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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수리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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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임성규
  • 작성일 : 07-02-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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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금속 조각을 만들일이 있어 최근 몇 일간 청계천을 자주 방문했었습니다. 한 조각집을 찾았는데 젊은 사장님이라 나이또래도 비슷해 보이시고 됨됨이도 좋아보여서 갈때마다 10~20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요. 마지막으로 완료된 물건을 찾으러 갔더니, 다방 커피를 한 잔 시켜주시더군요.^^ 마지막이라 커피를 마시며 조금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자연스럽게 카메라 이야기를 했지요. 나는 사진을 좋아하고 카메라를 좋아하는데 저런 조각 기계 하나 있으면 제 맘대로 원하는 카메라를 고치고 만들 수 있겠노라고요. 그러니 조각집 사장님 말씀이, 안그래도 나이 지긋하신 한 카메라 수리점 사장님께서 자주 방문하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고는 그 수리점 사장님이 주문하신 물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물건은 플라스틱으로 된 35미리 수동 카메라의 필름 리와인딩 노브였습니다. 이 플라스틱 부품을 알미늄으로 똑같이 깎아 달라고 하셨답니다. 아마도 잘 부러지는 로모 등의 소형 플라스틱 카메라의 리와인딩 노브를 수리하시기 위해서 만드시는 것 같았습니다.

단가를 맞추기 위해 5000개를 주문하셨다 하시네요. 사실 점점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인구가 줄어들고 일년에 10개 넘게 수리들어오기 힘든 부품을 5000개나 만드신다는 말씀에 좀 놀랐습니다. 그 수리점 사장님 말씀으로도 어차피 이렇게 만들어 봐야 본인은 손해를 보신다 하시더군요. 10년이 아니라 100년을 기다려도 저 5000개를 다 쓰진 못할 것이라고요. 그래도 손님이 찾는 것이라 만들지 않을 수 없다고, 그래서 왔다고 하셨다더군요.

부품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카메라를 의뢰 받으실때 마다 수리용 공구도 그 조각집에 오셔서 그때 그때 만들어 가신답니다. 결국 이렇게 되면 5만원쯤 받는 수리 비용이 오히려 모자란 경우가 허다하다 하네요.

어찌 생각해 보면 씁쓸하기도 하고 나이드신 수리점 사장님의 열의가 존경스럽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얼마전에 충무로에 있는 한 수리점에 카메라를 맞긴 적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는 오히려 엉뚱한 부분을 망쳐 놓으시고 결국 더 못고치겠다고 손을 놓아버리셨던 적이 있습니다. 두 사장님의 장인정신의 차이도 속으로 비교해 봅니다.

그 수리점을 한번 찾아가 보고 싶어 성함을 여쭈었는데 제가 아는 분이 아니시더군요. 수리점 위치는 그 조각집 사장님도 잘 모르시겠답니다. 아마 남대문 시장 어느 한 구석진 작은 사무실에서 오랜세월 묵묵히 카메라만 고쳐오신 또 한 명의 장인이 아니실까 상상해 봅니다. 그런 분들이 계셔서 낡은 기계식 카메라를 좋아하는 제가 조금 더 길게 취미생활을 영유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우연치 않은 기회에 한 수리점 사장님의 생활을 옅보게 되고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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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이효성님의 댓글

이효성

참으로 마음을 흐믓하게 하는 미담이군요. 이 땅에 희망이 있는 것은 그런 성실하고 정직한 분들이 아직 계시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좋은 분들이 좋은 대접을 받는 사회가 속히 회복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좋은 글 잘 읽고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성연님의 댓글

강성연

어느 곳이던 진정한 마이스터가 존재하나봅니다.
가끔 차를 고치러가도 세심하게 이것저것 손봐주시는 분들을 볼때마다 존경스럽습니다.
본인의 공임도 안나올 것 같은 일에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것 보면요..

조효제님의 댓글

조효제

짧은 지식인줄 알고 있기에 의견 남깁니다. 카메라 수리 경력이 10년이 넘는다면 다 거기서 거기일 것 같습니다. 비슷한 경력의 수리실이라면, 결론은 얼마만큼 열정을 가지고 임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물에 따라 의뢰자의 호불호가 결정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회원님들 사이에 오가는 수리실을 찾았지만 늘 2% 부족한 무언가를 항상 느끼게 되어서 의견을 남깁니다. ^^

김선근님의 댓글

김선근

임성규님,
님의 글에서 잔잔한 감동이 묻어 납니다.

사후관리의 인프라에 문제가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조효제님의 "열정"이란 부분도 공감하는 바가 큽니다.

김상환 72님의 댓글

김상환 72

글이 참 따뜻하게 느껴지네요. ^^
그 수리점 사장님, 자신의 일에 열정과 자부심을 가지신 분인거 같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히 해야할 일일텐데 "당연"이라는 말이 사라진 세태가 씁쓸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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