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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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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안중석
  • 작성일 : 06-04-0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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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청송 주산지. 그 가을에 이곳을 찾은 까닭은 라이카를 좋아하는 친구의 성화를 못 이겨서였다.
"라이카라는 카메라"를 친구의 주선으로 처음 마련했고 간이 나빠져 병가를 내기도 하고 회사에 양해를
구해 힘든일을 이리저리 피하다보니 마음이 혼란스러운 가을이었다.
......
주산지에서 나는 셀 수 없는 인파에 막막했고 서둘러 벗어나고 싶어했다. 늘 까다로운
성품탓으로 성급해 지고 혼자 막다른 길에 서곤 한다. 허물을 벗지 못하는 ,발버둥치며
탈각 탈피하려는 유충들처럼 몸부림치면서도 늘 스스로 지치고 힘겨워하는 일은
습관처럼 아직도 나를 따라 다닌다.
우연처럼 찾아간 곳이지만 나는 애당초 주산지처럼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피사체에
몰려드는 일을 싫어했다.

그 해의 복잡한 마음처럼 보고 싶지도 않았던 사진을 이 봄에 다시 본다.
해 뜨기 전 차가운 바람이 옷 섶을 스미며 안개는 찰나처럼 짧게 호수를 감쌌다.
사진 속 청송의 가을 ,
그 새벽과 찰나의 안개는 얼마나 황홀했던가.
호숫가를 수 놓은 셀수 없는 나뭇잎들은 부드러운 새털같았고 안개는 비단같았다.
사람들은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 허둥댔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회사일에 지쳐가고 몸 속에서 나빠진 간이 나아갈 무렵,
또 다른 이상징후가 이웃 장기에서 발견되었다. 삶은 고단하되 엄정한 것이어서 건사되지 못한 마음은
육신에 정직한 신호를 보내 온다. 국선도를 배우고 자전거 페달을 다시 밟는 아침이 늘어나는 이 봄에
옛 사진을 보며 '마음 고요'를 안개처럼 감싸안고 살고자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달려간 길이 아니어도 내가 좋아하고 사랑할 길을 이 봄에 나는 만나고 싶다.

그 해 가을엔 군중처럼 내 몰리는 인파가 싫었으나 2006년 봄에 보는 사진속의 그들은 아름다웠다.
무거운 삼각대를 놓고 카메라를 들고 매고 있는 '사진가'들은 얼마나 단순하고 순결한가.
몰두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 그들은 오늘도 이곳을 찾을 것이다.
살아가는 일은 사진속 안개와 나무, 낙엽하나를 어떻게 찍느냐와 닮아 있어서 나는 오랫동안 '부감'을 택하려 한다.

벌떼처럼 시끄러운 곳에서도, 그것이 일터이든 내 개인 삶의 공간이든, 헐뜯고 메마른 욕망이 서로에게 진드기처럼
엉켜붙어도 나는 부감으로 세상을 보고자 한다.
이 봄에 연두빛 잎들이 하나 둘 피어나는 즐거움을 기다릴 것이고 여름오면 깊고 넓은 숲의 냄새를 세포곳곳에 담을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셀 수 없는 사람들로 먼지 풍기는 주산지를 친구를 불러 한 번 더 찾을 것이다.그렇게 이 봄에 나는 서두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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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기훈님의 댓글

정기훈

좋은 사진 잘보았읍니다.

하광용님의 댓글

하광용

이름대로의 "주산지사진" 참 멋 있습니다. 글과 사진을 감상하면서 나 역시 한번 고행길을 택해야겠다는 결정을 해씁니다.

박장필님의 댓글

박장필

주산지... 한번 가 보았지만, 게으름으로 인해 그냥 구경하고 돌아왔던 기억이...
이번 가을에 다시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

박대원님의 댓글

박대원

아름다운 경치 앞에서도
항상 별 감동을 못 느끼는 무딘 시감視感의 저도
지난해 딱 한번 가본 주산지 앞에서
그만 넋을 잃고 말았었죠. 그 신비로움에!

안중석님께서 다시 주산지를 찾으실 때는
그 신비로운 주산지가 신비로운 '기적'을 틀림없이 안겨주리라
저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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