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xy & the city #10의 앞과 뒷 얘깁니다.

처음 사진찍었던 그날 아침
지하철역에 거의 다달았을 때 한 소녀가 바쁜 걸음으로 스쳐 지났다. 의상이 눈에 띄었다.
"아, 찍었으면!"
나는 가던 걸음을 머뭇거렸다. 뒤돌아 그를 쫓아가는 데는 언제나처럼 큰 용기가 필요했다. 더구나 지금은 아침이 아닌가. 카메라를 가방에서 꺼내들었다. 벌써 저만큼 가고 있었다. 한 2, 3분을 뒤따랐지만 좀처럼 기회가 안 왔다.
그녀는 아직 문이 닫혀 있는 한 커피숍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그 모습을 나는 담았다. 채 1분도 안 걸렸다. 그 사이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기도 했고 또 자기사진을 찍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는 아무런 말도, 손짓도 하지 않았다. 몸을 피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여기에서 일하고 있다 했다. 사진이 잘 나오면 다음에 가지고 오겠다고 하자 그녀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순한 미소를 띠고 수줍게 웃기만 했다. 그 순박한 표정마저 담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
나는 인사동으로 다시 향했다.

그날 저녁
인사동 - 명동 - 충무로. 현상된 필름을 찾아 들고 귀가길에 그 커피숍에 들렸다.
그녀가 안 보였다. 조금 당황됐다. 주인인 듯 싶은 여자분한테 나는 물었다.
조금 전 7시에 퇴근했단다. 그녀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아침에 사진찍은 이야기를 하자 주인은 "참 착한 애죠, 일도 열심히 하고......" 혼잣말처럼 말했다.

다음날
인사동 가는 길에 커피숍에 들렸다. 그녀가 고개로 인사를 한다. 주인도 손님도 없었다.
나는 커피를 주문하면서 그녀에게도 차 한 잔을 권했다. 그녀는 머릴 가로젓으며 않겠다고 했다. 의외였다! 보통은 주인이든 직원이든 매상을 먼저 생각하는 줄로 나는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진얘기를 잠깐 해주고 그곳을 나왔다.
그녀의 퇴근시간 전에 맞춰 커피숍에 다시 들렸다. 손님은 한 테이블 뿐, 사장도 없었다.
덥기도 해서 맥주 한 병을 앞에 놓고 나는 역시 카운터에 움직임없이 앉아 있는 그녀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건냈다.
말수가 아주 적었다. 묻는 말에나 한 두 마디로 겨우 대답했다.

바로 오늘 낮
평소보다 늦게 집을 나섰다.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뒤라서인지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주인도 없었다.
주문한 커피를 내놓은 뒤 그녀는 하던 일을 계속했다.
홀 바닥을 쓸고, 찻잔을 설거지하고, 음식물쓰레기봉지를 버킷에 담아서 내다 버리고, 현관유리문을 닦고, 냉장고 안을 정리하고......
몸맵씨만큼이나 아름다운 그 마음씨를 나는 서둘러 담았다.
지난 그날처럼 그녀는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아, 인사동에서라도 처음 만났었더라면......!"
그녀는 또하나의 '순수'였다.

(50mm Summarit/Kodax T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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