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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대를 세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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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 현재덕
  • 작성일 : 05-02-1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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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가르칩니다. 엄마 아빠가 갑자기 안보이면 어떻게 해야 하지? 찾으려고 이리저리 막 돌아다니지 말고, 꼼짝 말고 헤어진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여러 번 단단히 이릅니다. 아이는 묻습니다. 이리저리 막 돌아다니면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다시는 엄마 아빠 못 보는 거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아이가 또 묻습니다. 그럼 꼼짝 말고 기다리면 엄마 아빠가 와? 그렇다는 대답에 환하게 웃는 아이를 보며 나는 속으로 "응, 꼼짝 말고 기다리면 꼭 와..."라고 저 안쪽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는 '나'에게 한 번 더 말해줍니다.

언제부터인가, 삼각대를 세우고 사진을 찍습니다. 전에는, 무겁고 힘들어서 가지고 다니지 않았어요.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이며, 사람들을 촬영하기엔 사진기를 손으로 들고 쫓아다니며 찍는 쪽이 더 좋다고 생각했던 탓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삼각대를 세우고 한 자리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훨씬 더 깨끗하고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움직이는 것만큼 생생한 표정과 반짝이는 눈빛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무거운 삼각대를 들고 다니다 일일이 다리를 펴고 울퉁불퉁한 땅에 세우는 힘든 노력만큼 그만큼 더 선명한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꼼짝 않고 서서 바라보는 파인더 속의 사람은 언젠가는 꼭 다시 이쪽을 돌아봐 준다는 것도....

술을 마시고, 아프고, 눈물을 뿌리며 밤길을 헤맨다고 잃은 것들을 찾을 수는 없겠지요. 삼각대를 세우듯 나의 자리에 단단히 마음을 세우고 서서 꼼짝 않고 기다리는 쪽이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면서, 아이에게는 그러라고 자꾸자꾸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 현명한 아빠일지는 모르지만, 아무래도 영영 현명한 남자가 되지는 못할 것 같아요. 내가 어디쯤 서있었는지 벌써 아득해서.... 누군가 돌아와 준다 해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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