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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햑야리에서

페이지 정보

  • 작성자 : 박유영
  • 작성일 : 05-07-29 16:26

본문

다시 학야리에서


1


하얀 졸음같던 형광등 아래
밤새 투닥이던 타자기 소리
충혈된 눈 자위 부비며 움켜넣던 새벽 2시 辛라면 가락.

내 나이 스물 여덟살.
한여름 소금기로 남은 건봉사 지나 냉천리의 유격장
혹한기 텐트 속에서 졸여 먹던 건빵의 기억.

지겹게도 무덥고 모질게도 시리던 15년 전 학야리.

잊고 살다가도, 까맣게 잊었는가 하다가도
사단기동훈련 일주일 내내 벗지 못해 생긴 군화속 무좀이 다시 살아나고
겨울 길목에선
영화 20도 탄약고 새벽근무 귓볼 동상으로
오늘도 가렵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햑야리.



2

아내는 울고 있었나.
결혼하고 딸랑 90일 만에 훌쩍 입대해버린 남편을 찾아
부산에서 속초까지 밤을 세워 달려와선
그 짧은 하룻밤, 낯선 여관을 뒤로 하고
속초발 시외버스에 오를 때면
어슴푸레 웃던 아내의 얼굴이 차창 밖에선 보이지 않았다.

군화 까치발로 차안을 기웃거리다
버스가 떠나 버리면
가슴속을 휘익 스쳐가는 바람,
온 몸이 비어 버려
후줄근하게 젖어 오던 낮술잔들...


3


안개들이 기억처럼 머물러 있는
2005. 7월 강원도 고성군.
밤새 선잠 뒤척이다
새벽녘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불현듯 나타나는 울산바위처럼
가슴에 못내 지우지 못한 기억.

한여름을 뒹굴던 신병교육장으로
25개월을 하루하루 지우며 살았던 학야리부대
아내와 거닐던 화진포 언저리를
혼자서 다시 되짚어 보면

그리워하면서도 우리는 오히려 사랑을 스쳐보내는 것은 아닐까.
늘 그리워하면서도
오늘도 그저 스쳐 가는 것은 아닐까.


회한처럼 안개들이 머물러 있는
2005. 7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학야리.
추천 0

댓글목록

김두성님의 댓글

김두성

좋은 글, 사진 감사합니다.

김봉섭님의 댓글

김봉섭

선배님 엄청 늦은 나이에 입대하셨군요... 멋진 詩와 사진 잘 감상하고 갑니다.

김용준님의 댓글

김용준

박선생님 계실 때 '신라면'이.... 제가 있을 때는 청보식품의 ' 킹라면'이 강원도에서는 팔리던 라면이었습니다. 동네 구멍가게에 가면 450원에 '경월소주'를 주는데, 50원을 보태면 '진로소주'를 주었고요. 박선생님 말씀대로 대대 2/3과등에는 타자기 1대 씩이 문서 작성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장비여서 한 명은 갱지에 먹지를 끼우고 보고서류 양식 작성. 한 명은 밤을 세워 타자를 쳐가며 문서 만드느라 밤세우기 일쑤였지요.
4.13호헌(대통령 간선제 고수)조치. 6월 시민 운동 등의 격랑 끝에 이한열 군의 장례식이 열리는 날 예비군복을 입고 서울시청 앞에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만, 박선생님 께서도 늦게 힘든 군생활을 하셨군요. 더우기 점령군 사령관(?)을 집에 모셔두고....^^*남자라면 잊혀지지 않는 가장 큰 추억의 장소로 기억되는 곳이 군이 아닌가 합니다. 항상 좋은 사진과 글에 감동 먹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상훈china님의 댓글

이상훈china

22사단 출신이군요. 저도 고성의 한 산골에서 30개월을 보냈죠.
쌍팔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의 4월 토성면 아야진 사단훈련소의 새벽, 저멀리 신작로에는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움직이는 버스를 보며 다시는 저 버스를 탈 수 있을지를 생각하던 때가 엊그제 일 같습니다.

박대원님의 댓글

박대원

감동적인 글과 좋은 사진, 고맙습니다.

김정우rev318님의 댓글

김정우rev318

저도 늦게 입대해서 동갑내기 소대장과 생활하던 생각이 납니다..

좋은 글과 깊은 감동이 있는 사진 .. 잘 느꼈습니다.

최연돈님의 댓글

최연돈

잔잔한 사진이 참 좋으네요.....잘 봤습니다.....

라영범님의 댓글

라영범

무엇인가 이 메마른 가슴속에서도 한 줄기 추억같은것이 실없는 웃음처럼 배어나올듯한 분위기....
전혀 다른 상황을 경험한 사람이면서도 마치 나의 경험을 돌아보고있는듯한 느낌...
진실이 바탕이된 글에서는 모든 상황에 통할수 있는 진리가 배어나오는가보다.
참 좋게 잘 읽었습니다.
사진만 좋은게 아니라 글도 참 좋네요 부럽습니다....

김찬님의 댓글

김찬

화진포 언저리를 거니셨군요...
전 학야리에서 가까운 문암 바닷가를 좋아합니다....
사람도 없고 한가하고...
겨울바람이 사납게 불던 어느날 부터 좋아했는데 아직도 아주 좋아하는 바닷가 입니다...

쓸쓸하고 허전한 마음이 들게 하는 글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사진...
좋군요....

윤지환님의 댓글

윤지환

제목을 보고 너무반가워서 저도 글한줄 남깁니다.
학야리 막사 뒷산에 눈이오면 오백원짜리 학이 그려지던 운봉산이 그립습니다.
15년전에도 냉천리 유격장에서 유격을 했었군요.. 아마도 저의 군대 선배님이실듯합니다.
덕분에 오랜만에 그시절을 회상하며 피식 웃음한번 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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