이세요. 제 글쓰기의 시작은 취학하기도 전 '반성문'으로 시작되서 여전히 '반성문' 뿐 인걸요. 그래서 길게 쓰면 짱이란 생각땜에 길기만 할 뿐이랍니다.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영님 / 음... 학창시절에 공부 못하셨지요...? 본문에 힌트가 있는데 놓치는게 공부 못하는 애들의 장기죠. (동지!) 전 원영님보다 몇살 더 먹었습니다. 나이, 몸무게, 키. 뻥치는게 젤로 치사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젊게, 가볍게, 크게 봐줄땐 냅두는게 좋단걸 요즘 깨달았기에 정확하게 밝히진 않을랍니다. 푸핫^^
음, 저 좋은 거 하고 살겠다고 집에서 도망간 딸년이 둘인데요. 너네 좋아 선택한 길이니 집에서 도움받을 생각하지 말라시기에 그러마 하고 둘째는 마드리드로, 세째는 뉴욕으로 갔어요. 저희 떠나고 딱 두해 지나 IMF가 터졌구 저희집도 쫄딱 망했어요. 완전 쫄딱. 그때 마침 언니도 뉴욕으로 왔었는데 새벽에 아부지께 전활 받았어요. 한국의 전형적 아버지 스탈이라 말씀도 없고 감정 표현도 없는 분이신데 뜬금없이 '미안하다...'라고 하셨지요. 혼자 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도울 수 있었어도 돕지 않았다고. 그런데 이젠 저희가 정말 어려워 손 내밀어도 도와줄 수가 없다고. 그리 말씀하심서 아부지가 흐느끼셨어요.
아부지가 우시는 걸 본게 딱 세번인데 큰언니 시집갈 때, 저 미국갈 때, 그리고 그 전화. 어차피 우린 금전적 도움없이 살았으니 바뀔 건 없었는데 미안하다,란 말만 계속 하시는 아버지 목소리에 참... 그래서 설레발 치며 쉰소리만 해드렸어요. 평상시처럼 철 좀 들라, 고함이라도 치시라고. '압지, 길에서 홈리스 할배를 봤는데 나보고 쁘리띠래요. 글루 시집갈까베~' 그랬더니 예상대로 '야 이놈아! 너 언제 철 들래' 하시더니 잔소리 잔뜩하구 끊으시더라구요. 그런데 우리는 전화끊고도 그 앞에서 못 떠나고 한참 울었어요. 언제 어르신들 맘 알아줄까 싶어서. 조금이라도 커졌음 좋겠는데... 그치요?
박종준님의 댓글

새벽에 핀 연꽃과도 같이 청초하며 우아한 글 잘 읽었습니다.
시간은 많이 걸리겠지만 기우러진 나무도 다시 일어 설 수 있다는.......
이완재님의 댓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미래에 기대와 불안을 함께 가지고 산다.
너는 지금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부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행위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이 희망이던 절망의 방향이던 간에. "
아주 깊은 불교의 심오한 사상을 너무 쉽게 설명하신 어머님의 힘이 느껴집니다. 점심먹고 노곤한 상태에서 좋은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정아.님의 댓글

참 아이러니 한 것이 회사 업무 땡땡이 치면서 지나님 글을 읽고 있는데,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흑... 이 글을 끝으로 익스플로러 창을 닫아야겠습니다. ^^;;
신건님의 댓글

참 감동적인 글과 사진이네요. 고맙습니다.
손창익님의 댓글

낡은 흑백 사진한장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읍니다.
물론 세월의 흐름과 지나간 간절한 추억또한 녹아 있읍니다.
사진의 배경이 되는 사진관에 걸려 있을 뒷 배경 그림은 그시대를 의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헤어스타일, 차림새,아기의 옷가지 등이 그시대의 생활상을 상세히 보여주고 있읍니다.
어쨓던 부럽습니다.
집안일 하다가 애기만 안고 뛰어나가면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니..
저희 부모님은 모든 자식들에게 돌 사진을 남겨 주시지 않았읍니다.
한때 그것이 얄미워 철없을적에 많이 항의도 하고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했지만...
시내에 있는 사진관에 가려면....아기를 안고 100리길을 걸어가야만 했고...
보리고개다 뭐다 피죽도 못먹고 살 시절에 사진1컷 찍는데 쌀1말~쌀2말을 주고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사치에 불과했을 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어릴적 사진이 없읍니다..최초의 사진이 국민학교 6학년때 졸업사진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나이가 60쯤 된 사람이라고 말씀하실 분도 있을 것 같군요.
저는 386세대 입니다..아직 40살이 될까 말까한....
근데 제가 기절할 만큼 놀랄일은 사진책을 뒤적여 보면서 1940~1950년대에
라이카, 롤라이(이안프렉스)를 목에걸고 양복에 구두신고...관광차 빌려서 출사나가서
단체 사진을 찍은 걸 보고는 동시대를 살아도 동시대 사람이 아니구나...
역시,...자본의 힘은 세월을 초월할수 있구나라는 무한한 힘을 느켰읍니다.
엣날 대학시절 학생들이 타도의 대상으로 외쳐대던 브로지조아들이었는지 모르지만..
장지나c님의 댓글

종준님 / 저희 엄니두 저두 그닥 우아하지 않은데(우아하게 늙고픈 맘은 간절하지만) 이리 좋게 읽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좀 아까 갤러리에서 소나무 한 그루 있던 사진을 보았는데요. 휘였다가도 위로 다시 몸을 세우고 올라가더라구요. 본질, 본성, 혹은 인성(?)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살면 된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답니다. 감사합니다.
완재님 /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맘으로 기쁜 쪽, 좋은 쪽으로 기울게 되는 일들이 완재님께 함께하길 바랍니다.
정아님 / 어.. 음... 열씨미 사는 건 넘넘 좋은데... 밧뜨 그러나, 일상의 작은 기쁨 중에 들키지 않고 치는 땡땡이가 큰 몫하고 있다고 전 느끼고 있어요. 부디 그 기쁨 완전 접지 마시고 때때로 누리시길 전 속으로 중얼거리는뎅... -_-;;;;(홧튕!)
건님 / 모자란 글, 오토모드로 놓고 누르기만 한 사진인데 좋게 보아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답니다.
창익님 / 음... 말씀하고자 하신게 뭘까 잘 읽어낼 수 없어서 여러번 읽었답니다... (요즘 제 이해력이 많이 떨어짐을 느껴요. -_-; ) 말씀하신 것처럼 자본의 힘, 무지 세지요. 하지만 타도의 대상은 무조건적인 자본계급 브루조아들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중요하다 제가 느끼는 건, 누구는 가졌고 못 가졌으니 억울하다.가 아니라 말씀하신 사진 한 장 없는 서운함을 기억한다면 (우린 이미 겪었으니) 다음 세대에겐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고픈 거랍니다. 내 아이에겐 부를 물려줘서 이런 맘 갖지 않게 하겠다가 아니라 성의 차이로 겪는 불평등, 부의 차이로 겪는 불평등.. 그런 것들을 모두 인식하고 조금이라도 바꿔갈 수 있었음 좋겠다 생각해요. 가진 자가 더 나누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거랄까요? 어느 종교에서든 말하고 학창시절 내내 배운 도덕, 윤리 교과서에서 말하는 것들이 단순 지식이 아니라 생활화 하는 거요. 우리 다음세대에도 무리라면 그 다음이라도 가능할 수 있도록.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서 또 홧튕!을 외칩니다.
김성규(奎)님의 댓글

글 재밌게 봤습니다.
사진. 참 귀중한 사진이네요.
시차를 넘어 공감을 얻어낸다는 것이 이런 것이군요.
강정태님의 댓글

지나님,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님은 행복하신 분입니다.
세상 살면서 가슴아파 울어보지 않은 분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합니다.
지나님은 너무나 훌륭한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지금 이 만큼의 위치에 와 있는 거린 생각 안해 보셨어요?
편지 내용 중에 '작은 소유욕으로 상대방에 힘들지 않게 마음을 살펴주라' 시는 그 한 마디,
너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지나님은 너무 행복한 분입니다. 저런 훌륭한 어머니의 사랑 속에서 자랐으니 분명 행복한 거죠.
부럽습니다.
정도영님의 댓글

생각이 깊으신 어머니이시네요
글 잘쓰시는 님도 그어머니에 그딸이시네요
부럽습니다
정지웅71님의 댓글

사진뿐 아니라 글솜씨도 훌륭하시네요
입맛에 딱 맞는 식사를 한 기분입니다.
나일 먹어갈수록 부모님껜 늘 죄송하기만 합니다.
이재유님의 댓글

아침에 일어나서 집에 놀러오신 어른들 모시고 아침먹으러 나갈려는 찰라였습니다.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최준석님의 댓글

야심한 새벽에( 지나님 계시는 곳은 오후겠죠.ㅋㅋ) 이 글을 읽고 나니..
별별 생각이 다 나네요..
돌아가신 제 어머님도 생각나고...
좋은 글, 사진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장지나c님의 댓글

성규님 / 그런 사진, 성규님도 많이 남기실 거잖아요.
정태님 / 음... 정태님 말씀에 울엄니께 받은 젤로 '위대한 유산'이 뭔가 생각해 봤는데요. '자뻑성향'을 물려주신 거더라구요. 엄니랑 압지께서 요즘 게이트볼을 치러 다니시는데요. 엄니가 운동치거든요? 압지께서 구박 안 하냐고 여쭤봤더니 '야~ 느그 아빠는 내 데꼬 다님서 좋아하지~' 그러시는 거에요. 왜욤? 하고 다시 여쭸더니 그 게이트볼 팀에 여자는 엄니 한분 뿐인데다 엄니가 완도에서 젤로 예쁜 할매라서라네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 '야, 내는 완도 게이트볼 팀에서 산소데이~' -_-;
얼마전까지만 해도 여왕병이라고 놀렸는데요. 이젠 엄니께서 여전히 '여자'로 살아주셔서 많이 감사하고, 그 성격 제게도 조금은 물려주셔서 조금쯤 더 재미난 일상을 살 수 있게 해주신 거 같아요. 좋게 읽어주시고,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태님!!!
도영님 / 그저 감정 가는대로 주절거린 것 뿐인데요. 좋게 읽어주셔서 기쁘답니다. 헷.
지웅71님 / 어르신들이, 특히 언제나 붙박이 장처럼 같은 자리에 있을 것 같던 분들이 나이 들어가는 걸 깨닫는 계기는 여러곳에서 오는 거 같아요. 정태님께 저희 부모님께서 게이트 볼을 치신다 했는데요. 처음 그 얘길 들었을 땐 왠지 속상하더라구요. 드뎌 우리 부모님도 공식 노인이구나... 싶고.(게이트볼은 노인의 대명사 같아서요ㅠ.ㅠ) 연세로 따지면 노인이 맞긴한데... 울엄마 아빠니까 왠지 매치가 안되서 맘이 뒤숭숭 했지요. 할 수 있을 때, 효도 좀 했음 좋겠는데 말이에요.
재유님 / 같은 뉴욕에 계시는 분이지요? 맛있는 식사,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셨나요? 기쁜 기억 많이 만드셨음...하고 바래봅니다.
준석님 / 요즘 올려주시는 사진들 잘, 감사히 보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남겨주셨을 시각에 전, 한참 밥도 못 먹고 컴퓨터랑 싸워가며 징징 거리다 일 하기 싫다고 팽개치고 블로깅 하고 있었네요. -_-; 야심한 밤은 감정적인 면에서 참 위험하다 생각해요. 특히 제 글처럼 청승맞은 글을 쓰거나 읽게되면 더 하죠. 하지만 제가 그런 감정에 말리게 했었다면 영광인데요? 이걸 썼을 때도 야밤이었거든요. 대낮에 썼음 엄마 얄미워, 여왕병 어쩌구 했을 거에요. 아하하하 ^^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과의 이야기도 나눠주세요!
이효성님의 댓글

게으른 탓에 이제사 띄엄 띄엄 댓글들과 함께 읽어 봅니다.
읽는 내내 요 근래에 갑자기 늙어 보이시는 제 어머님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섬 가시나로 자라서 그저 뭍에 사는 대문 큰 집으로 시집가면 된다는 외할아버지의 적극적인 회유(?)에 시댁 식구들 가득한 집의 맞며느리로 오셔서, 딸도 없이 아들만 넷을 줄줄이 낳으시고, 내내 고생만 하신 제 어머님 생각에 이 먼 이국 땅의 깊은 밤이 오늘은 더 깊게만 느껴집니다.
감동이 스며드는 좋은 글 새기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Thanks.
박활님의 댓글

다소 늦은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을수 있어 다행입니다...
가끔 한국에 들어 가 뵙는 어머니의 늘어가는 흰머리가 눈에 생생합니다....
저도 저 오랜 사진과 비슷한 사진이 있습니다. 엄마랑 같이 예전에 쉽게 볼수 있었던
이동사진관 배경 앞에서 찍은 ...
갑자기 그 사진도 꺼내 보고 싶네요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
오동익님의 댓글

"사진속의 그녀는 집안일 하다 뛰어나온 모습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녀는 딸만 셋을 주루룩 낳은 죄인이 되어 백일상은 말도 꺼낼 수 없었으나, 제 몫 하나 챙길 수 없는 어린 것이 안쓰러워 나만 챙겨 입히고는 당시 동네마다 돌곤 했던 이동사진관을 찾았음일 것이다. 사진 속 나는 그 억울한 사실을 느끼고 있었는지 뿌루퉁해서 입을 댓발로 내밀고 있지만 그래도 31살, 세 딸의 어미인 그녀, 앞으로도 딸 둘을 더 낳을 그녀는 웃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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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통 긴글은 못읽는 체질이라 클릭해서 글이 길면 그냥 넘기는데
무슨 일인지 오늘 아침에 이글을 단숨에 읽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윗 대목을 읽고 가슴이 이상했습니다.
다 굳어버렸는 줄 알았는데 밑에 샘물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지나C(C字가 붙었으니 따로 氏字를 쓸 필요는 없겠지요?) 지금 어머니의 공주 같으신
스타일을 꼭 지켜드리세요.
여자는 죽을때 까지 자기 자신에 게을러지면 바로 다른 수식어가 붙잖아요.
아줌마,할머니..등등
지나C께서 어머니께서 영원이 여자이시길 응원 해주세요.
기분 좋은 아침 입니다.
고맙습니다. 잠시나마 저도 어머니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김주홍님의 댓글

좋은 글 읽고 갑니다.
항상 어리숙한 아들놈으로 부모님께 폐만 끼쳐드리고 그것도 모자라 아직까지도 부모님곁에 있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고 있네요.
나른한 오후에 좋은 글 읽고 갑니다 .
허은순님의 댓글

오늘 아침 저를 에너지 샘솟게 하셔서 다른 글을 찾아읽었지요.
시간이 지났으나, 오늘 글과 함께 다른 분들도 함께 읽어보십사 댓글 달아 위로 올려봅니다.
발랄한 모녀이십니다.
임채영님의 댓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다.
감동입니다 .^^
조효제님의 댓글

오늘 다시 올라와서 새 글인줄 알았습니다. 예전에 본 기억이 나는군요.
다시 봐도 정말이지 싱긋 웃으면서 옛일을 회상하게 만드는군요.
용기내서 글 남기고 갑니다. 그럼, 건강하시길...
채지현님의 댓글

어제 언니 어머니 얘기를 듣고 모처럼 라클에 놀러 와보니 이글이 떠 있는게 신기해요... 한참 된 글인데... 신의 계시인가요? 정말 저희 엄마랑 비슷한 점이 많으시네요... 어머니가... 그런데 문득 저희 어머니가 좀 유별나시기는 하지만 한국의 어머니들은 특히 저희 세대 어머니들은 다 닮았다는게 느껴집니다. 전쟁을 유아기에 치르고 정말 많이들 없던 시절...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다들 비슷했었잖아요? 있어도 아껴야 하고 없으면 아낄 수 밖에 없던 시절... 어릴 적 제일 싫던 말이 '니들은 얼마나 좋은 환경에 사니? 엄마 때는 어떻게 산 줄 알아?' 하시던 말씀입니다... 외할머니를 일찍 여의셔서 힘이 드셨지만 그닥 어려운 환경도 아니었는데요... ㅎㅎㅎ 딸만 둘을 낳으신 저희 엄마도 구박하는 시어머니는 없었지만 아들에 집착을 하십니다... 지금은 저에게 자식을 강요하시구요... ㅎㅎㅎ
그런데... 언니 지금 보니 엄마 많이 닮으셨어요... 특히 웃음이 많이요... ^^
cho sungju님의 댓글

제게도 여동생만 둘 있습니다.
둘다 멀리 살죠
파리와 피츠버그에
오늘 갑자기 걔들 어렸을 적 사진이 보고싶어졌습니다.
가무잡잡 햇볕에 그을은 촌 가시내 둘이
오빠 따라 오솔길을 아장아장 잘도 걸었던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잘 해 주지도 못했던 오빠에게 늘 각별한 동생들.
약간은 빛이 바래고 흐려진 사진 속의 고 귀엽던 얼굴을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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