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동안 왕이 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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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명기
- 작성일 : 07-05-2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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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동안 왕이 된 남자.
용감하고 늠름한 백제의 병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우리의 고향 웅진성으로 가자!
황금 빛 궁복을 입은 40명의 취타대가 일제히 나발과 북을 울린다. 좌우에 말을 탄 호위장수들을 거느리고
백마에 올라있다. 미모의 다모들도 말을 타고 나를 호위하고 있다. 백마에 황금 빛 갑옷. 나를 따르는 200
명의 궁녀들과 대취타대, 다채로운 만장 깃발을 든 호위병들과 창을 든 수만(?)의 병사들이 나를 따라 공주
성내를 행군한다.
전투에 승리한 나는 우리 백제군의 늠름한 기상을 공주성의 백성들에게 보인다. 길가에 선 착한 백성들. 학
생들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아이들은 손을 흔든다. 나는 백성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손을 흔든다. 서
늘한 가을 대기. 따스한 가을 햇살. 벼를 말리는 농민들에게도 일일이 손을 흔든다. 무엇하나 부족함이 없도
다.
물론 나는 불과 30분전에만 해도 그저 가난한 작가, 학생들에게 말을 가르치는 훈련대장에 불과했다. 그러
나 지금은 백제의 왕이다. 무령왕릉에서 시작되어 공주 시청에서 끝나는 이 행렬이 멈출 때까지 나는 백제
의 왕이다. 정말 초특급 출세다. 경찰의 사이드카가 에스코트를 하는 가운데 군졸들과 함께 공주 시내를 활
보한다.
태어나 일생을 살면서, 단 3시간만이라도 왕이 되어 볼 기회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수천의 병
졸들을 거느리고 백마에 올라,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 앞에 시건방진 포즈를 잡으며 말이다. 역시 말을 타기
잘했다. 내 일생에 두 번 없을 멋진 경험이다. 지금 나는 왕이다. 나는 말 위에서 흔들거리며 잠시 왕으로
서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대 행렬을 지어 성내를 행진하면 옛날의 백성들은 모두 엎드려 고개조차 들지 못했겠지. 이런 무력
시위와 권위로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며 호족들의 발호를 막고 왕권을 수호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런 행군
은 내부 조직에 대한 과시였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현대의 왕은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퍼포먼스의
일부다. 나는 이렇듯 가벼운 책무의 즐거운 왕이 되어서 행복하다.
하지만 갑옷은 예상 외로 무겁다. 갑옷 아래 온몸으로 땀이 흐른다. 아마도 이런 무겁고 불편한 복장으로 실
제 전투를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머리에 쓴 황금투구가 얼마나 무거운지 목에 힘을 뺄 수가 없다. 고개조
차 돌리기 힘들다. 나는 문득 하나 깨닫는다. 아하! 그래서 목에 힘을 준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로군. 옛날의
장군들은 절대로 목에서 힘을 뺄 수 없었을 것이다. 힘을 빼면 즉시 모가지가 똑! 부러졌을테니까!
나는 문득 내 여인을 생각한다. 이런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군. 하늘로 통통 솟아오르고, 손바닥을 턱
아래에서 부딪치며 기뻐할 텐데. 자신의 남자가 실은 왕이었다면, 요즘 같은 초현실주의 세상에 얼마나 비
현실적인 일일까? 문득 그녀가 그립다. 비록 일생에 단 3시간이지만 당신의 남자인 나는 지금 왕이야. 나는
맑은 가을 햇살에 비친 말과 나의 그림자를 본다. 그리고 고삐를 다잡아 말의 머리를 들어 올린다.
아무래도 이런 건 왕다운 생각이 아니다. 왕이 이런 잡생각이나 할 리가 있나? 진짜 왕이라면 수많은 전쟁
과 음모에 대한 고민으로 편안하게 발 뻗고 잘 날이 하루도 없었을 것이다. 밥 한 끼를 먹어도 독약 걱정을
하며 벌벌 떨었겠지.
다모클레스의 검에 관한 일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기원전 4세기 초, 사라쿠사의 왕 디오니시우스는 늘 왕의
행복을 찬양하는 다모클레스를 어느날 자신의 왕좌에 앉혔다. 그리고 왕좌의 바로 위에 말의 꼬리털 한 가
닥으로 검을 매달아놓아, 왕위가 항상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깨닫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가짜 왕인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오늘 나는 진짜 왕보다 백만 배나 가난하지만, 백만 배나 더
행복한 가짜 왕이었다.
자작나무 껍질에 새기는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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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실은 공주백제문화제에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의 학생들과 함께 초대를 받아 참석한 것이랍니다.
어쨌든 너무 즐거웠습니다. 뇌에 살짝 상처가 날 정도로 말이지요. ^~^
댓글목록
홍경표님의 댓글

부럽습니다 전하~~^^
저는 2시간 정도 말을 타니 허리가 끈어질것 같았는데....
말위에 늠늠하게 앉아계신 것을 뵈니 진짜 왕이라 해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이 기 성님의 댓글

그래도 기분은 좋았겠습니다..^^ 근데.장수들이 패도를 차지않았군요..^^
저도 십수년전에 갑을차고 마상무예시범을 해본적 있었습니다만...
갑의부피와 무게때문에 시연하기가 무척이나 부자연 스러웠던 기억이납니다..
조윤성01님의 댓글

기분 최고였겠읍니다 ^^
김인택님의 댓글

축하 합니다
기분이 아주 좋으셨겠습니다~~.
김현식님의 댓글

혹시 아래에서 두번째 사진의 우측 선녀님...
아직 나무꾼이 옷 가져다 봉인하지 않았다면... 성함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
농담입니다...
말이 어렸을때 기억보다는 그리 크지 않네요 ^^
김명기님의 댓글
실은 참 노심초사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승마 대중화, 사람들에게 말을 보고 만지게 해 주자는 취지로 하는 행사지만,
늘 만일에 대한 염려 때문입니다. 혹여 사고라도 나면 거꾸로 대중과 말을
멀어지게 하는 결과가 되니까요... ^~^
그래도 올해 여기저기서 참 많은 행사가 진행되고 점점 말들이 사람들의
곁으로 쉽게 다가가는 것 같아 내심 흐믓합니다.
아 그리고 그 선녀님들은 아직 고등학생들이라 몇 년 더 기다리셔야 할 것
입니다. 그때엔 저도 적극적으로 알아봐 드리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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